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천사의 하늘/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들어가기까지 천사를 둠/ 2-4.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신 하늘의 모형이다(히9:11-12)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기에 두어 그 이름을 섬기게 하고 분향케 하려는 곳이다(역대하 2:6). 곧 이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그 이름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며 그를 모실 수 있을까?
고후13: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말한다.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이다.
히1:3절에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한다.
또 막16:19절에도 “주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말한다.
이처럼 여기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하고, 또 다른 데서는 “예수가 너희 안에 계신가를 너희가 시험해 보라. 만약에 너희 안에 계신 줄 네 스스로 알지 못하면 너희는 버리운자니라”고 한다.
그러면 하늘에 계시다고도 하고, 내 안에 계시다고도 하면 어느 말씀이 맞는 것인가? 하늘에 계시다고 하면, 내 안에는 안 계시다고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그래서 잘못하면 사람들이 예수가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여기서 잘못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사도행전 1장 9절에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리워 가셨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하는 말씀은 예수 이름이 우리 안에 있는가를 알지 못하느냐 하는 말인 것이다.
요1:12절에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한 자 곧 예수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을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이름이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예수 이름이 우리 안에 있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곧 우리는 예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다.
요3:18절에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 말한다.
마귀의 심판은 끝났지만 아직 세상 심판은 남아 있다. 곧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은 것이다. 영생과 영벌이 이 땅에서 결정된다. 또한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 예수 이름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17:11-12절에 예수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주어 그 이름으로 세상에 있는 동안에 보전되게 하옵소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다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그들의 영이 보전되는 자들이다. 성도들 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어떻게 우리 영 안에 모실 수 있는가?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구약에는 성령이 개개인에게 임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만을 받았다.
그들은 성령이 위로부터 역사하셔서 감동을 받았으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 믿는 이들의 영 안에 내주하셔서 그 속에서 감동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을 때 믿음을 갖게 된다. 예수 이름을 믿는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이름을 자기 영 안에 모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 안에 담겨진다. 영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영으로 하지 않고는 영 안에 들어갈 수도 없고 다시 퍼낼 수가 없다.
영으로 들어가서 영으로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성전된 사람의 영 안에 성령의 힘으로 들어와 계신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 이름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섬기는 자요,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요, 그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요, 그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자인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나가라!”하고 귀신을 꾸짖는 것도 내 영 안에 있는 그 이름으로 하는 것이다.
권능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내 영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내 영 안에 모시고 있는 그의 이름으로 귀신을 단호히 저주하고 박멸하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너무나 관념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실질적인 체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이름이 내 영 안에 들어와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버려진 자인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영 안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시고 그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을 깨닫고 이것을 당신의 영 안에 새긴다면 당신은 능력 있는 믿는 자로 변화될 것이다.
처음에 모세를 통하여 광야에 성막을 지었다가, 그다음에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고, 그 후 우리 안에 성전을 세웠다. 이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둔 하늘의 모형이다.
성전 동쪽에 문이 있다. 동쪽 문으로 들어가면 번제단이 있고 번제단을 지나면 물두멍이 있고 그다음에 성소가 있는데, 성소 안에는 금등대가 있고, 떡상이 있고, 그다음에 금향로가 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을 지나면 법궤가 있는데 여기는 죄를 떨쳐버리는 곳이다.
바로 은혜를 받는 곳이다. 법궤는 달리 언약궤, 증거궤라고도 한다. 이렇게 성전은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모시는 곳이다. 먼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다음에 우리가 성전이 되어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는 것이다.
마치 회개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들어가는 하나의 문과 같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품에서 나오셔서 하늘로 들어가실 때 이러한 현관을 통해서 들어가신다. 마침내 이 문을 들어가서 휘장을 통과하여 영원한 저 하늘 성소로 들어가시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의 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회개 없이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고, 섬기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들어갈 수 없다. 이 성전은 하늘의 모형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었기에 성전은 하늘의 모형이다.
히9:11-12절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늘에 들어가셨다. 곧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들어가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늘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과 같이 성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우리 영 안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것이다.
하늘의 모형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소가 바로 하늘의 모형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성소의 모형이다. 지금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그분의 이름은 우리 안에 계신다.
히브리서 9장 24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라고 말한다.
사람이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 곧 보좌에 올라가셨다. 그는 참 것의 그림자인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에 들어가셨다.
히10:19-20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마치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휘장이 열리듯이 휘장이 열렸다고 말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가 찢어지는 것은 휘장이 열리는 것이다.
그 열려진 길로 우리는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라 함은 상징적인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신 지성소이기 때문이다.
고전3:16-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성전이란 지성소를 말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지성소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다. 너희 영이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다.”라는 것이다.
요17:11-15절은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곧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들에게 주어 저희들을 지키어 주옵소서. 나는 아버지께로 가오며 저희들은 세상에 있게 될 텐데 내게 주셨던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저희들을 보전하여 지켰습니다. 내가 갈지라도 이 이름을 저희에게 주어 이 이름으로 저희들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보전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한 것이다.
예수 이름을 주어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우리들에게 준 것은 당장 데리고 가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동안에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기 위함이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신 전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집이란 뜻이다. 성막은 과거에 광야에 지은 성전을 가리킨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은 이 예배당을 성당이라 하여 성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성도와 공회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할 때 이 「공회」라는 것은 본래 가톨릭 성당을 의미한다. 가톨릭은 성당 중심으로 건물을 짓는다. 성당을 높고 뾰죽하게 짓고 내부에는 기둥을 잔뜩 세우고, 으리으리하고, 찬란하게 해 놓는다.
가톨릭은 성당에 들어갔다 오는 것으로 거룩하다 하여 성당을 거룩하게 본다.
이와 대조적으로 개신교는 성전 중심의 신앙이 아니고 교회 중심, 곧 회중 중심의 신앙이다. 그래서 건물을 짓더라도 회중을 우선 생각하여, 회중이 예배하기 편리하고 신앙 생활하기 편리하게 교회 중심으로 예배당을 짓는다.
개신교는 교회 중심이고 회중 중심이다. 개신교는 제사 중심이 아니고 메시지 중심이기 때문에 메시지를 듣는 데 편리하도록 여러 가지 음향 시설이라든가 회중의 자리 배치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들도 교회를 성당같이 짓는 경우가 많다.
마치 성당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처럼 개신교도 성전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신교들이 가톨릭의 성당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로, 이는 불러, 모아, 택했다는 뜻이다. 곧 조합된 공동체가 교회이다. 교회는 교회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을 말한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우리가 성전이요~
교회는 예수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