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정스님 중국 복건성 삼회사 주지 염불삼매에 이르면 ‘명심견성’ 법력이었을까?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일요일(10월 28일)에 전국적으로 꽤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 했었다. 그러나 막상 일요일은 청아하기 이를 데 없는 전형적인 우리나라만의 가을날씨였다. ‘중국 관정(寬淨)대법사 초청 천도재 및 마정수기 법회’가 열리는 북한산 영취사를 향해 오르는 길은 조락(凋落)한 낙엽들로 장엄되어 있었다. 절이 가까워지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염불소리가 산새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영취사 마당에서 목 끝까지 차 오른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78세의 노스님이 이렇게 가파른 산길을 마다 않고 올라오신 것이나 전국적으로 가을비가 온다더니 해맑은 가을날씨를 드러낸 것이 바로 법력이 아닐까. 관정 스님은 근대중국의 고승 허운(虛雲 1840~1959)화상의 제자다. 동산양개(洞山良价) 스님을 처음으로 하는 동운종파(洞云宗派)로 치면 48세 법손이 된다. 처음 출가하여 10여년간 허운 화상을 모셨고 스승의 입적전 10여년을 모셨다. 북한산 영취사 법회참석 “열일곱 살에 광동성 남화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강서성 운고산으로 가 허운노사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노사로부터 참선 선정을 배웠는데 40여 년 간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했습니다. 허운 노사는 매우 검소하고 소박한 분이었습니다. 무섭도록 정진을 하시는 스승의 내면에서 넘쳐나는 자애로움을 나는 늘 존경했습니다.”지금도 관정스님은 검약한 생활이 수행인의 기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주변에서 관정스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은 “휴지 한 장도 나누어 쓰는 검소한 생활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허운 화상의 제자로 참선 수행을 하던 관정스님이 정토선으로 수행의 방편을 바꾼 것은 불가사의한 체험에서 비롯된 일대변화다. 관정스님은 1967년 음력 10월 25일 복건성 덕화현의 미륵동에서 선정에 들었다. 그 때 관세음보살의 인도로 서방정토 구품연화경(九品蓮花境)을 참관하는 불가사의한 체험을 하게 됐던 것. “선정에서 깨어난 때가 1974년 4월 8일이었습니다. 장장 6년 5개월간 선정에 들어 있었던 것이니 참으로 믿기지 않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기간동안 미륵불을 친견하고 또 관음보살의 인도를 받아 하품하생에서 상품상생에 이르는 정토 구품연화경을 두루 참관했습니다. 그리고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해 중요한 가르침을 받고 이승으로 돌아 왔습니다.”관정스님의 그런 체험은 최근 영취사가 간행한 <자성염불 명심견성>이라는 책자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가을바람처럼 투명한 인상의 관정스님을 만나 가장 궁금했던 것(세속적인 안목에서)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6년 반 동안 선정에 들었다가 돌아 왔다면 육신은 어디에 어떻게 두고 다녀왔느냐는 것이다. “선정에 들어 있는 동안의 육신은 썩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몸은 살아 있는 그대로입니다. 나는 미륵동 동굴에 몸을 두고 갔던 것이고 마치 진공의 상태에서 물질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 몸도 온전하게 보관되어 있었습니다.”또 하나 궁금한 것을 물을 차례. 그 신비로운 체험 이후 정토선을 주창하시는데 서방정토에서 특별한 무엇을 배우고 왔기에 수행법을 바꿀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에 대해 관정스님은 구품연화경을 참관 한 후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은 내용을 설명했다. “아미타 부처님 앞에 나아가 3배를 드리자 금구(金口)로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중생의 불성은 한가지로 평등하다. 의식이 뒤바뀌어 환(幻)으로써 진(眞)을 삼아서 인연과보로 6도에 나고 없어지는데 윤회를 끊지 않으면 고통이 만 가지다. 내 48대원으로 중생을 제도하니 남녀노소가 신(信) 행(行) 원(願)으로 일심불란하면 이것이 정토선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르침을 청하니 아미타부처님께서는 ‘정토선을 닦고 가르쳐서 중생들이 선정쌍수(禪定雙修)하게 하라, 종교로 종교를 비방하지 말고 도와야 한다, 부처님의 8만4천 법문은 모두가 진실하니 수행하는 자는 삿됨을 바름으로 귀의시키고 마를 도로 변하게 하고 작은 것을 크게 하여야 하니 서로 돕고 사랑하며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이어야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그런 체험 이후 스님은 정토선을 닦으며 여러 제자들에게 정토선을 가르치고 있다. 정토선이란 두 단계로 닦는 수행법이다. 첫째는 염불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할 때는 두 반으로 나누어 먼저 한 반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고 이 때 다른 반은 상대편의 염불을 속으로 들으며 묵송(默誦)한다. 그리고 다른 반이 묵송을 하는 동안은 소리를 내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자신이 직접 염불을 하면서는 자신의 염불소리를 관하고 다른 반이 염불을 할 때에는 그 소리를 관하는 것이다. 혼자 염불을 할 경우에는 두 번은 소리 내어 염불하고 두 번은 묵송을 하는 것을 되풀이 한다. 관정스님은 “이같이 염불을 일심으로 하게 되면 우리 몸속에서 저절로 염불을 그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어 항상 염불삼매를 유지하는 자성염불(自性念佛)의 경계에 이르게 되고 이것으로 명심견성(明心見性)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정토선의 다음 단계는 수선법(修禪法). 자성염불이 이루어진 때부터는 소리를 내서 염불하지 않고 속에서 들려오는 염불 소리를 관하면서 좌선 수행을 하여 무념의 경계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관정 스님은 바로 그 무념의 경계에 이르면 스스로에게 법신이 출현하여 시방법계에 자유자재로 노닐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즉, “화두선은 무념으로 이루는 것이고 정토선은 일념으로 이루는 것”이라는 것이 관정스님의 정토선에 대한 요약이다. 26일 영취사에 도착한 관정 스님은 27일 오후부터 28일 오전까지는 주로 찾아 온 신도들에게 수기를 내렸다. 6년여 선정들어 “수기를 내리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라는 독려이자 정토선을 부지런히 닦아 반드시 성불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수기를 받고나면 수행을 하겠다는 의지가 더욱 굳어집니다. 부지런히 닦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가 없습니다. 자신의 입에서 맴도는 염불을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염불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마음속에 울리는 염불을 관하며 자성을 개오해야 하고 자성을 밝게 열어 서방정토의 주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그러나 관정스님은 28일 오후2시 영취사 신도 100여명의 앞에서 법문을 할 때 무조건 정토선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먼저 인연과보의 질서를 의심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5계를 철저히 지켜 삶의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그곳에 이르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이지만 이 세계에 살아 있는 이 순간의 수행이란 자신의 몸을 가지런히 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타인과의 관계를 선량하게 맺는 것 즉, 인연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토선도 무르익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미국을 가려고 할 때 배를 타는 방법도 있고 비행기를 타는 방법도 있습니다. 배를 타면 늦게 가지만 비행기를 타면 빨리 갑니다. 나는 정토선이 성불로 이르는 빠른 길이란 것을 분명히 믿고 그것을 권하는 것입니다.”법회가 끝나고 관정스님과 간단한 문답을 나눌 시간이 주어졌다. -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사건 이후 세계는 전쟁의 혼란속에서 엄청난 테러 공포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테러전쟁의 과정을 지켜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미국이 테러를 당한 그 장면은 목불인견(目不忍見),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나는 테러를 자행한 사람이 세계 인류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테러를 당한 미국이 용서를 하는 큰마음을 보일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전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끝이란 바로 사죄와 용서로 인해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한국에는 여러 종교가 병존하고 있고 세계도 종교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간의 화합은 늘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어 있지만 잘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종교는 인류에 있어 중요한 현실입니다. 종교를 바탕으로 하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숭고한 일입니다. 종교는 평화를 기초로 하는 것이므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 종교는 중요합니다. 평화를 가르치는 종교가 자기 종교를 위해 평화롭지 못한 행위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모든 사람들은 죽게 마련입니다. 천지만물이 다 나고 죽는 과정에 놓여 있습니다. 죽음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죽음은 천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을 끝이라고 보는데서 슬픔이 있습니다만, 불교인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광영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정토선을 열심히 닦으라는 것은 바로 염불삼매의 선정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스님의 스승 허운화상께서 절 짓는 불사를 많이 했고 스님께서는 문화혁명으로 파괴 된 그 절들을 다시 복원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불사의 공덕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현재까지 13개의 절을 지었습니다. 절을 짓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얻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공덕과 복덕이 불사를 통해 쌓이기 때문입니다. 그 공덕으로 중생들은 업장을 소멸하고 새롭게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의 가피라고 하는 것이 불사의 공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사를 많이 하는 것이 좋고 누군가의 발원으로 이루어지는 불사에 많이 동참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한국의 불자들이 시주한 재원으로 복건성 섬유현에 맥사암사(麥斜巖寺)란 이름의 절을 지었습니다. 한국식 사찰을 지었고 한국어로 현판을 달았습니다. 한국불자들이 베풀어 준 좋은 인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피를 입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중국 절에는 없는 사천왕상을 모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선불교에서는 사람의 육신을 가아(假我)라 하여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스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신 줄 알고 있습니다. 신각(身覺)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시는데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서방정토 분명히 있어요” “사람은 몸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몸을 한낱 구린내 나는 피주머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몸의 속에서 수행의 힘을 얻을 수 있고 이 신체가 바로 진귀한 보배라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몸을 여의지 않고 깨달음에 드는 것이 신각입니다. 신각은 3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신물각(身物覺)인데 세상의 모든 사물들과 사람의 몸도 그 가운데에 있습니다. 물질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현상계의 물질들이 어디서 나고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것이 신물각입니다. 다음은 신신각(身神覺)이니 영계의 현상들에 집착하여 허망된 것을 좇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수행이 안 된 사람은 심령상에 집착하여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공을 더 수련하여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타파해 삼계를 벗어나야 합니다. 마지막은 신성각(身性覺)입니다. 삼계 밖으로 나아가 온 허공, 온 법계, 온 불국토를 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경지입니다. 신각이란 몸 안으로부터 수행을 익혀서 몸 안에서 불성을 찾아내는 것입니다.”관정스님은 영취사에서 법회를 마친 뒷날 지방의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고자 영월로 향했다. 올라가는 산길 4시간 내려오는 산길 3시간 반을 거뜬히 여기는 노스님의 법력이 놀라울 뿐이다. ********************** 관정 스님은 1924년 7월 7일 중국 복건성 보전현 성광진 동대로에서 출생했다. 속성은 심(瀋)씨. 태어날 때 서쪽하늘이 금빛으로 빛나고 대지가 황금빛을 발했다 하여 이름을 금영(金榮)이라 했다. 일곱 살 때 복건성 교충사(敎忠寺)로 출가했고 15세에 허운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17세에는 광동성 남화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7세에 운고산에서 허운스님으로부터 정법안장을 계승하여 전법제자가 되었다. 1967년부터 6년 반 동안 선정에 들어 서방정토를 참관했다. 1982년부터 미국에 가서 불교 포교에 매진해 북미불교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미국등을 오가며 정토선을 현창하고 있으며 중국 본토에 스승 허운화상이 창건했던 절들을 다시 중건하는 불사에 전력하고 있다.
출처:부다피?/편집:(http://dochang.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