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의 『그런 세대는 없다』
1. 2022년 발간된 도서 중에서 언론의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 중 하나는 사회학자 신진욱의 『그런 세대는 없다』였다. 저자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 속에서 현재 작동되는 ‘세대 담론’의 문제점을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세대 담론의 허구성과 위험성을 폭로하고 있다. 저자는 ‘세대 담론’의 현상을 특정 집단의 특징을 세대 전체의 문제로 과잉일반 또는 허위일반화하면서 정치적 의도와 전략으로 활용하는 ‘정체성 정치’의 결과로 본다. ‘세대’는 분명 존재하지만, 동질적인 사회집단으로서의 세대는 없는 것이다.
2. 세대 담론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득권 세력으로 ‘586세대’와 희생자 집단으로서 ‘청년세대’를 대립시키는 담론이다. ‘86세대’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위와 자산을 독점함으로써 청년세대의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암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세대 중에서도 지극히 소수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세력과 관리자들에 대한 개념을 세대 전체로 확산시킨 결과라 할 수 있다. 담론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것’ 못지않게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80년대 운동권 출신의 50대 엘리트층이 이 세대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세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들을 ‘50대, 1960년대 생’에서 지워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3. 저자는 ‘86세대’가 한국 사회를 독점하고 있다는 인식을 각종 통계자료를 통해 반박한다. 우선 86세대가 대학졸업 후 손쉽게 취업한 반면에 현재 대학졸업생의 어려운 취업 상황을 비교하는 시각에 대해, 전체적인 대학생 규모를 비교한다. 1980년대 대학진학자는 동일 연령층에서 불과 10%가 조금 넘는 상황이었다. 현재 70%에 가까운 진학률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상위자산 계층에서도 다수가 30-40대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하위계층에 많은 50-60대가 분포되어 있는 현실을 제시한다. 수많은 50대들이 저임금의 노동직에 머물거나 빈곤한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마치 5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한국 사회를 장악하고 ‘헬조선’으로 만들고 있다는 비난은 지극히 정략적이고 왜곡된 관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50-60대 세대의 다수는 2000년대에 자신의 주직장을 일찍 떠나야했거나 장기근속할 수 있는 주직장을 얻지 못했거나, 아니면 영세한 1인 자영업에 종신하면서 살아왔다.”
4. 저자는 ‘586세대’에 대한 혐오 담론과 ‘청년세대’ 담론에 대한 언론 기사의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담론 확산은 2010년 이후에 이루어졌으며 중요한 정치사회적 사건이 담론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2011년에 일어난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와 오세훈의 ‘무상급식’관련 투표 그리고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노동개혁, 2019년의 ‘조국’과 관련된 논쟁에서 이러한 담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담론의 정치적 성격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5년의 ‘노동개혁’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보수세력이 기성세대를 ‘기득권’으로 지목하고 이들에 의해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출이 어렵다는 담론이 형성되었으며, 2019년 조국 사태에서는 반 민주당적 정치세력에 의해 ‘반 문재인 담론’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기성세대 기득권’이라는 담론으로 확산된 것이다.
5. ‘86세대’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같이 소환되고 확산된 것이 희생당하는 ‘청년세대’에 관한 담론이다. 청년세대의 불행이 ‘기성세대의 독점’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프레임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청년세대’ 담론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천공항공사’ 논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정책에 반발한 정규직이 제기한 ‘공정’의 문제는 청년세대의 특징을 시험을 통한 공정과 결과가 아닌 기회의 공정이라는 특정의 프레임으로 몰아넣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청년의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 청년 주거 및 복지 문제, 고용불안정 문제 등을 배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프레임 속의 청년은 안정된 직업을 획득한 중산층 청년들이었고 이들의 태도와 관점이 청년세대를 대표한다고 인정된 것이다. 그런 시각 속에서 경쟁을 통한 공정을 선호하고 결과가 아닌 기회의 평등을 주장하는 청년세대의 담론이 만들어졌다.
6. 하지만 이런 시각은 현재의 ‘청년세대’를 대변하지 못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수많은 청년들이 여전히 ‘결과의 평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고용시장의 안정을 절실하게 원하고 문제의 근원을 기성세대에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유행하고 있는 ‘청년세대’ 담론은 청년층의 상대적 상위층의 시각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들의 불만을 청년 전체로 확산시켜 핵심적인 청년 문제 해결을 회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 같은 청년 세대 내에서도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청년(20-30대)들이 높은 소득과 상위자산을 취득하고 있으며, 전문직으로 진출하여 중요한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청년담론은 소수의 상위층과 중간층의 관점이 아닌가를 점점해야 하며 그것은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하위계층 청년들에 대한 정책 변화 중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7. 세대담론의 확산, ‘착취하는 기성세대’와 ‘고통받는 청년세대’라는 프레임은 결국 문제의 근원을 은폐하는 정치적, 사회적 전략이자 ‘정체성 정치’를 통해 개별적인 고통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고통’의 문제는 막연한 ‘기성세대’가 아니라, 갑질하는 직장상사, 부패하고 오만한 정치권력, 구조적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적 정책 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불평등’은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세대 내에서 계층별로 확연하게 벌어진 차이에서 시작되고 있다. 현재 20-30대 부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그들의 부가 앞 세대의 ‘부의 이전’을 통해서 발생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 퇴출’과 같은 정치적 구호가 아닌, 부를 장악한 세력을 억제하고 조정할 수 있는 계급적, 계층적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8. 분명 불평등의 문제는 계층의 문제임에도 이것이 ‘세대’의 문제로 전환된 것은 진보 세력을 자임하는 정치가들 중에서 ‘86세대’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와 개혁의 기치를 들었지만 그것이 비참하게 실패했을 때, 반대쪽의 공격은 더욱 신랄해질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 특히 조선일보의 논조를 통해 전개된 ‘86세대 정치가’들에 대한 공격은 급기야 ‘86세대’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공격적 전략의 기원과 계보를 통해 ‘세대담론’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 못지않게, ‘86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정치세력의 각성도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조국’이 문제가 된 것은 오랫동안 정의와 공정 그리고 합리적 자유를 선포하던 진보적 학자의 치졸하면서도 개인적인 탐욕을 확인했을 때 받게 되는 실망에서 폭발한 보수적인 인물의 파행과는 비교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를 배경으로 정치에 참여했다면 분명 그 윤리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들만이 정치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타락한 정치가는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한 세대나 집단에까지 위협에 빠트릴 수 있다. 보통의 인간들은 허위 속에 감춰진 문제의 핵심적 진실보다 ‘허위와 위선’을 알면서도 그런 존재를 공격하는 비열한 재미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첫댓글 - 편가르기를 통한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대개 자기합리화에서 위안을 찾으려는 시도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