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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대한 적응이면 역진화는 아니다, 공진화라면 몰라도....
지난 3월 29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그 동안 월동생태가 알려지지 않은 물거미(학명: Argyroneta aquatica)의 월동생태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물거미는 수온이 큰 폭으로 내려가는 12월 초부터 서식지가 얼어 있는 다음 해 2월까지는 동면을 하다가 얼음이 녹는 3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물거미가 육상 거미와 같은 형태로 추위를 피해 서식지 내의 너도겨풀이 우거진 지상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을 최초로 규명했다는 것이다.
연구소 측은 이번 연구결과가 물거미의 월동생태에 관한 새로운 학설을 사실화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자 역진화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라며 국외저널(Journal of entomology)에 게재 또는 영국왕립곤충학회(Royal Entomological Society)에 발표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같은 획기적인 연구가 사실은 지난해부터 연구소가 수행해온 '천연기념물 제412호 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 보존을 위한 모니터링 과정에서 얻어낸 부수적 성과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물거미(학명 Argyroneta aquatica·사진)는 전 세계에 오직 1과1속1종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이한 종(種)이라는 점과, 물속에서 살지만 땅에 사는 다른 거미처럼 책허파(書肺)와 복부의 숨구멍(氣門)으로 물 밖에서 숨을 쉬며, 물속에서는 배에 공기방울을 붙이고 다니며 공기주머니집을 만들어 숨을 쉬는 등 수륙양용의 하이브리드종이다. 또한 물속에서 이동할 때는 헤엄을 치거나, 물풀을 따라 쳐 놓은 거미줄을 따라다니는 등 독특한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학술적으로나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큰 종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역진화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됨으로써 더욱 중요한 종이 되었다고 하겠다.
그 동안 물거미에 관한 몇몇 국내·외 문헌들에는 월동에 관한 자료가 없거나, 땅속이나 물속, 진흙 속에 만들어놓은 공기 주머니집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험실 내 사육환경조건에서의 생태만 일부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땅속이나 물속 또는 진흙 속에 만든 공기방울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으로 추정되던 물거미가 육상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이 '은대리 물거미'를 통해 확인된 것은 물거미가 육상에서 수중으로 생활근거를 옮긴 것을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상에 살던 물거미가 다시 수중생활로 되돌아간 것은 물에서 뭍으로 가는 진화의 방향과 정반대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역진화(逆進化)의 대표적 예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역진화에 대한 진화학적 이론을 뒷받침해줄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연구소는 “지금까지 물거미는 보통 땅속이나 물속 또는 진흙 속에 만든 공기방울에서 겨울을 나는 모습만 관찰돼왔으며, 국내외 문헌에서도 땅 위에서 겨울잠을 잔다는 기록은 없었다. 이 같은 모습은 물거미가 본래 지상생활을 하던 거미가 수중생활로 역진화(逆進化)한 종이라는 진화학적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물거미를 통해 관심을 끌게 된 역진화 이론은 진화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발굽보다 발이, 아가미보다 폐가 더 나은 진화형이며 물에서 뭍으로 생활근거지를 옮기는 것도 진화형에 해당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와 정반대로 변화하는 것을 역진화라고 하며, 같은 종일 경우 예전에 사라진 형태가 다시 나타나는 것도 역진화로 본다.
작년 초 포르투갈과 미국 과학자들은 1975년에 채집한 초파리를 50세대에 걸쳐 다양한 환경 속에서 번식시켰더니 과거 조상의 유전자로 되돌아가는 사례가 나왔다고 밝혔다. 밀이나 옥수수 등 다양한 식물을 정전기장에 노출시켰더니 이미 멸종돼 볼 수 없는 원시 형태가 나왔다는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의 식물 실험도 역진화 예로 꼽힌다. 이렇게 옛날의 유전자로 되돌려 식물을 재배하면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자라고 수확량도 많아진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실험을 한 회사는 살충제를 생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실험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작년 8월에는 캐나다의 고생물학자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부화되는 닭에서 공룡의 특성을 재현하는 역진화 실험을 통해 조류의 조상이 공룡임을 입증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맥길 대학 대(大)진화연구소의 한스 라슨 박사는 조류에 남아 있는 수백만년 전 공룡의 특성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닭의 배아 발달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 신호를 조작한다면 공룡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슨 박사는 영화 ‘쥬라기 공원’의 기술 자문이었던 미국 고생물학자 잭 호너와 토론 중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밝혔는데, 호너는 최근 저서 “공룡 만들기”에서 ‘치키노사우루스’를 만들어내는 배아 실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현재 라슨 박사의 연구는 캐나다 자연과학 및 엔지니어링 연구위원회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라슨 박사 팀은 니제르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8종의 공룡과 5종의 악어 화석을 발견했으며 최근엔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육식 공룡의 화석을 발굴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라슨 박사는 “이 실험은 다만 진화의 시범일 뿐이다. 공룡의 해부학적 발달 잠재성이 조류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거꾸로 조류가 공룡의 직계 후손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공룡을 부화시키는 것은 너무 큰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초보 단계이긴 하지만 이런 연구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멸종한 고대 동물을 되살려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윤리적, 현실적 이유로 공룡을 만들어 낼 계획은 없다고 하면서 논란에서 살짝 비켜서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인간에게서 나타났다는 역진화의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2006년 영국과 호주에서는 두발로 걷지 못하고 손과 발로 기어가는 터키의 시골 가족이 화제를 끌면서 역진화의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터키 의대의 한 교수 논문에 소개된 18~34세의 5남매는 직립 보행을 못 하고 손과 발로 기어다녔는데, 연구자는 "이들이 유인원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봐 원시인으로 육체와 정신이 퇴화한 역진화의 분명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은 뇌의 기능 이상 탓이라고 반박하면서 역진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같은 역진화는 많은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법정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1925년 미국 테네시주 데이톤에서 진화론자와 창조론자들은 역진화를 통해 일합을 겨루었다. 진화론자들이 "침팬지 등 유인원이 지금의 인간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창조론자들이 "인간이 역진화한 것이 유인원이지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한 게 아니다"라면서 진화론을 가르친 생물교사를 법 위반이라고 제소해 벌어진 어이없는 재판의 결과는 진화론자의 승리로 끝났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라면 맹신도가 아닌 이상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용인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우스꽝스럽게도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법정 공방까지 벌인 끝에 진화론자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은 박빙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지극히 상식적으로 결말이 난 비상식적인 사건을 통해 역진화는 한 번 더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역진화 이론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현대 진화 이론을 받아들인 다수 과학자들은 방향성을 전제로 하는 역진화론에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더 복잡한 구조로 바뀌는 것이 진화이고, 기능을 잃는 것은 진화를 거스르는 역진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단순해지고 필요 없는 기능이 사라지는 것도 진화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결과적으로는 생물이 환경 적응을 위해 변화하는 것이니 진화의 예로 봐야지, 거꾸로 진화한다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워터월드에서 귀 뒤에 아가미가 생기고 손발에 물갈퀴가 생기는 주인공처럼 육상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면 바다 속으로 생활근거지를 옮기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역진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라는 또 다른 개념을 필요로 한다. 본래 생물학 용어인 공진화란 여러 종(種)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나방은 박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청각세포의 민감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박쥐는 이에 대응해서 초음파를 다양한 형태로 발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천적관계뿐만 아니라 협력관계에서도 동일하게 공진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식물과 동물이 서로 진화에 영향을 끼치며 공진화했다. 원래 공진화 개념이 생물과 환경 간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영화 아바타에서처럼, 그리고 가이아 가설에서처럼 생물과 환경이 공진화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여중생 납치·강간·살해 용의자 김길태에 관해선 많은 뉴스가 쏟아졌지만 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능지수(IQ) 86에 불과한 김길태가 '범죄지능'은 꽤 높은 것 같다는 기사였다. 19살 이후 11년을 감옥에서 보낸 김길태는 수사기관과 교정(矯正)기관에서 거꾸로 죄짓는 법, 죄짓고 빠져나가는 법을 체득(體得)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IQ에 상관없이 교도소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다면 학교에서도 그 이상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보면 김길태는 짐승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에서 짐승으로 '역진화'했다고 보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그런 역진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종의 공진화 현상과 맞물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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