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고 부군 묘표〔王考府君墓表〕
부군의 휘는 직(樴)이고 자는 여화(汝化)이다. 장수(長水)를 본관으로 하는 황씨는 고려(高麗) 초의 휘 경(瓊)이 시조인데, 그 후손의 경우는 문헌이 부족하여 상세히 알 수 없다. 조선(朝鮮)에 들어와 방촌(厖村) 상공(相公)이 처음으로 크게 현달하였고, 그 증손인 휘 개(塏)가 처음으로 남원(南原)에 우거(寓居)하였다. 그 손자 휘 진(進)은 시호가 무민(武愍)이며, 무민의 손자 휘 위(暐)는 정언을 지냈고 호가 당촌(塘村)이다. 당촌의 막내아들 휘 임귀(任龜)는 감찰(監察)을 지냈는데, 이분이 5대조이다. 이 뒤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고조는 휘가 성(珹)이고 증조는 휘가 석중(錫中)이며, 조부는 휘가 필(鉍)이다. 고(考)는 휘가 윤수(潤洙)이며 비(妣)는 서산 유씨(瑞山柳氏)이다. 부군은 만년에 종중(宗中)의 결정으로 삼종 숙부(三從叔父)에게 양자로 갔는데, 휘 달수(達洙)와 순천 박씨(順天朴氏)ㆍ풍천 노씨(豐川盧氏)가 바로 양부모이고, 휘 빈(斌), 택중(宅中), 전(銓)이 바로 그 위로 삼대(三代)이다. 부인은 남원 윤씨(南原尹氏)이고 아들이 셋 있다. 맏아들은 흠묵(欽默)으로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이름은 담(壜)이고, 담의 아들은 신현(莘顯)이다. 둘째 아들은 시묵(時默)으로 아들 셋을 두었는데, 현(玹)은 성균 생원이고 그다음은 련(璉)이고 원(瑗)이다. 현(玹)의 아들은 암현(巖顯)과 위현(渭顯)이다. 막내아들은 태묵(泰默)이고 그의 아들은 증(增)이다. 부군은 철종(哲宗) 병진년(1856, 철종7)에 졸하였으니, 수(壽)는 62세이다. 묘소는 순천(順天) 서면(西面) 죽매산(竹梅山) 왼쪽 양지 바른 계좌(癸坐) 언덕에 있다.
부군은 대대로 몹시 가난하여 관례(冠禮)를 치른 뒤에는 시세(時勢)에 따라 상품을 매매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 부모를 봉양하였고, 오랫동안 광양(光陽)과 순천(順天) 사이를 떠돌다가 노년에 드디어 정착하였다. 그곳이 바로 묘소가 있는 곳에서 왼편으로 1리도 채 안 되는 광양 서석촌(西石村)이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진 뒤에는, 어려서 가난하여 배울 때를 놓친 것이 마음 아파, 서적을 구입하고 선생을 맞이하여 자식과 조카들을 독려하였다. 마을 사람 중에 재주는 있으나 집이 가난한 자들을 불러 모두 그곳에 머물게 하였으니, 기거하는 집이 바로 글방이 되었다. 재물을 쪼개어 사방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기에, 시마복(緦麻服)과 대공복(大功服)ㆍ소공복(小功服)을 입는 친척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일이 없었으며, 대의를 위해서 재물을 내놓기를 마치 가난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하였다. 그 밖에 좋지 않은 풍속에 경계가 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너무 지나친 칭찬이 될까 두려우므로 감히 다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선대와 생몰년을 엮어 위와 같이 기록하여, 이곳을 지나는 나무꾼과 목동들이 자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하는 바이다.
[주1] 증(增) : 대본에는 ‘增’으로 되어 있는데, 《황매천(黃梅泉) 및 관련인사(關聯人士) 문묵췌편(文墨萃編)》에는 ‘璔’으로 되어 있고, 《장수황씨세보(長水黃氏世譜)》에는 ‘垠’으로 되어 있다.
[주2] 하는 바이다 : 《황매천(黃梅泉) 및 관련인사(關聯人士) 문묵췌편(文墨萃編)》에는 이 구절 뒤로 “광무 5년 신축년 모월 모일에 손자 현은 삼가 쓴다.〔光武五年辛丑某月日孫男玹謹記〕”라는 구절이 더 있다.
王考府君墓表
府君諱樴。字汝化。黃氏貫長水者。麗初有諱瓊爲始祖。其後文缺莫詳。入國朝。厖村相公始大顯。曾孫諱塏。始寓南原。其孫諱進謚武愍。武愍孫諱暐。官正言號塘村。塘村季子諱任龜。官監察。是爲五世祖。自後宦業遂替。高祖諱珹。曾祖諱錫中。祖諱鉍。考諱潤洙。妣瑞山柳氏。府君晩被宗議所奪。出後三從叔父。若諱達洙及順天朴氏豐川盧氏。卽所後考妣。而若諱曰斌曰宅中曰銓。卽其上三世也。配南原尹氏。三子長欽默。一子壜。壜子莘顯。次時默三子。玹成均生員。璉,瑗。玹子巖顯渭顯。季泰默子增。哲宗丙辰卒。壽六十二。墓順天西面竹梅山左隩癸坐原。府君世貧甚。旣冠。業廢著以養親。久客光,順間。老遂家焉。卽墓左未一里。光陽西石村是已。家旣饒。傷早貧失學。購書延師。督子侄。招鄕人之才而窶者皆舘之。所居成學肆。析貲四均。緦功無失所者。其騖義拋財。如未甞貧也。其餘可警窳俗者尙多。而惟懼有溢辭。故不敢。只掇先系生卒以志之。使樵牧之過者。毋得傷其子孫之心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