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문(賜祭文) 숙종(肅宗) 무자년(1708, 숙종34) [이민영(李敏英)]
부호군 이민영(李敏英) 지음
생각하면 아, 우리 인묘조 당시 粤我仁廟
신 문정공 한 사람 계셨었는데 有臣文正
순결한 충의에다 크나큰 절개 精忠大節
오랑캐며 중국이 경모하였고 夷夏慕敬
경의 선고 선대의 미덕을 따라 先卿趾美
이 나라의 훌륭한 보필이 되어 爲國良弼
조정에 벼슬했던 자초지종이 立朝本末
나라의 문헌 속에 빛나고 있네 輝映簡策
경이 또 좋은 천품 받고 태어나 卿又篤生
몇 대 걸쳐 한 번 볼 영웅호걸로 間世英雋
가정의 가르침을 고이 받들고 訓承家庭
아울러 학문으로 보충을 하여 輔以學問
묘령이라 소년 적 그 당시부터 自在妙齡
훌륭한 명성 이미 한 몸에 지고 已負盛名
여벌로 문장 솜씨 익혔었는데 餘事文章
수준 높아 세상을 크게 울렸네 高踔雄鳴
자질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匪惟質美
물려받은 연원이 실로 있기에 寔有淵源
관복 입고 조정에 올라와서는 釋褐登朝
난새와 봉황새가 나래를 치듯 鳳翥鸞騫
대궐이라 경연에 임금 모시고 延英侍講
성균관 제생들을 가르쳐주자 國子敎胄
많은 선비 공경히 귀담아 듣고 多士聳聽
동료들 너나없이 존경하였네 同列推右
맑은 기풍 청아한 경의 명망이 淸標雅望
한 시대에 으뜸을 차지하다가 一時冠冕
이 세상의 운수가 불행해져서 世道不幸
창해상전 판도가 홀연 변하니 滄桑忽變
기사년에 있었던 기왕지사를 屠維往事
탄식에 후회한들 어이 미치랴 嗟悔何逮
충정을 호소했던 한 장의 상소 陳情一疏
사람들의 눈물을 떨구게 하고 令人隕涕
이십 년간 자취를 감추었으나 廿載屛跡
세상 아예 잊은 건 아니었다네 非果忘世
궁벽한 산골 집에 들어앉아서 杜門窮山
옛 성현 남긴 경전 홀로 껴안고 獨抱遺經
심오한 도리 속에 심취해서는 沈潛理窟
전심치지 힘 다해 연구했는데 刻意硏精
주자 글 난해한 곳 주를 낼 적에 朱書箋註
더욱더 부지런히 공력을 들여 用工尤勤
근본이며 핵심을 깊이 탐구해 深探力賾
자세하고 정밀히 분석했으며 縷析毫分
성현 도 몸소 행해 실천을 하고 躬行實踐
만년에 경지 더욱 깊이 나아가 晩益深造
우매한 무리들을 일깨워 주어 啓牖羣蒙
우리 유학 가는 길 지도자 되니 指南吾道
사림 모두 우러러 존경을 하고 士林宗仰
사문의 힘 따라서 강해졌으며 斯文增重
나 또한 경을 더욱 흠모해 予愈傾嚮
등용하잔 생각이 간절하였네 思欲致用
이리하여 문형과 이조 장관을 文衡宗伯
그 자리 비워 두고 누차 부를 제 虛位屢召
진지하고 간곡히 하유하다가 恩諭冞摯
굳센 절개 흔들기 어려웠기에 介石難撓
그 뜻을 마지못해 들어줬는데 前後勉副
이는 경 예우하잔 뜻이었다네 意在禮遇
경이 평소 흉중에 지닌 역량을 平生所蘊
발휘하지 못한 게 안타까워서 惜未展布
혹시나 마음 바꿔 조정에 나와 尙冀幡然
내 통치 도와줄까 바랐었는데 助我治理
철인이 뜻밖에도 세상을 떠나 哲人遽萎
조야가 모두 함께 흐느꼈다네 朝野同泗
아, 경은 이 세상에 태어날 적에 噫卿之生
갖가지 좋은 자질 갖추었으니 天具衆美
청신한 시문에다 깊은 학문과 淸文邃學
뛰어난 안목이며 높은 식견은 卓見高識
나와서는 이 세상을 경영하고 進可經世
물러나면 세속의 모범이 될 만 退猶範俗
이로써 생각하면 경의 한 몸이 卿之一身
짊어지고 있는 짐 매우 컸으니 擔荷甚大
나오고 물러난 걸 살펴보고서 候其出處
시대 상황 성쇠를 점쳤었는데 占時隆替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 났구나 已矣今日
죽은 자 살려내기 어렵고말고 九原難作
온 조정 너나없이 애도하므로 中朝悼念
내 마음 애통함이 더욱 간절해 益增痛怛
장례에 쓸 물자를 내려 주지만 錫賵庀葬
이내 뜻 유감없이 표할 수 있나 豈盡予意
이리하여 예 맡은 관원을 보내 玆遣禮官
영전에 한 잔 술을 올리게 하니 替奠一觶
넋 행여 사라지지 아니했거든 不昧者存
강림해 흠향하길 기대한다오 庶幾歆止
[주1] 문정공(文正公) : 농암의 증조부 김상헌(金尙憲)의 시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