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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강의(經史講義) 8 ○ 논어(論語) 1 신축년(1781)에 이시수(李時秀), 홍이건(洪履健), 이익운(李益運), 이종섭(李宗燮), 이현묵(李顯默), 박종정(朴宗正), 서용보(徐龍輔), 김재찬(金載瓚), 이조승(李祖承), 이석하(李錫夏), 홍인호(洪仁浩), 조윤대(曺允大), 이노춘(李魯春) 등의 대답을 뽑았다
[학이(學而)]
학이(學而)의 학(學) 자는 실로 이 편(篇)의 뿌리인데, 학 자의 뜻을 상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주자(朱子)는 《집주(集註)》에서 효(效)로 학 자를 풀이하고 박학(博學), 심문(審問), 신사(愼思), 명변(明辨), 독행(篤行)을 겸한다고 하였고 또 《혹문(或問)》에서는 지(知)와 능(能)을 아울러 말하였다. 그렇다면 학이라는 한 글자는 지(知)와 행(行)이 모두 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십오지학(十五志學)의 학 자도 또한 이 학 자인데 삼십이립(三十而立)과 서로 대응하여 지(知)와 행(行)이 되는 것처럼 하였다. 어째서인가? 어쩌면 이 학 자와 십오지학의 학 자가 서로 다른 것인가?
[김재찬(金載瓚)이 대답하였다.]
이 학 자는 실로 지(知)와 행(行)을 겸한 것이기 때문에 주자가 명선(明善)과 복초(復初)를 함께 말하였으며, 십오지학의 학 자는 선유(先儒)도 “지(知)에 무게를 두되 또한 반드시 행(行)도 필요하다.”고 하였고 보면 지(知)에만 오로지 소속시켜서는 아니 될 듯합니다.
《집주》에 “깨달음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다.”라고 하고, 또 “뒤에 깨닫는 사람은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하는 바를 본받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모르겠다만, 깨닫는 바는 무슨 일이며 본받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지(知)는 일의 타당함을 아는 것이고 각(覺)은 이치의 까닭을 깨닫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지와 각은 절로 얕고 깊음의 차이가 있다. 지금 초학자가 덕(德)에 들어가는 공부를 함에 갑자기 각 자를 끌어다가 풀이를 한 것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 아닌가?
[김재찬이 대답하였다.]
각(覺)이란 이 이치를 깨닫는다는 말이니, 먼저 깨달은 사람의 치지(致知)를 본받아 이 이치를 알고, 먼저 깨달은 사람의 역행(力行)을 본받아 이 이치를 실천하는 것이 바로 효(效)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장(章)의 학(學) 자는 위아래로 두루 통하여 대개 초학자에 대해서만 말한 것이 아니니 각(覺) 자로 학(學)을 풀이한 것이 어찌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라 하겠습니까.
이 장(章)의 선의(鮮矣)는 미지유(未之有)와 상대되어, 교령장(巧令章)에서 오로지 선(鮮)을 말한 것과는 다르니, 선(鮮)은 다만 적다는 뜻이지 전혀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순(堯舜)의 도(道)는 효제(孝弟)일 뿐이다. 효성스럽고 우애로운 품성을 하늘로부터 타고난 사람은 비록 학문(學問)의 공부가 없더라도 결코 범상(犯上)을 하는 일에는 이르지 않을 것인데, 지금 선의(鮮矣)라고만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김재찬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조금이라도 어그러짐이 있으면 바로 범상(犯上)이다. 이를테면 걸음을 빨리 걸어 어른을 앞서는 것도 이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범상이라는 두 글자는 굳이 깊은 뜻으로 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집주》에 ‘인(仁)을 행(行)하는 근본’이라고 하였다. 대개 인(仁)은 바로 내 마음에 본디 가지고 있는 덕(德)인데, 행(行)이라는 글자는 유기(由己)의 유(由) 자와는 같지 않아서, 바깥으로 실천한다는 뜻이 있다. 도(道)를 행한다든지 일을 행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이것이다. 지금 ‘인(仁)을 행(行)한다’고 하면 마치 인(仁)이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 밖에서 인을 잡아 오는 것과 같다. 《집주》에서 굳이 ‘인을 행한다’로 풀이한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이현묵(李顯默)이 대답하였다.]
행(行)이라는 글자가 비록 유기(由己)의 유(由) 자와 다르지만 내가 실천을 하는 것이고 보면 또한 밖에서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 ‘인을 행한다’는 풀이는 전체(全體)의 인(仁)과 구별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어찌 밖에서 취하는 것이라는 혐의가 있겠습니까.
말은 몸을 꾸미는 것이다. 꾸미되 공교한 데에까지 가면 지극한 말이 아니니, 공교한 말에 인(仁)이 적다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지만, 용모(容貌)와 사기(辭氣)는 바로 덕(德)이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어버이를 봉양함에 오직 낯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라든지 “용모를 움직일 때에는 비루하고 어그러짐을 멀리해야 한다.”라든지 하는 것들이 어느 것이든 그 얼굴빛을 잘 꾸민다는 뜻이 아닌 것이 없다. 그렇다면 영색(令色) 두 글자를 교언(巧言)과 아울러 일컬어, 모두 ‘인이 적다’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집주》에 비록 “밖을 꾸미는 일이다.”라고 하기는 했으나, 군자의 주경(主敬) 공부는 안과 밖이 같은 것이므로 몸을 단속하는 일도 또한 밖에서 힘을 빌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밖에서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히 한다.”라든지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으면서도 그 마음이 태만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든지 한 것들이 모두 이런 뜻이다. 만약 심덕(心德)이 안에서 온전하기만 하면 되지 밖으로 덕용(德容)을 꾸미는 일은 할 것이 없다고 한다면, 위의를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고 몸단속을 가볍게 여기는 폐단이 있지 않겠는가?
[홍인호(洪仁浩)가 대답하였다.]
군자의 성덕(成德)의 실상은 단지 내 몸과 마음에 있는 것이지만 공부를 하는 데에 있어서야 어찌 색사(色辭)를 밖의 일이라 하여 검칙할 줄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군자는 심덕(心德)이 밖으로 드러남이 꾸밈이 없어도 저절로 그러한 것이고, 소인은 바야흐로 겸손과 공경을 거짓으로 내보이고 의관도 구차하게 꾸미지만 군자의 눈으로 그것을 보면 그에게는 인(仁)이 적은 것입니다.
학이(學而) 한 편은 모두가 학(學)을 말한 것인데, 도천승지국(道千乘之國), 신종추원(愼終追遠), 필문기정(必聞其政)은 단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교화하고 도를 행하는 일만 말하고 학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홍이건(洪履健)이 대답하였다.]
도천승지국은 ‘경신(敬信)’을 근본으로 삼은 것이고, 신종추원은 ‘성례(誠禮)’를 근본으로 삼은 것이고, 필문기정은 ‘온량공검(溫良恭儉)’을 근본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편은 모두가 근본에 힘쓰는 뜻이며, 경신과 성례와 온량공검이 학(學)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후중하지 않으면 학문도 견고해지지 않는다.[不重則學不固]”의 뜻을 상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뜻이 중(重) 자에 있지 학(學) 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어떤 이는 이 학이편 전체가 학 자에 무게를 두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주충신(主忠信)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가? 동그라미 아래 정자(程子)의 학설에 “군자가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을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자신을 수양하는 것은 학(學)이니 학에 무게를 둔 것인 듯하고, 유씨(游氏)의 학설에 “학문의 방도는 반드시 충신(忠信)을 주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 것은 충신에 무게를 둔 것인 듯한데, 《집주》에서는 모두 받아들였다. 배우는 사람이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가?
[이종섭(李宗燮)이 대답하였다.]
이 장에서 충신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이미 주자의 결정된 의논이 있으니 다시 의논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반고(班固)의 고금인표(古今人表)에 공자 문하의 제자들을 기록한 것이 매우 간략한데 오직 진자(陳子)만은 세 번 나온다. 하나는 진항(陳亢)이고 하나는 진자금(陳子禽)이고 하나는 진자항(陳子亢)이다. 그렇다면 자금이 공자의 제자인 것은 단지 《가어(家語)》에서만 상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다만 《논어》에서 자공에게는 두 번 질문하고 부자에게는 한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고 해서, 혹자의 학설을 인용하여 둘 다 남겨 놓았다. 성인 문하의 제자들이 서로 묻고 답한 것이 어찌 자금이 자공과 묻고 답한 것만 있겠는가. 더구나 자금이 또한 일찍이 백어(伯魚)에게도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주자가 굳이 자공의 제자라고 한 것은 과연 어떤 근거에서인가?
[서용보(徐龍輔)가 대답하였다.]
자금이 부자에게 질문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혹 그가 자공의 제자가 아닐까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만, 《집주》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고 하였으니, 본디 《가어》를 그르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 다섯 가지는 성인(聖人)이 사람을 대하는 기상(氣象)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써, 온이려(溫而厲), 위이불맹(威而不猛), 공이안(恭而安)과 견주어 볼 때에 오히려 려(厲)와 안(安)과 위(威)가 빠진 것이니, 《어류(語類)》에 이른바 “온화한 한쪽의 일만을 거론했다.”는 것과 《집주》 사씨(謝氏)의 학설에 있는 세 개의 역(亦) 자는 본문의 바른 뜻을 제대로 안 것이다. 그러나 주(註)에 있는 말로 보건대, “성대한 덕의 빛이다.”라느니 “지나가면 교화되고 보존하면 신묘해진다.”라느니 “덕이 성대하고 예가 공손하다.”라느니 하는 것들이 모두 전체를 가리켜 말한 것인 듯하다. 어째서인가?
[서용보가 대답하였다.]
이 다섯 가지는 성인(聖人)의 중화(中和) 기상에 있어서 오히려 갖추지 못함이 있다고 하겠는데, 주석에 덕(德)으로써 말한 것은 대개 덕용(德容)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비록 밖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안에 근본을 두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자가 온이려장(溫而厲章) 집주에, “전체가 혼연하고 음양(陰陽)이 덕(德)을 합한다.”고 말하였으니, 또한 이 뜻입니다.
부자(夫子)께서는 온량공검양하시어, 반드시 그 정사(政事)에 참여한 것이 절로 그렇게 된 것이니, 여(與)도 말할 것이 못 되는 일인데 더구나 구(求)에 대해서이겠는가. 그러므로 자공(子貢)이 여(與)는 제쳐 두고 답하지 않은 채 구(求) 자를 빌려 반어(反語)로 말하였으니, 참으로 말을 잘했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자공이 이른바 구(求)는 본디 간구(干求)의 구(求)와는 다를 터인데 득(得)이라고 하고 구(求)라고 하였으니, 성인(聖人)을 찬양하는 데에 있어서 말에 병통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서용보가 대답하였다.]
맹자께서 이르시기를 “이윤(伊尹)은 요순(堯舜)의 도(道)로써 탕(湯)에게 요구했다.”고 하였는데, 선유가 이르기를 “군자는 그 임금에 대해서 구하지 않음으로써 구하고 그 백성에 대해서 취하지 않음으로써 취한다.”고 하였으니, 또한 이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뜻과 행동이 서로 미더운 것은 이치의 상(常)이고 취향이 혹 다른 것은 일의 변(變)이다. 성인이 그 변을 논하고 그 상을 논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집주》에 윤씨(尹氏)의 학설은 그 마음을 논한 것이고 유씨(游氏)의 학설은 그 일을 논한 것인데 주자가 둘 다 취하였다. 어느 것이 이 장의 올바른 뜻인가?
[이익운(李益運)이 대답하였다.]
천하의 사변(事變)은 끝이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상황은 같지 않기 때문에 성인의 말씀이 이렇게 자상하고 곡진한 것인데, 선유의 말에 “이는 필시 뭔가 까닭이 있어서 하신 말씀이다.”라고 하셨으니 아마 범범하게 한 말씀은 아닌 듯합니다. 유씨와 윤씨의 학설에 대해서는 《어류》에서 유씨의 학설을 바르다고 하였으니 그것을 따라야 할 듯합니다.
여기 “선왕의 도가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先王之道 斯爲美]”라고 하였는데, 이 사(斯) 자는 예지용(禮之用)의 예(禮)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화위귀(和爲貴)의 화(和)를 가리키는가? 유자(有子)의 본문에는 예(禮)의 용(用)만을 말하였는데 주자의 《집주》에서는 예(禮)의 체(體)를 아울러 보충하여 풀이한 것은 어째서인가?
[이노춘(李魯春)이 대답하였다.]
화(和)가 바로 예(禮)의 용(用)이어서 예(禮)와 화(和)는 처음부터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장의 사(斯) 자는 사실 예의 화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주자가 《집주》에 본문에 없는 체(體) 자를 따다가 풀이한 것은, 대개 예의 용에서만 화가 귀함이 될 뿐만 아니라 예의 체(體)에도 절로 본연의 화(和)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하지 않을 바가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선왕의 도를 행할 수 없단 말인가? 아니면 예의 용을 행할 수 없단 말인가? 《설통(說統)》에 이르기를 “화(和)는 본래 행해야 하는 것이나 오직 예에서 벗어나 화만을 하는 것은 또한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는 《집주》에 이른바 “각기 한쪽으로만 치우칠 것이니 행해서도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고 한 것과 말이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이노춘이 대답하였다.]
선유들은 불가행(不可行)에 대해서 두 가지로 풀었습니다. 어떤 이는 예(禮)가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는 불가위(不可爲)와 같은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위 글의 소대유지(小大由之)를 받아서 말한 것이니, 뒤의 학설이 더 나은데, 《설통》에서 화(和)를 위주로 말한 것과 《집주》에서 나누어 말한 것이 비록 같지 않은 듯하나 화(和)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그 예를 벗어남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보면 실제로는 같은 의미입니다.
예(禮)의 용(用)에서 화(和)를 귀(貴)하게 여긴다면 이는 예(禮)가 체(體)가 되고 악(樂)이 용(用)이 되는 것인데, 또 “화를 알아서 화만을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또한 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악이 다시 체가 되고 예가 다시 용이 되는 것인가?
[이노춘이 대답하였다.]
예(禮)의 화(和)가 바로 악(樂)이고 악의 절(節)이 바로 예이니, 예와 악이 비록 서로 번갈아 용이 되는 듯하나, 만약 체와 용으로 나누어 말한다면 결국은 예가 체가 되고 악이 용이 되는 것입니다.
[시관(試官) 정지검(鄭志儉)이 말하였다.]
예(禮)와 악(樂)은 서로 체(體)와 용(用)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악(樂)의 체(體)가 예(禮)이고 예(禮)의 용(用)이 악(樂)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을 듯합니다.
예(禮)는 경(敬)을 위주로 하고 악(樂)은 화(和)를 위주로 하는데, 모두가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바로 용(用)은 달리하지만 체(體)는 함께하는 것이다. 예(禮)가 화(和)한 곳에 악(樂)의 의미가 있고 악이 절제된 곳에 예의 의미가 있으니, 이는 바로 체는 달리하면서 용을 같이하는 것이다. 예와 악은 실로 서로 체와 용이 된다.
[시관(試官)과 강원(講員)들이 모두 대답하였다.]
성상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신(信)은 혹 의(義)가 아닌 신(信)이 있으니 ‘신이 의에 가까우면’이라고 하는 것은 본디 있을 수 있는 말이나, 공(恭)은 바로 예(禮)인데도 ‘공이 예에 가까우면’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공(恭)이라는 것은 공경을 다함을 말하는데 어찌하여 곧바로 예(禮)라고 하지 않고 ‘예에 가깝다’라고 하였는가?
[이노춘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전체의 공(恭)이 아니라, 다만 동용주선(動容周旋)하는 사이에 한갓 경근(敬謹)하기만 하고 예에는 맞지 않음을 이르는 것입니다. 고개를 숙이고 대답만 하며 지나쳐서 아첨이 되면 비록 공(恭)인 듯하지만 사실은 예(禮)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 장의 《집주》에 “사람의 언행과 교제에 모두 마땅히 처음을 삼가고 그 끝을 염려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신(信)이 의(義)에 가까우면’, ‘공(恭)이 예(禮)에 가까우면’, ‘인(因)에 그 친(親)을 잃지 아니하면’이라는 세 글귀에 무게를 둔 것인데, 《어류》에는 또 “인(因)과 친(親)과 종(宗)은 깊이와 무게가 다른 것인데 인(因) 자가 가장 가볍고 종(宗) 자가 가장 무겁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因)에 그 친을 잃지 아니하면’이 도리어 ‘또한 종(宗)을 삼을 수 있다’보다 가벼워서 저 ‘처음을 삼가고 그 끝을 염려한다’는 뜻과 합치되지 않는 듯하다. 어째서인가?
[이현묵이 대답하였다.]
이 장의 위의 세 마디는 바로 사물과 접촉하고 사람을 만나는 처음이고 아래의 세 마디는 오래도록 폐단이 없는 공효입니다. 공부로 말하자면 위의 세 마디가 중요하고 공효를 이룸으로 말하자면 아래의 세 마디가 중요합니다. 《집주》와 《어류》가 각기 주장하는 바가 있는 듯합니다.
“먹음에 배부름을 구(求)하지 아니하고 지냄에 편안함을 구하지 아니한다.”의 두 ‘구(求)하지 아니한다’라는 말은, 다만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어서 굳이 무겁게 볼 필요가 없는 것인가? 선유의 학설을 보면, 혹자는 “편안함과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매우 힘써 공부할 곳이니, 이른바 기욕(嗜慾)의 관두(關頭)를 타파한다는 것이다. 만약 근원(根源)이 깨끗하고 맑지 못하면 비록 힘을 다하여 공부를 하더라도 단지 겉으로만 꾸미고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구하지 않는다’를 무겁게 본 것이고, 혹자는 “자기 마음속에 항상 하나의 단단한 도리를 잡고 있으면 편안함과 배부름은 자연히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만약 편안함과 배부름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한다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게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구하지 않는다’를 가벼이 본 것이다. 두 학설 가운데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홍이건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집주》에서 이미 “뜻을 둔 곳이 따로 있어서 미칠 겨를이 없다.”고 풀이를 하였으니, 아마 뒤의 학설이 옳을 듯합니다.
혹자가 “무첨(無諂)과 무교(無驕)는 여절(如切)과 여탁(如琢)이고, 낙(樂)과 호례(好禮)는 여차(如磋)와 여마(如磨)이다.”라고 하였는데, 선유가 힘껏 배척하며 이르기를, “이와 같으면 낙과 호례도 고왕(告往)인데, 부자께서 어찌 지래(知來)라고 하였겠는가. 그러므로 주자도, 이미 말한 바는 빈부(貧富)에 처하는 도이고 아직 말 안한 것은 학문의 공(功)이라고 하였다.” 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옳다. 다만 자공이 《시경》의 절차탁마를 인용하고 매듭짓기를 “이것을 말함일 것입니다.[其斯之謂與]”라고 하였으니, 기사(其斯)의 사(斯)가 어찌 위의 한 구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절차탁마가 빈부에 처하는 도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사(斯) 자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 것인가?
[이시수(李時秀)가 대답하였다.]
절차탁마를 비록 빈부에 처하는 도가 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또한 유독 빈부에 처하는 것을 제외한 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대개 빈부에 처하는 도와 학문의 공은 모두 모름지기 절차(切磋)를 하고 다시 탁마(琢磨)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부이호례(富而好禮)라고 하였고 보면 빈이락(貧而樂) 아래에도 도(道) 자 하나를 붙이는 것이 안 될 게 없을 것이다. 주염계(周濂溪)는 매양 정자(程子)로 하여금 중니(仲尼)와 안자(顔子)가 낙(樂)한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보도록 하였는데, 선유 가운데에는 도(道)를 낙(樂)한 것이라고 한 분이 많았다. 빈이락(貧而樂)의 낙(樂)하는 일이 도(道) 이외에 또한 어찌 다른 일이 있겠는가.
[이시수가 대답하였다.]
단지 낙(樂)한다고만 말하고 그 낙(樂)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말을 안 해야 그 낙(樂)이라는 것이 바야흐로 무궁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빈이락(貧而樂) 아래에 만약 도(道) 자를 붙이면 한 가지에 국한되어서 원만한 오묘함이 없어집니다.
학이(學而) 한 편은 학(學) 자에 무게가 있고 학 자의 뜻풀이는 본받음[效]이다. 그러나 한 편 전체로 살펴보건대, 전불습호(傳不習乎)는 삼성(三省)의 끝에 있고, 즉이학문(則以學文)은 행(行)한 뒤에 남은 힘으로 하는 공부이고, 오필위학(吾必謂學)은 도리어 학문을 폐할 염려가 있고, 취유도정(就有道正)도 민신(敏愼) 뒤의 일이며, 기타 무우불여기(無友不如己), 인불실기친(因不失其親) 같은 것들도 모두 주충신(主忠信), 신근어의(信近於義)의 아래에 있다. 학(學)이 남에게서 본받음을 위주로 한다면 이 편에 학에 대해 오로지 말한 것은 어디에 있는가?
[홍이건이 대답하였다.]
학이(學而)의 학(學)은 지(知)와 행(行)을 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주》의 효선각소위(效先覺所爲)의 위(爲) 자도 지(知)와 행(行)을 겸하여 말한 것입니다. 이 편에 학(學)을 말한 것이 비록 행(行)을 앞세우고 문(文)을 뒤로한 것이 많지만, 행(行)도 학(學)이요 문(文)도 학(學)이니, 어찌 이 편이 학(學)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위는 학이편(學而篇)이다.
[學而]
學而之學字。實爲此篇之根柢。學字之義。可詳言歟。朱子於集註。以效訓學。而謂兼學問思辨行。又於或問。以知與能竝言之。則學之一字。知行都在其中矣。然十五志學之學。亦此學字。而若與三十而立。相對爲知行者。何歟。豈此學字與十五志學之學字。有不同耶。載瓚對。此學字。實兼知行。故朱子以明善復初兼言之。而十五志學之學。先儒亦謂以知爲重。而亦須要行。則恐不當專屬之知也。集註曰。覺有先後。又曰。後覺效先覺。未知所覺者甚事。而效之當如何耶。朱子嘗云。知者。識其事之所當然。覺者。悟其理之所以然。則知與覺。自有淺深之別矣。今於初學入德之功。遽引覺字以釋之者。得無太驟耶。載瓚對。覺者。覺得此理之謂。則效先覺之致知。以知此理。效先覺之力行。以行此理。卽效之事也。然 此章學字。徹上徹下。蓋不但以初學言。以覺訓學。豈可謂太驟耶。此章鮮矣。與未之有相對。異於巧令章之專言鮮。則鮮只是少。非絶無之謂也。夫堯舜之道。孝弟而已。其天稟之孝且弟者。縱無學問之功。必不至有犯上之事。而今但曰鮮矣。何歟。載瓚對。朱子謂少有拂戾。便是犯上。如疾行先長者亦是。則犯上二字。恐不必深看矣。集註曰。行仁之本。蓋仁卽吾心固有之德。而行之爲字。與由己之由字不同。有向外面踐履之意。如行道 行事之類是也。今曰行仁。則似若仁不在己。而自外襲取之者。集註之必以行仁爲釋。果何義耶。顯默對。行之爲字。雖異於由己之由。而自我行之。則亦非資於外者也。况此行仁之釋。欲其別於全體之仁。夫豈有自外襲取之嫌耶。言者。身之文也。文之而至於巧。則非至言也。巧言之鮮仁固也。而至於容貌辭氣。乃德之符。養親則惟色爲難。動容則斯遠鄙倍者。何莫非善其色之義耶。然則令色二字。與巧言竝稱。而俱謂之鮮仁。何歟。集註雖曰。致飾於外。然君子主敬之工。表裏一致。故禔躬
飭身。亦不能無待於外。曰制之於外。以安其內。曰未有箕踞而必不慢者。皆是此意。若謂必德之全於內。而不事德容之修諸外。則無或有弁髦威儀。放過行檢之弊耶。仁浩對。君子成德之實。只在身心上。著工則何嘗以色辭爲外。而不知檢耶。但君子則心德之著乎外者。無待修飾。自然而然。小人則方且假示謙恭。苟飾邊幅。而自君子視之。鮮矣其仁也。學而一篇。皆以學言。而如道千乘之國。愼終追遠。必聞其政。只就治國化民行道上說。而不及於學者。何 歟。履健對。道千乘之國。以敬信爲本。愼終追遠。以誠禮爲本。必聞其政。以溫良恭儉爲本。此篇皆務本之意。而敬信誠禮溫良恭儉。無非學也。不重則學不固之義。可詳言歟。或曰。意在重字上。不在學字上。或曰。通篇重學字。或曰。主忠信最重。何者爲得歟。圈下程子之說以爲君子自修之道當如是。則自修者學也。似以學爲重也。游氏之說以爲學之道必以忠信爲主。則似以忠信爲重也。而集註竝取之。學者將何適從歟。宗燮對。此章之以忠信爲重。旣有朱子定論。恐無容更議矣。班固古今人表。載孔門弟子甚略。獨陳子三見。一陳亢。一陳子禽。一陳子亢。則子禽之爲孔子弟子。不但家語爲可考也。而特以論語中兩問子貢。一不問夫子。引或說兩存之。夫聖門諸子之相與問答。奚止子禽之於子貢。而况子禽亦嘗有問於伯魚。則朱子必以爲子貢弟子者。果何據歟。龍輔對。子禽無請問夫子之事。故或疑其爲子貢弟子。而集註以爲未知孰是。則固未嘗以家語爲 非也。溫良恭儉讓五者。不過聖人接人氣象之一端。而其視溫而厲。威而不猛。恭而安。猶且漏却厲與安與威。則語類所謂擧可親之一節。集註中謝說三亦字。儘得本文之正義矣。然以註說觀之。曰盛德光輝。曰過化存神。曰德盛禮恭。似皆指全體上言。何也。龍輔對。此五者。其於聖人中和氣象。尙云有未備。而註說之以德言之。蓋以德容之接人。雖在乎外。未有不本於內者。故朱子於溫而厲章集註。以全體渾然陰陽合德言之。亦此意也。夫子之溫良恭儉讓。自有以必聞其政。與且不足言。况於求乎。故子貢置與不答。而借求字反言之。固可謂善言。然子貢所謂求。固與干求之求。有異。而曰得曰求。其於贊聖人。能不爲語病耶。龍輔對。孟子云。伊尹以堯舜之道要湯。先儒云。君子之於其君。以不求求之。於其民。以不取。取之。亦此義也。父子之間。志行相孚。理之常也。趨向或歧。事之變也。聖人論其變而不論其常。何歟。集註中。尹說論其心。游說論其事。而朱子竝取之。何者爲此章正義歟。益運對。天下之事變無窮。凡人之所遇不同。故聖人之言。委曲周盡如此。而先儒云。此必有爲而發。則恐非泛設之辭也。至於游,尹兩說。語類以游爲正。恐當從之。此云。先王之道斯爲美。這斯字。指禮之用之禮耶。抑指和爲貴之和耶。有子本文。但說禮之用。而朱子集註。竝禮之體。補釋之者。何歟。魯春對。和是禮之用。而禮與和。初無二致。故此章斯字。實指禮之和言。朱子於集註。拈出本文所無之體字。以釋之者。蓋不特禮之用和爲貴。禮之體。亦自有本然之和故也。有所不行者。何謂也。謂先王之道不行耶。抑謂禮之用不行耶。說統云。和本可行。惟其離禮以爲和。亦不可行。此與集註所謂各倚於一偏。而不可行均者。語意果無逕庭耶。魯春對。先儒於不可行有二解。或以爲禮不行也。或以爲猶言不可爲也。承上文小大由之而言。後說較勝。而說統之主和。集註之分言。雖似不同。和之不可行。亦指其離禮者言。則其實同一旨意也。禮之用。以和爲貴。則是禮爲體。而樂爲用也。又曰。知 和而和。不以禮節之。亦不可行。然則樂復爲體。而禮復爲用耶。魯春對。禮之和是樂。樂之節是禮。禮樂雖似互相爲用。而若以體用分言。畢竟禮爲體而樂爲用矣。試官鄭志儉曰。禮樂相爲體用。若謂樂之體禮也。禮之用樂也云爾。則恐不可。禮主乎敬。樂主乎和。而皆本於一心。則是異用而同體也。禮之和處。有樂底意。樂之節處。有禮底意。則是異體而同用也。禮樂。實相爲體用矣。試官與講員皆對曰。聖敎誠然矣。信或有非義之信。則謂之信近於義固也。恭便是禮。則謂之恭近於禮。何也。恭者。致敬之謂。何不直謂之禮。而曰近於禮耶。魯春對。此非全體之恭。只是動容周旋之間。徒執敬謹而不中禮之謂也。低頭唱諾。過於諂諛。則雖似恭。而實遠於禮矣。此章集註曰。言人之言行交際。皆當謹之於始。而慮其所終。則重在信近於義。恭近於禮。因不失其親三句。而語類又云。因與親與宗有淺深輕重。因字最輕。宗字最重。然則因不失親。反輕於亦可宗也。而與夫 謹始慮終之義。似不相合。何歟。顯默對。此章上三截。是接物與人之初。下三截。是久而無弊之效。以工夫言之。重在上三截。以成效言之。重在下三截。集註語類。似各有所主也。食無求飽。居無求安。兩無求。只是不役心之義。而不必重看之耶。先儒之說。或云。無求安飽。正是吾輩大學力處。所謂打破嗜慾關頭。若根源不潔淨。雖竭力用工。只是皮膚上綽過。此則重看無求字。或云。自家心裏。常有一箇著緊底道理。安飽自不暇及。若要此地著緊。都不濟事。此則輕看無求字。兩說孰是孰非。履健對。朱子集註。旣以志有在而不暇及爲訓。恐當以後說爲正。或以無諂無驕。爲如切如琢。樂與好禮。爲如磋如磨。而先儒力斥之曰。如此。樂與好禮。亦是告往。夫子何謂知來者。故朱子亦云。所已言。處貧富之道。所未言。學問之功。此誠然矣。但子貢引詩之切磋琢磨而結之曰。其斯之謂與。其斯之斯。豈不指上一節耶。若謂切磋琢磨。無關於處貧富之道。則此斯字將何爲解。時秀對。切磋琢磨。雖不可硬定爲處貧富之道。而亦不可謂獨外處貧富說。蓋處貧富之道與學問 之功。皆須旣切磋而復琢磨也。旣曰富而好禮。則貧而樂下。亦著一道字。未爲不可歟。周濂溪每令程子尋仲尼,顔子樂處。而先儒多以樂道當之。貧而樂之樂。道外亦豈有他事耶。時秀對。只言樂而不言所樂何事。然後其樂也。方有無窮之味。貧而樂下。若著道字。則局於一處。而無圓轉之妙矣。學而一篇。重在學字。而學之爲訓。效也。然以通篇考之。傳不習乎。在三省之末。則以學文爲餘力之工。吾必謂學。反有廢學之慮。就有道正。亦屬敏愼後事。而他如無友不如己。因不失親。竝居主忠信信近於義之下。學以效於人爲主。則惡在此篇之專言學歟。履健對。學而之學。兼知行。故集註效先覺所爲之爲字。亦兼知行說。此篇言學。雖多先行而後文。行亦學也。文亦學也。豈可謂此篇之不重學耶。以上學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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