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의 의사 예수
본문 : 마가복음 6장 53 절- 56 절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음식 드실 겨를 도 없을 정도여서 한적한 곳을 찾아 배를 타고 가셨던 일, 그래서 날은 저물어 오는데 아무것도 먹을 것 없이 따라다니는 무리를 보실 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생각하시고 민망히 여겨 보리떡 다섯과 생선 두 마리로 5천 명도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이적을 행하신 일을 기억합니 다. 예수님의 일행이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는데,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특히 병든 자를 많이 침상채로 메고 나아왔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 지방에 들어가셨을 때도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지 문 앞에라도 용신할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중풍병 환자를 메고 온 그의 친구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예수 계신 곳으로 환자를 내려보내 고침을 받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병 든 자를 보실 때 그를 불쌍히 여겨서 죄를 사하여 주실 뿐더러 고쳐주셨습니다. 그 후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기서 떠나서 지나가시다가 마태라고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서 세를 받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세리는 곧 자기가 하던 일을 그 만두고 일어나 예수님을 좇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 가서 음식까지 같이 나누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야기로 들을 때 별로 이상한 것이 조금도 없습 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야말로 참 이상한 일이었고 예수님을 모함하려는 모 든 사람들의 악선전의 구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에는 유대 나라가 로마의 속국으로 있어서 그 당시의 세리들은 특히 유대 사람들의 피를 빨아 모아 정부에 바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정한 세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밖에 과중한 세를 매겨 로마 정부에 바치고 남는 것은 자기 개인이 착복하여 치부하는, 말하 자면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들처럼, 유대 사람들에게는 적대시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보 통 몸을 팔아 사는 창녀와 세리를 같이 취급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세리 는 물론 가산은 넉넉하지만 유대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토색하고 불의한 사람들이라고 빈축의 대상이 되는 사람 들이었습니다. 여기 마태도 본래 세리였습니다. 멸시받고 죄인시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청해서 식탁을 같이 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 식탁에는 본래 마태의 친구들이었던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광경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추궁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오? 사실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직접 공격을 하고 싶었지만 그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도 좀 들으라고 큰 소리로 추궁한 모양입니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 신하여 대답하여 주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 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 실 그렇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 의사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합니 다. 가끔 병원에 가보면 중한 병에 걸린 사람이 의사를 붙들고 간청하는 광경을 봅니다. 의사 선생님, 어떻게 하든지 저를 살려 주십시오. 이 병을 고쳐주세요.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애원 합니다.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인들을 병든 사람으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 자신을 병든 자를 고치는 의사라고 말씀하 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보통 우리들이 보는 눈과는 전혀 다릅니다. 흔히 우리는 죄수를 범법자 로 봅니다. 그래서 의례히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을 대 할 때는 찬 눈으로, 멸시의 눈으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와는 달리 일반인이 그렇 게 보는 죄인들을 병든 사람, 앓는 사람, 환자로 보셨습니다. 죄를 한 심령의 병으로 보셨습니 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대할 때에 멸시와 냉대와 증오로 대하지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 합니다. 우리가 다 이와 같이 예수님처럼 죄인들을 환자로 대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요? 많이 달라질 줄 압니다. 사실 문화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죄인의 심리를 연구하게 되고, 그렇게 할수록 예수님의 이 태도가 얼마나 옳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이 사실은 병원입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 참 의사가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 다. 우리가 병원에 가보면 병도 여러 가지입니다. 문자 그대로 만병입니다. 만 가지입니다. 우 리의 죄도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 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 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했는데, 이런 것들은 사실 대표적인 것들이고 구약 율법대로만 보아도 6백 가지가 넘는 죄를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도 통용되는 육법이 있는데 여기에 하나라도 저촉이 되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죄목이 성립됩니다. 하물며 우리의 양심을 통하여 죄로 되는 것을 꼽는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만히 보면 우리 지체 가운데 병 나지 않는 지체가 별로 없습니다. 사지백체, 오장육 부가 다 병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육체로 안 짓는 죄가 없습니다. 눈으로 정욕, 입으로 궤휼, 손으로 악한 일, 마음으로 시기와 질투, 배로 욕심을 행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은 여러 가지인데 한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선 병나면 아프다는 것입니다. 눈병도 아프고 귓병도 아프고, 치통으로 잠을 못 자고, 소화가 안되어 괴롭고, 무슨 병이든지 작고 큰 것을 막론하고 병나면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도 여러 가지이지만 한 가지 공통되는 것은 고통입니다. 죄를 범하게 되면 신음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가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시 32: 3∼4) 하였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마음이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육신의 병이 생기면, 가령 손끝이 곪으면 그 전에는 몰랐는데 아플 땐 왜 그렇게 그것을 쓸 일이 많은지 또 많이 다치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 부분을 전보다 더 쓰는 것도 아니고 다치는 것도 아닌데 아프니까 다치게 되고, 다치니까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무슨 죄를 지으면, 그것을 마 음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자꾸만 우리를 괴롭힙니다. 남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깜짝깜짝 놀랍니 다. 고통입니다. 그리고 병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나 그 결과는 똑같습니다. 병의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작은 병이라도 오래 가면, 심해지면 죽습니다. 눈병도 심해지면 죽습니다. 손가락 하나가 병들어도 그것이 심해지면 그것 때문에 죽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감기도 심해지면 그것이 폐렴이 되고, 더 심해지면 죽습니다. 사실 병치고 죽지 않는 병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아무리 작아도 장성하면 사망입니다. 크든지 작든지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큰 바위만 물에 던져서 가라앉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돌을 물에 던져도 가라앉습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더구나 병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누구나 병에는 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믿음이 튼튼하다고 범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경고합니다. 조심하지 아니하면 누구나 다 죄를 짓습니다. 옛날 구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 가운데 누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성경의 기록대로 보면 사무엘, 요셉 이외에는 모두가 다 죄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삼손도, 다윗도,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이것이 인간 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병에 대하여 약한 것처럼 영은 죄에 대하여 약합니다. 건강한 사람이라 도 위생을 잘 지키지 아니하면 병이 납니다. 안양에 가면 은퇴하신 교역자님들이 계시는 원로원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가장 젊었다고 할까, 춘추가 적으신 분이 75세요, 대개는 그 이상이신 분도 계십니다. 대개 그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평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비교적 건강한 분도 계십니다. 그 러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영적으로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다 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병든 사람, 이 많은 환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두면 그 병으로 말미암 아 결국 다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병들면 절망입니까? 범죄하면 희망이 없습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 53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고 내리실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온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병든 자를 침상에 메고 나왔습니다. 먼저는 내가 건강해야겠습니다. 모든 죄의 병에서 고침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병원 하면 병 고치는 데 약 값이 있어야 하고 치료비가 있어야 합니다. 제일 큰 문제는 돈입니다. 병들어 도 돈 없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을 고치지 못하고 희생되는 경우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 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나아와 병고침을 받는 데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가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댄 사람들이 그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주님 앞에, 의사 앞에 나오지 못하는 심령의 환자들을 메고 인도 해 나와야 합니다. 인간 의사는 실수할 때도 있지만 만병의 의사이신 예수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습니다. 예수님 앞에는 죽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이 장례식 주례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고침을 얻 습니다.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으십시오! 우리 이웃을 주님께 데리고 나오십시오!
/박조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