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지역관리회사를 통한 주민자치 역량 강화
박학룡(함께살이성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도시재생사업은 기존 시가지의 노후 쇠락으로 발생하는 도심공동화와 침체를 방지하고 물리 환경적, 산업 경제적, 사회 문화적으로 활성화시키는 일이다. 도시재생사업은 뉴타운 이후의 새로운 도시정비 전략이다.
서울은 60~70년 사이에 인구수가 급하게 변해가고 있다. 지금은 인구가 정체 내지 줄어드는 과정이다. 과거 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해오는 과정에서는 공급위주 정책이 펼쳐졌다. 90년대는 재건축, 재개발 위주의 정책이 시행되었다. 성장기의 도시는 도시표면을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고 아파트를 지었다. 100명이 사는 동네를 싹 밀고 200명 살 수 있게 집을 지었다. 더욱이 이렇게 생겨난 아파트로 인해 녹지공간이 축소된다. 생태적 환경이 상실되며 결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위협을 받는다. 그래도 계속되었던 건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 때문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 방식이 안 통한다.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서 고성장시대의 공급 위주 도시정책에서 저성장시대의 관리 위주 도시정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성북구도 2011년부터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북동의 북정마을, 역사문화지구, 삼성동의 삼육구마을, 장수마을, 길음동 소리마을, 월곡동 삼태기마을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
도시재생 이래서 어렵다, 불만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도시재생에 대한 다양한 불만들이 있다. 먼저 주민으로서 이런 불만들을 얘기한다. “집이 좋아질 줄 알고 도시재생 찬성했는데, 이래서 안돼 저래서 안돼.. 집도 못 고쳐주면서 도시재생은 왜 하나 모르겠다. 빌라 지으라고 하나보다” 활동가 또는 전문가는 어떠한가? “활동가니 코디네이터니 이름은 갖다 붙였지만 직업으로서 전망도 없고, 당장의 처우에 대해서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소모품 취급만 받느니 얼른 다른 일자리나 알아봐야겠다.”
그럼 도시재생사업을 벌려나가는 사회적기업 운영자들은 만족스러울까? “도시재생사업이 사회적기업에 기회의 땅이라는 말은 완전 뻥이다. 도시재생사업이 사회적기업에 원하는 것은 무료 봉사일 뿐 수익을 줄 생각은 1도 없다. 사회적기업도 돈 벌려고 회사하지 손해 보려고 하겠냐?” 끝으로 엔지니어링 회사 직원의 얘기를 들어볼까? “한마디로 도시재생사업은 늪이다. 발을 담그면 빠져나올 수가 없다. 1년짜리 계약을 하고 3년째 발목이 잡혀 있다. 끝이 어딘지 모르겠다.”
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불만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도시재생사업이 먼저 행정에서 어느 정도 판이 계획된 뒤에 실행된다는데 있다. 행정은 가능한 변수를 줄여서 계획대로 예산 안에서 끝내고 싶어한다. 이 틀에 주민들의 욕구를 끼워넣으려고 한다. 주민은 당장 집을 고쳐서 안정된 주거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와 정책은 개인의 집을 고치고 관리하는데 적합하게 변화하지 못했다. 담장 안과 밖, 사유공간과 공공공간의 경계에 있는 골목이 주목받고 있지만, 막상 도시환경관리 측면에서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관리의 사각지대일 수도 있다.
도시재생은 정답이 없는 상태에서 공공과 주민이 서로의 욕구와 현실의 한계를 소통하면서 접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과거와 같은 개발 방식이 아니라면 주민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주민들이 논의하며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한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주민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계획과 실행의 경험의 누적, 시행착오의 반복이 필요하다. 어떤 부분을 계획하고서 이를 끝낸 뒤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목적과 방향을 두고 가야 한다. 하다가 안 좋으면 접고, 반응이 좋으면 키워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공동체, 사회적경제, 주민참여는 뒤로 하고 익숙한 설계도부터 펼쳐보게 된다. 주민참여가 좋다고 하면서도 다들 제한된 시간과 예산안에 신속히 결론을 내려 한다.
주민 의견 모으기만 2년 반
성북구 장위동은 2014년 말에 뉴타운 해제가 되었다. 2015년 5월에 임시센터처럼 현장지원센터를 설치하여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우리 동네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정은 이미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처음에 오는 주민들은 부동산이나 개발정보 얻기 위해서 온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사람들이 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럴듯해 보이는 조감도를 찾게 된다. 우리 지역에 문제가 무엇인지 얘기하다보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판이 생기다보니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렇게 주민들이 얘기를 모으면서 결정을 하는데 2년 반이 걸렸다. 물론 이미 행정에서 만들어 놓은 그림에 주민들의 의견을 맞춰가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단순한 일회성 공청회가 아니라 일상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계획을 수정한 과정은 과거의 도시개발과는 분명히 달라진 점이다. 아쉽지만 변화의 첫발을 디뎠다는 의미다.
이렇게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서울시 도시재생위원회 심의가 7월에 예정되어 있다. 서울시 도시재생위원회의 첫 심의 사례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업의 종료가 2018년 말이라는 점이다. 건물 하나 지으려고 해도 아무리 짧게 잡아도 1년이다. 관에서 하는 공사는 건물 시공 전의 많은 행정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4년간의 사업에서 2년 반을 계획하고 1년 반 사업을 하는 게 맞지가 않다. 실행과정에서도 주민의견을 반영해야 할 일이 많은데 시간에 쫓기다보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사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서울시가 올해 새로 선정한 도시재생지역은 1년 계획 세우고 4년간 실행하라고 사업기간을 늘리는 제도 변화가 생겼다.
물론 여전히 예산쓰는 시설 사업이 중심이 되고 있다. 행정은 예측 불가능한 쪽으로는 가능한 안 쓰려고 한다. 장위동 도시재생은 생애주기별 생활인프라 확충에 초점을 두고 계획하고 있다. 돌봄, 어린이집, 청소년 문화공간 등을 조성하는 일이다.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시설 위주의 사업이지만 앞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할 거점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타협(?)인 셈이다.
주민자치와 주거복지의 결집, 지역관리기업
문제는 공간이 만들어진 다음이다. 주민이 지금 당장 관리할 역량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도시재생을 이해하고,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데 2년 반이 걸렸는데 1년 반만에 관리 역량까지 갖추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우선 시설을 구청이 가져가게 된다. 그 후 주민들이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쓰겠다고 해도 쉽지가 않다.
개인 주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장위동은 큰 집이 많다. 100평 집이 많다. 장위동은 1960∼1970년대에는 주택 지역으로 조성되어 신흥 부촌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노후된 건물을 관리하고 수선할 감당이 안되는 어르신들은 이를 그냥 빌라업자에게 팔아버린다. 빌라업자는 짓고 팔고 떠나면 끝이다. 주거환경에 대한 고민을 하기 어렵다. 이렇게 최근 2년 동안만 해도 100건이 신축되었다. 급격한 주거환경의 변화는 사람의 변화를 가져온다. 100동의 신축 빌라에 1500명 이상의 신규 주민이 들어온 셈이다. 마을과 전혀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이 사람들과 어떻게 지역의 문제를 함께 의논하며 풀어야 할까?
주민과 지자체도 아닌 중간 역할로서 지역관리기업을 모색해본다. 지역관리기업은 지역 안의 공공서비스를 대행하는 기관이다. 그렇지만 관공서에서 수익이 되지 않는 부분을 민간위탁받는 것은 아니다. 민간의 창의력과 자치력으로 새로운 공공서비스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존 서비스를 넘기되 다른 서비스를 새롭게 창출해내며 민간위탁이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예를 들어 주차문제와 쓰레기 문제를 들 수 있다. 거주자 주차 1면 조성하는데 1억이 든다. 동네에 거주자 주차, 빌라 주차 등 하면 작은 블록에 30개 주차장이 있다고 치면 실제 있는 차는 25대가 안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칸만 고집하다보니 공간이 부족하다. 이 주차 공간을 지역관리기업이 같이 쓸 수 있게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거리청소도 마찬가지이다. 주민의 자치역량을 키워주면서 새로운 공공서비스 영역을 개척해간다.
물론 이 지역관리기업을 풀어가는데 있어 여러 과제들이 있다. 현재 도시재생사업은 특정한 지역으로 한정되어 논의된다. 경계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거점처럼 여기서 시작하지만 확장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쉽지가 않다. 사업적으로는 최소한 자치구 범위로 봐야 하는데 행정에서는 이렇게 봐주지 않는다.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도 행정은 비용절감의 관점으로만 접근하지 새로운 가치창출의 관점으로 보고 있지 않다.
도시재생은 수술이 아닌 회복과 체질개선의 과정
재개발, 뉴타운의 천지개벽한 것 같은 급격한 변화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어쩌면 느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도시재생의 지루한 과정에 더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시, 특히 서울은 더 이상 선택의 기회가 없는 것 같다. 어느날 갑자기 수술대에 눕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생활습관을 바꾸고 몸을 단련하여 체질을 개선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도시재생을 한다면서 왜 길 넓히고 주차장 만드는 것부터 하지 않고 지역역량 강화니 사회적경제니 하는 쓸데 없어보이는 일부터 벌이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