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정동진으로 1... (제천을 지나며)
서울에서 동쪽으로 가면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正東津)리다. 임금이 거처하는 한양(경복궁)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라는 뜻이다. 한편 정서진은 인천의 오류동이며 정남진은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역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1995년 TV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고현정이 이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 경찰에 연행된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 이를 테마로 관광지화 되면서 연간 100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이 정동진을 8월 24일 한화관광을 따라 여행이 시작되었다. 대전에서 출발한 여행길...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음성군의 대소분기점에서 제천으로 달린다.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호법 분기점에서 여주를 거쳐 원주로 갔었는데 교통량이 분산되었다. 제천에서 원주로 가는 길에 탁사정(濯斯亭) 유원지가 있다. 백사장과 맑은 물, 노송이 어울린 아름다운 계곡인 탁사정... 서늘한 골바람과 크고 작은 바위가 맑은 물살에 씻기어 사방에 널려 있고, 짙푸른 물빛, 낮은 폭포가 어우러져 주위의 노송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천을 지나 원주시 신림면에 진입한다. 이곳의 성남리 성황림, 황둔 자연 휴양림과 치악산 자연 휴양림... 오래된 신비의 숲 속에서 진정한 치유(治癒)를 느끼고 싶다면 이곳에 가면 어떨까? 성황림에는 나무판자와 기와로 지은 성황당이 있다 그 양 옆에는 남서낭과 여서낭으로 불리는 거목(巨木)이 이를 지키고 있다. 또한 금대 유원지... 치악산 남대봉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피서지로 적격이다. 이곳에 민물고기가 많이 서식하여 여름철 매운탕으로 지친 피로를 보신하면 좋을 듯하다.
이곳의 용소막(龍沼幕) 성당... 벽돌로 되어 있는 이 성당의 뾰쪽 탑... 다른 성당의 탑에 비하여 유난히 높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에 의해서 원주 용소막 지역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해졌다. 전국 곳곳에 龍沼가 많은데 용소의 끝이라는 뜻인지... 이곳에 평생을 보낸 선종완 사제... 그는 성경의 신.구교 공동 번역을 주도하였다. 그 원고본이 지금도 남아 있다. 원주에 도착한다.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이 지역이 개활(開豁)되어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고려 때부터 불리던 원주... 조선 태종 때부터 강원도 감영(監營)이 있었지만 조선 말 행정구역 개편으로 춘천으로 도청을 옮겼다.
강릉 정동진으로 2... (원주를 지나며)
원주에 오면 토지의 저자 박경리(朴景利) 선생이 생각난다. 20여 년간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 해방 전후에 걸친 여러 계층의 인간의 상이한 운명과 역사의 상관성을 깊게 다뤘다. 통영에서 태어난 그녀는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었으니 불우한 결혼생활이었다. 인생의 길은 영원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인데 신혼 초에 그 꿈이 깨졌으니 말이다. 나 역시 어려서 찾아 간 외가(外家)... 외조부는 큰 삼촌댁에 기거하시고 외조모는 작은 삼촌 댁에 사셨는데 이유를 몰랐었다. 작은 외숙(外叔)의 비운으로 외숙모가 30초반에 홀로되어 할머니께서 집을 지켰으니 그 박경리 선생과 삶이 비슷하였을 것이다.
여행길은 만종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우측으로 치악산(雉岳山)이 보인다. 이곳의 상원사(上院寺)...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 절은 은혜를 갚은 꿩과 뱀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이곳을 지나는데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 죽이려는 것을 보고 지팡이로 구렁이를 쳐서 꿩을 구하였단다. 그 날 저녁 여인 혼자 사는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죽은 구렁이의 아내로서 원수를 갚기 위해 선비의 몸을 감고 죽이려 하고 있었다.
구렁이는 자정이 되기 전에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게 하면 죽은 구렁이가 승천할 수 있으므로 그 승려에게 종을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단다. 선비는 목숨을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이 세 번 울려왔다. 구렁이는 기뻐하면서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므로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날이 밝아오자 선비는 종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 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종루가 있었는데, 종 아래에는 전날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울부짖던 꿩 두 마리가 머리가 깨져 죽어 있었다.
선비는 꿩이 은혜를 갚으려고 종을 울리고 죽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과거 길을 포기하고 그곳에 사찰을 복원하고, 꿩들의 명복을 빌며 일생을 마쳤다. 그 후로 적악산(赤岳山)이었던 이산을 치악산雉岳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고맙게 베풀어 주는 혜택을 뜻하는 은혜(恩惠)... 恩惠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강물에 뿌리라는 선현(先賢)의 말씀이 생각난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을 뜻하는 원한(怨恨)... 많은 사람에게 지탄을 받으면 병이 없어도 죽게 된단다. 즉 千人所指無病而死(천인소지 무병이사)다.
강릉 정동진으로 3... (평창을 지나며)
원주를 지나면 횡성(橫城)군이다. 고구려 때는 횡천(橫川), 통일 신하 때는 황천(潢川), 고려 때는 다시 橫川이라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이웃 홍천과 이름이 비슷하다하여 橫城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곳의 특산물은 한우(韓牛)다. 조선시대에는 동대문 밖에서는 가장 큰 우시장으로 불리던 횡성... 제주도에서도 소를 팔러 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담백한 암소 한우... 고유의 맛과 6개월에 거세(去勢)한 숫소의 풍부한 육즙과 부드럽게 씹히는 맛은 명품 중의 명품이다. 또한 안흥에 가면 찐빵이 유명하다.
달콤한 팥소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의 손맛.. 바로 추억과 정성이 담긴 대표적인 먹거리가 안흥 찐빵이다. 그 유래는?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서울에서 강릉까지 8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중간이 안흥이다. 먹을거리가 늘 부족한 시절, 또 구불구불 흙먼지 나는 먼 여정에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에 가장 든든한 간식거리가 찐빵이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약간의 사양(斜陽)길에 들어섰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찐빵 맛은 꾸준히 이어져 이제는 강원도를 찾는 많은 이들이 길을 돌아서라도 꼭 한번 들러 가는 명소가 되었다.
둔내터널을 지나면 평창군이다. 홈페이지 주소가 www,happy700.or.kr이다. 이는 인간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 해발 700m로 평창이 그 높이에 위치해 있단다. 2018년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에 오면 이효석(李孝石)이 생각난다. 경성제국대학을 나온 그는 숭실전문대학 교수로 지냈지만 뇌막염으로 35세에 요절(夭折)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 고향의 산천을 무대로 시적(詩的) 정서가 흐르는 산뜻하고도 애틋한 명작소설이다. 가산공원, 충주집, 물레방앗간 등 소설에 나오는 배경을 재현하여 관광화 하였다. 특히 가을에 가면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꽃이 천지를 설경(雪景)으로 만든다.
특히 소설 속의 허생원과 성처녀가 처음 만난 물레방앗간... 누구든 첫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사랑은 소유하거나 소유를 당할 수 없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다. 나도 지난 결혼 생활을 생각할 때 내 중심으로 살아온 것이 후회가 된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응시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고량진미(膏粱珍味)같은 음식을 먹으며 미워하는 것 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를 먹으며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뒤늦게 느끼며 남은 인생의 여정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 대관령을 지난다.
강릉 정동진으로 4... (정동진에서)
서울과 영동을 잇는 태백산맥의 관문인 대관령(大關嶺)... 동쪽 경사면의 도로는 구십구비라고 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 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대관령이 되었다. 이곳의 높이가 832m이며, 고개의 총연장이 13km이지만 터널 개통으로 아련한 추억의 길이다. 동쪽은 남대천이 강릉을 지나 동해로 흐르며, 서쪽은 남한강의 지류인 송천(松川)이 된다.. 이곳의 넓은 초원(草原)... 전원의 한가로운 목자(牧者)나 농부의 생활을 주제로 한 서정적이고 소박한 풍경으로 알프스 여행이 생각난다.
가장 먼저 서리가 내리는 대관령... 고위평탄면으로 고랭지 배추가 특산물이다. 동계 올림픽을 준비 중인 평창... 곳곳에 호텔 등 유락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강릉IC로 나가 정동진으로... 비가 많이 온다. 대전에서 출발할 때는 맑았는데... 나만 우산을 준비한 것 같다. 여행을 갈 때는 식수(食水), 간식(間食)까지 필수품인데... 경포대, 솔향 수목원, 객사(客舍)였던 임영관, 단오 문학관, 신복사지, 굴산사지 당간지주 등 안내판이 있다. 오늘 등산할 예정인 399m의쾌방산은 비로 포기하였다. 1996년 간첩선이 침투하였던 안인진에 도착하여 통일공원함정 전시관을 가려 하였으나 이마저도 강한 비로 포기한다.
겉으로는 대화와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속으로 침략의 끈을 놓지 않는 야욕... 회담 때마다 억지를 많이 부리고 있다.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을 뜻하는 억지... 이런 경우도 있다. 곡선미(曲線美)를 쌀이라고 우기는 남자, 공모주(公募株)를 술이라고 우기는 남자, 노숙자(露宿者)를 여자라고 우가는 남자, 노점상(露店商)을 밥상이라고 우기는 남자, 안중근 의사를 병원 의사라고 우기는 남자, 청남대를 대학이라고 우기는 남자, 달마도(達磨圖)를 섬이라고 우기는 남자, 태종대를 대학이라고 우기는 남자도 있다.
대주교를 다리라고 우기는 남자, 갈매기살을 갈매기의 살이라고 우기는 남자, 몽고반점을 중국집이라고 우기는 남자, 복상사를 절이라고 우기는 남자, 허장강을 강(江)이라고 우기는 남자, 으악새를 새라고 우기는 남자도 있다. 오늘 여행 ... 모래시계 공원에 도착하여 정동진역까지 600m를 우산을 쓰고 배회(徘徊)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주문진에 들려 늦은 점심을... 삼천포나 포항, 통영은 광어나 우럭이 1㎏에 2만원인데 이곳은 3만원... 우리가 봉(鳳)인가? 아쉬움을 남기며 오늘 여정을 마친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