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를 입은 영남과 호남의 백성을 위유하는 윤음慰諭嶺湖被災人綸音〕
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아! 부덕(不德)한 내가 외람되이 어렵고 중대한 자리를 이어받아 밤낮으로 삼가고 두려워하면서 감히 나태해하지 않았다. 오직 다스림이 사람들의 뜻대로 되지 않고 은택이 아래에까지 도달하지 못하여, 하늘의 보살피는 뜻에 보답하지 못하고 뭇 백성들이 사랑하며 받들어주는 마음에 부응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면서 밤낮으로 국사(國事)에 힘을 쏟아 온 생각이 여기에 있었다.
지난봄과 여름 이래로 기후가 고르지 못해 농사가 어려울 것을 몹시 걱정하며 불안해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여러 도(道)의 작황이 추수를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을 거의 위로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태풍과 폭우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여 영남(嶺南)이 가장 크게 피해를 입었고 호남(湖南) 역시 재해를 입었다고 보고해왔다. 물에 빠지고 깔려죽은 백성과 떠내려가고 무너진 가옥이 천백(千百)을 헤아리며 배와 염분(鹽盆 소금 굽는 가마) 등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죄다 사나운 바람에 부서지고 큰 물결에 휩쓸렸다고 한다. 놀랍고 끔찍한 보고가 끊임없이 이르니, 이 무슨 까닭이며 이 무슨 재이(災異)란 말인가.
나쁜 기상이 이른 데에는 필시 초래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조용히 생각해보건대 누가 그 허물을 책임져야 하겠는가? 이는 진실로 나의 어리석음과 부족한 덕이 황천(皇天)의 남몰래 보살펴주는 인자함과 조종(祖宗)의 묵묵히 도와주는 은혜를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마침내 죄 없는 백성들을 이처럼 온갖 재앙에 걸리게 하고도 구제하지 못한 것이다. 두렵고 부끄럽고 비통한 내 마음을 또 어찌 감히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풀 수 있겠는가.
아아! 이 백성들은 우리 조종의 열성(列聖)께서 사랑과 고생으로 길러서 나에게 맡긴 적자(赤子)들이다. 이들은 평상시에 설령 가뭄과 홍수의 걱정이나 굶주림의 고통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 년 내내 부지런히 일을 해도 늘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식을 기를 양식이 부족하여, 열 식구의 생활에 세금을 내고 군포(軍布)를 바치고서 여분이 있기를 기대하지 못한다.
풍년이 든 해에도 오히려 초라한 몰골이 가여울 지경인데, 큰물과 거센 파도에 물고기나 자라와 짝이 될 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허름한 집은 물에 떠내려가 폐허가 되고 부녀자와 아이, 젊은이와 늙은이들은 소리치며 이리저리 떠돌고 있으며, 요행히 목숨을 건진 자들도 식구들이 흩어지고 골육(骨肉)이 물에 빠져 죽었으니, 그 슬픔과 아픔을 어찌 차마 형언하겠는가. 만 리 밖의 광경이 눈앞에 선하니 맛있는 음식인들 어찌 달게 먹을 수 있겠으며, 한밤중엔들 어찌 편히 잘 수 있겠는가.
방백(方伯 관찰사)과 수령(守令)은 모두 조정이 은혜를 내리고 백성들이 의지하는 자들이니, 고을을 맡아 다스리게 한 나의 뜻과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방법에 대해 진실로 최선을 다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스런 내 마음을 스스로 놓지 못해 또 위유(慰諭)하는 사명을 내려 특별히 근신(近臣) 가운데 수령으로 나간 자를 차임(差任)하여 군읍(郡邑)을 두루 돌아다니며 나의 ‘여상약보(如傷若保)’하는 뜻을 선포하게 하였다.
물에 빠지고 깔려죽은 자를 건져내 묻어주고 떠내려가고 무너진 집을 엮는 일은 본래 영읍(營邑)에서 구제해 주는 법이 있으니, 반드시 죽은 자들은 땅에 묻히는 은택을 입고 살아있는 자들은 몸을 보호할 편안한 집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저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죽은 생명과 물에 빠진 혼백들이 이리저리 떠돌고 있으니,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나의 마음이 비통하여 벽을 돌며 방황하다가 옛 규례를 따라 제단(祭壇)을 만들어 혼백을 크게 불러 제사하게 하였으니, 저승의 원혼이 아마 원통함을 한 번 풀 것이다.
아아! 너희 백성들은 고난 끝에 살아난 생명들이니 서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은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늙은 부모를 부축하고 어린 것들을 이끌고서 차마 선영(先塋)이 있는 고향을 떠날 수야 있겠느냐. 고향을 편히 여기고 생활을 즐기는 것은 선영이 있는 고을에서 조상의 유업(遺業)을 지키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러니 각자 너희들의 밭에서 농사짓고 너희들의 집터에 집을 지어 길에서 고생하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데 이르지 말고, 너희들의 부모가 되고 너희들을 길러주는 내가 여러 방도로 조처하여 구학(溝壑)에서 건져 편안한 집에 놓아주기를 기다린다면, 이때는 바로 너희들에게는 울음을 거두어 웃게 되는 날이며, 또한 나로서는 남쪽 지방의 근심을 조금이나마 푸는 때가 될 것이다.
변방을 안찰하고 부절(符節)을 나눠가진 신하로 말하면, 누가 감히 나의 지극한 뜻을 체행(體行)하지 않을 것인가. 감면할 만한 요역(徭役)과 줄여줄 만한 세금 등 백성을 편하고 이롭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안에 따라 강구하여 조목별로 나열해 보고하라.
모든 백성들이 제집에서 편안히 살며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게 한 뒤에야 나의 뜻을 선양한 실효(實效)가 되고 위임받은 중책을 저버리지 않는 것임을 각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내가 더 이상 많은 말을 하지 않겠다.
慰諭嶺湖被灾人綸音
王若曰嗚呼。惟予否德。叨承艱大。夙夜祇懼。不敢荒寧。惟恐治不徯志。澤未下究。無以答上天眷顧之意。副羣黎愛戴之心。宵衣旰食。一念在玆。迺者春夏以來。雨暘不均。稼穡之艱。殷憂憧憧。何幸諸路之農形。庶慰望秋之民情。不謂颶風暴雨。發作無時。大嶺之外。最受其害。自湖以南。亦復告灾。民命之渰壓。房屋之漂頹。計以千百。以至舟船鹽盆之屬。爲民生不可闕者。靡不爲獰飆之撞破。洪波之衝捲。驚心慘目之報。陸續而至。此何故也。此何異也。乖氣之致。必有感召。靜言思之。誰執厥咎。良由予寡昧凉德。不能格皇天陰隲之仁。祖宗默佑之恩。乃使無辜之赤子。罹此百凶而莫之救焉。予心之惶愧慘惻。又何敢自寬而自釋乎。嗚呼。斯民也惟我祖宗列聖恩勤鞠育以付予之赤子也。其在平時。藉使無旱澇之憂饑饉之苦。終歲勤動。每缺仰事俯育之資。十口生涯。無望輸租納布之餘。稔年樂歲。尙憐鶉鵠其形。駭浪驚濤。詎意魚鱉爲伍。窮蔀甕牖。蕩爲邱墟。婦孺髫白。呼號宛轉。雖其僥倖而得全者。室家之仳離。骨肉之墊溺。悲哀痛苦。尙忍言哉。階前萬里。森然在眼。玉食其可以甘乎。丙枕其可以安乎。方伯守令。皆朝廷之所眷毗。民庶之所倚賴也。分憂之義。撫字之方。固應靡不庸極。而耿耿予衷。自不能已。又以慰諭使命。特差邇密近臣之出宰者。周行郡邑。宣布予如傷若保之意。凡厥渰壓者之拯瘞。漂頹戶之搆葺。自有營邑賙恤。而必使死者被掩骼之恩。生者得庇身之安。而哀彼巖墻之命水濱之魂。悠揚漂泊。何以慰之。予懷惻傷。繞壁徊徨。式遵故事爲壝。大招以酹之。冥漠幽鬱。庶幾一伸其煩寃耶。嗟爾衆民。遭難餘生也。蕩析離居。勢所必至。而扶老携幼。忍別邱墓之舊鄕。安土樂生。無如桑榟之遺業。其各畋爾田宅爾宅。無至顚連道路。失所彷徨。以俟父母爾字育爾者之多方措劃。免溝壑而置袵席。是爾等回咷爲笑之日。而亦惟予少釋南憂之辰也。至若按藩分符之臣。孰敢不體予至意乎。徭役之可蠲。征斂之可省。凡所以便民而利民者。隨事講究。條列登聞。咸得奠安厥居。無令散而之四。然後方爲對揚之實。不孤委寄之重。各須知悉。予不多誥。
[주1] 재해를 …… 윤음 : 1865년(고종2) 8월에 지은 윤음(綸音)으로, 《고종실록》 2년 8월 17일 기사에도 수록되어 있다. 당시 환재는 예문관 제학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8월 16일 보고된 경상도 관찰사 이삼현(李參鉉)의 장계에 따르면, 태풍으로 무너진 집이 2040호, 죽은 사람이 257명, 부서진 배가 265척, 손상된 염전이 85곳이나 되었다. 대왕대비(大王大妃)인 신정왕후(神貞王后)는 경주 부윤(慶州府尹) 홍익섭(洪翼燮)과 순천 부사(順天府使) 황종현(黃鍾顯)을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의 위유사(慰諭使)로 차하(差下)하여 휼전을 베풀게 하였다. 또 특별히 하유할 윤음을 문임(文任)에게 짓게 하고,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여제(厲祭)를 지내라는 명도 함께 내렸다.
[주2] 위유(慰諭)하는 …… 하였다 : 위유(慰諭)하는 사명은 1865년(고종2) 8월 16일 보고된 태풍 피해에 관한 것으로, 경상도 관찰사 이삼현(李參鉉)의 장계에 따르면, 태풍으로 무너진 집이 2040호, 죽은 사람이 257명, 부서진 배가 265척, 손상된 염전이 85곳이나 되었다. 대왕대비(大王大妃)인 신정왕후(神貞王后)는 경주 부윤(慶州府尹) 홍익섭(洪翼燮)과 순천 부사(順天府使) 황종현(黃鍾顯)을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의 위유사(慰諭使)로 차하(差下)하여 휼전을 베풀게 하였다. 또 특별히 하유할 윤음을 문임(文任)에게 짓게 하고,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여제(厲祭)를 지내라는 명도 함께 내렸다. 여상약보(如傷若保)는 ‘시민여상(視民如傷)’과 ‘약보적자(若保赤子)’의 준말로,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여 잘 보살핀다는 의미이다.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문왕은 백성 보기를 다친 사람 보는 것처럼 가엾게 여겨 보살펴주었다.[文王視民如傷.]”라고 하였고, 《서경》 〈강고(康誥)〉에, “갓난아이 보호하듯 하면 백성이 편안하리라.[若保赤子, 惟民其康乂.]”라고 하였다.
[주3] 제단(祭壇)을 …… 하였으니 : 여제(厲祭)를 지내게 했다는 말이다. 1865년(고종2) 8월에 입은 태풍 피해에 대하여, 대왕대비(大王大妃)인 신정왕후(神貞王后)는 경주 부윤(慶州府尹) 홍익섭(洪翼燮)과 순천 부사(順天府使) 황종현(黃鍾顯)을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의 위유사(慰諭使)로 차하(差下)하여 휼전을 베풀게 하였다. 또 특별히 하유할 윤음을 문임(文任)에게 짓게 하고,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여제를 지내라는 명도 함께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