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막이옛길 표지석
산으로 막힌 마을을 잇다, 산막이옛길
괴산군 지도를 보고 있으면 온통 파랗다. 그만큼 산이 많다는 증거다. 산이 많으니 계곡도 많다. 쌍곡과 선유동계곡,
화양동계곡, 갈은계곡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계곡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 바로 괴산이다. 산이 장막처럼 둘러싸고 있어 막혀 있다는 뜻을 지닌 '산막이' 역시 산이 만들어낸 지명이다. 산으로 막힌 마을로 불리는 산막이마을은 달천을 가로질러
건너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오지 중 오지였다. 산에서 채취한 버섯, 나물, 약초 등을 강 건너 읍내 장에 내다파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하지만 댐이 건설되면서 물길마저 사라졌고, 마을은 더욱더 오지가 되었다.
그래서 태어난 길이 지금의 산막이옛길이다. 발아래 목숨을 노리는 호수와 벼랑이 버티고 서 있는 굽이굽이 위태로운 길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길이다.
소나무동산으로 이어지는 옛길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을 이어주던 10리 길, 즉 4km에 걸친 옛길이다.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지만, 그전에 있던 길은 분명 옛길이 맞다. 이 산막이옛길을 지난해에만 140만 명이 찾았다고 하니 이제 오지 신세를 면한 셈이다.
괴산호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아름다운 길
주차장에서 괴산호의 풍경을 만나기까지는 오르막길이 반복된다. 아름다운 풍경을 쉽게 보여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길게 이어진 농특산물 지정 판매장을 지나 가파른 길을 걸어 관광안내소, 차돌바위나루를 지나 소나무동산에 이르면
또 한 차례 계단길이 이어진다. 소나무동산엔 40년 수령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 뻗은 소나무와 단정하게 쌓은 돌담길이 제법 운치 있어 오르는 길이 힘든 줄 모른다.
언덕 정상에 이르면 비로소 괴산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 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그네와 흔들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왼편 소나무 숲 너머로 괴산호와 산막이옛길을 탄생시킨 주인공이 얼굴을 내민다.
괴산댐이다. 괴산댐은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달천을 가로막아 건설한 댐식 발전소다.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전력시설을 재정비, 복구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기술로 건설했다.
전망대에서 호수를 굽어보며 한숨 돌리고 나면 흙길과 나무데크를 따라 완만한 길이 이어져 발걸음이 제법 경쾌해진다. 소나무 출렁다리는 산막이옛길의 최고 명소 중 하나다. 소나무 숲 사이로 출렁다리를 연결해 삼림욕과 함께 재미를 더했다.
[왼쪽/오른쪽] 소나무 숲 너머로 괴산댐이 들어온다. / 소나무 출렁다리를 지나는 여행객들
소나무 출렁다리를 지나면 산막이옛길에 재미를 더하는 다양한 볼거리가 이어진다. 지금은 연못이지만 예부터 벼를 재배했던 논으로 빗물에 의존해 모를 심었다는 연화담을 비롯해 노적봉, 성재봉, 옥녀봉, 군자산 등이 겹겹이 보이는 망세루가 가장 먼저 반긴다.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하는 호랑이굴 앞에는 잘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지나는 여행객들을 노려보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야생동물들이 목을 축였던 노루샘, 매의 형상을 한 매바위,
여우비를 피해 잠시 쉬어가던 여우비바위굴, 앉은뱅이가 약수를 마시고 나았다는 앉은뱅이약수, 골짜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이 내려오는 얼음바람골이 차례로 이어지고, 산막이옛길의 가장 아름다운 쉼터인 호수전망대가 지척이다.
논으로 이용되었던 연화담
[왼쪽/오른쪽] 산막이옛길을 산책하는 사람들 / 1968년까지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
[왼쪽/오른쪽] 호수전망대에서 본 군자산과 주변 산세 / 호수전망대 풍경
마흔고개 넘어 괴산호 선상유람까지
호수전망대를 지나면 또 한 차례 장관이 펼쳐지는 포인트를 만난다. 괴음정과 고공전망대다. 특히 40m 벼랑 위에 설치된 고공전망대는 바닥에 강화유리를 설치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다만, 지금은 많이 닳아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마흔고개는 산막이옛길에서 가장 험난한 구간이다. 마흔고개를 올라서면 다래숲동굴과 진달래동산을 지나 산막이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40m 절벽 위에 설치된 고공전망대
[왼쪽/오른쪽] 산막이옛길에서 가장 험난한 코스인 마흔고개 / 산막이마을이 지척인 진달래동산
산막이마을은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길이 제법 포근하고 정겹다. 선착장에 도착하면 산막이옛길 짧은 여정이 끝난다. 잠시 쉬었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산막이옛길 입구인 차돌바위선
착장으로 돌아 나오는 방법도 있다. 요금은 편도 5000원이고 수시로 운항한다. 산막이선착장에서 선유대를 지나 괴산호
최상류인 세뱅이까지 운항하는 관광유람선(대인 1만 원)도 있다. 이 유람선은 산막이옛길 반대편으로 선상유람을 한 뒤
산막이선착장을 거쳐 차돌바위선착장까지 운항하니 편리한 대로 이용하면 된다.
배를 타면 선상에서 새로운 풍경들을 만난다. 삼성봉, 천장봉, 등잔봉, 국사봉 등을 잇는 둥글둥글한 산세가 하늘 위로
펼쳐지고, 벼랑을 따라 구불구불 산막이옛길이 이어진다. 고공전망대, 괴음정, 호수전망대 등이 호수 위로 아슬아슬하다.
왼편으로는 해발 948m에 이르는 군자산이 겹겹이 이어지고, 괴산호 물가에는 봄소식 가득 머금은 나무들이 싱그럽다.
괴산호를 둘러싸고 있는 산세를 감상하다 보면 금세 선착장이다. 도착까지 10분 남짓 소요된다.
[왼쪽/오른쪽] 선상에서 바라본 괴산호의 봄 풍경과 군자산 / 선상에서 본 망세루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 농특산물 지정 판매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산막이옛길 주변 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농특산물만 판매할 수 있는 곳으로 모두 24곳이 장터 형태로 문을 연다. 표고버섯, 찰옥수수 등 이곳을 대표하는 농특산물을
판매한다. 표고버섯을 소금장에 찍어 먹어보니 진한 버섯 향과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표고버섯 한 상자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 마치 산막이옛길로부터 선물 하나를 받은 느낌이다.
농특산물 지정 판매장에서 표고버섯을 판매하는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