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단과 원구단에 드리는 기우제문
아,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한 까닭에 하늘과 땅을 만물의 부모라고 하니, 부모가 자식에게 이로운 데로 나아가게 하고 해로운 것을 피하게 하는 마음은 지극하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비와 햇볕, 추위와 더위가 사계절에 서로 교대하여서 크고 작은 천하 만물이 다 그 삶을 이루니, 《주역》 건괘(乾卦)에, “건도(乾道)가 변화함에 각기 만물의 천성을 바르게 한다.” 하고, 또 “구름이 가며 비를 내려서 삼라만상이 제각기의 형태를 나타낸다.”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상천의 명을 받아 억조의 신민을 다스리는 자는 임금입니다. 아래에서 행하는 사람의 일에 따라 위에서 하늘의 변화가 응하는 까닭에, 엄정하고 조리 있고 지혜롭고 헤아림이 있고 성스러움은 날씨가 계절에 알맞게 감응하며, 광란하고 참람하고 안일하고 나태하고 몽매함은 나쁜 징조를 부르는 것입니다.
지금 무더운 유월을 당하여 극심한 한재(旱災)를 만났으니, 실로 나에게 허물이 있고 다른 데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반드시 형벌이 알맞지 못하여 죄 있는 자가 그릇되게 사면을 받고 죄 없는 자가 도리어 재앙에 걸리며, 사람을 쓰고 버리는 것이 마땅함을 잃어 충성스럽고 정직한 이가 소외되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자가 제멋대로 하며, 임금의 총명이 막히고 가려져 백성들의 실정이 위에 통하지 못하고, 법령을 자주 변경하여 관리들이 따라 지키는 데 어둡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물며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는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광대한 주군(州郡)의 많은 백성들이 부역이 균평하지 못한 것을 병통으로 여기고 세금의 종류가 많음을 괴롭게 여겨, 원망을 일으키고 화기(和氣)를 손상하게 하는 것이 그 얼마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 나의 부덕(不德)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속으로 꾸짖고 스스로 책망하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인의 글을 읽어서 당연히 해야 할 임금의 도리를 대강은 알고 역대의 성쇠(盛衰)에 깊이 느낀 바 있어서, 주색에 빠지거나 사냥을 지나치게 즐겨 재물을 손상하고 백성을 해롭게 하거나 정벌의 공을 탐내어 병력을 남용하고 무덕(武德)을 더럽히는 데 이르지 않으려 했습니다. 오직 예로써 큰 나라를 섬기고 정성으로 신을 섬기며, 자신을 받드는 데는 박하게 하고 백성을 구휼하는 데는 후하게 하며, 정사를 보살피는 데는 부지런하고 형벌을 사용하는 데는 신중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한 번 말하고 한 번 움직이며 호령을 내리고 법령을 시행하는 데에도 모두 그 도리에 맞게 하여 위로는 황천(皇天)이 나에게 부여한 중책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우러러 받드는 백성들의 전일한 정성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이렇듯 간절한 나의 마음을 하늘은 실로 밝게 살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품(氣稟)과 물욕(物欲)이 서로 영향을 주고 학문과 자수(自修)가 지극하지 못하니, 일상의 언동을 어찌 각기 마땅하게 하여 상제의 마음에 죄를 얻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늘을 섬기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상제를 섬기어, 지극히 경건하게 끊임없이 덕을 닦아서 하루 종일 엄숙하게 천지 신명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꾸짖음이 깊은 것이 마땅하니, 또 누구를 허물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늘의 총명은 우리 백성들의 귀와 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라 위와 아래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필부가 살 곳을 잃어도 오히려 하늘에 호소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에 군림하여 억조의 백성을 통치하는 자이겠습니까. 하물며 자식이 진실로 급한 일이 있다면, 어찌 스스로 잘난 척하며 구원을 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게다가 나 한 사람의 탓으로 만물이 모두 초췌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이것이 어찌 상제의 마음에 편안한 바이겠습니까.
지금의 한재(旱災)가 한결같이 이렇게 극도에 이르렀으니, 일찍이 명산대천에서부터 사직에까지 빌었고, 또 일찍이 부모와 선조께 고하기도 했으나, 끝내 효험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근심으로 가슴이 타는 듯하여 밥상을 대해서는 먹기를 잊어버리고 잠자리에 누웠다가는 다시 일어나, 더욱 깊이 두려워한 지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감히 간담을 피력하여 상제께 밝게 고하여 보우해 주시기를 빌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변변치 못한 제의(祭儀)를 드리고, 이어서 나의 비천한 회포를 아뢰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하늘에 계시는 상제께서는 나의 간절한 정성 헤아리고 내가 아뢴 사연 살피시어, 죄과와 허물을 용서하고 특별히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시원하게 비를 내려주소서. 그리하여 메마른 뭇 생명이 소생하고 백곡이 성숙하여, 무지한 백성과 억만 생령(生靈)으로부터 하늘 위와 물속의 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생육(生育)의 은혜를 얻게 하소서. 지극한 소원을 견딜 수 없습니다.
< 출전 : 한국고전번역원 >
祈雨雩社圓壇祭文
嗚呼。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故曰惟天地萬物父母。夫父母之於子。俾之趨利而避害者。無所不至。而雨暘燠寒。相代於四時。而天下之物洪纖巨細。咸遂其生矣。易曰。乾道變化。各正性命。雲行雨施。品物流形。此之謂也。雖然。受上天之眷命。理億兆之臣庶者。君也。人事感於下。則天變應於上矣。故肅乂哲謀聖之所感。雨暘燠寒風時若。狂僭豫怠蒙之所召。咎徵斯見。今値徂暑之月。乃遭旱災之甚。咎實在予。不可他求。此必刑罰不中。而有罪者曲蒙赦宥。無辜者反罹殃禍也。用捨失宜。而忠讜見踈。奸佞肆志也。聰明壅蔽。而下情不得以上達也。法令紛更。而官吏昧於遵守也。又況目之所不及見。耳之所不及聞。州郡之廣。人民之衆。病賦役之不均。苦抽斂之多端。起怨咨而傷和氣者。不知其幾也。此皆原於予之否德。所以內訟自責而不能已也。予讀聖人之書。粗知君道之當爲。深感歷代之盛衰。庶不至於沈湎酒色。耽樂游田傷財害民。窮兵黷武。惟欲事大以禮而事神以誠。薄於自奉而篤於恤民。勤於聽政而愼於用刑。以至一言一動。發號施令之際。莫不皆得其道。上不負皇天付畀之重。下以慰億兆仰戴之專。耿耿予懷。天實照臨。然以氣稟物欲之相因。學問自修之未至。其於日用云爲之間。豈能各適其宜。而不獲戾于帝心哉。況能存心以事天。小心以事帝。洞洞屬屬。緝煕不已。終日對越也哉。宜乎天譴之深也。又誰咎哉。雖然。天聰明自我民聰明。達于上下而無間。所以匹夫失所。尙此呼天。況君臨一國。統億兆之衆者乎。況子之於父。苟有急焉。豈自較其賢不肖而不以求救耶。又況以予一人之故。萬物擧歸於憔悴。此豈帝心之所安也哉。今之旱災。一至此極。盖嘗禱于山川。以及社稷。又嘗告于父母先祖。竟莫能效。憂心烈烈。如焚如惔。當食忘飡。已臥復起。而益深畏惧。盖有日矣。敢不披肝瀝膽。昭告上帝。以祈保佑乎。玆薦菲儀。仍陳卑抱。伏惟昊天上帝。諒予積誠。鑑予敍辭。赦宥過咎。特賜矜憐。沛然下雨。以蘇群槁。百穀用成。致令無知赤子億萬生靈。以至飛潛萬類。皆得生育。不勝至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