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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4절부터 13절 생명의 빛 예수님
1. 오늘 말씀은 세 가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이 세상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물려서, 온갖 죄악을 행하면서, 모두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께서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4절.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어두움을 밝게 비추고, 죄로 죽어가는 인생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1. 예수님은 어두움을 밝게 비추고, 사망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을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 분 안에 빛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모든 인류의 빛이었다. (In him was life, and that life was the light of all mankind.)
New Living Translation: 이 말씀은 창조된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주었고, 그의 생명은 모든 사람에게 빛을 가져다주었다. (The Word gave life to everything that was created, and his life brought light to everyone.)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In Him was life,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ἐν αὐτῷ ζωὴ ἦν,
In Him life was
‘있었으니’(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 그 분(예수님) 안에 생명이 계속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καὶ ἡ ζωὴ ἦν τὸ φῶς τῶν ἀνθρώπων
and the life was the Light of men
직역하면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는 뜻입니다.
‘이라’(ἦν)도 역시 미완료과거로서 그 생명이 계속 사람들의 빛이었음을 의미합니다.
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1) <그>란 <말씀>을 가리키며,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생명>이란 단어(ζωὴ, life)는 죽음과 반대어로서(요5:24) 하나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누리는 가장 고귀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이 ‘생명’이란 단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의 삶을 가리키지 않고, 신령하고 가장 고귀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런 최고의 생명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이 생명을 인간에게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시편 36편 9절에도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다>고 했습니다.
2.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 <빛>이라는 단어(τὸ φῶς. the light)도 별빛이나 등불 빛 같은 자연적인 빛이 아니라, 정관사가 붙어서, 특정한 빛 즉 신령하고 유일한 빛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말씀처럼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합니다.
그러므로 어둠과 죽음에 빠진 인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생명과 빛을 얻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2)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생명이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요한복음 6:57. 예수님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9:5.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처럼 요한복음에는 ‘생명’이란 단어가 54회, ‘빛’이라는 단어가 23회나 사용되어 강조되어 있습니다.
(3) 예수님은 마귀와 죄악과 사망에게 종노릇하는 우리를 구원시키고 해방시키려고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① 예수님은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사람을 자유케 하시려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흉악하게 귀신들린 거라사인에게서 수천 마리의 귀신들을 쫓아주셔서, 건전케 하셨습니다(마가복음 5:1-20).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누가복음 8:2).
귀신들려 꼬부라진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꼬부라진 것을 고쳐주셨습니다(누가복음 13:11-13).
귀신들려 귀먹고 벙어리 된 사람도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주셨습니다(마가복음 9:25-27).
② 예수님은 죄인들에게서 죄악을 사유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의 죄를 모두 용서하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죄를 용서받은 여인은 아름다운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복음 4장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여인을 죄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수 같은 구원의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죄로 인한 우울증, 대인기피증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하다 현장에서 체포된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③ 예수님은 사망에게 눌려있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4-15.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도 예수님 따라서 부활하고, 영원히 죽음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2. 이처럼, 예수님은 어둠에 빠져 있는 우리 인간에게 생명의 빛이시므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크게 기뻐합니다.
(1)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첫 번째로 영접하며 기뻐한 사람들은 당시에 세상에서 가장 천한 목동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친구처럼 따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죄인, 병든 사람, 압제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 그러나,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사람들을 억압하던 권력가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을 쥔 사람들은 백성들을 압제하고, 착취해야 자기들이 편히 살 수 있습니다.
권력가들이 많은 돈을 가지고 편히 살려면, 누군가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하고 고생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백성들이 거저 일만 열심히 하고, 향락이나 즐기기를 바랍니다.
백성들이 권력가들의 부정과 죄악을 아는 것을 싫어합니다.
(3) 이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영원하신 생명의 빛 예수님은 우리의 참 소망이요, 영원한 기쁨이 되십니다!
주님, 주님이 생명의 빛 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이 어둔 세상에 빛 되셔서,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도 어둔 세상에 빛 되어 섬길 수 있게 해주옵소서!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에서 영광을 취하는 빛이 아닙니다.
주님, 주님처럼 섬기는 빛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생명을 주고, 빛을 비추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성도님들의 섬김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구원 얻고,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의 어두움이 생명의 빛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5절.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New Living Translation: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는데, 어둠이 빛을 결코 끌 수 없도다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can never extinguish it.)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빛이 어둠에 비치는데,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did not comprehend it.)
English Standard Version: 빛이 어둠 속에서 비추고 있고,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했다(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καὶ τὸ φῶς ἐν τῇ σκοτίᾳ φαίνει,
and The light in the darkness shines ,
‘비치되’(φαίνει)는 현재형으로서(shines) 빛이 항상 비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어두움이 깨닫지 못 하더라
καὶ ἡ σκοτία αὐτὸ οὐ κατέλαβεν.
and the darkness it not overcome
‘깨닫지 못 하더라’(οὐ κατέλαβεν)는 ‘이기지 못 했다’( not overcome)란 번역도 가능합니다.
이 동사(κατέλαβεν)의 원형(καταλαμβάνω)은 ‘아래’(down)라는 접두어(κατα)와 ‘붙잡다’(take hold of)의 합성어로서, ‘자기 것으로 만들다’(make it one's own), ‘압도하다’(overtake), 부정과거 중간태에서는 ‘이해했다’(comprehended)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닫지 못했다’ 혹은 ‘이기지 못했다’에서 동사(κατέλαβεν)는 부정과거로서 어둠이 빛을 결코 깨닫거나 이기지 못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직역하면 ‘빛이 어둠에 끊임없이 비치고 있는데,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하고(이기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어두움’(ἡ σκοτίᾳ, the darkness)이란 인간이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과 교통이 단절되어, 성령의 교통하심이 없고, 영적으로 깜깜하고, 죽음과 고통이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정관사로 특정해서 어둠의 세력인 마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빛’(τὸ φῶς, the light)이란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져 성령 충만하고, 영적으로 밝고, 생명과 복이 충만한 상태를 가리키고, 정관사로 특정해서 빛 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2) 우리 성경에 <깨닫다>( comprehend)라고 번역된 헬라어 (κατέλαβεν)는 <이긴다>( overcome)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데,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고, 어둠이 이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몇몇 영어성경(NASB, KJV)에는 ‘깨닫지 못했다’(did not comprehend)로 번역했고, 몇몇 영어성경(NIV, ESB)과 여러 한글성경(공동번역, 새번역)에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었다>( did not overcome), 혹은 <어둠이 이 빛을 끌 수 없다>(can never extinguish)고 번역했습니다(NLT, God’s Word).
(3) 여기서 <빛>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예수 믿는 성도들을 빛이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리고 불신 세계는 어둠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2.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세상이 어둡고 깜깜했습니다.
온 세상은 깜깜한 밤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기를 낳는 데도, 여관방 하나 내어주지 않고, 몰인정한 세상이었습니다.
너무나 몰인정해서, 먹고 살 길이 없는데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창녀짓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세리 짓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멸시해서, 함께 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 살았습니다.
베다니에서 살고, 갈릴리에서 살았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부자들만 살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종교적 교권을 가지고, 가난한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헤롯 안디바 왕은 형수를 빼앗아 살았습니다.
참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여성 지도자인 헤로디아와 살로매는 음탕하고 악독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가 불륜스런 일을 했다고 탄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세례 요한을 죽여버렸습니다.
지독히 깜깜하고 어두운 세상이었습니다.
3. 오늘날 세상도 어둡고 깜깜합니다.
(1) 정치하는 사람들의 세계도 어둡습니다.
어떤 통치자는 정권을 강화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억압하고, 죽였습니다.
어떤 통치자는 권력을 이용하여 수 많은 재산을 부정 축재했습니다.
어떤 통치자는 선량한 백성들을 사찰하고, 언론을 조작했습니다.
어떤 통치자는 불량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2) 도적적인 상태도 말할 것 없이, 어둡고 양심과 도덕심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특히 술 먹고 성적인 방탕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가족들 간에 재판을 하고, 살인까지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공자가 길가다가 똥을 싸는 사람을 보고는 그냥 지나갔답니다.
그런데, 뒤로 돌아서 오줌을 싸는 사람에게는 나무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 자로가 의아해서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똥 싸는 놈은 말해도 아예 희망이 없는 놈이다.
그러나, 뒤돌아서 오줌 싸는 사람은 말하면 들을 희망이 있다고 했답니다.
(3) 권위가 무너져서 학교 선생님 하기가 어렵고, 부모 노릇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장난하며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나무라면, 도리어 대든답니다.
선생님이 학생과 싸우기가 민망하여, 교실을 나가면, 뒤에 대고, 욕을 한답니다.
부모로서, 며느리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들 합니다.
아니, 친 자식들의 눈치도 보아야 한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빛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날마다 이 빛을 세상에 비추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빛 되신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성령님의 인도 따라 살아가면, 우리의 말과 행동이 이웃들에게 덕이 되고, 빛이 되고, 선행을 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의 본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6-8절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말씀의 선구자입니다.
즉 이제 <그 말씀>이 시간과 공간 속에 즉 역사 속에 나타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인 현현의 첫 번째 사건은 <그 말씀>이 세례 요한을 통해서 증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은 세례 요한의 인격, 7절은 세례 요한의 사명, 8절은 세례 요한의 본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6절.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There came a man sent from God, whose name was John.)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Ἐγένετο ἄνθρωπος, ἀπεσταλμένος παρὰ Θεοῦ,
There came a man, having been sent from God
‘있으니’(Ἐγένετο)는 단순과거로서 원형(γίνομαι)은 ‘생기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생겼으니’(came)란 뜻입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ὄνομα αὐτῷ Ἰωάνης·
name to him John
1. 그리스도(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모든 증언자들 중에 세례 요한은 최후의 증언자였습니다(마태복음 11:13).
이런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장차 보내시겠다던 엘리야였습니다(말라기 4:5.).
7절.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가 증인으로 왔으니, 그 빛에 대해서 증언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그를 통해서 믿게 하려는 것이다. (He came as a witness, to testify about the Light, so that all might believe through him.)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οὗτος ἦλθεν εἰς μαρτυρίαν,
He came as witness
‘왔으니’(ἦλθεν)는 단순과거입니다(came).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ἵνα μαρτυρήσῃ περὶ τοῦ φωτός,
that he might testify about the Light
직역하면 ‘빛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었고’란 뜻입니다.
‘증언하고’(μαρτυρή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입니다(he might testify).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ἵνα πάντες πιστεύσωσιν δι’ αὐτοῦ.
that all might believe through him
‘믿게 하려 함이라’(πιστεύσωσιν)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입니다(might believe).
1.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은 구약 증언자들의 결론적 증언자였습니다.
그리고 증언의 목적은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은 이 요한복음의 목적이요, 요한의 사명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들이 세례 요한의 증언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증언들이 있습니다.
① 성부 하나님의 증언(5:32), ② 예수님 자신의 증언(14:11), ③ 그가 하신 일이 증언함(5:17), ④ 성경의 증언(5:39), ⑤ 성령님의 증언(15:26), ⑥ 제자들의 증언(15:27)입니다.
바울 사도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했습니다(고린도후서 4:5).
또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절.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는 그 빛이 아니었고, 그 빛에 대해서 증언하러 왔었다. (He was not the Light, but he came to testify about the Light.)
그는 이 빛이 아니요
οὐκ ἦν ἐκεῖνος τὸ φῶς,
not was he the light
‘아니요’(οὐκ ἦν)에서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 ‘그는 빛인 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ἀλλ’ ἵνα μαρτυρήσῃ περὶ τοῦ φωτός.
but so that he might witness about the Light
직역하면 ‘그러나 그는 그 빛에 대하여 증언 하려는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즉 ‘증언 하려는’이란 동사(μαρτυρή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입니다.
1. 세례 요한은 <그 빛>(the Light)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백성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인가 의심할 때,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누가복음 3:15-16.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이처럼 위대한 세례 요한도 백성들이 그리스도로 추앙하려고 했으나,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증언했습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겸손한 태도는 모든 주의 종들이 배워야 할 태도입니다.
걸핏하면 이단자들은 백성들을 미혹하여 추앙을 받으면, 세례 요한과는 달리, 자신이 그리스도요 재림 예수라고 황당한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주의 종들은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9-13절은 <그 말씀>이 세상 사람들과 유대인들에게 빛으로 오신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에 속한 유대 사람들이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빛을 영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9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New Living Translation: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시는 참 빛이신 그 분이 세상에 오고 계셨다. (The one who is the true light, who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세상에 오신 참 빛이 있었는데, 이 빛이 모든 사람에게 밝게 비추고 있다. (There was the true Light which, coming into the world, enlightens every man.)
English Standard Version: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고 있는 참 빛이 세상에 왔었다. (The true light, which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참 빛이—- 있었나니
Ἦν τὸ φῶς τὸ ἀληθινὸν,
was the light the true
‘있었나니’(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 ‘참 빛이 계속 있어 왔다’는 뜻입니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ὃ φωτίζει πάντα ἄνθρωπον,
who enlightens every man
‘비추는’(φωτίζει)은 현재형으로서(enlightens) ‘모든 사람에게 비추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세상에 와서
ἐρχόμενον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coming into the world
‘와서’(ἐρχόμενον)는 현재 분사(coming)입니다.
1. <참 빛>이란 거짓되지 않고 참되며, 완전한 빛을 가리킵니다.
<세상>이란 단어(τὸν κόσμον, the world)는 사람이 사는 땅과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참 빛이요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이 죄악 된 세상 사람들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빛이요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세상 불신 죄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권세를 주셨습니다.
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를 통해서 지어졌지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 (He was in the world, and the world was made through Him, and the world did not know Him.)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ἐν τῷ κόσμῳ ἦν,
in the world He was
‘계셨으며’(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 ‘그가 계속 세상에 계셨음’을 나타냅니다.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καὶ ὁ κόσμος δι’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and the world through Him came into being
‘지은바 되었으며’란 동사(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 ‘존재하게 되었다’(came into being)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직역하면 ‘세상은 그를 통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καὶ ὁ κόσμος αὐτὸν οὐκ ἔγνω.
and the world Him not knew
‘알지 못하였다’는 동사(οὐκ ἔγνω)는 단순과거입니다(not knew).
1. 세상을 창조하신 <그 말씀>이요 <참 빛> 되신 예수님이 세상에 구원을 주시려 찾아오셨으나, 세상 사람들은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단어(ἔγνω)는 남녀가 깊은 교제를 통해서 서로를 아는 것처럼,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깊이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피상적인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만 알고, 창조이시며 구원주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마귀에게 충동당하고 유대교 지도자들에 충동을 받아서,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
New Living Translation: 그 분이 자기 백성들에게 오셨는데, 자기 백성들조차도 그 분을 거절했다. (He came to his own people, and even they rejected him.)
English Standard Version: 그 분이 자기 소유지에 오셨는데, 자기 백성이 그 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He came to his own, and his own people did not receive him.)
자기 땅에 오매
εἰς τὰ ἴδια ἦλθεν,
to the own He came
‘오매’란 동사(ἦ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역사적인 사실을 나타냅니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
καὶ οἱ ἴδιοι αὐτὸν οὐ παρέλαβον
and the own Him not received
‘영접하지 아니 했다’는 동사(οὐ παρέλαβον)는 부정과거로서(not received) 자기 백성들이 예수님을 거절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1. 10절에서 <세상>은 일반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고, 11절에서 <자기 땅>과 <자기 백성>이란 유대 땅과 유대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만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배척한 것이 아니라, 유대나라의 유대인들조차도 창조주시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2. <영접하지 아니 했다>는 단어(οὐ παρέλαβον)는 공식적으로 자기 집으로 한영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불신 세상 사람들이나 유대인들 중에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창조주요 구원주로서 믿은 성도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이방인이나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영접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영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대국의 지도자들이 로마국의 지도자와 함께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New Living Translation: 그러나 그를 믿고 영접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그가 주셨다. (But to all who believed him and accepted him,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English Standard Version: 그러나 그를 영접한 모든 사람, 즉 그의 이름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그가 주셨다. (But to all who did receive him,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영접하는 자
ὅσοι δὲ ἔλαβον αὐτόν,
as many as but received Him
직역하면 ‘그러나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란 뜻입니다.
‘영접하다’란 동사(ἔλαβον)는 부정과거로서 단호하게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He gave to them authority children of God to be
‘되는’이란 동사(γενέσθ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이고(to be), ‘주셨으니’란 동사(ἔδωκεν)는 부정과거로서 단번에 결정적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는 것을 나타냅니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to those believing in the name of Him
‘믿는’(πιστεύουσιν)은 현재분사입니다(believing).
1. 11절의 <영접하다>는 단어(παρέλαβον)와 12절의 <영접하다>는 단어(ἔλαβον)는 서로 다릅니다.
즉 11절의 <영접하다>는 공식적이고 단체적으로 영접하는 것을 가리키고, 12절의 <영접하다>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이나 유대민족이 단체적이고 공식적으로 창조주와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지만,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창조주시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2. <그 이름을 믿는다>에서 <이름>이란 어떤 사람의 인물이나 본성이나 성격이나 그 처신을 전부 가리키는 말입니다.
3. 그리고 <믿는다>는 단어(πιστεύουσιν)는 현재분사형으로서(believing) 계속적으로 믿는 신앙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4. 또한 <자녀가 되는>에서 <된다>는 동사(γενέσθαι)는 소위 부정과거형(aorist)으로서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완성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한번 예수님을 영접하고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단번에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한번 예수님을 구세주로 마음에 모신 성도는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탈락되는 것이 아닙니다.
5.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에서 <권세>란 단어(ἐξουσίαν)는 합법적인 권리를 가리킵니다.
즉 창조주시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믿고 마음속에 영접한 성도들은 합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양자(養子)도 합법적인 상속권을 갖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로 표현할 때, ‘휘오스’(υἱος)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로마서 8:15, 갈라디아서 4:5-6).
6. 예수님을 믿는 사람, 즉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구세주시라는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지금 성령으로 와 계신 예수님의 영을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영을 마음 속에 모셔 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세상 나라 왕의 자녀가 되는 것도 복되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억만장자의 자녀가 되어 수많은 재산을 상속받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얼마나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일입니까?
이 죄악 세상 나라의 자녀가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속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피로써 우리의 죄악을 씻어주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 20:31.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님을 모셔 들이는 사람만이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요한복음 3:5.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 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면서,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 들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미 예수님을 믿으신 성도님들도, 이 시간 예수님을 마음의 왕좌에 모셔 들이시기 바랍니다.
내가 왕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마음의 왕좌에 모셔 들이고 예수님(성령님)의 인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3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 사람들은 혈통에서 나거나 육신의 뜻에서 난 것이나 사람의 뜻에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었다. (who were born, not of blood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οἳ οὐκ ἐξ αἱμάτων, οὐδὲ ἐκ θελήματος σαρκὸς, οὐδὲ ἐκ θελήματος ἀνδρὸς,
who not of blood, nor will of fresh, nor will of man,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ἀλλ’ ἐκ Θεοῦ ἐγεννήθησαν.
but of God were born
‘난’이란 동사(ἐγεννή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입니다(were born).
직역하면 ‘이들은---하나님에게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1. 창조주시요 구원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혈통에서 난 것이 아니요, 육정 즉 성적인 관계로 난 것이 아니고, 사람의 뜻 즉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이나 도덕적인 수양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에서나 인간적인 본능에서나 인간적인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기원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것은 인간적 기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신적인 기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 5-7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불신자들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복음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구세주이시라는 복음을 널리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전도를 통해서 마귀의 자녀로 지옥 갈 불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놀라운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