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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2장 8-13절. 함께 죽으면 함께 살 것이요
8절.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Remember Jesus Christ, risen from the dead, descendant of David, according to my gospel,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Μνημόνευε Ἰησοῦν Χριστὸν ἐγηγερμένον ἐκ νεκρῶν,
remember Jesus Christ having been raised from dead
‘다시 살아나신’(ἐγηγερμένον)은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raised) 과거에 역사적으로 확실히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것을 뜻합니다.
‘기억하라’(Μνημόνευ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remember) 항상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ἐκ σπέρματος Δαυείδ, κατὰ τὸ εὐαγγέλιόν μου·
of seed David, according to the gospel of me
1. ‘내가 전한 복음’이란 원문에 ‘나의 복음’(εὐαγγέλιόν μου: gospel of me)인데, 다른 사도들은 모두 유대인을 대상으로 전한 복음인 데 반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은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똑같이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서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갈라디아서 2:7-8.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3:26-28.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 ‘다윗의 씨로’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인간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나사렛에서 성장하셨고, 3년간 전도하시면서 온갖 육신적 고난을 당하시다가, 마침내 육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씀한 것입니다.
3.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이란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한 것인데, 이 부활은 예수님이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신 무죄하신 분이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본성상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신성을 말씀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란 명칭에서 ‘예수’는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키고, ‘그리스도’란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4. ‘기억하라’(Μνημόνευε:remember)가 맨 처음에 나온 것은 7절에서 ‘생각하라’(νόει:consider)는 말이 초두에 나온 것과 같습니다.
즉 7절에서는 디모데에게 바울의 교훈을 생각하라고 했고, 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기억하라고 했습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최후를 바라보고 있는 바울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바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디모데가 기억하고 의지해야 할 분은 바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죄인 구원을 이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모든 고난을 견디고 있습니다.
9절.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ich I suffer hardship even to imprisonment as a criminal; but the word of God is not imprisoned.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ἐν ᾧ κακοπαθῶ μέχρι δεσμῶν ὡς κακοῦργος,
in which I suffer hardship even to chains as evil doer
직역하면 ‘그 가운데서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고난을 받았으나’(κακοπαθῶ)는 현재형으로서(I suffer hardship) 현재 고난을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한글번역은 과거로 번역했으나 현재로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ἀλλὰ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οὐ δέδεται.
but the word of the God not has been bound
‘매이지 아니하니라’에서 동사(δέδε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has been bound) 과거에도 매이지 않았고 지금도 매이지 않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복음으로 말미암아’(ἐν ᾧ)란 ‘그 안에서’(in which)란 뜻인데, 앞 절의 ‘나의 복음대로’(κατὰ τὸ εὐαγγέλιόν μου: according to the gospel of me)와 연결지어서 ‘복음 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로 번역한 것입니다.
2. ‘죄인’(κακοῦργος: criminal)이라는 단어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를 가리키는 낱말이었습니다. (눅 23:32-33)
그러므로 이때 바울은 중죄인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로마 감옥의 1차 투옥 때(61-63년)는 바울이 복음 때문에 유대인의 시기를 받아 투옥된 것임이 분명하게 밝혀진 상태였습니다(빌 1:13).
그래서 바울에게 셋집에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었고, 다시 석방될 희망이 컸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 2차 투옥 때(66-67년)는 로마의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불을 질러놓고,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면서, 기독교인들은 미신자들이고, 사람을 잡아 피를 흘려 잡아먹고, 음행하는 자들이라는 형사적인 죄를 씌워서 몹시 핍박하던 때였습니다. (Suetonius, Nero 16)
3.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 하니라’는 말씀은 바울은 비록 로마 감옥에 매여 있지만, 복음 전도는 옥중의 바울을 통해서나 감옥 밖의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자는 갇히고 죽을 수 있으나, 성령님은 살아계셔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세상 끝까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전도를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죽을지라도, 디모데와 같은 제자들을 통해서 복음 전파와 말씀 가르치는 사역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디모데만이 아니라, 누가, 디도, 실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 수 많은 바울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복음 사역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2절에 말씀한 제자훈련은 중요합니다.
디모데후서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나와 닮은 자녀를 기를 뿐만 아니라, 나와 닮은 영적 자녀를 길러야 하겠습니다.
10절.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I endure all things for the sake of those who are chosen, so that they also may obtain the salvation which is in Christ Jesus and with it eternal glory.
그러므로 내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διὰ τοῦτο πάντα ὑπομένω διὰ τοὺς ἐκλεκτούς,
because of this all I endure for the elect
직역하면 ‘이것 때문에 택한 자들을 위해서 내가 모든 것을 참고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 있다’(ὑπομένω)는 현재형으로서( I endure) 현재 참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ἵνα καὶ αὐτοὶ σωτηρίας τύχωσιν τῆς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μετὰ δόξης αἰωνίου.
so that also they salvation they may obtain that in Christ Jesus, with glory eternal
‘그들도’(αὐτοὶ:they)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받게 하려 함이라’(τύχω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they may obtain) 확실히 받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1. ‘그러므로’란 ‘이것 때문에’(διὰ τοῦτο: because of this)라는 말인데, ‘바울의 매임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도는 진전될 것이기 때문에’란 뜻입니다.
2. ‘내가 택함받은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이란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극한 고난들을 참고 견디는 이유가 ‘택함받은 자들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택함받은 자들’이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구약시대는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으나(신 4:34-7), 신약에서는 유대민족을 초월하여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엡 1:4, 롬 9:24, 행 26:20)
여기서 ‘택함받은 자’란 택함받아서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만이 아니라, 택함받아 장차 예수님을 믿을 사람도 가리킵니다.
즉 이미 믿고 있는 성도들은 바울의 투옥과 인내를 보고 힘을 얻어 궁극적인 구원에 들어가고, 장차 믿을 사람도 바울의 태도를 보고, 예수 믿고 영생이 확실함을 믿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하여튼 바울이 고난이 극심한 옥중에서도 모든 역경을 참고 가는 이유는 택함받은 자들을 격려하여 그들이 믿음을 고수하고, 장차 영광스러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당하고 있는 상황’이 의미가 있을 때 끝까지 견디어 나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이란 성도들이 이 구원을 현재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며, 또한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과 함께 온전히 누리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4. ‘영원한 영광’이란 잠시 있을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성도들이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영광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애굽 왕 바로가 주는 모든 부귀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선택했고, 바울은 유대 나라 통치자인 대제사장이나 총독이나 로마 황제가 주는 자유와 영광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장차 받을 영광만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들이 받을 영광을 위해서 현재의 고난을 참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바울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11절.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t is a trustworthy statement: For if we died with Him, we will also live with Him;
미쁘다 이 말이여.
Πιστὸς ὁ λόγος·
trustworthy the word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εἰ γὰρ συναπεθάνομεν, καὶ συζήσομεν·
if for we died together, also we will live together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함께 죽었으면, 또한 우리가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죽었으면’(συναπεθάνομεν)은 부정과거로서(we died together) 과거에 (그리스도와 함께) 확실히 죽은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함께 살 것이기 때문이다’(συζή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live together) 장차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을 가리킵니다.
1. ‘미쁘다 이 말이여’란 어구는 목회서신에 종종 등장합니다( 딤전 1:5, 3:1, 4:9).
‘미쁘다’는 말은 참으로 신뢰할 만하다는 뜻입니다.
본 절에는 ‘왜냐하면’(γὰρ:for)이란 말이 있어서 11-13절에 언급할 내용이 신뢰할 만한 말들이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 11-13절에는 4가지의 댓구 (①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②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③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④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가 나오는데, 이것은 원래 세례받을 때의 신앙고백이었는데, 나중에 찬양으로 불렸던 것입니다.
2. 첫째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주와 함께 살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신뢰할 만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례(침례)받을 때, 우리가 물속에 잠겨서 주와 함께 죽었고, 물에서 나올 때 주와 함께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롬 6:3-8),
로마서 8: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과거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우리 옛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 믿은 후로는 주님(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처럼 ‘주와 함께 살 것이라’는 말씀은 장차 부활할 것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주님(성령님)을 모시고 날마다 새 생명 가운데서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롬 6:4, 8:9-14)
뿐만 아니라 ‘주와 함께 살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장차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12절.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we endure, we will also reign with Him; If we deny Him, He also will deny us;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εἰ ὑπομένομεν, καὶ συνβασιλεύσομεν·
if we endure, also we will reign together
직역하면 ‘만일 우리가 참으면, 또한 우리가 함께 왕 노릇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참으면’(ὑπομένομεν)은 현재형으로서(we endure) 현재 참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συνβασιλεύ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reign together) 장차 우리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εἰ ἀρνησόμεθα, κἀκεῖνος ἀρνήσεται ἡμᾶς·
if we will deny, He also will deny us
직역하면 ‘만일 우리가 부인할 것이면, 그도 역시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인할 것이면’(ἀρνησόμεθα)은 미래형으로서(we will deny) 미래에 우리가 부인할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부인하실 것이라’(ἀρνήσεται)도 미래형으로서(will deny) 장차 부인할 것이란 말입니다.
1. ‘참으면’(ὑπομένομεν)은 현재형으로서(we endure) ‘현재 당하고 있는 로마의 핍박을 계속 잘 참으면서 신앙을 지키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왕노릇 한다’(συνβασιλεύ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reign together) 장차 주님 재림시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 할 것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핸드릭슨’(Hendricksen)이라는 학자는 예수님이 선지자직과 제사장직과 왕직을 가지셨는데, 앞의 두 가지 직분은 세상에 계실 때 이루어졌고, 왕직은 성령님이 임재하신 후에 성도들이 현 세상에서도 누리게 되는 왕 노릇을 가리킨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튼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해 계시고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 모든 일이 형통케 되는 왕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이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5)
2.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시리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마 10:32-33).
이 말씀도 로마 황제의 박해 속에서 성도들이 주님을 부인하지 말라는 말씀이고, 실제로 주님(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인간의 힘이 부족할지라도 죽기까지 주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을 모시는 사람은 주님을 구주로 시인하게 되고(고전 12:3), 입술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한 사람은 영생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롬 10:9-10), 현 세상에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보잘것없고 우리의 마음이 연약하지만, 성령님과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신실하셔서 결코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고( 다음 13절), 우리를 반드시 천국에까지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로마서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할렐루야!
13절.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we are faithless, He remains faithful, for He cannot deny Himself.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εἰ ἀπιστοῦμεν,
if we are faithless
‘미쁨이 없을지라도’(ἀπιστ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are faithless) 우리는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주는 항상 미쁘시니
ἐκεῖνος πιστὸς μένει,
He faithful remains
직역하면 ‘그는 신실함에 머물러 있으시다’라는 뜻입니다.
‘머물러 있으시다’(μένει)는 현재형으로서(remains) 언제나 신실함 가운데 머물러 계심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ἀρνήσασθαι γὰρ ἑαυτὸν οὐ δύναται.
to deny for Himself not He is able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부인하는 것을’(ἀρνήσασθ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eny) 단호하게 부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에서 동사(δύναται)는 현재형으로서(He is able) 언제나 부인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란 인간 본성은 나약해서 박해와 같은 고난을 당하면, 쉽게 주님을 부인할 수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는 인간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성령님을 모시고, 고난과 희생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2. ‘주는 항상 미쁘시다’는 뜻은 비록 우리가 나약하지만, 우리가 모시고 사는 성령님은 항상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주님께 오는 자를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요 6:37).
그리고 어떤 환난이니 핍박도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도 하셨습니다. (롬 8:39)
바울 사도는 궁핍과 비천한 환경에 대해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빌 4:12-13)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히13:8),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마 28:20),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갈 때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히 4:16).
우리 주님은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요 14:16).
3.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에 신실하시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아담과 인류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아담의 자손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범죄자는 죽음이라’는 약속을 스스로 지키시고, 죄인 된 인류를 속죄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고, 성도들의 보호자 되시는 성령님이 언제나 영원토록 함께 하시고, 어떤 환난과 핍박과 고난도 이길 수 있게 하신다는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열심히 기도하시고, 성령 충만하셔서 시마다 때마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 모시고, 항상 마귀를 물리치고, 어떤 역경 속에서도 승리하고, 복된 가정과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