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바람에 서걱이는 갈잎의 노래, 갈대
계절을 완성하는 것은 단연 자연 풍경일 것이다. 봄의 백화제방, 여름의 녹음방초,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계절 따라 형형색색 바뀌는 풀과 나무, 강과 산과 들의 다양한 풍경은 우리 삶에 정서적 자양분을 제공해 준다.
겨울이 점령군처럼 들이닥친 이즈음의 서정을 잘 드러내는 풍경은 무엇일까? 도시 주변 하천이나 강가에서 마주치는 갈대가 제격이지 싶다. 우중충한 낯빛의 자갈색 꽃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자못 쓸쓸한 느낌을 자아낸다.
요즘 갈대 여행지를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 규모가 큰 갈대 명소로는 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 습지를 비롯해 서천 신성리 갈대밭, 대구 달성습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에 버금가는 갈대밭도 수두룩하여 소위, 인생샷을 남기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갈대는 대중가요, 현대시, 고전시가 등 여러 예술 분야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서양 오페라 아리아 한 곡에도 갈대가 등장한다. 빅토르 위고의 <환락의 왕>을 원작으로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리골레토> 속 아리아 ‘여자의 마음(La donna è mobile)’이 그것이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로 흔들린다오”로 시작되는 이 아리아의 본래 이탈리아어 가사에는 ‘깃털’인데 우리말로는 ‘갈대’로 번역된 모양이다. ‘깃털’보다 여자의 마음을 묘사하기로는 ‘갈대’가 더 와닿아 번역자가 제대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오페라는 꼽추 광대 리골레토와 그의 사랑스러운 딸 질다, 질다를 빼앗는 호색가 만토바 공작 사이에 벌어지는 비극이지만, 아리아의 서정적 멜로디와 앞부분 가사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여자의 마음’만 뇌리에 남아 있다.
갈대는 벼과 갈대속 집안의 여러해살이풀로 강가나 개울가, 바닷가 등에서 무리 지어 산다. 원줄기는 높이 1~3m 정도 자라고 속이 비었으며 중간에 마디가 있다. 긴 피침 모양 잎은 두 줄로 어긋나게 달려 아래로 처진다.
꽃은 9월 하순경부터 피기 시작하는 데 밑으로 처지는 긴 원뿔모양꽃차례에 낱꽃이 다닥다닥 달리며 빛깔은 자주색에서 자갈색으로 변한다. 낟알 형태의 열매에는 갓털이 달려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번식한다.
한방에서는 갈대의 뿌리줄기와 줄기, 잎, 꽃 등을 약용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로 갈대를 이용해 왔다. 꽃이삭으로 빗자루를 만들거나, 줄기로 햇빛 가리개를 만들기도 했고, 지붕 이엉이나 바구니 소재로 쓰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고 생김새도 비슷한 억새와 곧잘 혼동하는데, 억새의 꽃은 은백색에 가깝고 갈대는 자갈색을 띤다. 실제로는 달뿌리풀이 갈대와 더 흡사한데, 이 풀은 땅 위로 겅중겅중 뛰듯 뻗는 뿌리줄기가 있어 쉬 구분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엄마야 누나야’는 지금도 널리 사랑받는 동요이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이 노랫말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정서가 있다.
노랫말 속 ‘갈잎’은 ‘활엽수의 마른 잎’ 또는 ‘떡갈나무의 잎’을 이르거나, ‘갈대의 잎’을 일컫기도 한다. 여기서는 앞부분에 든 ‘강변’과 ‘금모래빛’을 통해 ‘갈대의 잎’을 묘사했음이 확인된다.
요즘 인근 하천변을 걷노라면 갈바람에 서걱이는 갈대의 잎, 즉 ‘갈잎’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번 주말엔 따뜻하게 차려입고 가까운 물가에 나가 ‘엄마야 누나야’를 흥얼거리며 걷다가 갈잎의 노래를 한번 들어보시길.
출처 : 음성신문 https://www.u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1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