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운 벌레가 많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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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엽서 한 통씩을 써서 한 밴드와 카페에 올리고 있다. 2020년 7월 12일의 엽서에는 댓글이 하나 달렸다. 구름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분이었다.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충주 시외에서 작은 텃밭에 먹거리를 심어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비나방이 온 작물에 장엄합니다.
그들도 숨은 원의 일원인가요?
함께 나누어먹어야 할지, 아니면 쫓아내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주세요.
선비나방이라니!? 처음 듣는 나방 이름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환경부에서 유해 2급종으로 지정할 만큼 해를 많이 끼치는 곤충이라고 했다. 과일나무, 여러 작물, 산과 들은 나무 등이 그 벌레의 해를 입고 있다고 했다.
애벌레 사진도 나와 있었다. 엣, 이 벌레는?! 얼마 전에 우리 밭의 보리수나무에서 처음 봤던 벌레였다. 생긴 게 하도 별나 사진까지 찍어두었던 벌레였다. 정체를 알고 싶어 도감과 인터넷을 뒤졌지만 찾지 못하고 만 그 애벌레였다.
선비나방애벌레는 통통하게 살이 찐 연초록색깔의 아이가 연노랑색깔의 주름 날개옷을 입은 듯한 귀여운 모습이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그 모습이 두드러지게 다르다.
애벌레는 잎을 먹고 흰 솜과 같은 배설물을 분비하는데, 그 모양이 혐오감이 들 만큼 보기가 안 좋다고 했다. 단내가 나는 배설물은 진딧물을 불러모으고, 그을음병으로 이어지며 농부를 애먹인다 했다. 구름이라는 분이 ‘장엄하다’는 표현을 쓸 만큼, 한번 발생하면 그 숫자가 워낙 많아 어찌 할 길을 찾기 어렵다 했다.
옛날에는 없던 곤충으로, 2000년대 초부터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외래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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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님의 첫 물음은 이렇다.
“그들도 숨은 원의 일원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먼저 숨은 원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하는데, 그 분이 댓글을 단 그 날의 엽서를 읽어보는 것도 한 길이다. 통째로 옮겨 적는다.
논 김매기를 하러 가는 길이었어요. 새벽이었죠. 길에 개 한 마리가 죽어 있었어요. 로드 킬이 틀림없었어요.
세 시간쯤 일했어요.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돌아오는데, 그 때까지 그 개는 거기 있었어요. 입에서는 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와 있었고, 똥도 쌌더군요. 늘 그렇듯 대지의 청소부인 파리가 와 있었어요. 파리들이 피묻은 입과 똥꼬에만 덤비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알을 낳기 위해서죠. 등이 파란 금파리였습니다.
보기 흉한 모습이었지만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지구의 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형 동물의 주검은 큰 선지식이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 줍니다.
누군가 치워야 했습니다. 제 트럭에 실었습니다. 집 근처에 좋아하는 밤나무가 있습니다. 그 아래 묻으며, 누군가를 대신하여 개에게 사과했고, 그 뒤의 일은 지구 어머니에게 부탁했습니다.
정확히는 땅속 동물, 미생물, 그리고 곧 구더기로 부화할 금파리의 알 등에게라고 해야 합니다. 그들이 있어 지구 어머니도 주검을 풀이나 나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사실은 지구입니다.
이제부터 그 개는 밤나무로 살 겁니다. 봄이면 밤나무의 푸른 잎새로 피고, 여름이면 꽃으로 피고, 가을이면 알밤으로 곱게 익을 겁니다. 겨울에는 밤나무로 서서 눈을 맞을 겁니다.
꼭 그렇게 되기를 빌며, 저는 천지 안에 숨어 있는 이 숨은 원, 동물의 주검을 풀과 나무로 바꾸는 이 숨은 동그라미에 절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숨은 원이란 먹이사슬food chain의 다른 이름이다. 크게는 식물, 동물, 미생물로 이루어진 원이다. 죽은 개를 밤나무로 바꾸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이 지구에 존재하는 동그라미다.
이와 같아서 선비나방도 숨은 원의 일원이다. 숨은 원은 커서 그 안에 다 들어간다. 하나도 빼놓지 않는다. 당연히 사람도 그 안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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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님의 두 번째 물음은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다.
지구 위의 생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간과 나머지 생물이 그것인데, 인간을 뺀 나머지 생물은 자연에 손을 대지 않는다. 자연에 맡기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인류는 어떤가? 인류는 손을 댄다. 농업이 그것이다. 갈고, 뽑아내고, 죽인다. 다른 길이다.
자연은 먹이사슬로, 곧 숨은 원으로 병충해 문제를 해결한다. 천적을 둔다. 달리 말하면 밥으로 풀어낸다. 서로 먹는 이 망은 엉성해 보이나 어느 하나 빼어놓는 게 없다. 예를 들면 죽은 개를 땅에 묻고 1년 뒤에 파보면 흔적도 없다. 누가 한 일일까? 숨은 망이, 숨은 원이 하신 일이다.
농업은 해충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틀린 말도 아니다. 작물에 해를 끼치는 벌레가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알고 그 벌레를 죽인다. 처음에는 손으로 잡았지만 이제는 동력 분무기를 쓴다. 어떤 곳에서는 비행기를 이용해 항공 방제를 하기도 한다. 드론을 통한 구제도 시작되었다 한다.
이 싸움에서 사람이 이길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는 없다. 왜냐하면 벌레도 큰 하나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큰 하나가 인간을 더 사랑하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구더기도 뱀도 모기도 그 분의 아픈 손가락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비겁하게 맨손이 아니라 여러 가지 극독의 화학무기를 쓰면서도 모기나 파리를 없애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증거다.
그 길, 벌레와 싸우는 길에 절망한 사람들이 걷는 길이 자연농이다. 그들은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해충을 숨은 원 안에서 보기 때문이다. 숨은 원에서 보면 해충도 해충이 아니다. 숨은 원의 한 자리를 지켜내는 귀한 존재다. 그 벌레가 있어 숨은 원이 건강해진다.
선비나방만이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담배나방 애벌레로 큰 고통을 받았다. 대벌레의 대발생으로 애를 먹고 있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 그 앞의 몇 해는 산누에나방애벌레로 힘들었다. 모두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왜 이런 일이 이어서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현대 농업과 문명 탓이라고 본다. 병충해 방제는 해충만이 아니라 익충도 죽이거나 해를 입힌다. 달리 말해 숨은 원의 건강을 해친다. 숨은 원이 건강을 잃으면 곤충 세계에 이변이 일어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약물이나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인간과 곤충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농업의 역사와 정비례해서 증폭돼 가고 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걸 굴삭기로도 막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자연농은 그와는 반대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자연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렇다. 그 길이 쉽지 않다. 인류가 아주 긴 세월 벌레와 세계대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쟁이 끝날 가능성도 전혀 없어 보인다. 그 영향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어느 곳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악순환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평화를 향한 우리의 작은 소망은 뿌리를 내리기 참으로 어렵다. 인류는 인권만이 아니라 벌레권도 존중돼야 한다는 걸 꿈에도 모른다. 그것이 참으로 잘 사는 길임을 짐작조차 못하고 살고 있다.
*자연농의 병충해 방제 대책
1. 땅을 갈지 않는다.
2. 풀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뽑지 않고 베고, 벤 풀은 그 자리에 펴 놓는다. 베되 한 줄씩 건너 뛰어 벤다.
베지 않은 줄의 풀은 벤 곳의 풀이 벌레들이 기대며 살만큼 자랐을 때 벤다.
되도록 맨 땅이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한다.
3. 농지의 10분의 1쯤을 천 년의 숲으로 둔다.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가꾸는, 말하자면
자연의 밭이다.
4. 안목을 키운다. 하농은 돈을 보고, 중농은 작물을 보고, 상농은 땅을 보고,
자연농은 천지를 본다.
첫댓글 친절하신 답변에 눈물이 찔끔합니다.
일이 있어서 이제야 봅니다.
자연농은 천지를 본다는 것을
온 천지가 알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