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 중 하나이자,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원리인 '대속(代贖, Substitution)'의 정의와 의미를 신약성경 속 5가지 구절을 바탕으로 감동적인 일화와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대속(代贖)'의 정의
단어의 특징: '대속'이라는 단어 자체는 성경에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 흐르는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핵심 의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범죄하고 버림받은 죄인의 자리를 대신 취하셔서(대신 죽으셔서),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오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은혜를 뜻합니다.
2. 성경 구절로 보는 대속의 5가지 측면
이 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주셨다(버리셨다)"고 표현된 신약성경의 5가지 구절을 통해 대속의 다채로운 의미를 설명합니다.
① 개인을 위한 대속 (갈라디아서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요약: 대속은 철저히 개인적인 사건입니다.사도 바울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삶이 통째로 바뀐 것처럼, 신자는 "주님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일인칭의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 미네소타 주에서 이사야 53장 5절의 '우리'를 '나'로 바꾸어 읽고 눈물로 구원받은 소녀 '진'의 일화가 이를 증명합니다.)
② 인류 전체를 위한 대속 (에베소서 5:2)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요약: 주님의 대속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온 세상의 모든 '우리'를 위해 자신을내어주신 무한한 사랑의 희생입니다.
③ 교회를 향한 사랑의 대속 (에베소서5:25)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요약: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 사형 선고를 받은 아내를 대신해 제국의 군주 고레스 앞에 목숨을 내놓으려 했던 페르시아 장군의 일화처럼, 주님은 교회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신 진정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④ 죄와 세상으로부터의 구출을 위한 대속(갈라디아서 1:4)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요약: 대속의 목적은 과거의 죄 사함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신자가 더 이상 사단의 권세와 악한 세상 풍조에 종노릇하지 않고, 이 땅에서 자유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⑤ 모든 사람을 위한 완전한 속전 (디모데전서 2:5-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주셨으니"
요약: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 범위를 인간의 신학(예: 제한 속죄론)으로 좁혀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명백히 '모든 사람'을 위해 속전(몸값)을 치르셨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완벽히 만족시켰으므로,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3. 결론 및 권면: "믿음의 권리를 행사하라"
링컨 대통령이 준 연금 수표를 액자에만 넣어둔 채 굶어 죽어갔던 남북전쟁 노병의 일화처럼, 대속의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약정서(성경)를 소유한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믿음의 결단과 행사'를 통해 실제적인 구원의 풍요함을 누려야 합니다.
💡 한 줄 요약
**대속(代贖)**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나, 우리, 교회)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신 사건이며, 이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일인칭('나')의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죄와 심판에서 건짐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대속(代贖)
여기서 설명하고자 하는 단어는 사실 성경에 없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대속”(Substitution)이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그 진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은혜로 가난하고 버림받고 범죄한 죄인의 자리를 취하사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비의 손을 펴사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의 이름으로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자를 구원하실 수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느 특정 구절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분이 “자기를 주셨다"는 표현이 나오는 구절을 신약성경에서 적어도 다섯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구절들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분이 자기 몸을 주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고백이 얼마나 개인적인 것인지 주목하십시오. 전에 하나님의 백성을 모질게 핍박한 자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였던 바울이 어느 날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죽은 분이 그를 위해 거기 달리셨으며, 그를 대신했으며, 사랑으로 인해 그 수치스런 죽음으로 나가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다소사람 사울의 마음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가 흘러 넘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가 마치는 날까지 그는 그토록 자신을 사랑하신 그분에 대한 사랑을 힘써 증거하는 데서 최고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분에 대해 그가 어떻게 표현하는지 주목하십시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것이 대속입니다.
어떤 이들은 "대속(代贖)"이란 말이 성경에 나오지 않으므로 그 진리가, 그 사실이 성경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죄(atonement ; 贖罪)를 대속이 아닌 다른 뜻으로, 예컨대 실제 본(example)을 통한 속죄 내지 화목케 하는 사랑에 의한 속죄로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들을 통해 그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여주는 까닭에 사람들로 하나님께 경배드리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대속의 진리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갈보리에서 일어난 일은 대속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스럽고 영원하신 아들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사람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한 가련하고 곤고한 죄인이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거기 달리신 복스런 구주를 주목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저기 달리셨습니다. 내 죄가 주님을 저기 달리게 했습니다. 주님이 어두움 속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것은 나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대속주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나 자신이 그분의 사랑을 입은 데 감사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안에서 베푸신 은혜의 선물을 소수의 무리에게 한정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것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들이 구원받았든 구원받지 않았든 온 세상을 둘러보며,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입각해서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당신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당신이 종교에 관심이 많든 아니면 그런데 관심 쏟을 시간이 전혀 없든, 나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버림받은 상태에 처한 우리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갈보리 십자가로 나가셨습니다. 그것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것입니다. 그는 수세기 후를 내다보고 믿음으로 갈보리 현장을 바라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수년 전에 미네소타 주의 어느 마을에 집회를 하러 간 일이 기억납니다. 아내와 그 당시 어린 꼬마였던 큰아들이 나와 함께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키 큰 스코틀랜드 분이 우리를 마중 나왔습니다. 그분이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저의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저의 집에서 잠시 쉬신 다음 길 건너 멕켄지 부부 댁에서 식사하실 겁니다." 우리는 그의 집에 가서 여장을 풀고 식사하러 멕켄지 부부 집으로 갔습니다. 주일날 오후 어느 가족을 방문했는데 거기에는 아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우리 딸아이 진(Jean)을 위해 기도해주시겠어요? 그 아이는 길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왠지 주님께 나아오려 하지 않아요. 자기는 아직 어리다고 하면서 믿음을 갖기 전에 실컷 자유를 누리고 싶대요." 우리는 그 아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대형천막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아이가 뒷자리에서 열심히 말씀을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쯤 나는 그 아이가 초청을 하면 앞에 나올줄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나갔습니다. 나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나온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 후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보니 아내가 성경을 펴고 그 아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나를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여보, 이리 좀 오세요.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중인데 진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함께 앉아서 "진, 너 복음을 알고 있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요, 안다고 생각해요" 진이 대답했습니다.
"복음이 뭐지?"
"예,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거지요."
“내가 이사야 53장을 보여주는 중이에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이 펼쳐 있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자 봐봐, 네가 여기 있잖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진, 알지 못하니?
그리스도께서 너를 위해 죽으셨어.
그분이 너를 대신하셨어.
그분이 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셨어."
"거기 그렇게 써 있는 것은 알아요." 진이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내 자신이 그 말씀을 붙들지 못하겠어요. 나를 가리켜 하는 말씀 같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함께 무릎 꿇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십자가의 대속 사역의 진리를 진에게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내가 진에게 말했습니다. “진, 우리가 여기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동안 이 말씀을 네가 직접 읽어보겠니? 성령께서 네가 그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도록 우리가 기도할께." 곧 진이 직접 그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진이 말했습니다. “예, 알아요. 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
내가 말했습니다. “아마 이번에는 좀 다를 거야. 한번 대명사를 일인칭으로 바꿔서 이렇게 다시 읽어봐. '그가 찔림은 내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내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진이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내 허물을 인함이요." 진은 읽기를 멈추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는 눈물을 훔치고 계속 읽었습니다. "그가 상함은 내 죄악을 인함이라." 그리고 다시 멈춘 다음 또 읽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그런 다음 아주 크게 소리질렀습니다. “아, 그래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어요!"
그 순간 빛이 그 아이의 어두운 마음에 비친 것입니다.
그 아이는 주 예수님이 자기의 대속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이 그 아이를 대신하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진은 집에 가서 어머니께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진은 이제까지 어머니가 창밖에 서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듣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진은 현관을 열고 정원을 뛰쳐나가 한쪽 곁에 선 어머니를 보고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나 구원받았어요.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어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요. 우리 모두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요! 그것이 대속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진수(眞)입니다.
한 가난한 흑인 여성이 남편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디나, 당신은 항상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데 '속죄(贖罪)'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요.” 그녀가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여보, '속죄'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요. 그건 이런 뜻이지요. '주님께서 죽으셨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주님께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이어서, 그분이 자기 몸을 내어주신 특별한 무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25절에서 우린 이런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우리가 하늘 본향에 이를 때, 주님의 보혈로 하나님의 것이된 우리가 우리의 하늘 신랑 앞에 흠 없이 나타날 때, 우리는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막강한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장군 중 한 사람에 대한 일화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의 장군 중 하나가 전쟁에서 집에 돌아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가 없는 동안 그의 아내가 반역죄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그날이 재판날이었습니다.
그 장군은 서둘러 고레스의 법정을 찾아갔고 군병들이 그의 사랑하는 아내를 끌고 들어왔습니다. 그 가련한 여인은 창백하고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그녀에 대한 기소에 하나 하나 답변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가까이 서서 바사의 통치자가 엄숙하게 사형을 선고하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목을 베려고 그녀를 형장으로 끌고 가는데 갑자기 그녀의 남편이 달려나가 제국의 군주 발아래 엎드리며 호소했습니다. “폐하, 아내 대신 제가 죽겠습니다. 제 생명으로 아내의 생명을 대신하겠습니다. 저를 죽여주시고 아내는 살려주십시오."
고레스가 그를 내려다보고 아내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에 감명 받아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게다가 그 신복이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를 기억하고 그의 아내에게 사면을 내렸습니다. 그녀는 완전한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법정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폐하께서 사면을 내리실 때 그 인자한 눈빛을 보았소?"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폐하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요. 제가 바라볼 수 있었던 얼굴은 저를 위해 기꺼이 죽고자 한 사람의 얼굴뿐이었어요."
오, 우리가 본향에 이를 때, 우리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의 얼굴을 뵈올 때, 얼마나 우리 마음이 그분을 찬미할는지요!
얼마나 그분 앞에서 즐거워하며 이렇게 고백할는지요!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죽으신 것은 다만 우리를 우리 죄에 대한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함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죄의 권세와 오염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내시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것은, 다만 우리의 지난 죄가 사함 받게 하거나 앞으로 그분 앞에 의롭다함 받은 상태로 서게 하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로 더 이상 사단의 권세에 종노릇하지 않고, 자유자의 상태로 이 땅에서 주 예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최근에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된 당신에게 강조하고 싶은 진리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어린 그리스도인들이여,
자신이 지옥에서 구원받은 것을 아는데 만족하지 마십시오. 물론 그것도 복스런 사실이지만,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죄로부터 건짐 받고 온전한 삶으로 그분께 영광과 찬미를 돌릴 수 있도록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힘쓰십시오.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지 모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고, 우리 죄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 그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고 믿나요? 그분이 그렇게 자신을 주셨을 때는 결국 선택된 특별한 무리만을 염두에 두신게 아닐까요? 만일 우리가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그분께 나가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 뭔가 해주실 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으로 디모데전서 2장 5-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범위를 좁히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지 마십시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말씀에는 '택함 받은 자들'이란 표현이 숨겨져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해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고 계시며, 그분의 말씀은 말씀 그대로를 의미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고 기록하실 때, 그분은 우리가 그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프린스톤 신학교가 소위 "제한 속죄론"을 엄숙히 고수하고 있던 시절 그 신학교의 한 교수에 관한 일화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그 교수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교수님, 우리 신학교는 속죄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지요?" 교수가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우리는 모(某) 박사의 입장을 취하고 모박사의 신학을 가르치지요. 그 박사는 제한 속죄, 즉 그리스도께서 택함 받은 자만을 위해 죽으셨다는 이론을 가르쳤지요."
학생이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코네티컷 주의 뉴헤븐 신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지요?(이 당시만 해도 뉴헤븐 신학교는 매우 건전했다.) 테일러 박사의 신학은 어떤 거죠?" 교수가 대답했습니다. "거기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가르치지요."
그러자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저는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겠어요. 성경이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것은 테일러 박사의 신학이나 뉴헤븐 신학교의 교리가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당신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주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 위에서 범죄한 인류를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의 모든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고 그분의 거룩한 성품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킨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사역을 근거로, 온 세상의 가련한 죄인 중 그리스도께 나아와 믿음을 고백하는 이들은 누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근거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속죄의 교리입니다. 그 복스런 책에는 그 외에 다른 속죄 이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믿음을 고백할 책임을 수행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 믿음을 행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한 노병이 입에 풀칠할 것도 없는 극빈 생활을 겪는 모습이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시 관계자들이 찾아가 보니 너무 비참한 상태라서 시 외곽의 구빈(救貧) 농장에 데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의 집을 둘러보다가 한 직원이 벽에 뭔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림도 아니었고, 어떤 서류 같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떼어 들여다보고는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요?"
가난한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직접 내게 보내준 건데, 그의 서명이 있어서 그냥 보관해둔 거예요." 알고 보니 그것은 수표였습니다. 액수가 얼마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오래 전에 대통령이 직접 서명해서 그 노인에게 보내준 연금 수표였습니다. 그 가난한 노인은 그것을 현금으로 바꾸는 대신 액자를 만들어 벽에 걸어둔 채 놔두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는 점점 가난해졌고 결국 구빈 농장에 들어갈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 수표는 비록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유효해서 그 노인은 죽을 때까지 정부의 연금을 받으며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기록한 약정서를 소유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직접 그분께 나아와 그분을 당신의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 약정서를 현금으로 바꾸십시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贖錢)으로 주셨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