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권은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이다.
바드라야나는 지나치게 심각했고, 나라다는 또 지나치게 심각성이 없다.
파탄잘리는 그 중간이다. 정확히 그 중간 위치다.
심각한 것도 아니며, 심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의 정신을 파탄잘리는 갖고 있었다.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대해선 이미 10권의 책으로 강의한 바 있으니
새삼 그를 설명하는 일이 군더더기다.
책 10권의 분량을 얘기한 다음엔 무엇을 덧붙이는 일이 오히려 어렵다.
오직 한 가지, 내가 이 사람을 더없이 사랑한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 ... ...
요가는 순수한 과학이다.
파탄잘리는 요가의 세계에 과한 한 가장 위대한 이름이다.
이러한 사람은 휘귀하다. 파탄잘리에 필적할 다른 이름은 없다.
이 사람은 종교를 과학의 차원으로 만들었다.
그는 종교를 하나의 과학,
어떤 신앙도 필요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법칙으로 만들었다.
요가는 어떤 것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가는 경험을 말한다.
마치 과학이 실험을 말하는 것처럼, 요가는 경험을 말한다.
실험과 경험은 방향이 다를 뿐, 둘 다 똑같은 것이다.
실험은 밖에서 작업하는 것이고, 경험은 내면에서 작업하는 것이다.
경험은 내적인 실험이다.
파탄잘리는 완전히 과학적이다.
그는 우리가 방법들과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방법들은 무수히 많다.
목적은 진리이다. 몇몇 사람들은 신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했다.
신을 통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좋다.
목적이 달성되었을때, 믿음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다.
신을 믿지 않고 무신앙의 길을 여행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좋다.
판탄잘리는 유신론자도 무신론자도 아니다.
그는 종교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능한 방법과, 당신의
변형에 도움이 되는 모든 법칙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파탄잘리는 해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당신에게 길을 가르쳐 줄 뿐이다.
당신 자신의 해답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어디에서 그 해답을
만날 것인지에 관한 길을 가르쳐 줄 뿐이다.
위대한 스승들은 방법만을 주었지,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