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벼농사를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이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그럼 해볼까? 했는데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몸과 마음이 저절로 추스려졌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모내기 할지, 직접 뿌리기 할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말이죠.
[짚 한 오라기의 혁명] (후쿠오카 마사노부 지음, 최성현 옮김)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을 내내 들여다 봅니다.
거울 이미지 - 반대편에서 물 깊이대기만으로 잔뜩 조바심내고 있는 제가 있습니다.
기후를 비롯해 저자와 여러가지 조건이 많이 다르긴 해도
호밀처럼 볍씨를 가을에 뿌리는 방안은 매우 흥미로운 과제입니다.
관행농에서는 앵미(잡초성 벼)를 잡겠다고 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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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누구나 할 수 있는 즐거운 농법
벼가 아니라 쌀을 만든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농사를 목표로 꼭 필요한 일말고는 되도록 작업을 생략하는 쪽으로 연구를 계속해왔습니다. 관리 면에서도 할 일을 최대한 줄여왔습니다.
물 관리는 벼농사의 절반 동안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전반기에는 밭 상태로 둡니다. 6~7월은 그냥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8월이 되면 조금식 물을 댑니다. 8월 초순경이면 이웃 논의 벼는 이만큼 크게 자라지만, 저의 것은 아직 요만큼 작은 채로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7월 말경에 여기에 오셨던 분들은 “이래서야 거둬들일 게 뭐가 있겠어요?” 라고 걱정하시기도 합니다. 농업시험장 소장님 또한 1960년경에 와서 “후쿠오카 씨, 이게 벼가 될까요?”라고 걱정을 하시더군요. 그때 저는 “벼는 되지 않지만 쌀은 되니 안심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7월말경에는 벼의 기장이 매우 짧아 보통 것의 반만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포기수가 1제곱미터당 300포기 이상 늘어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고 분얼, 곧 가지치기에 의존하지 않도록 합니다. 제 벼농사 방법은 벼를 키우자, 살지우자, 큰 이식을 맺도록 하자가 아닙니다. 되도록 압축합니다. 작은 벼로 억제하며 살지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농사법으로 다수확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관리도 이 점에 주력하여 연구했습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물을 대지 않음으로써 벼의 생육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현재 단수(斷水)재배라는 것이 시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제 농법은 이 단수재배를 더욱 철저하게 발전시킨 방법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벼의 기장이 50~60cm 정도밖에 안됩니다. 이 방법이다라는 생각 아래, 보통 품종으로 400~500 줄기를 세웠는데도 햇볕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햇볕이 아래까지 어느 정도 들어오더군요. 이렇게 키가 작은 데도 불구하고 한 이삭에 100알(신품종은 200알) 정도의 나락이 열렸습니다. 계산해보시면 아시겠지만, 10섬 이상의 수량이 됩니다.
좌우간 벼든 보리든 결국 포기수를 많이 세워두고 그것이 살지 못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만 않는다면 별 탈 없이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한알의 쌀을 만드는 데는 1㎠의 잎만 있으면 족합니다. 작은 잎이 3~4장 정도 있으면 100알 정도의 열매를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1미터쯤 되는 큰 벼를 만들기 때문에 탄소동화 능력이 대단히 좋아보이지만 오히려 효율이 낮고 짚에만 살이 올라있을 뿐입니다. 전분 생산량은 많지만 벼가 자신의 몸을 유지하는 데 쓰는 자가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결국 남는 저장전분의 양은 얼마 안됩니다. 그러므로 제 주변 논의 경우에든 1,000 kg의 섶을 길러봐야 고작 500~600kg 정도밖에 나락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작은 벼를 만들어보면 섶 1,000kg에 나락 1,000kg이 나옵니다. 적어도 섶과 열매가 동일한 중량이거나 그 이상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상형의 벼란?
이상형의 벼는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을까요? 제가 여기까지 여러 가지 기술을 이러니저러니 말씀드려온 것은, 결국 이상형의 벼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이 이상형일까요? 벼농사는 벼의 이상형을 파악하는 길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자질구레한 기술이란 쓸데없는 것입니다. 이상형의 벼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저는 <현대농법>이라는 잡지에 1965년경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상형이란 이런 것이라고 한번 보고 알 수 있도록 사진을 찍는 데만도 10년이 걸렸습니다. 벼의 이상형을 정확히 파악하기만 하면 목표는 결정됩니다.
이 실물의 벼를 손에 들고 “벼는 이러한 모습으로 만드시오”라고 하면 그걸 보고 농부는 곧 압니다 - 이런 것이 벼의 진짜 모습이었구나, 이상형이었구나, 이러한 모양이라면 물은 별로 주지 않았겠군, 비료를 준 벼도 아니고---, 이렇게 농부라면 어느 때에 어떤 일을 했는지 벼 한포기를 보고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당연히 아실 수 있습니다. 이상형을 파악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것이 결론이므로 처음부터 알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이상형의 벼 모양을 알고 각자의 땅에서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에 목표를 두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농업기술자들은 그 밖의 일들에 관해서 실험한다거나 연구한다거나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벼는 “위로부터 네 번째 잎이 가장 긴 것이 좋다”는, 벼농사의 권위자인 마츠시마(松島) 선생님의 말씀에 대해서 저는 “세번째 잎사귀도 좋고 두 번째 잎이 가장 긴 것도 좋다. 왜냐하면, 싹이 나는 시기에는 억제하여 기르다가 뒤에 뒷거름을 주어 후반을 도와주면 마지막 잎이나 제2엽이 가장 길어지게 되는데, 그쪽이 다수확이 되는 일도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이삭 하나에 130~145개의 나락이 열린 실물의 벼 포기를 보여드리자 마츠시마 선생님도 실물에는 역시 이길 수 없다고 웃으시더군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과학적 진리나 이론은 실험조건에 따라 변한다는 것입니다. 마츠시마 선생님의 이론은 물못자리로 키운 기운이 연약한 벼를 모내기 한 경우이고, 저는 바로뿌리기에다 물을 대지 않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결론이 다르게 나온 것이지요.
제가 벼의 길이는 60cm 가량이면 좋다고 했더라도 그것은 60cm가 아니면 안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살이 오르고 길이가 긴 품종으로도 다수확을 올릴 수 있습니다. 빽빽하게 심기는 물론 듬성듬성 심기로도 다수확이 가능합니다. 요는 이상적인 벼농사란 일찍부터 살지울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한 억제하여 압축된 벼를 만들고자 항상 주의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볍씨를 뿌려두고 느긋한 마음으로 긴 나날에 걸쳐서 비료도 주지 않고, 물도 대지 않으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을 기다리며 지켜보는 것이지요.
최근에 새로운 품종을 써서 겨울이 오기 전에 15~30cm 간격으로 한알 뿌리기를 해보았습니다. 한그루 평균 12~25개 가지에, 이삭 하나마다 평균 250알이 열렸습니다. 이것을 계산해보면, 10아르 1톤 이상이라는 경이적인 숫자가 됩니다. 이 숫자는 논이 받는 태양에너지부터 산출되는 이론상의 최고치(10아르 25섬․ 1,500kg)에 육박하는 숫자입니다.
이렇게 논을 갈지 않고, 보리 씨와 볍씨를 동시에 혼파하고,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한알 뿌리기의 자연형 벼 기르기를 행하면 과학농법이 미치지 못하는 다수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넓은 면적에서도 자연농법으로 벼나 보리 모두 8~10섬 수확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농업기술자의 눈에는 이것이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결과로 비쳐질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 역시 논을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딘가에서 결점이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의심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농법은 언제 어디서나 과학의 비판에 견딜 수 있는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농법은 과학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지도할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농업에 언제나 선행한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 이치에 관해서는 <무(無)>라는 책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선 그만두지요. 요즘은 외국의 여러나라 사람들이 저의 무(無)>의 철학과 자연농법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발 앞서서 실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