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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5호(2017년 봄호) 기원
편집부 /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B6 / 704쪽 /
2017년 4월 10일 발간 / 정가 15,000원 / ISSN 2466-1481 / 바코드 9772466148008 71
신간 소개
기억과 회감의 불멸하는 전집
<계간 파란> 5호(2017년 봄호)가 2017년 4월 10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이번 <계간 파란>의 이슈(issue)는 ‘기원’이다. “기원의 대상은 1980-90년대이다. 1970년대의 몇몇 지점들과 연결되기도 하는, 사라져 없어졌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아이콘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그것은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거나, 골동품 가게의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 사라진 헌책방의 서가에서 그것은 먼지의 이빨에 갉아 먹히고 있다. 늦기 전에 기억해야 한다. 과거라는 상실을 복구하려는 의도는 버려야 한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늦었을지도 모르는 지금에서야, 배움의 불을 켜 들고, 진정으로 잊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잊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저 낱낱의 것들을 시간의 마당에 불러 모”았다. 그 대상은 다음과 같다: “최승자, 박노해, 백무산, 기형도, 장정일, 진이정, 유하, 하루키, 외국 시, 합평회, 금서, 대학가 서점, 애학투련, 박종철・이한열・강경대, 집회, 전교조, 야학, 폐광, 프로야구, 88올림픽, 애마 부인, 선데이 서울, 람보와 터미네이터, 홍콩 느와르, 장만옥, 동사서독, 왕가위, 비트, 재패니메이션, 질투, X세대, 편의점, 롯데월드, 노래방・비디오방, 자취방, HWP, PC 통신, 여행 자율화, 마이마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 김광석, 김현식, 빽판, X-Japan, Grunge Rock, Pink Floyd, Metallica, 서태지와 아이들, S.E.S.・H.O.T., 전자오락실, 기원(棋院),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IMF”. 이 다양한 주제들의 서술에 필자 44명이 참여하였으며, 그 결과 <계간 파란>에 60편의 글이 실리게 되었다. “기원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기억과 회감의 불멸하는 전집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감각의 지층이자 감정의 사료(史料)가 될 것이다.”(이상 장석원 시인의 권두 에세이에서 옮김.)
<계간 파란>은 이번 호부터 신작시의 체제를 개편했다. 코너명도 “poet & critic”으로 바꾸었다. 이 코너를 통해 <계간 파란> 편집진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시인과 비평가가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장이 되길 기원한다. 김언희, 김언, 송승언, 이범근, 김하늘 시인 등 현재 한국 시단에서 가장 눈부신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섯 분의 시 다섯 편씩과, 장철환, 고봉준, 정한아, 주영중, 김영희 평론가(시인)의 유려하고 단단한 시인론 다섯 편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계간 파란>은 이번 호부터 “criticism”이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이 코너는 등단 여부나 장르, 주제, 분량 등에 제한을 두지 않고 현재 한국시와 한국문학 그리고 지금-여기의 우리의 삶에 어떠한 의미에서든 새로운 시각과 논점을 제공할 수 있는 글이라면 게재하기 위해 마련한 지면이다. 이번 호에는 이찬 평론가의 이근화 시인론(「카오스모스, 제유법과 콜라주의 교향악—이근화의 시」)을 선보인다. 이 글은 섬세한 시 읽기의 표본일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구성하려는 비평가의 고투가 배어 있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시간을 따로 내어 일독을 권할 만큼 장중하고 우아한 글이다.
차례
002 essay 장석원 불멸하는 전집
issue 기원
024 이현승 /최승자/ 최승자라는 기원
032 한용국 /박노해/ 박노해
038 이경수 /백무산/ 인류 역사를 성찰한 노동자 시인
045 나희덕 /기형도/ 미학적 진원지로서의 기형도
057 김찬기 /장정일/ 아름다운 시와 더러운 산문
064 장석원 /진이정/ 헤비메탈 같은 진이정
073 정은경 /유하/ 반계몽과 키치의 사도: 그림자를 판 사나이
088 신형철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혹은 부인된 매개자
099 송승환 /외국 시/ 다른 삶과 다른 세계의 가능성
106 전형철 /합평회/ 찢어, 버려, 태워
113 백승권 /금서/ 금서의 추억
120 황정산 /대학가 서점/ 마르크스를 다시 떠올리다
126 고명철 /대학가 서점/ 대학가 인문사회과학 서점
134 임지연 /애학투련/ 건국대 10.28에 대한 기억
141 정의진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강경대
151 박성호 /집회/ 횃불에서 촛불로
159 김종훈 /전교조/ 한 교실 두 담임
167 이주라 /야학/ 야학
174 한용국 /폐광/ 폐광
180 한래희 /프로야구/ 최동원 그리고 우승의 추억
189 허진석 /88올림픽/ 1988년 올림픽
197 이종길 /애마 부인/ 그녀가 기다리던 음습한 도피처
203 서동균 /선데이 서울/ 금지된 소통, 그 기억 속으로
210 강성률 /람보와 터미네이터/ 하드 바디의 재현, 그 시대의 표현
218 채상우 /홍콩 느와르/ 따거들의 엘레지: 열혈남아
238 박정대 /장만옥/ 누군가는 끝없이 밤을 안고 태어난다
256 조강석 /동사서독/ 상처의 스테인드글라스
263 박소란 /왕가위/ 춘광사설(春光乍洩)
270 기혁 /비트/ ‘지금, 여기’에서 「비트」를 감각한다는 것
283 노춘기 /재패니메이션/ 보노보노를 아시나요?
291 백지은 /질투/ 추억이 미래를 향해야 할 때
299 박상수 /X세대/ X세대란 게 있었다구요?
308 노춘기 /편의점/ 맥주를 사러 가게로
316 이근화 /롯데월드/ 호수에 빠진 환상
324 이현승 /노래방 & 비디오방/ 우리들의 개인적인 방
333 전형철 /자취방/ 이탈된 혜성
340 장철환 /HWP/ HWP
348 송승환 /PC 통신/ 온라인 접속과 디지털 글쓰기의 도래
356 이근화 /여행 자율화/ 타율적 삶
364 정우신 /마이마이/ 오토리버스
372 안남일 /노찾사/ 광장에서 다시 듣고 부르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379 정의진 /노찾사/ 노래를 찾는 사람들
388 이경수 /김광석/ 서른 즈음에 떠나 버린 청년 가객을 기리며
395 김종훈 /김현식/ 내 사랑 내 곁에
402 김참 /빽판/ 아날로그의 시대
411 박장호 /X-Japan/ 사이키델릭 바이올런스 & 크라임 오브 비주얼 쇼크
423 신동옥 /Grunge Rock/ 역사에서 잘려 나간 내면의 함성
437 박민규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 프로그레시브한 동물 우화와 벽 너머의 상상
444 최원 /Metallica/ 메탈리카(METALLICA): 어릿광대들의 복종 놀이
452 장석원 /서태지와 아이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서태지가 나타났다
460 김승일 /S.E.S. & H.O.T./ 1997년, 우리를 열광하게 했던
472 김건영 /전자오락실/ 나의 만신전(萬神殿), 오락실
484 주영중 /기원/ 손과 몸의 대화 장소로서의 기원(棋院)
495 윤성학 /성수대교 & 삼풍백화점/ 행복하자 좀, 아프지 말고
503 임지연 /IMF/ I m F, 나와 네 인생의 이야기
510 채상우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poet & critic
524 김언희 실렌시오 외 4편
533 장철환 돔덴(Domden)의 문장들: 김언희론
560 김언 판결 외 4편
570 고봉준 무한한 변이들—김언의 시 세계와 ‘언어’
584 송승언 문틈에서 문틈으로 외 4편
595 정한아 사후의 사후를 사는 냉담자의 멜랑콜리, 혹은 신성성의 재상상—송승언의 시
613 이범근 도깨비 외 4편
623 주영중 죽은 시간에 감각을 찔러 넣다—이범근 시인 시인론
638 김하늘 새벽 6시 외 4편
648 김영희 37.2°C의 밤
criticism
668 이찬 카오스모스, 제유법과 콜라주의 교향악—이근화의 시
022 파란 회원 모집 안내
699 계간 파란 정기 구독 안내
권두 에세이
불멸하는 전집 / 편집 주간 장석원
기원의 대상은 1980-90년대이다. 1970년대의 몇몇 지점들과 연결되기도 하는, 사라져 없어졌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아이콘들이다.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있다. 그것은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거나, 골동품 가게의 창고에 방치되어 있다. 사라진 헌책방의 서가에서 그것은 먼지의 이빨에 갉아 먹히고 있다. 늦기 전에 기억해야 한다. 과거라는 상실을 복구하려는 의도는 버려야 한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늦었을지도 모르는 지금에서야, 배움의 불을 켜 들고, 진정으로 잊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잊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저 낱낱의 것들을 시간의 마당에 불러 모은다.
이 여행이 끝난 후 당신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 아, 옛날이여. 옛날에 말이야. 그날로 돌아가서 시간의 두께가 마련한 낯섦을 경험하고는 이런 말을 해도 된다. 이상한 시대였어. 보잘것없는 생의 지리멸렬뿐이로군. <계간 파란> 봄호에 결집한 ‘기원들’을 향한 당신의 감정은 극과 극을 오갈 수도 있다. 긍정과 부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극복할 수 없는 양가감정의 분열을 겪을 수도 있다. 지나간 세상의 어둠 속에서 ‘후라쉬’를 들고 이곳으로 더듬으며 걸어오고 있는 과거의 당신이 보이는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당신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뒤를 돌아본 적도 없다. 1초 전의 당신은 부서졌다. 1분 전의 당신은 보이지 않는다. 1시간 전의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 1년 전, 10년 전, 당신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날의 그 모든 것들의 합으로부터 오늘의 당신이 생성된 것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과거 그 전부를 책임질 수 있는가. 그곳에서, 멈춘 채, 울먹이고 있는 그날의 당신을 당신은 발견했는가. 그는 ‘나’이면서 ‘나’가 아니다. 그는 ‘당신’이면서 ‘당신’이 아니다. 1987년 6월 29일에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탄핵 이후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태극기 세대’의 광기를 보면서, 옛것들의 잔인한 생명력을 실감한 사람들에게 기원의 대상들 또는 그것을 결집시킨 우리의 의도가 불온한 것으로 읽힌다 해도 무방하다. 1980년대 이전과 결정적으로, 그리고 전단적(剪斷的)으로 갈라서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 속에서 찾아낸 역사, 이념, 철학, 생의 경험과 감각… 그것의 의미를 정립하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의 덧셈이 아닌 그 모든 것들의 뺄셈이 필요하다. 어떤 과거와는 분단해야 하고, 어떤 과거와는 다시 통일해야 한다. 우리는 심지어 수구적, 반시대적, 향수적이라고 불릴지도 모른다. 호칭과 평가와 상관없이 우리는 근원적이면서 급진적이다. 과거에서 배울 것은 바로 이것이다. 분별하는 것, 분리하는 것. 오늘을 역사의 지평에 기입하기 위해, 우리는 전통의 흐름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현재를 통과하여 미래의 어느 지점을 향하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한다. 무엇이 두렵겠는가. 새롭게 해석하여 갱신할 뿐이다. 기억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을 퇴행이라고 못 박을 수는 없다. 이것은 발견이다.
나희덕 시인이 명쾌하게 정리한 바, 기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기원(Ursprung)은 변화의 흐름 위에 하나의 소용돌이처럼 머물면서 고유의 운율에 따라 최초의 사건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중략) 기원은 한편으로는 복원과 복구로 인식되기를,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 아직 종결되지 않은 미완성의 상태로 인식되기를 원한다.”(아감벤) “‘기원’이라는 말을 고유한 영역을 점유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흐름’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는 없다. 그때의, 그곳의, 그것은 지금 여기에 없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기원은 죽지 않지만, 또한 부활할 수 없다. 기원은 여전히 우리 영육의 한 부분으로 오늘의 삶을 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그 시대의 희미해진, 지워진 기억을 구체적인 언어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가 없다. 복사와 복제는 불가능하다.
광주에서 학살이 있었다. 독재의 시대를 살았다. 민주화를 위해 흘린 피와 잃은 생명을 기억한다. 노동자 대파업과 올림픽과 전교조를 통과하여 1990년대가 시작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기억의 양은 이 정도이다. 독자 여러분의 개인적인 기억의 총합을 넘어서는 사실들, 그 세부가 글의 곳곳에 숨어 있다. 정치이기도 하고, 역사의 질료이기도 한 고유명사들의 거리를 지나간다. 새 시대가 시작되면서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 바람이었기에 늦게 시작했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눈먼 사랑의 실천이 중단된 해가 1992년이었다. 긴 군 복무와 제대와 대학원 입학 뒤로 IMF 사태가 터졌다. 그 모든 것들이 있었다. 김일성이 사망했고, 유례없는 더위가 그 시간을 탄환처럼 관통했지만 나의 기억은 사실도 감정도 삭제해 버렸다. 기억하지 않아야 통증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자동 망각이 시작되었다. 서른을 지나면서 생활이 점령했다. ‘먹고살기 위해’라는 말이 비겁함과 무능과 무지의 자책에서 나를 구했다. 비슷했을 것이다. 연애 또는 결혼 또는 이별 또는 새 출발이 있었고 모두가 유사하게 후회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부채가 생기고, 그 아이가 성장하고, 부모의 삶이 강제되었고, 나는 늙어 가고 있다. 더 빠르게 잊고, 더 빠르게 절망하는 습관이 생겼지만 그것조차도 삶의 한 가지 양식이라고 믿게 되었다. 어쩌면 그날부터 나와 당신은 비슷한 삶의 프로그램이 실행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시민이 되었고, 몇 번 투표를 했고, 뽑은 지도자와 한 사회와 국가의 관계 같은 사소한 정치성을 방관하면서, 이것이 인생이라고 자조하면서, 조금씩 아픔을 느꼈지만, 존재를 전복할 수 있는 그 어떤 변화를 스스로 차단하면서, ‘적당히!’를 다짐하며, 2017년의 3월,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그때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그때도 우리는 그랬다. 그것이 죄라면 죄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불가능 앞에서, 우리는 그때 그곳의 그것들을 소환한다. 우리의 기원을 따져 묻는다. 바로, 당신.
나는 묻고 싶다. 당신도 그 시대를 살았던가. 당신과 나는 그때 가투가 벌어지던 종로나 명동 거리 어디선가 만났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함께 그 시간 속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지만, 당신도 나를 알지 못하겠지만, 오늘 우리가 찾아낸 ‘기원’ 속에서 당신과 나는 조우한다. 깡그리 멸실된 ‘그 어떤 것’을 발견한다. 울며불며 매달렸던 어떤 이념, 첫사랑을 잊거나 못 잊어 헤매던 밤길, 예술과 철학의 이름으로 앎의 환희에 젖었던 어느 봄날, 아침과 밤의 경계를 지우며 폭음했던 지하의 어두운 술집…, 우리가 기록하였지만 시간이 끝없이 삭제한 것들의 이름. 우리가 발굴한 대상들 속에 살아 펄떡이는 정념. 그것이 나와 당신이 이룩했던 ‘청춘’의 맨 얼굴이다. 들리는가, 그날의 명사들이. ‘기원’의 주제들을 호명한다. 문화의 적치장으로 입장한다.
최승자, 박노해, 백무산, 기형도, 장정일, 진이정, 유하, 하루키, 외국 시, 합평회, 금서, 대학가 서점, 애학투련, 박종철・이한열・강경대, 집회, 전교조, 야학, 폐광, 프로야구, 88올림픽, 애마 부인, 선데이 서울, 람보와 터미네이터, 홍콩 느와르, 장만옥, 동사서독, 왕가위, 비트, 재패니메이션, 질투, X세대, 편의점, 롯데월드, 노래방・비디오방, 자취방, HWP, PC 통신, 여행 자율화, 마이마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 김광석, 김현식, 빽판, X-Japan, Grunge Rock, Pink Floyd, Metallica, 서태지와 아이들, S.E.S.・H.O.T., 전자오락실, 기원(棋院),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IMF, 그리고 전대협, 마르크스, 페레스트로이카, NL・PD・ND, 김남주, 꽃 파는 처녀, 태백산맥, 헌책방, 사구체 논쟁, 사노맹, 여성해방운동, 가두투쟁, 통일선봉대, 성문종합영어, 수학의 정석, 정독도서관, 재수 학원, 국풍 81, 가요 톱 텐, 우리들의 천국, 모래시계, 김완선, 마돈나, 롤러장, 연대항쟁…, 그리고 빛고을 광주, 광주여! 미처 수록하지 못한 이야기들.
이 다양한 주제의 서술에 필자 44명이 참여했다. 필자들의 개별성이 집적되어 형성한 지층의 걸개그림을 바라보고 그 시대의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겨우 그날의 한 부분을 오늘의 초점 속으로 끌어당겨 놓을 뿐이다. 독서가 마무리될 즈음, 독자들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영상과 소리와 진동으로 되살아날지 궁금하다. 한 발짝 물러서서 성찰의 눈을 뜨게 되면 어떤 가치가 돋을새김 될까.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어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밝은 빛이 번뜩일까, 그날의 기록이 우리의 감각에 과연 차이의 주름을 만들어 낼까, 현재에 함몰되어 근시안이 된 우리에게 다른 주체가 되살아나서 귀환할까. 기원을 살피는 일은 총체적인, 총체적인 우리의 생을 복원하기 위한 먼 과업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추억의 한 자락이 작은 파동이 되고, 그것이, 다른 날의 다른 생의 다른 사랑을 희원하고 보다 나은 삶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기원들이 소멸로 돌아가 ‘바람 속의 먼지’(「Dust In The Wind」)로 흩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 벽을 이루었다. 그날들의 거대한 벽 구석에 ‘다른 벽돌 하나’(「Another Brick In The Wall」)가 보이는가. 노래가 들려온다. 소리를 키워 보자. 망각이라는 ‘편안한 무감각’(「Comfortably Numb」)의 소파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필자들의 원고 일부분으로 기원의 연대기를 작성해 본다.
칠십년대는 공포였고, 팔십년대는 치욕이었다고 고백한 것은 최승자였다.(이현승) 명륜동 3가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옆 벽면에 붙어 있는 하얀 대자보 위에 적힌 갖가지 메모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고명철) <강철수고>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 마르크스의 저서들과 엥겔스의 <반 듀링론>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등이 먼저 눈에 띈다. 나는 이 책들을 통해서 무엇이 세상을 바꾸는 힘인가를 생각했고 세상을 바꾸는 과정의 지난함에 대해 공부했다.(황정산) 난 그날 밤 자취방에 돌아와 엉겁결에 받은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농부의 밤>이란 제목을 단 김남주 시인의 시집이었다. 조악한 편집과 인쇄로 만들어진 이 시집의 뒷부분엔 김남주 시인이 아직 옥중에 있고 이 시집은 옥중에서 쓴 시를 면회자가 받아서 묶은 것이란 설명이 붙어 있었다. 금서였다.(백승권)
<해방 전후사의 인식> <러시아혁명사>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민족경제론> <한국전쟁의 기원> <페다고지>, 막심 고리끼의 소설. 전두환과 레이건의 화형식. 애학투련(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은 1980년대 초반 일종의 지하 이념 서클이었던 자민투와 민민투가 ‘반미’를 주요 이념으로 공통화하면서 패밀리적 종파 투쟁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급하게 발족된 투쟁 조직이었다. 건대 항쟁은 1980년대 단일 사건으로 18,900명의 경찰이 동원되어 1,525명이 연행되고, 1,265명이 구속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1987년 봄이 왔고, 박종철이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으며, 이한열이 쓰러졌고, 뜨거운 6월을 맞이했다.(임지연) 1987년 그해, ‘양김’이 분열하여 대통령 선거에 패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 ‘나’의 형의 고백도 결국은 ‘아무도 믿을 수 없어’란 내면에 닿아 있었다.(김찬기)
우리 학교는 14명의 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했다.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입 교사를 모두 퇴직시키는 것으로 정부가 결정하자 몇 분 정도는 가입을 철회했던 것 같다.(김종훈)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계기로 조성된 ‘신공안정국’, 5월의 부산 동의대 시위 강경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전경 사망 사건의 여파로 제정된 화염병 처벌법, 임수경, 서경환, 황석영 등의 잇따른 방북과 함께 달아오른 대학가 통일 투쟁에 대한 강경 진압과 구속 등. 1990년의 봄은, 현대중공업의 노조원 78명이 골리앗 크레인으로 올라가면서까지 지속한 파업이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총파업 결의로 이어진 끝에 공권력에 의해 진압당하던 시기이기도 하다.(안남일)
1991년 4월 26일의 명지대 경영학과 1학년 강경대 타살 사망 사건은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과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1987년 6.10 항쟁의 성과가 송두리째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두려움과 분노를 낳았다.(정의진)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앞에서 강경대가 백골단에 맞아 죽었다. 4월 29일 전남대에서 박승희가 분신했다. 5월 1일 안동대에서 김영균이 분신했다. 5월 3일 경원대에서 천세용이 분신했다. 5월 8일 서강대에서 김기설이 분신했다. 5월 10일 전남대에서 윤용하가 분신했다. 5월 18일 연세대 철교 위에서 이정순이 분신했다. 5월 18일 전남 보성고에서 김철수가 분신했다. 5월 22일 전남대 영안실에서 정상순이 분신했다. 5월 25일 김귀정이 대한극장 앞 골목길에서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인해 사망했다.(채상우)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죽지 마, 누나. 죽지 마. 살아 있어야 돼. 제발 죽지 마.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윤성학) 2002년 11월의 효순-미선 추모 집회를 기점으로 광장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한일 월드컵이 그 계기였다면, 효순-미선 추모 집회는 그 결과물이었다. 광장에 촛불이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상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박성호)
노찾사 2집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사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그날이 오면」 「저 평등의 땅에」 「이 산하에」 「오월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안남일) 들국화, 유재하, 김현식, 이문세(이영훈), 시인과 촌장, 어떤 날, 하늘바다, 11월, 봄여름가을겨울, 이병우. 김광석 「변해 가네」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했지만」 「나의 노래」 「슬픈 노래」 「그날들」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박노해 <노동의 새벽>. 백무산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이경수)
1981년 10월 30일 밤 11시 45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제24회 하계올림픽의 서울 개최를 확인하는 IOC 위원들의 투표 결과를 발표한다.(허진석) 1984년 한국시리즈. 언더독 롯데가 져 주기 경기를 하며 올라온 삼성을 누르고 우승하는 과정은 만화 같았고 한국시리즈 선발투수 4승은 영원한 전설로 남았다. 강병철 감독이 말했다. “동원아, 우짜노 여기까지 왔는데.”(한래희) 전두환 정권이 뿌리내린 1980년대 한국도 로마 못지않게 기괴했다. 이전의 독재 정권과 마찬가지로 파시즘적 폭압을 이어 가며 인권을 유린했다. 프로야구가 무기력한 시대의 갈증을 해소했다면, 싸구려 에로영화는 음습한 도피처였다.(이종길) 다른 하나의 이미지는 강한 육체를 가진 남성들의 등장이었다. 에로 영화의 범람이 ‘방화’와 외국 영화를 가리지 않고 등장한 현상이라면, 강한 육체를 지닌 남성의 등장은 할리우드 영화에 국한된 현상이었다. 「람보」 시리즈, 「록키」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 「다이하드」 시리즈, 「리쎌 웨폰」 시리즈, 「코만도」, 「델타 포스」 등의 영화에서 우리는 노골적으로 전시된 남성의 육체를 봐야 했다.(강성률)
중국의 프로 바둑 기사 섭위평 9단을 물리치고 당시 세계 최고 기전인 응창기배에서 우승한 조훈현이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였고 그의 제자인 소년 기사 이창호가 조금씩 약진해 가던 때였다.(주영중) 대만판―1980년대 후반 빽판 세계의 꽃. 짝퉁 중의 정품. 아니 정품이나 진배없는 진정한 짝퉁. 아니 아니, 짝퉁도 아니고 정품도 아닌, 오로지 대만판이라고 불러야만 온당한 대만판. 청계천과 종로 세운상가를 한순간 침샤추이와 신주쿠로 격상시켰던 대만판. 대만의 슬픈 역사를 닮은 대만판!(채상우) 오락실의 물가는 1991년 걸프전 소식과 함께 오십 원에서 백 원으로 충격적인 인상을 겪었다.(김건영) 컬러티브이부터 스카이 콩콩, 스케이트, 롤러스케이트, 스카이 씽씽까지.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은 신작 영화를 상영하는 천막 극장이 섰다.(한용국) 마광수는 1995년 6월 ‘주인공의 성생활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서동균)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MBC), 「내일은 사랑」(KBS2), 「모래시계」(SBS).(이주라) 잠실에 실내 놀이공원이 생겼다고 하여 친구들과 찾아가서 두리번거리며 우우 몰려다녔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을 가진 여중생이었다.(이근화) ‘전문대’도 어려운 성적을 받은 학생은 체제에 의해 ‘직업반’을 선택하도록 권유받게 되고, 설령 그것을 거부하더라도 그들은 편의점과 유흥업소, 각종 ‘삐끼’ 등의 ‘직업’을 찾아보아야 했다.(기혁) 그들은 그저 평범한 남학생들이었고, 천박하거나 무례하지 않았으며, 공부도 싸움도 못하는, 학급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부류들이었다.(김승일) 대학에 왔고 성인이 되었고 서울 시민이 되었다. 자취를 시작했다.(전형철) 피자를 배달시키고, 야간 근무 중에 편의점 샌드위치를, 길거리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야구장이나 롯데월드에서 데이트하고, 리본 머리띠를 달고 빨간 소형차를 타고, 또 미국 연수를 가는 등의 행위들은, 마치 도시 생활의 필수처럼, 혹은 도시인들의 세련된 취향처럼 받아들여졌다.(백지은) 노량진 대성학원에서 재수하고 있던 1992년 편의점을 처음 만났다. 친구가 소개해 준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맥주를 편하게 마시라고 파라솔이 달린 번듯한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노춘기) 개종한 386세대의 후천성 시니시즘 혹은 1970년대생 신세대의 태생적(?) 시니시즘이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장을 무라카미에게서 찾은 것이었다.(신형철)
1980년대 후반 가요계에 비주얼은 김완선의 웨이브, 박남정의 브레이크 댄스, 강수지・하수빈 계통의 청순가련, 소방차의 텀블링과 멤버 간 마이크 던지고 주고받기 정도였다.(박장호) 높은음자리 「바다에 누워」, 이선희 「J에게」, 이상은 「담다디」, 전람회 「꿈속에서」.(서동균) 녹음을 위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숨죽여 기다린다. 시간이 되면 방문을 닫고 녹음 버튼 위에 손가락을 얹은 채 기다린다. 중요한 순간 동생이 들어오거나 엄마가 들어와 녹음을 훼방한다.(정우신)
1990년대는 ‘대중문화’의 시대였다. 영화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문화 담론이 넘쳐났다.(박상수) 그리움이란 것은 어둠이 만들어 내는 정체불명의, 일시적 환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박정대) 「동사서독」을 보려고 신촌의 한 영화관을 찾았을 때, 영화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틀림없이 휴가 나와서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보내려 영화관을 찾은 듯한 행색의 군인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조강석) 취생몽사. 마시면 지난 일을 모두 잊게 된다는 그러한 술을 나는 일찍이 가졌던 건지도 모른다.(박소란) ‘주윤발, 쳇 베이커, 최진실, 드루 베리모어, 이소룡, 용팔이, 전함 포템킨, 파리 애마, 노스탤지어, 펜트 하우스’ 등등 판도라 상자 같은 유하의 ‘세운상가’는 그러한 텅 빈 광장에서 열렸다.(정은경)
뮤제오 로젠바흐, 뀌엘라 베끼아 로깐다, 더 트립, 피에프엠, 오산나, 리 오르메, 오뿌스 아방뜨라, 누오바 에라, 뉴트롤즈, 포르뮤라 뜨레, 일 로베치오 델라 메달랴, 첼레스떼 등등.(김참) 1994년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죽음. 앨리스 인 체인즈(Alice in Chains)의 보컬 레인 스테일리(Layne Staley)의 자살.(신동옥) “<메탈리카> 같은 빗줄기.” 진이정 시인은 메탈리카의 전성기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세상을 먼저 떠났다. 메탈리카는 여전히 빗줄기 같은 음악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있다.(최원) 진이정을 죽음으로 끌고 간, ‘가혹했던 그 삶’의 어둠 속에서 “피를 뻘뻘 흘리며” 시를 썼던, 돈이 없어서 굶던, 시인의 맑은 얼굴을 본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지했다. 언어와 감각의 해방이 시작되고 있었다. ‘개인’이 되어, 드디어, 기형도를 마음 놓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세대가 탄생하고 있었다.(장석원)
‘하나’ ‘보석글Ⅱ’ ‘훈민정음’ ‘아래아한글’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당시의 대표적인 워드 프로세서였다.(장철환) ‘열음세계시인선’, 청하출판사의 ‘세계문제시인선집’, 솔출판사의 ‘세계시인선’ 등의 외국 시집. ‘빠이로트’ 만년필, 2벌식 ‘크로바’ 수동 타자기, ‘삼보’ 워드 프로세서, 486 AT 기종, 내장형 슬롯 14400BPS의 모뎀 카드. <씨네 21> 1995년 4월 14일 창간, 1995년 5월 창간한 <키노>. 한밤에 접속해서 「전영혁의 음악 세계」를 들으며 채팅을 하다가 새벽빛을 보고 잠드는 날들. 마야코프스키와 알렉산드르 블로끄, 파울 첼란과 가르시아 로르까.(송승환) 89학번인 지금은 다 알 만한 모 시인의 시를 84학번 복학생인 지금은 다 알 만한 시인이 합평회 중에 태웠다는 것이다. 그 시절 합평회는 그랬다. 20-30줄의 시는 합평회가 끝나고 나면 하이쿠가 돼 버리거나 아예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폐지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전형철)
기원과 출발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매 시대마다 도래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박민규)
기원들은 현재 속에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다시 만져 본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 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 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제3인도교의 물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 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김수영이 열거한 저 명사들이 김수영이 발견한 전통의 기원이었다. 김수영이 발견한 저 개별적 대상들이 전통이라는 거대한 뿌리를 구성한다. 우리가 지나온 과거는 어쩌면 김수영의 말대로 “괴기영화의 맘모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김수영의 고백처럼 우리는 “감히 상상을 못 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를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들이 있었다. 우리의 문화의 기원은, 오늘, 무엇일까. 아니다.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살아낸 그 시대의 기원들을 우리는 ‘다양성’과 ‘개성’이 발현되는 시발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금제(禁制)가 파괴된 이후였다. 창조가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들끓음과 폭발이 찾아왔다.
기원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기억과 회감의 불멸하는 전집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감각의 지층이자 감정의 사료(史料)가 될 것이다.
그곳에 당신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돌아가라. 가서, 그날, 미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는 당신의 청춘을 이곳의 나에게 전송하라.
그곳에 당신이 없었던가. 그렇다면 들어가라. 가서, 창공의 알바트로스 같은, 광휘에 빛나는 그날, 그 섬세한 천둥소리의 메아리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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