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중리 왜막실
임진왜란때 왜병(倭兵)치료 막사
왜막실은 전주시 우아동 1가 450번지에서 550번지 사이의 '갓바우' '광터골' '아중' '아하' '용교' '재전' '문수' 등 일곱마을을 포함한 길다란 골짜기를 말한다.
여기가 왜막실이라고 이름 붙여지게 된 것은 정유재란때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왜군과 깊은 관계가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켜 쳐들어 오던 왜병은 곳곳을 유린하였으나 유독 전라도 땅을 빼앗지 못한 한풀이라도 하듯 정유재란에는 전라도를 집중공략, 남쪽으로부터 진격하여 저 유명한 남원성 혈전으로 관군 · 의병 · 백성을 합쳐 1만여명이 성의 함락과 함께 목숨을 같이 했다.
남원성을 빼앗고 전주부성을 향해 오던 왜병은 남원성을 공격하면서 당한 우리 관군 및 백성들이 죽도록 싸우는 투혼에 질려서인지 전주부성을 직접 공격치 못하고 원색장마을 뒤 성황고개를 넘어 왜막실 골짝이에 군대를 주둔 시키고 한편 부성의 정황을 살펴 침공할 계획을 짜며 지체하는 동안에 앞서 치룬 전쟁에서 부상당한 왜병의 치료를 하고 성한 군대의 주둔을 목적으로 하는 막사를 지으니 이후부터 이 곳을 왜막실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우아동 1가 갓바우(관암)마을에서 원색장마을로 넘어가는 성황고개를 넘기 전 약 300m 지점에 이르면 산아래 부분은 0.4-0.6m의 높이로 석축이 있고 산 윗쪽에는 옛 성터 비슷하게 1.5-1.8m의 석축을 발견할 수있다. (산 윗쪽 길이는 180보 정도, 산 아래쪽은 280보 정도이고 동북쪽이 130보 정도, 서남쪽이 200보 정도의 사다리꼴 모양의 강담 '석축'을 쌓았던 장소로 추정됨)
지금은 소나무와 잡목, 그리고 잡풀이 우거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야산 허리와 같은 곳이다. 여기가 왜병막사가 마지막까지 있던 자리였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87년 여름 이곳을 찾았을 때 아중마을에 살고 계시는 90세 노인 정인헌옹의 증언에 의하면 성황고개를 어렸을 때 성(城)고개라고 불렀다고 하여 그 동편에 성황고개가 보다 조금더 낮은 원수너미고개가 있고 그 밑에 전골, 징목골이 있는데 전골은 많은 고기를 삶아 낸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징목골은 징채같이 생겨서 그렇다고 했으나 군대(왜병)의 모이고 헤어지는 신호로 징을 치던 곳이었지 않나 싶다.
이 곳을 왜망실 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부름이다. 여기에서 귀화한 왜병들은 완산 김씨 아니면 전주 김씨로 살았다고 한다. (유장우 선생님 수상집에서)
첫댓글 아하 그렇구나..왜망실 다리까지가 아중저수지 뚝방에서 출발하면 4키로 미터 됩니다.. 좀더 가서 비포장 도로 시작점까지가 약 4.5키로 거기서 반환하여 돌아오면 9키로 미터 정도 달리기 하기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