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히뽈리뚜스, 이레네우스, 유스띠누스, 치쁘리아누스)은 예수님의 성심을 사랑과 은총의 샘으로 생각하여 십자가 위에서 군사의 창에 찔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을(요한 19,34) 천상 보화의 창고에서 무수한 은총이 쏟아져 나온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즉 교부들은, 심장에서 흘러내린 물은 영혼을 깨끗이 씻고 초자연적 생명을 부여하는 세례성사를 상징하며, 피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하는 영혼의 양식인 성체성사를 상징한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배(淨配)로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예수 성심께 대한 봉헌 신심은 중세 초기부터 비롯되었으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신심으로 머무르다가, 중세 말기에 이르러 1700년까지는 수도자들 사이에 전파되어 차츰 평신도 사이에까지 널리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중세 시대에 개인적으로 예수 성심 공경을 실천했던 분들로는 성 안셀모, 성 베르나르도, 성 보나벤뚜라, 성 대(大) 알베르토, 성녀 마틸다와 성녀 젤뜨루다 및 성녀 카타리나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공적인 신심으로 발전시킨 데에는 ‘성 요한 에우데스’와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콕’의 공이 컸습니다. 1765년 교황 끌레멘스 13세는 폴란드 주교들과 로마의 성심 대형제회(聖心 大兄弟會)가 요청한 예수 성심의 공적 공경을 허락하여, 제한된 지역에서 예수 성심 공경 지향의 미사와 기도문을 바칠 것을 허락했으며, 1856년 교황 비오 9세는 이 축일을 전 세계 교회의 축일로 확대하였고, 1899년 교황 레오 13세는 이 축일을 대축일로 등급을 높여 전 세계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였습니다. 또한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이 대축일을 8부 축일로 하고(8부 축일은 1960년 폐지되었음) 회칙 ‘지극히 자비로운 구원자’를 통하여 예수 성심 대축일을 위한 기도문과 취지를 규정하여 세계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는 예식을 매년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지내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 후 교황 비오 12세는 1956년에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회칙 ‘물을 퍼내나이다’를 발표하여 예수 성심 공경을 신학적으로 더 구체화하기에 이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 주교가 1878년 6월 28일 예수 성심 축일에 한국 교회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려고 하였으나 자신이 체포됨에 따라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 1888년 6월 8일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는 한국 교회 전체를 예수 성심께 봉헌하였습니다. 또한 1899년에는 교황 레오 13세의 정신에 따라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9월 17일 성모통고축일(1913년부터는 9월 15일에 이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에 이 축일을 지내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