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1) - 의정부 좌의정議政府左議政 김류金瑬2)
청반3)에 우뚝 선 지가 사십 여년이니 玉立淸班四十齡
영명이 성대하여 제경 중에 으뜸이라오 英聲藹蔚冠諸卿
훼역까지 시가 전해져 중역에 자자하고4) 詩傳卉域聞重譯
창생에게 중망을 받아 성명을 알 정도라오5) 望屬蒼生識盛名
당시의 여론은 하나같이 정축을 기대하고6) 時論有歸期鼎軸
성상의 마음은 기울어져 전형을 맡겼다오7) 聖心方注寄銓衡
기성을 탔으니 더 이상 기다릴 일이 없을 터8) 騎箕不復容虛席
진세에서 지위를 훔침이 마음이 편치 않다오9) 竊位人間恨不平
[주1] 만사 : 이는 조위한(趙緯韓, 1567~1649)이 대신 지어준 것으로, 《현곡집(玄谷集)》 권8에 〈만지봉(挽芝峯) -대인작(代人作)-〉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조위한은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세(持世), 호는 현곡(玄谷)이다. 1601년에 사마시를 거쳐 1609년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주부, 감찰 등을 지냈다. 1613년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의 무옥(誣獄)에 연좌되어 여러 조신들과 함께 구금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내외직을 역임한 뒤, 80세에 자헌대부에 오르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글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해학에도 능하였다. 저서에 《현곡집》이 있다.
[주2] 김류(金瑬) : 1571~1648.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관옥(冠玉), 호는 북저(北渚),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음사(蔭仕)로 참봉에 제수되었다가, 1596년(선조29)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3년 거의대장(擧義大將)에 추대되어 이귀(李貴), 신경진(申景禛), 이괄(李适) 등과 인조반정을 일으켰다. 이 공로로 병조 참판에 제수되고 곧 병조 판서로 승진되었으며, 승평부원군(昇平府院君)에 봉해졌다. 1624년에 이조 판서를 역임하고, 1627년에 우의정, 1629년에 좌의정이 되었다. 저서에 《북저집》이 있다
[주3] 청반(淸班) : 청환(淸宦), 청직(淸職)과 같은 말로,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내리던 규장각, 홍문관, 예문관 등에 속한 벼슬을 가리킨다. 지봉은 1588년(선조21) 겨울에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제수되어 사국(史局)에 들어갔다. 《東州集 卷6 先考……行錄》
[주4] 훼역(卉域)까지 …… 자자하고 : 지봉의 시가 풍속이 다른 먼 이국에까지 전파되어 명성이 자자하다는 말이다. 1597년(선조30) 가을에 지봉은 진위사(陳慰使)로 연경(燕京)에 갔다가 안남(安南), 유구(琉球), 섬라(暹羅) 사신들과 만나 시를 주고받았는데, 지봉의 시를 본 이국 사신들은 저마다 칭송하며 지봉에게 시를 요청하여 돌아갔다. 특히 안남 사신은 지봉의 시문을 자기나라에 전파시켜 안남에서는 지봉의 시를 사람마다 외우고 집집마다 읊조리면서 ‘이지봉(李芝峯)’이라고 일컫고 이름을 부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지봉집》 권8 〈안남국사신창화문답록(安南國使臣唱和問答錄)〉과 권23 〈조완벽전(趙完璧傳)〉 등에 보인다. ‘훼역’은 훼복(卉服) 즉 풀로 된 옷을 입는 지역으로 중국 동남쪽의 바다를 낀 나라나 섬나라를 말하고, ‘중역(重譯)’은 여러 번 통역을 거치는 것으로 중국과의 거리가 멀고 풍속이 현격히 달라서 여러 차례의 통역을 거치고서야 조공(朝貢)을 바칠 수 있는 남방의 아주 먼 나라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모두 안남이나 유구 같은 나라를 가리켜서 한 말이다. 《서경》 〈우공(禹貢)〉에 “해도의 오랑캐는 훼복을 입는다.[島夷卉服]”라고 하였고, 《한서(漢書)》 권12 〈평제기(平帝紀)〉에 “원시 원년 춘정월에 월상씨가 중역을 통해 와서 백치 한 마리와 흑치 두 마리를 바쳤다.[元始元年春正月, 越裳氏重譯, 獻白雉一、黑雉二.]”라고 하였다.
[주5] 창생(蒼生)에게 …… 정도라오 : 덕망이 높아 온 나라 백성들이 모두 지봉의 성대한 명성을 알고 있을 정도라는 말이다.
[주6] 당시의 …… 기대하고 : 지봉이 이조 판서로 있을 당시, 정승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어 조야가 모두 지봉이 정승에 오르기를 고대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정축(鼎軸)’은 정승을 가리킨다. ‘정(鼎)’은 고대 종묘의 제례(祭禮)에 쓰이는 귀중한 예기(禮器)이고, ‘축(軸)’은 수레바퀴의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에 끼우는 긴 나무 또는 쇠로, 모두 나라의 중책을 맡은 재상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東州集 卷6 先考……行錄》
[주7] 성상의 …… 맡겼다오 : 지봉은 1628년(인조6) 7월에 이조 판서에 제수되었는데, 세 차례에 걸쳐 사양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이에 대궐에 나가 사은(謝恩)한 뒤, 다시 다섯 번이나 사직소(辭職疏)를 올렸으나 인조의 마음은 더욱 지봉에게 기울어져 모두 윤허하지 않자, 마침내 병든 몸을 이끌고 전형(銓衡)을 맡은 이조 판서의 직임에 나아갔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東州集 卷6 先考……行錄》
[주8] 기성(箕星)을 …… 터 : 어진 재상감인 지봉이 죽었으므로 다시는 정승 자리를 비워두고 현인을 기다릴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원문의 ‘기기(騎箕)’는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는 말로,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은 도를 터득하고 무정을 도와 천하를 모두 소유하였으며, 죽은 뒤에는 별이 되어 동유성을 타고 기성과 미성을 몰아 열성과 나란하게 되었다.[傅說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 而比於列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원문의 ‘허석(虛席)’은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는 것으로, 현자를 예우하는 것을 뜻한다.
[주9] 진세(塵世) …… 않다오 : 지봉을 정승의 지위에 앉히지 못한 채 진세에서 정승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신이 못내 한탄스럽고 편치 않다는 말이다. 원문의 ‘절위(竊位)’는 재능이나 덕도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장문중은 그 지위를 훔친 자일 것이다. 유하혜의 어짊을 알고서도 더불어 조정에 서지 아니하였구나![臧文仲, 其竊位者與! 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라고 하였다. 참고로 《현곡집(玄谷集)》 권8 〈만지봉(挽芝峯) -대인작(代人作)-〉에는 미련(尾聯)이 “못난 내가 현로를 막는 게 늘 부끄러웠는데, 음성과 모습이 구원에 격할 줄 누가 생각했으리오.[每慙駑劣妨賢路, 誰意音容隔九原?]”라고 되어 있다.
출전 :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최병준 (역)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