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바위 ▲정상부가 참호처럼 우묵한 591.9m봉, 급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급내리막이 한동안 내려서야 하고 미끄러워 조심해서 내려간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경계석을 지난다. ▲군부대제7탄약 2층초소(약440m) 철망은 좌측으로 가고 철문 앞에서 우측산길로간다. ▲안부를 지나 고사목이 있는 능선을 오른다. ▲방향주의, 475.2m봉에서 좌측으로150m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 버리고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시그널(화살표오류)
|
▲밧줄 쳐진 바위에서 좌측으로 우회하여 진행한다.
▲거대한 기암 좌측으로 우회하여 간다. 좌측으로 지나며 바라본 바위 모습...
▲마루금에서 100m 벗어나 있는 미타사(충북음성군 소이면 비산리 874-2, 시간이 없어 지맥길을 이어간다. 미타사: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630년(신라 진덕여왕 8)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이를 고증할 만한 문헌이나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 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때 각성(覺性)이 의병 3천여 명으로 적군을 물리치자 나라에서 그 공로를 인정하여 크게 중수하였다. 그러나 1742년(영조 18)에 불이 난 뒤 폐사가 되었다고 한다. 1964년 수덕사에 머물던 비구니 명안(明岸)이 중창을 시작하여, 이듬해 4월 8칸의 법당을 세웠다. 이 때 절터에서 고려시대 기와조각과 분청사기·백자 조각이 많이 수집되었다. 1973년에는 경내에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상이 출토되었고, 1976년에는 대형 맷돌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1979년 극락전과 삼성각을 세우고, 1980년에 선방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삼성각·선방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아미타삼존불과 극락후불탱화·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폐사된 절터에 버려져 있던 석조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1964년 충주시에 사는 한 무당(巫堂)이 이 석조불좌상에 대한 꿈을 꾸고는 석불을 가져가려고 산 밑까지 옮겼다가 갑자기 심신이 괴로워져서 운반을 포기하였다고 한다. 그 뒤 산 아래 비산리 마을사람들의 꿈에 석불이 나타나 다시 절터로 옮겨달라고 하므로 마을사람들이 다시 원래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이러한 사연을 들은 명안이 이 절에 머물며 석불을 모시게 된 것이다. 절에서 700∼800m 떨어진 곳에 있는 미타사 마애불상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이곳에서 10시 방향으로 희미한 맥길을 찾아가야 가야 하는데 우측으로 족적이 보여 따라갔더니 알바다. 지맥길로 가면 군부대 앞으로 지나야 하기 때문에 지맥군들이 이곳으로 많이 내려간 모양이다.
▲좌측 도로 위쪽이 지맥길이지만 다시 비산육교에 내려서야 된다. 그래서 큰 특징도 없고 해서 계속 도로를 따라서 비산육교 까지 간다.
▲미타사의 마애불상을 당겨본다. 거대한 화강암 동쪽면에 새겨진 이 마애불은 얼굴과 어깨가 두드러지게 강조되었고 머리가 크며 관모를 썼다. 상호는 풍만하나 눈과 입의 표현이 간략하며 코도 납작하다. 바위 높이는 535cm이고 불상 높이는 405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