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그리고 여백이 있는 곳]
발자국 도장
눈이 내리는 이른 아침 금강 변을 걸었다. 뒤 돌아보니 아무도 걷는 이 없는 하얀 눈 위에 내 발자국만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문득, 어릴 적 쌓인 눈길을 열어 주시던 어머니의 고무신 발자국이 생각났다.
60년이 훨씬 지난날의 일이다. 어머니와 기차에서 내리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길을 어머니는 앞서서 걸으셨다. 어머니는 등에 동생을 업고 머리에는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있었다. 내 신발 젖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앞서서 걷는 당신의 발자국 위를 밟고 오라고 하셨다. 쌓인 눈 속에 어머니의 하얀 고무신이 푹푹 빠졌다. 나는 어머니가 남긴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으로 도장을 찍는다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어머니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마중 나오시는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의 발자국 위에도 눈은 자꾸자꾸 내리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삼 학년 무렵 우리 집은 아버지가 지인에게 보증 서 준 것이 잘못되어 가세가 기울었다. 우리 형제들은 대전에서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동안 돈을 받으러 그 사람을 찾아다니셨으나 끝내 돈은 받지 못했다.
남은 가산을 정리해 시골로 이사한 후 어머니는 대전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마을을 다니며 팔아 생계를 이어 가셨다. 그날도 어머니는 장사 나갈 화장품과 옷, 마른오징어, 미역 같은 것을 사 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그 추운 날 나는 왜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떼를 썼는지 모르겠다.
그날 밤, 주무시다가 잠이 깬 어머니는 등잔불 밑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보따리 속에서 마른오징어를 꺼내 주셨다. 늦은 밤까지 공부하고 있는 딸이 안쓰러워서 그러셨겠지만 사정을 잘 아는 나는 어머니가 어렵게 사다 파는 오징어를 냉큼 받아먹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 어머니는 종일 장사 다니느라 고무신 코가 까매져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삭신이 내려앉는 것처럼 몸이 지칠 때까지 장사를 하신 것이다. 그때만 해도 물건 값으로 돈보다는 쌀이나 잡곡으로 받는 일이 허다해 어머니의 보따리는 항상 무거웠다, 여자 몸으로 그 무거운 것을 이고 다니셨으니 몸이 남아날 수 있었을까. 보따리 무게에 짓눌려서인지 어머니는 늘 가슴이 결린다고 하셨다. 그때의 고생 때문에 어머니는 요즘도 가끔 가슴팍을 두드릴 때가 있다.
오래전, 동창회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너는 어머니한테 잘해야 한다.”라고 했다. 어머니가 동창이 사는 마을로 장사를 다니셨기에 어머니의 고생에 대해 잘 아는 친구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께 동생들에 대한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는 말씀을 드렸던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풍족하게 잘해 드린 것도 없으면서 늘 효도하고 있다고 자만하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늘 단단하고 꼿꼿한 모습으로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부쩍 달라지셨다. 가는 세월은, 바람 소리가 날 만큼 빠르게 걷던 어머니의 다리도, 허리도 그냥 두지 않았다. “백세 시대라고 하는데 백세까지 못 살면 억울하잖아. 엄마 백세 까지는 꼭 사 세요.” 그렇게 말해 보지만 백세라야 이제 육 년 밖에 안 남았다.
눈 한번 질끈 감았다 뜨면 십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리는 것처럼 빠르게 느껴진다. 어머니와의 이별의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데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눈 쌓인 길 위에 어머니 고무신 모양의 발자국을 그려 본다. 그리고 그 옆에 내 발자국도 그린다. 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살이 내려 앙상한 것 말고는 누가 봐도 모녀의 발자국이다. 그러고 보면 발자국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것 같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처음으로 걸음마를 배운 것도 어머니한테서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가 걷는 발자국 위를 따라 걸으며 걸음마를 배웠다. 어머니와 나를 연결했던 탯줄처럼 나는 어머니 발자국을 밟고 내 인생을 펼친 것이다.
행여 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웅덩이 빠질까 노심초사하시며 앞길을 내주시던 어머니. 눈뜨면 장사 나가느라 닳아 발가락이 삐져나오던 고무신이 어머니한테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육 남매 키우시느라 당신 몸은 돌 볼 여유도 없이 살아오신 어머니는 이제 지팡이에 의지 할 만큼 노쇠하셨다. 요즈음 어머니는 지팡이 발자국 하나가 더 늘어 발자국이 세 개가 되었다. 지팡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하나, 지팡이에 의지하더라도 내 옆에 오래만 계셔주셨으면 좋겠다.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 이제야 어머니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힘들게 한다고 걸핏하면 어머니의 가슴을 흔들어 아프게 해 드렸던 순간들이 후회가 되어 방망이질을 한다. 열 손가락 중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 어머니한테 자식들은 너나없이 똑같이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구순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자나 깨나 자식들 걱정뿐이신 어머니. 나는 맏이라서 고생만 하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발자국 위에 도장을 찍 듯 따라 걸으며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어머니의 사랑을 내 어이 갚을까. 당신 발은 얼어 감각이 없는 것도 모르고 눈밭에 길을 열어 주시던 어머니. 고무신 속 어머니 발이 얼마나 시렸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강바람이 차다. 오던 길을 되돌아섰다. 눈 쌓인 강가에는 내가 밟고 온 발자국만이 선명하다. 어머니의 고무신 발자국 보다 큰 내 발자국 위에 도장을 찍으며 다시 걷는다.
수필가 이규애
2023년 한국산문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농민문학회 회원
2023년 농민문학 신인상, 제40회 영농생활수기 일반부문 대상, 제6회 노계문학 전국백일장 장려상, 제7회 노계문학 전국백일장 일반부 입선, 제21회 전국 장애인과 함께하는 문예글짓기대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
이메일: prettykyu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