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장터
강 동 구
봄이 기다려진다.
밭 갈고 씨뿌리고 각종 채소를 가꾸는 재미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쁘게 하는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자식을 키울 때나 가축을 기를 때, 씨뿌린 다음 새싹이 돋아나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크는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이고 행복이다.
행복은 찾으러 다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세상 권세를 다 누리면 행복할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소유욕을 무엇으로 채워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채우는 노력만으로는 결코 행복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단독 주택에 살아보니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봄에서 늦가을까지 행복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약간 넓은 옥상에 조그만 텃밭을 일구었는데 삼월 중순에 뿌린 열무가 어느새 자라 물김치를 담가 먹고 또 씨를 뿌렸더니 열무가 한 뼘이나 자랐다.
상추며 치커리 쑥갓 실파. 시금치 고추냉이는 봄 내음이 가득한 식탁으로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조금 있으면 싱싱한 오이에 들깻잎 풋고추가 쌈장과 함께 나를 유혹할 것 같다. 애호박도 빨리 자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데 자기만 뒤처진 것 같아 밤낮으로 애쓰는 모습이 애달프게 보인다.
사실은 나도 애호박과 빨리 만나고 싶다. 여름 한 철 입맛 없을 때 된장찌개에 애호박 듬성듬성 썰어 넣고 청양고추 몇 개 쫑쫑 다져 넣으면 매콤하고 알싸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거기에 두부와 표고 느타리버섯을 넣어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이면 가출한 입맛이 어느새 돌아와 나와 함께 입맛을 다신다. 애호박을 얄개 썰어 전을 노랗게 부치고 부추에 실파를 얹고 물오징어를 잘게 썰어 부추전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나는 술을 먹지 못하지만. 막걸리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한잔 생각이 간절하지 않을까?
아파트 숲속에 둘러싸인 우리 집은 도심 속에서 농촌을 마음껏 체험하는 호강을 누리고 있다. 내친김에 조금 욕심을 내어본다면 토종닭을 몇 마리 키워 싱싱한 알도 받아먹고 오동통 살찐 씨 암 닭을 백년손님 사위에게 잡아주고 싶지만, 딸을 낳지 못하여 사위가 없으니 딸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부모님도 이미 오래전에 내 곁을 떠나시고 아들 둘은 외국에 살고 있으니 씨 암 닭 잡아줄 손자놈들이라도 오면 좋으련만 언제나 오려는지 기약이 없다. 각종 채소가 자라고 닭이 우는 도심 속의 우리 집을 상상해보니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감돈다. 하지만, 씨 암 닭을 기르는 것은 소음과 냄새로 인해 이웃에게 피해를 줄 것이 자명하여 상상 속에서만 행복을 누리려 한다.
이른 새벽 교회를 다녀오면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옥상 텃밭이다. 하룻밤 사이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어 채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어야 행복한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저녁이 다르게 크고 하룻밤 사이에 쑥쑥 자라는 채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은 잠시 쉬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가 먹고 자고 일상생활을 누리는 중에도 모든, 동식물들을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도 하시며 생육하고 번성케 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초여름 저녁 무렵 옥상 텃밭 옆에는 파티 준비로 분주하다. 텃밭 옆에 설치된 간이식탁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을 방금 뜯어온 상추에 실파와 쑥갓을 얹어 쌈장과 함께 입에 넣으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나는 옥상 텃밭을 아내의 장터라 부른다. 언제나 필요한 것을 내주는 이 장터는 아내가 유일한 고객이다.
아내와 단둘이 즐기는 삼겹살 파티는 어딘가 쓸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파티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외국에 사는 아들과 손자들을 부를 수도 없어 다음번 파티에는 설익은 내 글을 항상 애독해 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지적과 따듯한 격려도 아끼지 아니하시는 애독자 부부를 옥상 삼겹살 파티에 꼭 초대하고 싶다.
아침을 먹으려고 주방에 들어서니 방금 있었던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갔나 살피는데 잠시 후 아내의 손에는 상추와 풋고추 오이 쑥갓이 들려있다. 이십 사 시간 열려있는 아내의 장터는 이 삼 분이면 장을 보고 돌아온다.
어느 산골 마을에 사시는 할머니는 장을 보려면 집 앞에 있는 산으로 가신다는데 거기에는 심지도 가꾸지 않아도 하나님이 키우신 각종 산나물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아내도 찬거리를 마련하려면 옥상 장터로 향한다.
현금도 카드도 필요 없는 장터, 필요한 만큼만 내어주는 아내만을 위한 아내만의 장터다. 이 장터를 열고 보니 농촌에서 전업농을 하시는 농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다.
나는 취미와 즐거움으로 시작한 옥상 텃밭 가꾸기이지만 농민들에게는 그만큼 소비처가 줄어 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 세상은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행복이 어떤 이에게는 아픔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도 좋아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좋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선수가 승리를 위하여 피나는 훈련에 집중하여 우승을 쟁취하면 더없이 기쁜 일이지만 패배한 선수는 얼마나 낙심이 될까?
어디 운동선수뿐이랴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찌 보면 상대방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으니 나도 좋고 너도 좋고 모두가 좋은 그런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옥상 텃밭 장터에 다녀온 아내는 행복한 표정이 역력한 모습으로 밥상을 차리는 아내를 바라보니 나 역시 덩달아 행복해지는데 이 행복을 계속 누려야 할지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할지 솔로몬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
첫댓글 " 애호박과 빨리 만나고 싶다. 여름 한 철 입맛 없을 때 된장찌개에 애호박 듬성듬성 썰어 넣고 청양고추 몇 개 쫑쫑 다져 넣으면 매콤하고 알싸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거기에 두부와 표고 느타리버섯을 넣어 뚝배기에 바글바글 끓이면 가출한 입맛이 어느새 돌아와-"
네- 절대 동감! 거기에 장맛이 좋아야 ㅎ 진솔한 표현, 농사야말로 천하지 대본이지요. 흙은 속이지 않지요.ㅎ
ㅡ좋은 글 읽는데 서너 단락으로 좀 나눈다면 어떨까요.ㅎ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농사짓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요즈음은 장마철이라 수확할게 별로 없습니다.
비가 그치면 싱싱한 풋고추 청량고추 수확하여 회장님께 선물 하겠습니다.
지난번 한번 채소를 많이 주어 잘 먹었는데 ㅎㅎ 감사하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