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예방 글짓기
구례고등학교 조혜원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약속장소는 홍대의 어느 곱창 집. 홍대라는 곳이 낯설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또 친구들은 어떻게 지냈을지 혹여 어색하진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며 추위에 벌게진 코를 비비적댔다. 그래도 다들 멋있어졌겠지. 카톡 프로필들을 보면 가족들과 혹은 대학동기들과 같이 찍은 사진. 빠른 애들은 직장에서 멋지게 정장을 빼입고 예쁜 여직원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도 있었고 간혹 여자 친구인지 부인인지 모를 다정한 사진도 보였다. 나름대로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만나면 내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그것부터가 걱정이었다. 모두들에게 있을 법한 근황이라는 것은 내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4년째 보건 직 공무원 준비생인 보잘 것 없는 백수였다. 젊은 나이, 20대의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입시학원에서, 가끔 즐기던 몇 명의 전 여자 친구들과의 추억 정도뿐이었다. 젊기만 할 줄 알았던 나에게도 기대했던 별 다른 청춘의 뜨거움 한 번 맛보지 못하고 20대의 끝자락에 빠르게 다다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프로필은 아무런 소식도 찾아 볼 수가 없는 텅 빈 동그라미 인생으로,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아마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궁금해 하는 대상은 나 일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나니 또 주눅이 드는 것 같다. 답답함에 한 대 피우고 갈까 싶어 원룸 건물 사이의 골목길로 비집고 들어갔다. 주머니 속에서 익숙하게 담뱃값을 꺼내 들었다. 담뱃값을 가볍게 쥐고 끄트머리를 톡톡 치자 담배 한 개비가 불쑥 튀어나왔다. 안은 텅 비어있었다. 대체 한 갑을 언제 그새 다 피운 것인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빈 곽을 아무데나 바닥에 내던졌다. 갈증이 나는 건 아닌데 빨리 이것을 태워 없애버리고 싶었다. 마지막 나의 담배를 입술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라이터 위에서 일렁이는 불이 마치 나 같았다. 이게 나의 마지막 한까치이다.
담배 빨리 끊어야할 텐데. 담배를 피울 때마다 버릇처럼 드는 생각이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우선적으로 담배를 끊어야하는 이유로는 금전적인 원인이 가장 컸다. 나의 현재 가계부의 절반 이상의 지출이 담뱃값으로 쓰였다. 내년부터 또 담뱃값 인상이라던데, 걱정이 태산이다. 담배의 세금이 9억짜리 집에 살면서 내는 세금보다 더 많다고 들었다. 생각해보면 담배는 내 고등학교 시절과 인연이 깊었다. 담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폈으니 무려 10년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친구라고 하기 에는 애매한 녀석이다. 넌 내가 떨쳐 내버리고 싶은 것들 중 하나이니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기 시작한 때는 아마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다. 공부도, 친구도, 친구관계도, 담배도... 끊고 싶어도 이놈은 절대로 끊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보건 계열 쪽 공부한다는 놈이, 다시 말해 몸에 얼마나 안 좋고 그 후유증은 또 어떤 건지 잘 알만한 놈이 일 좀 안 풀린다고 하루에 거의 한 갑씩 거의 그렇게 친다고 말하면 어느 누가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라고 할까. 찬바람이 많이 부는 날 밖에서 피우는 담배 한까치는 또 색달랐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는 나오는 족족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주변으로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곧 펼쳐질 친구들과의 재회를 상상해 보았다. 그때 당시에도 내 친구들은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해있었다. 공부는 잘하는데 좀 노는 애들이랄까.
나는 다니던 중학교에서 많이 떨어진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사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고 봐도 무관하다. 그 정도로 거기엔 아는 얼굴이 없었다. 고등학교에서 우연히 친해져 처음 사귀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윤식이란 아이였다. 윤식이는 첫인상은 모범생 찌질이처럼 보였지만 하는 짓이 그렇게 양아치 같을 수가 없었다. 등교는 언제나 9시까지인 것은 물론이고 점심은 새치기로 무조건 일빠 인데다가 방과후에는 pc방에 죽치고 있기 일쑤였다. 저녁 늦게까지 당구장을 누비거나 시내거리를 활보하다가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래도 통금시간이 있어서 밤 12시까지는 무조건 집에 들어가곤 했지만 통금시간이 12인 고등학생이 어디 흔하겠는가. 이렇다 해도 이 녀석이 나쁜 놈은 아니었다. 수학여행이라도 가면 엄마, 아빠, 남동생 둘 까지 각자 취향에 맞는 기념품을 사러 다니는 정성을 보였고 친구가 간혹 실수를 저지르면 틱틱대며 화를 내다가도 결국 끝까지 도와주곤 했다.
나는 그런 내 친구에게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다. 담배나 술에 호기심 같은 거 자체가 없었던 나는 아빠가 아무데나 담배를 내비 두어도 손가락 하나
건드려본 역사가 없었는데 담배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우리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알만한 선생님들의 꾸짖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지만 반에서 성적은 보통이지만 흔히 말해 착한 그런 친구들보다 더 이름 있는 대학에 합격해 승승장구한다는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담배를 배우지 않으면 윤식이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할 것만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 이제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한 순간이 이렇게 나의 10년을 이끈 것이다. 10년 동안 좋아서 피운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힘들거나 답답할 때 피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문득 윤식이는 아직도 담배를 많이 피우는 꼴초일지 아니면 나는 이렇게 만들어놓고 저 혼자 금연에 성공했을지 궁금해졌다. 그의 10년이 궁금했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언 코를 킁킁거리며 몽실몽실한 담배 구름을 성냥 불 삼아 추억을 회상하는 꼴이 스스로 조금 웃겼다. 어느새 뜨거운 기운이 손가락 끝에 그대로 전해져 올 정도로 담배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급하게 손에서 떼어 바닥에 버리고 발로 밟아 불을 껐다. 그와 함께 추억 회상하기 놀이도 끝이 났다. 오랜만에 보는 윤식이의 모습은 어떨까 조금 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이제 약속시간이 다 되어간다. 미리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도 돼지만 왠지 망설여졌다. 일부러 장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밤공기는 시원했다. 공기 냄새에 희미하게 담배냄새가 서려있는 것 같았다. 잠시 금단현상이 오는 건가 싶었지만 50m 쯤 떨어진 곳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는 남자가 보였다. 내가 피우지 않는 담배 냄새는 왠지 나빴다. 길거리나 버스 정류장에서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피우면 째려보던 여자들이 생각났다. ‘담배 있었으면 한 대 피우고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또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이 좀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현수?”
“어, 너는... 길우녀석 아니야?”
“그래, 인마”
오랜만에 보는 길우녀석이 나를 아는 체 해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2년 정도까지는 계속해서 연락하고 지낸 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어서 나도 굉장히 반가웠다.
“안 들어가고 뭐하고 있었어?”
길우가 먼저 걸음을 뗐다. 그 뒤로 내가 따라 걸었다. 키가 더 큰 건지 커 보이는 건지 길우는 더 커져 있었다. 그의 입술담배가 실루엣 뒤로 뻐끔거렸다. 가게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쿵쿵대는데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점점 걸음이 느려지고 있었다.
“왜 그렇게 느리게 걷고 있어. 우리 지각이야, 알아?”
기분 나쁘지 않은 볼멘소리였다.
“설마 긴장한 거 아니지?”
진짠가 보네 짜식이ㅋㅋ 시원스러운 너털웃음을 보이고는 다시 가자는 듯이 길우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윤식이 그 자식,”
“...”
“왔으려나”
“...”
“내가 연락을 도통 잘 안해서.”
정말 뜬금없었다. 내 기억이맞다면 길우도 윤식이 그 녀석과 꽤 친했던 것 같은데.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길우가 입을 열기까지 잠자코 기다려주고 있었다.
“몰랐구나, 너.”
드디어 길우가 입을 열었다. 그에게서 들리는 말은 무덤덤했지만 옅게 흔들리는 것을 차마 감추지 못했다. 추위 때문이었는지, 다른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작년 윤식이는 폐암으로 고생하며 세 달간 병원에서 혼자 병 투쟁을 하다가 먼저 떠났다고 한다. 길우는 저도 몰랐지만 얼마 전 다시 연락이 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뒤늦게 들은 소식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길우와 나 사이에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길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무덤덤한 걸음으로 다시 향하여 걸었다. 금방 장소 앞에 도착한 그가 이미 저 멀리였다. 죽었다니. 그대로 굳어 있던 손가락이 죽었다는 말을 확실하게 되새기고 나서야 움찔 했다. 나는 다시 천천히 발을 떼어 걸으면서 장소를 향해 가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그곳이 어딘지를 잊어버린 듯하다. 무언의 허탈감인지 모를 어느 것을 이미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독립 이후, 그 후로 병원에 내가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것은...
윤식이와 바꾼 그 무언가의 냄새는 여전히 여기서도 맡아지고 있었다. 공기인지 담배냄새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급하게 그 어둑한 거리를 뛰쳐나왔다. 벗어난 이 곳 횡단보도 앞에서도 담배냄새가 가득한 것 같았다. 쾌쾌한 매연이 담배 타는 냄새 같았다. 파란 불이 켜지고 깜빡이는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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