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3년 청년한의사회 홈피에 올렸던 글입니다. 4~5편까지 썼었는데 다 날아가고 1편만 검색이 되는군요.
아무튼 지난 세월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라 이 방으로 모셔왔습니다.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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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테니스 라켓을 잡은것은 2000년 봄이었다.
고3 때 처음 누나가 치던 라켓을 빌려 아파트에 설치된 벽치기 연습장에서 땀을 흘리곤 했을 때, 테니스는 고급운동이었다. 주로 동네 의사, 약사 선생님들과 고급공무원들이 테니스코트에 나온다는 사실은 처음 레슨을 가르쳐주던 코치선생으로부터 들었다.
그 후, 대학을 가서 몇 번 친구들과 어울려 엉망인 자세로 겨우 공넘기기 수준의 장난질(?)을 하곤 했는데.... 아무튼 이런 인연으로 해서 나는 행림제때 우리 학교 대표선수로 테니스 시합도 나갔었다. 물론 결과는 6대 빵! 아무튼 나에게는 낡은 테니스 라켓이 하숙생 짐보따리에 늘 따라다녔다.
다시 테니스를 정식으로 배워보자고 결심한게 장항에서 남의집 관리한의사로 일할 시절이었다. 장항에 당시 한솔제지(맞나 모르겠다)라는 회사가 있었고 그 회사에서 레슨을 담당하던 여자선수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술먹기 좋아하는 습성으로 인해 아침운동을 빠짐없이 나간다는게 어디 만만한 일인가? 결국 두달을 채우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으니 겨우 포핸드(오른손잡이가 몸의 오른쪽으로 오는 공을 친다는 것)를 치는 연습만 하고 말았다.
91년, 김제에서 한의원을 개업하고 선배님들을 사귈 무렵, 원광한의원(이순호원장님) 형님의 권유로 다시 레슨을 좀 받았다. 당시 보양한의원 서양호 원장과 시작했는데 역시 두세달 치다 말았던것 같다. 왜냐고? 바로 그 유명한 약사법 파동 때문이다. 그때는 서양호 원장보다는 내가 잘 쳤는데.....흑흑, 지금은 양호가 훨씬 잘친다.
이제 2000년 봄으로 돌아가자.
당시 용진에서 살았는데, 아들녀석을 전주로 전학시켜서(소위 말하는 위장전입이었다. 헤헤) 아침마다 학교까지 배달을 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테니스장이 눈에 띄길레 불쑥 들어가 봤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젊은 코치가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당장 내일부터 레슨을 받겠다고 했다. 처음 한 달, 아침레슨을 받았지만 역시나.....나는 아침운동 체질이 아니다. 전날 밤 마신 술은 항상 아침마다 몸을 일으키는데 갈등요인이었으며, 아침운동을 하고 근무를 하다보면 꼭 점심무렵에 졸려 힘이 들었다. 결국 운동 시간을 저녁으로 바꿨다. 근무가 끝나고 6시 땡하면 운동장으로 달려나간다. 이렇게 1년 정도 열심히 테니스를 쳤더니 점차 재미가 붙어 이제는 테니스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되어버렸다.
운동은 뭐든지 좋다.
등산, 수영, 마라톤 등등. 아 골프도 있다지?
그런데 테니스는 더욱 좋은것 같다. 마약같은 끌림이 있는 운동이다.
내가 테니스를 다시 시작한 것은 사실 아버지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 테니스 무척 좋아하신다. 집에 그간 받아오신 트로피, 페넌트(요즘은 이런거 없지?) 등이 한무데기쯤 있다. 원래는 연식정구를 하셨는데, 40후반쯤에 테니스로 바꾸셨다. 그래서 그런지 울 아버지가 치시면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를 모른다. 테니스랑 정구랑 폼이 좀 틀리거든.
아무튼 아버지께서 주말에 자식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 싶어 하시는데 기분을 좀 맞춰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웠다. 올해 칠순이신 아버지를 올해가 되어서야 간신히 상대가 되는것 같다. 아버지께선 나의 실력이 향상된 것을 은근히 기뻐하시는 눈치다. 아버님이 속한 클럽(노인네 클럽답게 이름이 백수회다. 일백백, 목숨수)에 가끔 가서 쳐 드리면 다른 노인네들이 부러워들 하시기 때문이다. 아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막걸리도 한 잔 함께 하는게 얼마나 보기 좋은가!
나의 테니스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본다.
테니스를 안 하시는 분들은 재미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테니스를 매개로 한 생활이야기 쯤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럼 후속편을 기대하시라. 꾸~벅(백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