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국전 상 국호(國號)
해동(海東)은 그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다. 조선(朝鮮)이라고 일컬은 이가 셋이 있었으니, 단군(檀君)ㆍ기자(箕子)ㆍ위만(衛滿)이 바로 그들이다.
박씨(朴氏)ㆍ석씨(昔氏)ㆍ김씨(金氏)가 서로 이어 신라(新羅)라고 일컬었으며, 온조(溫祚)는 앞서 백제(百濟)라고 일컫고, 견훤(甄萱)은 뒤에 후백제(後百濟)라고 일컬었다. 또 고주몽(高朱蒙)은 고구려(高句麗)라고 일컫고, 궁예(弓裔)는 후고구려(後高句麗)라고 일컬었으며, 왕씨王氏는 궁예를 대신하여 고려(高麗)라는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들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령을 받지 않고서 스스로 명호를 세우고 서로를 침탈하였으니 비록 호칭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무슨 취할 게 있겠는가? 단 기자만은 주무왕(周武王)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侯)에 봉해졌다.
지금 천자天子 명태조(明太祖)가, “오직 조선이란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구원하다.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하늘을 체받아 백성을 다스리면, 후손이 길이 창성하리라.”고 명하였는데, 아마 주무왕이 기자에게 명하던 것으로 전하에게 명한 것이리니, 이름이 이미 바르고 말이 이미 순조롭게 된 것이다.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洪範을 설명하고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條의 교(敎)를 지어서 국중에 실시하니,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이름이 천하 후세에 이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기자의 선정(善政) 또한 당연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아! 명천자의 덕도 주무왕에게 부끄러울 게 없거니와, 전하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게 있겠는가? 장차 홍범의 학과 8조의 교가 금일에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공자가, “나는 동주(東周)를 만들겠다.” 라고 하였으니, 공자가 어찌 나를 속이겠는가?
[주1]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 본서는 《주례(周禮)》 천관(天官) 대재(大宰)와 《대명률(大明律)》을 바탕으로 하여, 치전(治典)ㆍ부전(賦典)ㆍ예전(禮典)ㆍ정전(政典)ㆍ헌전(憲典)ㆍ공전(工典) 등을 대강(大綱)으로 하고, 각 전(典) 밑에 세목(細目)을 열거하여 치국의 대요와 모든 제도 및 그 운영 방침을 정함으로써 조선 법제의 기본을 이룩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본서와 《주례》와의 관계는 정총(鄭摠)의 《조선경국전》 서문에서, 본서와 《대명률》과의 관계는 본서 헌전 총서(憲典摠序)에서 각각 밝힌 바 있지만, 대강은 물론이요, 세목 또는 그 내용에 있어서도 제일 공통된 점이 많은 원(元)나라 때의 《경세대전(經世大典)》 《元文類 卷41~42》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한 일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논문도 발표된 바 있거니와, 《日人 末松保和 朝鮮經國典私考 學叢 第1輯》 양자를 비교한 결과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참고 내지 그것을 기반으로 했을지도 모른다. 《경세대전》은 원문종(元文宗) 지순(至順) 2년(1331, 고려 충혜왕 원년)에 《당송회요(唐宋會要)》를 참작해 만든 것인데, 《당송회요》와는 체재를 달리하고 있다. 본 역에 있어서는 앞서 나온 역 《鄭芝相 同和出版公社刊 韓國思想大全集, 第6卷; 韓永愚 世界文學思想集 玄岩社》들을 참고하였고, 서술문에는 경어를 쓰지 않았다
[주2] 이름이 …… 된 것이다 :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名不正則言不順].”라는 말에서 인용한 것인데, 즉 조선이라고 해야 할 데에 조선이라고 하였으니 그 이름을 부르기가 순조롭다는 뜻.
[주3] 홍범(洪範) : 《서경》의 편명으로 큰 법칙이라는 뜻. 상고시대 하우씨(夏禹氏)가 요ㆍ순(堯舜) 이래의 사상을 정리 집성한 도덕정치의 기본적법칙으로, 기자가 무왕에게 진술하였다.
[주4] 8조(條)의 교(敎) : 이른바 기자가 지었다고 하는 이 8조의 교 가운데서 현재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인다[相殺償以命].”, “사람을 상해한 자는 곡물로 보상케 한다[相傷以穀償].”, “남의 물검을 훔친 자는 그 집 노비로 삼는다[相盜者沒爲其家奴婢].”라는 이 세 가지의 조목만이 전하는데,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이수광(李睟光)은 그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제2권 제국부(諸國部) 본국(本國) 조에서, “오륜(五倫)을 합쳐 8조인 듯하다.” 했고, 조선 말기의 사학자 안정복(安鼎福)은 그의 《동사강목(東史綱目)》 기자(箕子) 조에서, “팔조는 아마 홍범(洪範)의 팔정(八政)을 가리킨 듯하다.” 하였다.
[주5] 나는 동주(東周)를 만들겠다 : 《논어》 양화(陽貨)에 공자가 “만일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동주를 만들겠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하였다. 즉 노(魯)나라를 동주처럼 융성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