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의 도리〔兄弟之道〕 형제간의 순서는 안항(鴈行)과 같다.
형(兄)은 ‘황(荒)’이니 황(荒)은 ‘크다’는 뜻이다. 제(弟)는 ‘제(第)’이니 서로 차례대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한 몸에서 분리되었으니, 천륜의 지극함이 마치 나무가 한 뿌리에서 자라 수천 가지로 뻗은 것과 같고, 물이 한 근원에서 나와 수만 갈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 그러니 같은 기맥이 이어진 가지, 즉 동기연지(同氣連枝)라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아가위 꽃이여, 그 꽃송이 울긋불긋 아름답네. 오늘의 모든 사람 중에 형제만한 이가 없네.〔常棣之華, 卾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하였다.
또, “형제가 담장 안에서는 다투다가도 밖의 수모는 함께 막아낸다. 좋은 벗이 있다고 하나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兄弟䦧于墻, 外禦其侮. 每有良朋, 烝也無戎.〕”라고 하였다.
또, “사상(死喪)의 두려운 일에 형제가 서로 생각하며, 시체가 쌓인 원습에서 형제가 서로 찾는다.〔死喪之威, 兄弟孔懷, 原隰裒矣, 兄弟求矣.〕”라고 하였다. 또, “처자와 잘 화합함이 금슬을 타는 것과 같고, 형제간에 화합하고 나서야 화락하고 즐겁다.〔妻子好合, 如鼓琴瑟, 兄弟旣翕, 和樂且湛.〕”라고 하였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오직 부모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 이를 정사에 시행한다.”라고 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이르기를 “형제간에는 비록 약간의 분한 마음이 들더라도 아름다운 우애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이르기를 “형이 동생을 사랑하고 우애를 베풀면 동생은 형을 공경하고 따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화(李樺)가 말하기를 “누군들 형제가 없겠는가? 형제는 수족(手足)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매장을 꾀하여도 원망하지 않다〔謀盖不怨〕
순(舜) 임금의 이복(異腹) 아우인 상(象)이 아버지 고수(瞽瞍)와 함께 순 임금을 죽이려고, 순에게 곳집을 손질하게 하고는 사다리를 치워버렸고, 우물을 파도록 하고는 우물을 덮어 버렸다. 그런 뒤에 상이 말하기를 “꾀하여 도군(都君 제후)을 생매장한 것은 모두 나의 공로이다.”라고 하고는 가서 순의 궁으로 들어가니, 순이 말하기를 “이 여러 신하들을 너는 내게 와서 다스리라.”라고 하시고는 비(庳) 땅에 봉하여 주면서 한을 품지 않고 원망하지도 않으며, 친애할 뿐이었다.
땅과 집을 모두 아우에게 주다〔田宅與弟〕
복식(卜式)은 농사짓고 장사하면서 어린 아우를 데리고 살았는데, 아우가 어른이 되자 복식이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집을 떠났다. 다만 기르던 양 100여 마리만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면서 땅과 집은 모두 아우에게 주었다. 10여 년 동안 양을 길러 천여 마리로 늘리고 땅과 집을 샀다. 그러나 아우가 재산을 다 탕진하자 또 아우에게 나누어 주었다.
왕상(王商)은 제후에 책봉된 뒤 재물을 아우에게 주고 자신은 받은 것이 없었다.
도적을 만나 대신 죽으려고 다투다〔遇賊爭死〕
강굉(姜肱) 형제가 도적을 만났는데, 대신 죽으려고 서로 다투다가 마침내 둘 다 풀려나게 되었으나, 고을에 와서도 끝내 도적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도적이 이 말을 듣고서 감탄하고 후회하여 나중에는 집에 찾아와서 사죄하였다.
조효(趙孝)의 동생 예(禮)가 도적에게 사로잡혀 도적이 장차 동생을 잡아먹으려고 하였는데, 조효가 자신의 몸을 포박하여 도적에게 가서 말하기를 “예(禮)는 야위어서 살찐 나만 못하다.”라고 하니, 도적이 그의 마음을 아름답게 여겨 모두 풀어주었다.
형이 역질에 걸렸어도 곁을 떠나지 않다〔兄疫不去〕
진(晉)나라 함녕(咸寧) 연간에 큰 역병이 돌아 유곤(庾衮)의 두 형이 모두 죽고, 그 다음 형인 유비(庾毗)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부모와 여러 동생들은 모두 집밖으로 나갔으나 유곤은 혼자 남아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저는 본성이 여기(癘氣)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 하고는 마침내 몸소 스스로 부축하면서 밤낮 잠을 자지 않았다. 다시 널을 어루만지며 슬피 울기를 100여 일 동안 그만두지 않았다. 역병이 이에 수그러들자 유비의 병이 차도가 있었고 유곤도 끝까지 탈이 없었다.
분재 요구를 사과하다〔求分財謝過〕
목융(繆肜)의 형제 네 사람이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다가, 각자 장가를 가자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 것을 요구하였다. 목융이 방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가슴을 치면서 “성인의 법을 배웠건만 어찌하여 집안도 바로잡지 못하는가?”라고 탄식하였다. 여러 아내들이 이 소리를 듣고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여 다시 우애가 돈독한 가문이 되었다.
兄弟之道兄弟之齒雁行
兄。荒也。荒。大也。弟。第也。相次第而生也。一體而分。天倫之至。如木一根而千枝。如水一源而萬派。同氣連支。
詩曰。常棣之華。鄂不韡韡。凡今之人。莫如兄弟。
又曰。兄弟鬩于墻。外禦其侮。每有良朋。烝也無戎。
又曰。死喪之威。兄弟孔懷。原隰裒矣。兄弟求矣。
又曰。妻子好合。如鼓瑟琴。兄弟旣翕。和樂且湛。
書曰。惟孝。友于兄弟。施于有政。
左氏曰。兄弟雖有小忿。不廢懿親。
晏子曰兄愛而友。弟敬而順。
李華曰。誰無兄弟。如手如足。
謀蓋不怨
舜異母弟象。與父瞽瞍欲殺舜。使舜完廩捐階。使浚井。從而揜之。象曰。謀蓋都君。咸我績云云。往入舜宮。舜曰。唯玆臣庶。汝其于予治。封之有庳。不藏怒焉。不宿怨焉。
親愛之而已。
田宅與弟
卜式以田商爲事。率居少弟。弟壯。式脫出家。只取畜羊百餘而入山。田宅盡與弟。十餘年牧羊。致千餘頭。買田宅。而弟盡破其産。又分與弟。
王商爲侯。推財與弟。身無所受。
遇賊爭死
姜肱兄弟遇盜。更相爭死。遂兩釋焉。至郡中。終不言盜。盜聞而感悔。後就廬謝罪。
趙孝弟禮。爲盜所得。將食之。孝自縛詣賊曰。禮瘦。不如孝肥。賊美其意。俱舍之。
兄疫不去
晉咸寧中。大疫。庾衮二兄俱亡。次兄毗復危。父母諸弟。皆出于外。衮獨留不去曰。衮性不畏癘氣。遂親自扶持。晝夜不眠。復撫柩哀臨。不輟十餘旬。疫氣乃歇。毗病得差。衮終無恙。
求分財謝過
繆肜兄弟四人同財。及各娶。求分異居。肜掩戶自撾曰。學聖人法。奈何不能正家。諸婦聞之。叩頭謝過。更爲敦睦之門。
[주1] 안항(鴈行) : 기러기의 항렬로, 형제가 길을 갈 때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조금 떨어져 가야한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2] 아가위 …… 없네〔常棣之華, 卾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나온다.
[주3] 형제가 …… 않는다〔兄弟䦧于墻, 外禦其侮. 每有良朋, 烝也無戎.〕 : 《시경(詩經)》 〈소아(小雅) 당체(棠棣)〉에 나온다.
[주4] 오직 …… 시행한다 : 《서경(書經)》 〈주서(周書) 군진(君陳)〉에 나온다.
[주5] 복식(卜式) : 한(漢)나라 때 사람으로, 양을 쳐서 부자가 된 후 자진해서 많은 사재를 내놓아 무제(武帝)의 변방 경영을 돕고 빈민을 구제하기도 했으며, 그 공로로 중랑장(中郞將)에서 어사대부(御史大夫)까지 되었다. 《漢書 卷58》
[주6] 왕상(王商) : 한(漢)나라 성제(成帝) 때의 승상이다. 흉노의 선우(單于)가 입조(入朝)하러 오자 황제가 백호전(白虎殿)에서 인견하게 되었는데, 이때 승상 왕상이 미앙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우가 앞으로 나가 배알하고, 왕상의 훤칠한 용모에 위축되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고 한다. 《漢書 卷82 王商傳》
[주7] 강굉(姜肱) : 후한(後漢) 사람으로 자가 백회(伯淮)인데, 두 아우 중해(仲海)ㆍ계강(季江)과 우애가 지극하여 이불을 함께 덮고 잤다고 한다. 이로 인해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한 사람의 전형으로 쓰이게 되었다. 《後漢書 卷53 姜肱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