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열여섯, 열아홉
열아홉까지의 삶은 짧지만, 길고 긴 남은 생의 기저를 이루게 할 시간이 될 것입니다.
미숙했던 저를 성장시킨 건 고등학교 진학 시기부터 지금까지입니다. 이번 기회를 빌려 제가 보내온 그리고 앞으로 지내게 될 그 시간의 뿌리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자 합니다.
시작은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에 두고 있던 16의 ‘나’입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부끄럽고 이미 지나간 순간에 불과하지만 저는 중학생 시절 학년 1등이었습니다. 지금은 공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어떻게 1등이었냐 하면 저는 당시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최선이라는 것은 “내가 지쳐 쓰러지는 순간 그리고 다시는 공부가 하기 싫어지는 순간 그 순간의 막바지가 바로 최선을 다했다.” 라고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중학교 시절 저는 매 순간 스스로를 한계에 두었습니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저는 그것을 대신하여 무언가를 포기해야 된다고 여겼고 그러기에 당시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었습니다. 밥을 굶으며 그 시간에 영어단어를 외웠고 놀고, 꾸미고, 자고 그런 소소한 것들을 극단적으로 줄였습니다. (당시에는 그것들에 가치를 두지 않았기에 제게 제일 포기하기 쉬웠던 것이었습니다. ) 계속해서 벼랑 끝으로 자신을 내몰았고 그럴수록 지치지 않고 달려 나가는 모습에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부는 제게 생의 맥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험에 대해 강박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남들보다 잘해야 된다는 강박이 아닌 그저 시험 문제를 틀려서는 안된다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 강박들은 제가 시험에 앞서게 되면 불안하게 만들었고 시험 당일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시게 되면 구토를 하거나 호흡이 가파지고 심장 미친 듯이 뛰어 온몸이 떨리게 되는 등 온 신경들을 곤두서게 하며 예민하게 만들었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싫었지 공부하는 것은 좋았습니다. 그렇기에 순간만 넘어가면 괜찮았습니다.
공부에 열망 넘쳤던 중학생의 저는 어느 순간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계속해서 자신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에 공부 좀 한다고 하는 애들이 진학하는 소위 “명문고”라는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그런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광주의 학원과 가까운 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판단하시기에 저는 그곳에 가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완강한 반대 의사를 꺾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진학신청서에 구례고등학교를 적어 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여태껏 내가 살아 있다고 느꼈던 열정들이 거짓처럼 느껴졌습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학교 하나 정하지 못하는 주체 없는 삶을 위해 내가 공부했던가? 그 동안 제가 이루어 왔던 것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허무해졌고 그 간의 것들을 증명해 줄 그리고 위로해 줄만 한 것은 그 어느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공부는 더 이상 하고 싶지도 해야 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한순간에 목표가 사라졌습니다. 차안대가 사라진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미술을 하고 연기를 하고 공부를 하고 직업을 선택해 나가는데 저는 그 자리에 멈춰서 뱅글뱅글 돌기만 했습니다. 그 때 저에게 남은 건 원망뿐이었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시험에 대한 불안감은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더욱더 심해졌고 17살의 저는 1년을 패배주의 젖어 내가 무엇을 한들 행복해질 수 없고 결국은 외부의 힘에 의해 삶이 결정될 것이라 단념했습니다. 1년 조금 넘게 그런 마인드로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욕심도 불안도 무엇도 남지 않은 무가 느껴졌습니다. 불안도 우울함도 익숙해지는 것인지 삶에 기대라는 것을 하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2학년은 그렇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대해 더 이상 불안 따위 느껴지지 않았기에 마음 편히 (어떻게 보면 한심해 보일 수 있지만) 쉰다는 것을 제대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또 1년이 흐르고 하도 쉬어서 지루해졌을 때 저는 고3이 되었습니다.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간 저는 상처받았던 ‘나’를 치유하고 잊어가며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웠습니다. 포기한 듯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다시 일어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내년이면 사회에 나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무엇을 할 것이냐 걱정들 하시는데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고 목표가 생겼습니다. 제가 금기 시 했던 행동들을 고등학교에 와서 하나하나 깨뜨리면서 알게 됐는데 무슨 짓을 하든 과거의 나도 나고 지금의 나도 나니 변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다였습니다. 그. 이는 제게 어떤 고통이 와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고 그 용기가 기반이 되어 저에게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숲이 다 타버렸지만 그 숲은 더 큰 숲을 만들기 위한 바탕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달려보고자 합니다. 저는 그런 저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