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순례를 마치고 선생님과 효선과 라떼, 그리고 다나, 유천이 오랜만에 둘러 앉습니다. 비가 오고 추운 봄 날씨에 차담을 나누며, 선생님 말씀을 듣습니다. 단기 기억 상실과 치매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선생님의 감기 든 쉰 목소리가 안타깝고 정겹습니다.
걱정 안 해도 돼. 그러나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린다. 20년 뒤에 그러면 치매라고 똑같지 않아. 착한 치매가 있어. 그리고, 아주 고약한 치매가 있어. 그걸 걱정해야 돼. 지금 잘하면 돼. 지금 착하면 착한 치매, 지금 고약하면 100% 고약하고, 어떤 사람을 치매 걸리면 막 쥐어막어. 눈을 흘기고. 옛날에는 자기 똥 싸가지고 벽에 바르고. 진짜 착하게 살아야지. 젊었을 때 억눌렸던 것이 표출이 안 되니 고약한 치매로 나오는 거야. 난 빨리 치매 되었음 좋겠어. 난 100프로 착한 치매야. (웃음) 인생이라는 게 참 순식간인데, 살고 보면,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셔. 진짜로 아 기가 막혀. 내가 혼수에 빠졌다가 한 달 만에 의식은 돌아왔는데 이게 발성이 안돼. 이 소리가 안 나오니까 말을 못하지. 소리가 안 나와. 발성이 암만 해도 안 나와. 그러니까, 말을 못하고 있었어. 한 달을 그렇게 지내는데, 뭔 생각이 드는가 하니, 말을 못하는 거 ,소리가 나와야 말을 하지. 벙어리가 됐구나. 근데, 그게 슬프거나 그러지 않고, 난 20년 말 했으니까 태어나면서부터 벙어리가 있는데, 난 그게 어디냐, 됐다. 나머지 인생은 벙어리로 살지 그랬어. 그런 마음이 들었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야. 쑥 들어왔어. 그래, 벙어리 살지. 뭐 벙어리 많잖아. 그냥 나도 벙어리로 살지. 그 마음이 편안해졌어. 말을 해야지 해야지.
막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거야. 그 전까지만 해도 말하고 싶었는데, 야 그 생각이 쏙 들어오니까. 그래 뭐 벙어리로 살아야지. 뭐 이십 년 동안 얘기했는데, 그러면서 마음 편안해져. 그러니까, 군의관이 여기를 따보자 이거야. 성대가 어떻게 되는지 수술을 해보자 이거야. 근데 군대 병원에서는 그거 할 만한 실력이 없어. 서울대병원에 약속을 했어. 기억해. 4월 19일이야. 4월 19일 날 10시에 서울대병원에 가기로 약속이 된 거야. 내 그날 새벽 새벽에, 그 국대 병원이니까 숙식하는 의사가 있잖아. 숙직하는 사람이 이제 집으로 가야 되잖아. 아침에 이제 한 바퀴씩 돌고 간단 말이야. 내 병실도 왔어. 중환자실, 난 처음 보는 의사야. 내 담당이 아니니까. 보더니 내 거기 이제 차트 있잖아. 차트에 보니까, 내 일정이 서울대병원에 가기로 지정이 돼 있는가 봐. 그러니까 나보고 “너 오늘 서울대병원 가냐” 말을 어떻해? 그랬더니 “이 새끼 건방지게 고개를 까딱까딱해?” 말을 안 하고 그래야 되는데, 그걸 까딱까딱 하니까 장교한테 말이야. “이 새끼 건방지게 말 못해? 인마.” 나보고 그래. 자세히 보니까 내가 여기를 수술하러 간다고 이제 알았단 말이야. “너 말 못해?” 그래서 그러니까, 신문지를 이만하게 찢어 신문지를 그랬더니 자기가 후 불어. 그러니까, 팔랑팔랑하잖아. “후 너 이거 할 수 있어?” 나는 그거 못해도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그냥 후하지 말고 우해봐 인마.” “우” 하는데 나오잖아. 그래서 여기가 멀쩡해. 안 땄어. 소리가 났으니까. 신기하잖니. 그날 새벽에 맨 처음 보는 의사가 와서 나를 알지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친구가 왜 보라서 했더니 나왔어. 우 소리가 나와. 그랬어. 어떻게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그러니. 여기 안에 계시는데. 소리가 나니까 신난 거야. 이게 가지고 소리가 나니까 내가 들려. 그래 어디로 가버렸어. 내 담당 간호사 조양이야. 조양 이름은 몰라. 조양 간호사 아니고, 간호보조원 심부름 하는 걔가 나한테 참 잘해줬어. 의식으로 돌아온 다음에 내 이빨 양치 양치질 다 해주고, 얼굴 세수 시켜주고 막 그랬어. 못 생겼어. (웃음) 참 얼굴이 착해. 걔가 옆에 있다가 내 음음 그러니까 신난 거야. 이현주 환자가 말한다고 막 나가서, 너무 신나 가지고. 그래 또 왔어. 음....하다가...음...마...엄...마... 난 왜 엄마인지 그때 알았어. 제일 발음하기 쉬어. 엄마. 아빠는 좀 어려워. 엄마. 엄마. 그랬어. 나는 책 보고 뭐 말 들어서 하나님 아는 게 아니라 경험이야. 경험 밖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설명 듣고는 어림도 없어. 경험해.
카나다 윤명중 장로님 알지? 그 양반이 카나다 이민 1세야. 그래 가지고 카나다 이민 가는 사람들이 그 장로님 신세를 많이 졌어. 의사야. 그냥 근데, 그 양반이 아버지가 기아그룹을 창립하신 거야. 이제 사위들이 계약 그룹 회장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재벌이야. 근데 윤 장로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일제시대 때 재벌이야. 그래서, 일본에 비행기도 막 만들어주고 그래서 친일파지. 근데, 그 할아버지가 엄청 부자인데, 땅부자야. 내가 아는 장로는 막내가 아버지야. 아버지가 있는데, 그 한해 엄청 가물었어. 그래서, 빌려준 곡식을 받아오라고 자식들을 보낸 거야. 소장님들한테 가서 이제 받잖아. 며칠 만에 돌아왔는데 큰아들, 둘째 아들은 다 걷어왔어. 이제 막내는 다 못 걷어 왔어. 100개를 가져와야 된다면 한 70개밖에 못 가져왔어. “올해가 너무 가물어서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지 내년에 또 농사 지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다 못 받았습니다.” 그러더래.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네가 재산을 관리해라.” 막내한테 줬대. 그게 윤장로 아버지야. 윤 장로님은 딸딸딸 하다가 아들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쯤 되니까 재산을 분배해야 될 거 아니야. 아들 하나인데, 카나다에 있잖아.
아들 하나인데, 그때만 해도 아들이 최고잖아. 그 때 윤 장로가 “한국의 돈은 한국에서 시쓰시오. 카나다까지 올 필요 없어요. 나 여기 의사 노릇해서 먹고 살만하니까 거기서 누나들이 잘 상속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신 분이야. 그래서 그게 기아그룹이 그 집안이에요. 그리고 그 윤 장로의 네 째지. 누이 동생의 남편은 국회의장까지 했어. 정치인 이름을 내 잃어버렸다. 국회의장에서 그 사람은 정가에 나가 가지고 지금 암튼 정치하고 하여튼 그랬어. 근데, 그 윤 장로 아버지가 치매가 말년에, 내가 이제 큰 형님이라고 내가 불렀거든. 큰형님한테 내가 얘기 들었어. 아버지가 말이야. 내가 가도 누구시요 그러고 몰라본대. 아 그럼 누가 와도 첫마디가 누구쇼, 그냥 아무개입니다. 그러면, 아이고 참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요 두 마디만 하다가 돌아가셨대요. 딴 건 할 줄 모르고 자기가 와서 누구쇼? 아들이에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게 착한 치매야. 얼마냐 이 돈 어떻게 되냐. 뭐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몰라.
효선 어머님도 착한 치매셨잖아요. 항상 고맙다고 그러고. 웃기만 하고.
어머니 치매는 착한 치매셨어. 그거 왜 그런지 아냐? 왜? 효선 때문에 그래. 효선이 그래도 십 년 넘게 오랫동안 마음 공부했잖아. 그 영향이 간거야. 어머니 그냥 혼자 계셨으면 그렇게 안 돼. 평생을 이러면서 살았는데, 사람을 업신 여기고. 당신 덕이야. 자기를 삼인칭으로 불러서 보는 연습을 해. 그녀가 그래. 그녀가 그랬어....
밖에는 비가 오고 춥지만, 훈훈하게 차와 만들어 오신 두유와 고구마로 따뜻한 정담이 오고 갑니다.
첫댓글
사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