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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18-20절. 디모데에 대한 격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령하고, 이런 명령을 어긴 사람들을 들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18절.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is command I entrust to you, Timothy, my son, in accordance with the prophecies previously made concerning you, that by them you fight the good fight,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Ταύτην τὴν παραγγελίαν παρατίθεμαί σοι, τέκνον Τιμόθεε,
this the command I commit to you, child Timothy
‘명하노니’(παρατίθεμαί)는 현재형으로서(I commit) 지금 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κατὰ τὰς προαγούσας ἐπὶ σὲ προφητείας,
according to the leading before to you prophecies
‘전에 지도한’(προαγούσας)은 현재분사인데(leading before) 과거에 지도하고 있던 것을 가리키고, 원형(προάγω)은 ‘전에’(πρό: before)란 접두어와 ‘인도하다, 데리고가다, 옮기다’(lead, bring, carry)란 뜻의 동사(ἄγω)의 합성어입니다.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ἵνα στρατεύῃ ἐν αὐταῖς τὴν καλὴν στρατείαν,
that you might war by them the good war
직역하면 ‘그것들로써 선한 싸움을 네가 싸우게 하려는 것이다’란 뜻입니다.
‘싸우며’(στρατεύῃ)는 현재 가정법 동사로서(you might war) 현재 싸우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1. ‘아들 디모데’는 바울이 낳은 육신의 아들이 아니라,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임을 가리킵니다.
즉 바울이 루스드라 지역을 전도할 때 디모데가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사도행전 16:1-3), 평생 디모데는 바울의 지도를 받은 믿음의 아들입니다(디모데전서 1:2).
과거에 서당에서 배울 때는 선생님 집에 가서 먹고 자면서 글과 기술과 생활을 배웠는데, 그 때 선생님을 사부(師父)님이라고 부르면서 일종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이란 바울이 디모데를 목회자로 안수하여 임직할 때 성령의 감동으로 준 예언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디모데전서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선한 싸움’이란 영적인 전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악령과 싸움이고, 육신의 정욕과의 싸움이고, 죄악과 싸움이고, 이단과의 싸움을 가리킵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요한1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갈라디아서 5:17-21.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나 ‘선한 싸움’이란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종교전쟁이나 종교재판 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선한 싸움이란 명목으로 노회끼리 극단적으로 싸우고, 세상 법정에서 재판까지 하는 일들이 많은데,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싸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즉 종교개혁 때나 신사참배 거절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에 대한 싸움이라면 명분이 서지만, 교권 다툼으로 인한 싸움은 선한 싸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 ‘이 교훈으로써 네가 명하노니’란 군대에서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디모데는 지금 전투하려는 군사로서 서 있고, 바울 사도는 지휘관으로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3-4.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은 디모데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받은 목회 지침을 가지고, 목회할 때 군사처럼 선한 싸움을 잘 싸워가라는 뜻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과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 준비할 때 힘들어도 열심히 준비하고, 새벽에 기도할 때 힘들어도 여러 성도들을 위해서 애써 기도하라는 것이고, 성도들을 심방할 때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 전하고 기도해주라는 것이고, 불신자를 상대해서 선을 행하면서 전도하라는 것이고, 다른 목회자들이 놀러다니고 정치할 때 물들지 말고 성실히 목회하라는 것입니다.
3.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다정하게 불러놓고서, 이 교혼으로써 명령한다고 엄중하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훈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예언의 말씀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8-19.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일수록 그 사랑의 마음으로, 더욱 하나님의 말씀으로 엄중히 교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성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살면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교훈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으로 하지 않는 교훈은 역효과가 나서 자녀가 반항하고, 자녀를 더욱 빗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녀에게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주고, 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지만, 이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른 영적 교훈을 주어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물론 이 때도 사랑과 기도로 영적 감화 가운데서 교훈하고, 부모가 모범적 삶으로 인격적인 감화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예언은 디모데가 목사 안수 받을 때, 바울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목회할 때 중요한 것은 예언의 말씀을 잘 연구하고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 영혼의 양식이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 길에 등불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2절에는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사랑하는 자녀들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듣고 그 말씀대로 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러면 생명과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1:26-28.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좇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30:15-20.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시편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2:1-2.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서 복 받고 살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도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내가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살아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사랑하는 성도들과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라고 당부하고 설교해야 하겠습니다.
5. 보통 아버지는 아들에게 싸움질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엄중하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적인 싸움은 하지 말아라 하지만, 영적 싸움과 선한 싸움은 반드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적 싸움의 무기는 예언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이 무기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7절에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영적 싸움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첫째 영적 싸움의 대상은 무엇보다도 죄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아니 했다”고 했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인데, 죄와 싸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둘째 영적 싸움의 대상은 마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2절에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고,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악령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살게 하려는 마귀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10절에서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장 14-17절에서는 “그런즉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영적 싸움의 대상은 불신자의 우상숭배 풍속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는 “공중 권세 잡은 마귀가 불신자들 가운데 역사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조상 귀신에게 제사하고, 무당들에게 찾아가서 귀신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은 다 마귀를 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의 술 먹고 방탕하는 죄악 풍속과도 싸워야 합니다.
넷째로 싸움의 대상은 이단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는 이단자들이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서 양심이 화인맞아 거짓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단자들은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폐하라고 하지만, 진리를 아는 자들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디모데전서 4:3-4).
그러기 때문에, 디모데 목사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교훈하면, 성도들이 잘 양육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목회에 성공하시고, 가정과 자녀들이 큰 복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keeping faith and a good conscience, which some have rejected and suffered shipwreck in regard to their faith.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ἔχων πίστιν καὶ ἀγαθὴν συνείδησιν,
holding faith and good conscience
‘가지라’(ἔχων)는 현재분사로서(holding) ‘가지고 있으면서’란 뜻이고, 현재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ἥν τινες ἀπωσάμενοι, περὶ τὴν πίστιν ἐναυάγησαν·
which some having cast away, concerning the faith caused a shipwreck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란 직역하면 ‘어떤 이들은 이것을 버렸고’란 뜻으로서 이것은 ‘선한 양심’을 가리킬 수 있고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리킬 수 도 있습니다.
‘버렸고’(ἀπωσά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ast away) 과거에 완전히 버려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파선하였느니라’(ἐναυάγ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caused a shipwreck) 과거에 완전히 파선해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1. ‘믿음’을 배에 비유하고, 양심을 버린 믿음은 ‘파선한 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예수님의 실제적 임재를 부인한 자들로서(요한2서 1:7), 그들의 생활은 오늘날 문선명 후예들처럼 육체적 방탕주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영지주의자들을 믿음에 관해서 파선한 자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2. 바울은 선한 싸움의 도구로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말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 6:10-17 참고).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믿음의 근간인 진리가 잘못되어서 파선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또한 양심이 파괴되면, 도덕 생활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오늘날 이단자들처럼 부도덕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3. ‘선한 양심’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인데, 선한 양심을 버리면 믿음의 항해에 파선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양심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에베소서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골로새서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선한 양심’은 성령님과 동행하여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살아가는 양심입니다.
율법주의적 영지주의자(legalistic Gnocists)들은 양심이 더럽다고 했습니다.
디도서 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들은 양심이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그런데 당시 에베소교회의 영지주의자들과 오늘날 부도덕한 이단자들은 고의적으로 양심을 버렸고, 그래서 믿음에 관해서 파선해버리고 말았습니다.
5. 그리고 올바른 믿음이란 올바른 교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1-11장까지는 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12-16장에서는 거룩한 생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서도 1-3장은 교리에 대해서 말하고, 4-6장은 거룩한 생활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과 오늘날 부도덕한 이단들은 잘못된 교리에 근거하여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6. 예베소 교회 성도들이 악한 영지주의 이단자들과 선한 싸움을 싸우려면 앞 절에 말씀한 대로 예언의 말씀으로 싸워야 하지만, 나 자신이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 자신이 먼저 예언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지 않으면, 이단자와의 싸움에 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살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히브리서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았더니 크고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히브리서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그러므로 에베소교회 성도들이나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악하고 더러운 이단들을 무찌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이단자들은 믿음을 떠나 귀신의 가르침을 받고, 양심이 화인 맞아서 거짓말 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양심이 화인 맞았다는 것은 양심이 불도장을 맞아서 감각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원래 불도장은 말의 주인이 자기 말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말의 엉덩이에 불도장을 찍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영지주의 이단자들과 오늘날 음란한 이단자들은 그 양심이 화인맞아서 성령의 감동도 받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단자들은 한두 번 책망한 후에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려면, 선한 양심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양심이 무디어지고 마음이 굳어지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그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선한 양심과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한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완악한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또한 호세아 10장 12절에는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하시면서 묵은 땅을 기경하면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공의를 비처럼 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10장 16절에는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51절에는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 성령을 거스려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다고 했습니다.
8. 그런데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자들은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의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리고 믿음에 파선한 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성도들은 바다와 같은 세상을 교회라는 배를 타고, 천국 항구를 향해 항해하는 여행객과 같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의 이단자들과 오늘날 음란한 이단자들은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리고, 파선한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배가 파선하면, 바다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믿음과 선한 양심을 버리면, 교회에서 떠나 죄악 세상에 빠져버리게 됩니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선한 양심을 갖기 위해서는 기도하여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부드러운 마음과 선한 양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에스겔 11:19-20.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36:26-27)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20절.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mong these are Hymenaeus and Alexander, whom I have handed over to Satan, so that they will be taught not to blaspheme.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ὧν ἐστιν Ὑμέναιος καὶ Ἀλέξανδρος,
among whom are Hymenaeus and Alexander,
‘있으니’(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οὓς παρέδωκα τῷ Σατανᾷ,
whom I handed over to the Satan
직역하면 ‘그들을 내가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뜻입니다.
‘내주었다’(παρέδωκα)는 부정과거로서(I handed over) 확실하게 내주어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ἵνα παιδευθῶσιν μὴ βλασφημεῖν.
that they may be disciplined not to blaspheme
직역하면,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그들이 훈계를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에서 동사(βλασφημ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laspheme) 현재 모독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훈계를 받게 하기 위함이라’(παιδευθῶ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they may be disciplined) 단호하게 훈계를 받게 하려는 것을 가정한 말이고, 원형(παιδεύω)은 ‘어린아이를 훈련하다, 매를 때리다, 시정하다, 훈계하다, 교육하다’(train children, chasten, chastise, correct, discipline, educat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후메내오’는 당시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이단자로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여 믿음에 파선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17-18.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알렉산더’는 에베소에 사는 유대교의 지도자였는데, 기독교로 개종하여 에베소 교인이 되었으나, 영지주의 이단에 빠져서 바울을 심히 대적한 구리세공업자였습니다.
사도행전 19: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디모데후서 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것은 교회에서 내쫓는 출교를 가리키는데, 교회 안은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교회 밖 세상은 사단이 지배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5:19)
고린도교회에서도 아버지의 후처를 취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주는 처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5: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2. ‘그 가운데’란 선한 양심을 버려서 믿음에 파선한 사람들 가운데를 가리킵니다.
후메내와 알렉산더 두 사람은 디모데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영지주의 이단에 빠져서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고(디모데후서 2:17-18), 자신들은 신령한 자가 되었으니 성적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즉 이 사람들은 부활과 천국이 없고, 이 세상이 천국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해탈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현세의 향락과 방탕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요 마음이 부패한 자들이고 믿음을 배반한 자들로서, 모세를 대적한 사람들처럼 벌받을 사람들입니다.
디모데후서 3:8-9.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그러나 그들이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라.
이런 이단자들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 기도해서 마귀를 물리쳐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누가복음 22:46).
이단자들의 배후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디모데후서 4:1),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복음의 신발을 신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야 합니다. (에베소서 6:14-17).
3. ‘알렉산더’는 유대교에 있다가 에베소 교인이 되었는데, 한 때는 율법주의자로서 교인들을 괴롭히다가, 나중에는 영지주의 이단에 빠져버렸습니다.
율법주의자는 다른 교인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모릅니다.
자기는 새벽기도회나 수요예배에 나오지 않고 밤이면 화투를 치면서, 바울 사도나 디모데 같은 목회자를 대적하고, 온갖 탈을 잡습니다.
학교에서도 실력이 없는 교사는 교과서를 잘 못 가르치면서, 맨날 학생들이 머리가 길다고 탈 잡고, 복장이나 태도를 가지고 야단치곤 합니다.
그러나 교회 장로는 목회자나 교인들의 애로사항을 찾아서 위로해주고 도와주어야 하고, 좋은 교사는 어려운 학생의 사정을 알아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4.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전 한글개역 성경에는 ‘훈계’가 ‘징계’로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영지주의 이단자들이 교회에서 징계를 받고 훈계를 받아서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교회에서 이런 징계 즉 권징조례가 잘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교회에서 범죄자를 징계하려고 하면 ‘너희 교회만 교회냐, 나는 다른 교회로 갈란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는 각 지역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른 교회로 갈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각 지역에 교회들이 여러 곳이라서,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교회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목회하기가 힘들고,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해주시라고 기도로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좀체 벌을 주시지 않은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의 자녀는 잘되고, 하나님 속 썩이는 사람은 자녀가 잘되지 않더라구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여 성령님 인도를 잘 받으시고, 하나님 말씀 잘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큰 은혜 받으시고, 가정과 자손이 잘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