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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왕상17:8-16)
1. 존 비비어 목사의 고백입니다. 그가 일곱 살 때 누나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누나는 병원에 자주 다녔고 두주 이상 입원도 했습니다.
엄마는, “누나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지만 누나는 열도 없었고 기침이나
재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존은 부모님과 누나가 왜 그렇게 걱정하는지
이해를 못했답니다. 누나가 그저 피곤한 줄 알았죠!
누나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습니다.
그가 알고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날 집에서 연락이 와서 조퇴를 하고 왔습니다.
거실 부모님 곁에 목사님이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누나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나가 많이 아팠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던 거에요!
그전까지는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병에 대한 그의 정의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존은 건강이 나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이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의 의미를 알고 예전과 같이 병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존 비비어가 어릴 때 경험을 이야기한 것은 죄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비비어 목사는 크고 작든 모든 죄는 영혼을 멸망시킨다고 하며,
“죄는 하나님의 권위-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열왕기서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에요.
이스라엘 각 왕들의 삶을 요약하여 전해주는 역사책이죠!
성경 기자들이 평가하는 왕들은 세상 업적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여로보암 2세나 오므리 왕 같은 사람들이 위인이에요.
히스기야나 요시야 왕은 매우 유약한 왕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반대로 평합니다.
전자는 악한 왕들이고, 후자는 위대한 왕들이었다고!
평가의 기준은 “신명기-하나님의 말씀(권위)에 순종했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합왕은 이스라엘 열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권위에 가장 순종하지 않는 왕이었어요.
그 시대가 그만큼 암울했죠! 죄가 깊고, 죽음을 앞둔 암환자 같았습니다.
2. 이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왕에게 보내서 경고를 주셨습니다.
1절,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아합왕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징계)이 선포되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예언만이 아니라 신명기에 경고된 말씀입니다.
신11:16-17,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아합왕이 바알과 아세라 신을 극심하게 섬기며 온갖 불의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들을 열심히 섬기는데 수년 동안 기근이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하고,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서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아합왕이 자신에게 흉한 예언을 하는 엘리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겸손하게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은 아합이 순종은커녕 엘리야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을 아시고,
그에게 피신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왕이든 선지자든 누구라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릿 시냇가 인근은 동굴들이 많이 있었고 피신하기 좋은 처소였어요.
엘리야가 순종하여 그릿 시냇가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해주셨습니다. 기우제를 지낸 음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까마귀가 있는 것은 낙원의 모습인데, 이는 사람과 짐승이 창조주를 섬기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다(욥38:41, 시147:9, 눅12:24)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엘리야와 같이 순종하는 자들에게 이와 같이 놀랍게
까마귀를 통하여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물질을 공급합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1학년 때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는데,
장인 장모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장모님이 어떻게 당신 딸을 먹여 살릴 것이
냐고 물었습니다. 가난한 신학생인 제가 할 말이 없었어요.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이 났고, 까마귀 얘기를 했죠. 지금까지 그때 말이 회자되고 있답니다.
그런데 실제 제가 목회자가 되겠다는 순종을 한 이후 제 인생이 그랬습니다.
일반대학 졸업하고 신학을 20년 공부하는 동안, 14년 가까이 담임목회하며
우리 3남매를 키울 때나, 지금 교회 개척 중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매입하여 정착해 가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잖아요.
까마귀들을 때마다 보내셔서 공급하시고 채워주셨습니다.
3. 그릿 시냇물도 말랐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 지역으로
가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을 읽어봅시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I have commanded a widow in that place to supply you with food.”
여러분 이상하지 않나요? 사르밧은 시돈 지역에 속한 곳입니다.
시돈은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의 아버지가 통치하는 바알 숭배의 본 고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곳으로 가라고 하시고, 그곳에서 과부를 통하여 먹여주시겠다
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반했는데, 시돈 사르밧에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여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사르밧에 아들 하나와 사는 과부였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뭄이 3년 6개월 지속되는데 아직도 2년 이상을 지내야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간 동안 선지자를 대접할 사람으로
이 가난한 과부를 택하셨습니다. 참 맞지 않는 장면이죠!
그곳에도 권세자도 있고 부자들도 있었는데.
이 가난한 과부가 2년 이상 되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자기 모자도 살기
버거운 때에-보살핌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선지자를 영접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우리 다 같이 시돈-사르밧 땅으로 가봅시다.
엘리야가 사르밧 성문에 이르렀네요!
그곳에 마침 나무 가지를 줍고 있는 여인이 보입니다.
엘리야가 이 여인을 향해, “마실 물을 좀 달라?”고 합니다.
낯선 유대인 남자가 이방 여인인 자기를 향하여 물을 달라 하는데
이 여인이 물을 주는지 지켜봅시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을 향하여 물을 달라고 했던 때가 기억나죠.
그때 수가성 여인이 주님을 향해서 뭐라고 했죠?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4:9)
당돌한 것 같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아무 말도 없이 엘리야에게 물을 주려고 합니다.
이 여인은 통념보다는 나그네를 영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 보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엘리야는 이 여인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예비하신
여인임을 확신한 것 같습니다. 이 여인이 물을 주려고 하자, 엘리야가
한 가지 더 요청합니다.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가뭄이 1년 이상 지속되었고, 가난한 여인에게 엘리야에게 줄 떡이 있었을까요?
여인이 뭐라고 답하는지 귀를 기울여봅시다.
12절,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사르밧 과부의 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두 모자가 먹을 수 있는 양식도 이제 다 떨어지고
마지막 한 끼 식사를 하고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4. 사르밧 과부가 이렇게 말하면 엘리야는 자기가 청한 것을 거두어야 하잖아요.
엘리야가 어떻게 하는지 봅시다. 13절,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엘리야의 말을 듣는 순간 이 여인의 마음속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났을지
상상만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엘리야의 말을 믿기보다 그를 사기꾼으로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한다는
기적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명도 없어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그렇지, 아니 하나님의 선지자란 사람이면
더욱 조심해야지, 이렇게 사르밧 과부에게 무자비한 요청을 할 수 있습니까?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도 할 수 없는 말을 엘리야는 하고 말았어요.
엘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이 무리한 요구이고,
여인으로서도 당혹스러운 말이었음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요청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겠죠!
하나님께서 온전한 인격적 존재이신 것처럼, 선지자도 인격이 있는 사람인데
아무런 대비 없이 무자비한 요구를 하지 않았어요. 엘리야의 말을 들어봅시다.
1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에게 먼저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오면,
비가 다시 내릴 때까지-가뭄이 끝날 때까지, 아직 2년 이상 동안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말이 아니고, 그를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5.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자(대언자-Navi)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었고, 이제 사르밧 과부의 결단이 남았어요.
이 여인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 결단을 아무나 할 수 없잖아요. 이 여인은 지체하지 않고 순종을 합니다.
이스라엘 왕도 순종하지 않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순종하지
않는 불신앙의 시대에 여기 시돈 땅 사르밧 과부가 순종을 합니다.
여인은 정말 눈물겨운 결단을 하였습니다. 에라 이왕 죽을 텐데, 한 조각 먹고
죽나 반 조각 먹고 죽나 마찬가지지. 또 안 먹고 죽으면 어떠랴 이왕 죽을 바에야
인심이나 한 번 쓰고 죽자. 죽는 마당에 하나님의 사자나 공궤하고 죽자.
여인은 결단만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
이 여인이 이방 땅에 살면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들었나 봅니다.
과거 여리고성 기생 라합이 들었던 것처럼, 모압 여인 룻이 들었던 것처럼.
하지만 실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내게 있는 것을 먼저 다 내놓는 것-오병이어의 도시락과 같이.
지금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매우 안 좋습니다. 피부로 많이 느끼시지요!
너나 할 것 없이 장사도 안 된다고 합니다. 얇은 서민들의 지갑이 점점 더
얇아져서 걱정입니다. 생계형 대출이 점점 늘어나고 올해 경제성장 전망도
어렵다고 합니다. 대부분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연기하는 상황이라
좁은 취업문이 더욱 좁아질 것 같습니다. 청년들 형편이 말이 아니에요.
고용부진으로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되고 있고요.
이렇게 경제가 얼어붙을 때, 순종은 더욱 어렵죠!
제가 개척을 시작하면서 퇴직금을 남기려고 했어요. 1-2년 비상금으로!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 내라고 하셨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갔어요.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면 내가 공급하리라.
이 말씀대로 저희 가족이 최근에 살고 있어요.
6.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대로 사르밧 과부가 순종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우리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 시대에 이 일을 행하셨고, 예수님도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두 번이나 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말씀의 약속은 이뤄집니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모자가 2년 이상 먹는 동안
통 속의 가루와 병 속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공궤하게 한 것은 엘리야가 아니라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비합니다.
사르밧 과부의 통에는 밀가루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부족할 것 같지만 부족함이 없고 언제나 필요한
만큼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믿음의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순종은 쉽지 않지만, 그 결과는 이처럼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귀한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신6:10-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오래 전에 복음성가를 통하여 많이 불렀던 찬양 가사이기도 하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게 준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이웃에게 전하여라,
그러면 네가 짓지 않은 큰 집을 주리라, 네가 심지 않은 과실을 먹게하리라
그러나 한 가지 잊지는 말아라, 죄인된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를.“
이 말씀과 찬양 가사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이 성전에서
누리고 있잖아요.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의 증인이에요. 할렐루야!
7. 예수님도 사르밧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눅4:25-26,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개
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았지만, 시돈 땅 사렙다(사르밧)의
과부가 선택을 받았음을 주님이 친히 기억하시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지 못해서 혈안이었는데,
엘리야는 이세벨의 고향 땅 한 과부에게서 공궤를 받았습니다.
참 역사의 아이러니에요. 성경은 여기에 대해 정확하게 답합니다.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오늘 우리가 어디에 거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들을 이 시대에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처럼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수는 발칸 산맥에서 핀 장미에서 추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춥고 어두운 새벽2시에 딴 장미꽃에서 최고급 향수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하루 중 가장 춥고 어두운 바로 그때 장미가 가장 진한 향을
뿜어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어두움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
니다. 그 시간이 무의미한 시간인 것 같지만 사실 그 시간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수술할 때는 아프지 않습니다. 마취가 깨어날 때부터 아프기 시작합니다.
아픔이 시작되는 때부터 고난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회복이 시작됩니다.
인생에서 아픔이 시작될 때가 곧 회복이 시작됩니다.
곧 아픔은 끝이 아니고 회복인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킨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 포항 빛내리 교회를 세우신 것은 이런 사람들을 부르셔서
오늘도 하나님이 사용하심을 지역-민족-열방에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새벽과 저녁기도회를 하며,
말씀과 기도로 매일, 매일 우리 자신을 깨우며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나갑니다.
영적 어둠의 시대에 여러분이 번지수를 잘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발걸음을 인도하셨지만 말입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가 더욱 겸손하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해 나가는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