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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그림 시작
5. 천지신명이시어
하늘과 땅과 인간이라는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그림의 이름을 붙인다. 본격적으로 민화라는 판자촌의 재개발에 들어간다. 도시계획의 청사진은 지명과 지번의 부여에서 시작된다.
천인화-
원화 천-천지신명 영수서조 벽사문배 종교도상
방화 지-근화강역 팔경풍류 풍수지리 삼신영산
각화 인-강륜도설 희보길상 장수송축 은일신선
圓畵 天- 天地神明 靈獸瑞鳥 僻邪門排 宗敎圖像
天印畵천인화 - 方畵 地- 槿花彊域 八景風流 風水地理 三神靈山
角畵 人- 綱倫圖說 喜報吉祥 長壽頌祝 隱逸神仙
첫 삽은 천지인의 첫 번째, 원화의 천지신명이다.
이동주는 사모곡에서 읊었다.
‘울 어머니 종교는 신령이었다. 하늘을 움직이는 지성으로 노를 꼬듯 손을 부볐다’ 했다. 노를 꼬듯 비비는 손, 그것을 비손이라 했다. 주문처럼 외는 말이 있다. ‘천지신명이시어, 일월성신이시어’ 라는 말이다. 후렴이 있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이다.
하늘에 빈다. 하늘에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이 있다. 아래에서 비는 인간을 굽어 살필 수 있는 인격적인 존재이다. 이동주의 시는 그렇게 멋쩍게 풀이된다.
천지신명이라, 그게 무언가. 천지는 물론 하늘과 땅이다. 신명神明는 태양이다. 신神란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 일출을 본떴다. 태양은 고대인에게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늘 천天=큰 대大=클호昊=임금 황皇=임금 제帝’ 로 인식되었다. 크고 위대한 것 중 가장 밝은 것이 태양이었다. 태양신이었다. 신명이었다.
일월성신에서 일월은 해와 달이다. 성신은 별자리와 별이다. 의인화하여 해님ㆍ달님ㆍ별님이라 불렀다. 천지신명, 즉 태양신과 일월성신, 즉 해님ㆍ달님ㆍ별님이 모두 굽어 살피소서 하고 우리네 어머니는 빌었던 것이다.
‘추운 날 얼음을 깨고 머리를 감았다. 땅바닥에 엎드려 손을 부볐다. 흰옷을 입고 육신을 태우듯이 절만 했다’ 고 이동주가 읊었던 그 대상은 하늘이었다. 태양이었고, 해와 달과 별이었다.
강관욱은 한국의 어머니를 대리석에 담아 구원salvation라 이름했다. 이동주의 ‘울 어머니’가 이러했을 것이다.
장상의는 독일에서의 전시에서 Ha-neem and Da-neem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해님 달님일테지. 번역을 해도 이렇게 정겨운 것이 우리의 해님 달님이었다.
일월신장도日月神將圖이다. 관복을 입었다. 관에는 빨간 구슬ㆍ노란 구슬을 모셨다. 그리고서 일월신장도라 이름붙였다. 우리가 무속화라 일컫는 무당그림이다.
무巫는 한자를 풀이해보면 하늘─와 땅__를 버티고 있는 하늘 사다리 | 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풀이된다. 누굴까? 상고시대의 제관祭官나 천관天官 혹은 천군天君이겠지. 그런데 우리 무속화를 이야기하는 데 왜 한자풀이가 필요하지?
그럼 다시 거슬러 올라가보자. 천군이란 단군檀君와 같은 말이다. 단군은 대명사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관이다. 박달나무의 단군은 터 단壇자, 단군壇君와도 같은 말이다. 고대의 한국어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한자어를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그림을 보자. 일신은 빨간 구슬을, 월신은 노란 구슬을 달고 있다. 신장神將란 절대적인 존재를 모시는 장수이다. 일월신장은 해님ㆍ달님을 지배하는 신적인 존재를 모신다. 옥황상제 또는 하느님이다.
옥황상제는 인간의 생사와 길흉을 지배하는 절대자이다. 손에 백우선을 들고 있기도 하고, 홀笏를 모아 쥐고 있기도 하다. 배경에 장막을 친 것은 절대자라는 의미를 담는다. 옥황상제라는 말은 따져 보면 최고신이라는 뜻이다. 옥玉는 왕王와 같다. 황皇는 대大와 같다.
옥황은 크고 큰 것이다. 상제의 상上는 높은 것이다. 제帝 역시 큰 것이다. 결국 옥황상제란 ‘크고 크고 높고 큰’ 존재이다. 그것이 하느님이다. 옥황상제는 우리말의 하느님을 중국어로 옮긴 말이다.
하느님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알님이라 했다. 큰 알이라는 뜻이다. 큰 알이라... 무엇이 큰 알일까? 달걀ㆍ타조알ㆍ공룡알, 그보다 큰 것이 있다. 태양이고 하늘이고 우주이다. 이란 크다는 말이다. 그래서 알이 되었다. 경칭을 붙여 알님이다. 그것이 한알님ㆍ하느님이 되었다. 크고 높은 분이다. 옥황상제이다. 일월신장은 그 하느님을 모신다.
일월신장도
옥황상제도이다. 일월제사를 지내면 옥황상제가 제사상을 받을 것이다. 일월신장이 옥황상제를 모시기 때문이다.
일월당에 제단을 모셨다. 해님과 달님을 제사지낸다. 님이란 사람에게 붙이는 경칭이다. 제사를 받을 수 있는 인격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칠성헌수도七星獻壽圖이다. 원래는 일곱 별이라 칠성이다. 칠성이 무엇인가. 보통 일월화수목금토의 정수精髓를 가리킨다. 이 그림에서는 남자가 셋, 여자가 넷이다. 그러나 남녀구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곱이라는 숫자와 별이 중요하다.
어떻게 별이라는 것을 알지? 동그라미 안에 별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구름 위에 그려져 있다. 그래서 별인 줄 안다. 해님ㆍ달님ㆍ별님의 그림인 셈이다.
칠성헌수도에서 칠성은 일곱 별이다. 북두칠성이다. 한국인이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던 신이 칠성신이 조상신이었고 성신이었다. 바이칼 호수 주변의 몽골인들이 남하하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조상에게 기원했던 대상이 칠성이었다. 불교에서는 치성광여래로 모신다.
무엇을 빌었을까. 칠성판이 설명한다. 칠성판은 사람이 죽어 관에 누우면 등이 닿는 바닥의 판이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한다. 여기에 헌수獻壽라는 말이 붙었다. ‘목숨을 드린다'는 뜻이다. 의역하자면 오래 오래 살게 해드린다는 말이다. 수명장수뿐인가. 나아가 소원성취, 평안무사를 비는 별이라는 뜻이 칠성에는 깃들여 있다.
다시 그림을 보자. 남자 별들은 모두 관복을 입고 홀을 들었다. 관복과 홀은 옥황상제의 신하라는 뜻이다. 여자 별들은 복숭아를 받들고 있다. 복숭아는 원래 여성을 상징한다. 유방이나 여음ㆍ엉덩이 등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반도 혹은 천도복숭아를 뜻한다.
별이 오래 오래 살라고 축원을 올리는 장면이 이 그림에 그려진다. 그러니까 하늘의 별은 바로 우리의 수명, 즉 인간의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우리네 조상님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칠성뿐인가. 삼성三星도 인간과 연관을 지어 나타난다. 제주도 신화에서는 별이 천지창조 후에 제일 먼저 나타났다고 했다. 동쪽에는 견우성, 서쪽에 직녀성, 남쪽에 남극성, 북쪽에 북극성이 자리를 잡고 나서 삼태성 혹은 삼성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삼태성은 인간의 세 가지 욕망을 상징한다. 삼성고조三星高照라, 사슴을 탄 사람은 목숨壽을, 홍포를 입은 사람은 관록祿을, 남포를 입은 사람은 복福를 상징한다. 모두 인간의 일에 별들이 역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별이 인간에 내렸다. 그러하니 그 별들의 기록이 인간에 대물림하여 오늘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칠성헌수도
집안 장천 1호분에는 일월과 북두칠성으로 상형되는 하늘나라가 있다. 옛 사람들에게는 무덤이 하늘나라였거든.
삼성고조도
옥황상제도이다. 상제는 혼천渾天 가운데 사신다. 혼천전도는 해와 달과 별이 모인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옥황상제의 궁궐 그림이 된다.
혼천이란 천지가 새알과 같아 노른자 같은 땅을 끝이 없느 한르이 감싸고 있다는 뜻이다. 혼천도는 천체의 위치와 그 운행을 표시한 그림이다.
혼천도는 다른 말로 성수도星宿圖이다. 별자리 그림이다. 진수도辰宿圖라고도 한다. 1년에 열두 번을 모인다 해서 12진辰이다. 태양이 운행하는 길인 황도 주위에 스물여덟 개의 별이 모인다 해서 28수宿라 한다.
그림을 보면 하늘은 둥근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천원天圓를 표시한다. 중심점 주위에 별들이 별자리를 이룬다. 그 중심점에 구중궁궐이 있다 했다.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궁궐이다. 그 아래 일월성신이 각각 인간의 일을 관장한다.
지상에는 곤륜崑崙이 있다. 곤륜은 옥玉라 했다. 옥이 많이 나는 산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옥산이라는 뜻도 있다. 옥玉=왕王=천天로 뜻이 통한다. 그래서 곤륜산은 하늘 산이요, 한자로 옮기면 천산이 된다. 그런데 하늘 천天=큰대大=클태太와 같다. 곤륜산은 그래서 천산, 태산이 된다.
태산에서 가장 큰 산이 태백산太白山이다. 큰 밝산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 밝은 태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큰 태양의 산, 또는 태양이 내리는 산, 그것이 태백산의 의미이다. 그래서 환웅이 태백산에 내릴 수 있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문이 현포玄圃요, 통로는 건목乾木이다. 그 아래에 곤륜산 즉 태백산이 있다는 말이다.
곤륜이 단군 신화의 태백산이고 옥황상제가 하느님이라면 그 하느님은 환웅과 같은 존재이다. 단군 환검의 할아버지이다. 한민족의 고조할아버지이다. 개천절 노래의 하나벗님이다.
혼천전도의 중심은 하늘나라 구중궁궐이라 했다. 우리의 태백산에서 하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현포라는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태백산이 어딘가. 경상도, 강원도 사이에 태백산이 있다. 예부터 천단을 쌓아 하늘에 천제를 지냈다. 이름이 태백이지만 큰 밝산으로 보기에는 대표성이 떨어진다.
태백산은 큰 밝산이다. 큰 태양산이다. 태양보다 큰 하느님의 산이라 해서 클 태자가 붙었다. 원래의 이름은 백산白山이다. 밝산 혹은 산이다. 오늘날의 백두산이다. 짐작이 가는 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애국가에는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도록 길이 보존하자고 되어 있다.
옥황상제도
동쪽나라에 누렇게 빛나는 크고 하나 밖에 없는 것이라 했다. 태양 아닌가. 굴원의 초사를 그린 이소도에는 이렇게 태양이 인격신으로 그려진다.
우리는 하늘 세계를 여행했다. 그것은 찬란한 세계이다. 그러나 더 휘황찬란한 세계가 있다.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하늘나라이다. 알님이 살고있는 하늘나라의 이야기이다. 그 하늘이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곤지곤지와 가위바위보이다.
곤지곤지는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유희이다. 왼손바닥에 오른손 검지로 점을 찍는다. 하늘나라를 보여준다. 가위바위보는 천지인을 상형한다.
가위는 검지, 중지를 펼친다. 사람이라 인각人角이다. 바위는 주먹을 쥔다. 땅이라 지방地方이다. 보는 손을 편다. 하늘이라 천원天圓이다. 가위바위보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다. 가위는 바위에 지고 바위는 보에 지고 보는 가위에 지고..... 거꾸로 돌면 보는 바위를 이기고 바위는 가위를 이기고 가위는 보를 이기고..... 그렇게 돌고 돈다.
우주 속의 천지인의 순환이다.
가위바위보에서 보는 하늘이라 했다. 펼친 손이 천원을 상형한다. 그 손바닥에 점을 찍으니 일점원이다. 태양이 된다. 둥근 우주 속에 가장 큰 알이라, 태양님이고 큰알님이고 한알님이고 하느님이다. 곤지곤지가 태양신, 즉 하느님의 후손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피의 약속, 즉 혈통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신이라... 하느님이라... 그리고 우리가 태양신 혹은 하느님, 큰알님의 자손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을 가지고 있다.
뭐, 우리에게 알이 있다고? 정자도 난자도 둥근 알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뿐인가. 남자에게도 알이 있다. 여자에게도 알이 있다. 모두 생식과 연관이 있다. 한국어로 읽어야 뜻이 통한다. 그래야 한국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알님의 자손은 불알과 공알을 비벼 만든다.
이렇게 오지랖에 싸줘도 모르는 사람은 한글을 읽을 줄만 아는 외국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의 발이 셋이라고 귀청이 터지도록 이야기해 줘도 알아차릴 재간이 없을 것이다.
곤륜산은 높이가 11만리라 했다. 10리가 4킬로라면 4만 4천 킬로미터가 된다. 그렇게 높은 산이 어디 있어. 상상 속의 산일테지
6. 세발까마귀
곤지곤지는 일점원이라 했다. 태양신의 후손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피의 약속이라고도 한다. 태양신의 후손이라... 이상하지 않은가? 태양이 불덩어리라는 것을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다.
논형論衡를 쓴 후한의 왕충王充도 불덩어리인 태양이 신화의 인격적인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논박한 바 있다. 그런데 태양신의 후손이라 했다.
삼국유사에 이르기를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이 항상 인간 세계에 뜻을 두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라고 하였다.
환인은 하느님이다. 알님을 한자로 바꾼 말이라 했다. 환桓는 밝음, 인因는 비롯함이다. 밝음의 시작이다. 태양이다. 알ㆍ하늘ㆍ하느님이라는 우리말이 환인으로 표기되었다.
다시 단군신화를 보자. 태양의 적자嫡子는 태양의 화염이거나 코로나광망光芒 같은 것이리라. 하느님의 계보를 이어 하늘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서자는 햇볕에 비유할 수 있을까. 그래야 지상에 내려올 수 있다.
제일 먼저 지상에 닿는 곳이 어딘가. 높은 산이다. 태양의 빛이 내려왔다고 해서 태양산이다. 우리말로 밝산 혹은 산이다. 이것이 백산ㆍ맥산貊山 등으로 표기되었다.
햇빛이 쪼일 수 있는 높은 산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산은 태양신의 아들이 내린 산이다. 큰밝산ㆍ한밝산이 태백산 혹은 태백산으로 표기된다. 환웅이 내렸고 신단수 아래 신시를 차렸다.
신단수神檀樹는 신의 단수이다. 단檀는 박달나무이다. 박달은 밝달이다. 밝알, 혹은 알이다. 그래서 박달나무ㆍ신단수는 태양나무가 된다. 태양의 빝이 지상에서 가장 높은 태양산 태양나무 아래 내린다. 생명이 싹튼다. 그것이 인간이고 한민족의 개국주인 단군왕검이다.
그럴 법 하지 않은가. 당연히 태양 그림이 있을 것이다. 해신과 달신ㆍ삼족오ㆍ태극팔괘도는 태양그림의 다른 모습들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곰이 인간을 낳았다는 대목이다. 곰=검=이다. 곰은 동아시아에 두루 성행했던 도검숭배사상, 혹은 일본어 가미かみ에 흔적이 남아 있는 신의 다른 이름이다.
내몽고 낭산의 암화에는 천신도라 소개되었다. 어찌 날일자 같지 않은가. 몽골은 몽골족의 중요한 연원이요, 알타이어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다.
대한구에서 나온 채도에 태양이 새겨진다. 산동 거현에 있다. 산동이라면 동이족의 무대가 아닌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우리는 민화라 부르는 그림에 나타난 태극도상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삼태극의 기하학적도상Geometrical Icon는 고구려 벽화에서 설화적 도상Narrative Icon로 나타난다.
먼저 벽화의 일월상日月像를 보자.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호분? 4호묘에 있다. 오른 쪽에 있는 것이 해의 신이다. 날개가 달려 있고 머리에는 투명한 구슬을 이고 있다. 구슬 안에는 새가 있다. 하반신은 뱀이나 용의 꼬리처럼 보인다. 뱀의 꼬리는 고대 신화에서 복희伏犧와 여왜女媧에게 나타난다. 인류를 만들었다는 오누이이다.
태초에 오누이가 살았다.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복희씨가 여왜씨에게 청혼을 한다. 여왜씨는 모닥불을 피워 하늘의 뜻을 묻자 한다. 모닥불의 연기는 하늘에서 뱀 꼬리처럼 휘감겼다. 그렇게 오누이는 인류를 만들게 된다. 누이를 덮친 오빠는 부끄러워 얼굴을 풀잎으로 가렸다.
한국의 전통혼례에서 신랑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전통으로 남아 있다. 희한한 일이로고. 복희 여왜가 한국인과 무슨 연관이 있긴 있나보군, 그래.
복희씨는 태호太昊라 한다. 클 태ㆍ클 호이다. 크고 큰 것이다. 무엇인가. 태양이나 우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알, 혹은 하느님과 동격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하느님이야 우리말이 아니던가.
단군 신화의 태양신도 하느님이고, 큰알님이었다. 태호 복희씨는 이족夷族의 문화가 지배적이던 사회에서 만들어진 신이다. 태호 복희씨가 우리와 연관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 사이에는 동이족이 있다. 이를테면 소호少昊 금천씨金天氏가 동이족이다. 태호 역시 동이족과 연관이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고구려는 동이족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고구려 벽화는 고구려인의 주체사상을 반영한다. 그 고분 벽화에 태양신이 등장한다. 태양신이 이고 있는 것은 태양이다. 그 태양 안에 새가 있다. 새는 삼족오三足烏, 즉 세발까마귀이다. 발이 셋이 까마귀라, 의과대학 표본실의 기형까마귀인가... 하면 당신은 한국인의 족보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복희씨가 태양과 연관이 있다면 태양은 아마 남성일 것이다. 여성이 태양으로 상징되었던 것이 모계사회이다. 모계사회와 부계사회의 알륵, 혹은 강력한 부계 사회의 대두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삼족오이다.
무씨사 화상석의 복희와 여왜가 그려져 있다. 태양과 태음이란다. 뱀의 토템을 가진 부족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다.
각저총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삼족오이다. 길림성 집안輯安에 있다. 오회분 4호묘 일상日像의 구슬을 확대하면 이렇게 보일 것이다. 새까만 새가 빨간 원 안에 그려져 있다. 태양이다. 새는 흑점을 본 땄다고도 한다. 새까맣다고 해서 까마귀, 혹은 까만새玄鳥라 불렀다. 발이 세 개라 세발까마귀라 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세발까마귀가 해 속에 있다고 했다. ‘한 개의 해가 막 도착하자 한 개의 해가 떠오르며 모든 해가 까마귀를 싣고 있다’ 는 것이다. 산해경이 뭔가. 천문ㆍ지리ㆍ생태ㆍ습속ㆍ신화 전설을 담은 책이다. 많은 학자들이 동이계의 신화를 찾아낸다. 중국의 손작운 같은 학자는 ‘산해경은 동이계의 경전이다’라고 주장한다. 동이족은 한민족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종족이다.
그 산해경에 세발까마귀가 나온다. 새가 태양이라니, 이유가 뭔가. 첫째는 닭이 이상화했다는 주장이 있다. 산해경의 사상을 이어받은 회남자에는 ‘해가 뜰 때 하늘에 있는 천계가 울면 하계의 닭이 모두 울었다’라고 했다. 닭은 귀신을 잡아먹고 쫓아준다. 조류숭배사상은 동이족에 연결되는 문화권의 공통 습속이다.
한국어에서 ‘새’는 태양과 동쪽ㆍ벌판ㆍ쇠와 같은 뜻이다. 삼국유사의 동명설화ㆍ알지설화ㆍ수로설화에는 알과 닭이 나온다. 밝이 닭으로 바뀌면서 새가 태양이 되었다. 밝=밝알=닭알=새알=태양이다. 태양에 제사지내는 일관이나 무당이 새처럼 분장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동쪽은 태양이 뜨는 곳이다. 새발徐伐는 그래서 동쪽 서울, 즉 동경東京가 되었다. 오늘날의 경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또 새발에서 새는 억새葦, 발은 벌판원原와 같다.
새는 또 쇠金이다. 알타이의 알Altanㆍ Altar가 금인 것과 같다. 한자에서는 쇠금으로 표기한다. 새ㆍ태양ㆍ해뜨는 동쪽을 숭배하는 민족답게 한국인은 한국어에 그 뜻을 담아 오늘에 전해온다.
태양과 새가 동격일 때 또 하나의 동격이 있다. 세발솥이다. 세발솥은 세 개의 다리를 가졌다. 남자도 다리가 셋이다.
각저총 고분 벽화의 삼족오
서주 중기의 동존이라는 제기이다. 서주는 이족의 제사를 이어받았다. 세발까마귀가 태양의 상징인 것은 이족, 그리고 동이의 전통이다.
장욱진은 새를 그렸다. 그럼 그렇지. 새가 울어야 새사람은 살 맛이 난다.
태극팔괘도太極八卦圖이다. 태극이 가운데 있다. 세 개의 태극은 삼태극이라 부른다. 태극의 안쪽에 원이 두 개가 있다. 음양이거나 해와 달을 상징할 것이다. 또한 팔괘가 그려졌다.
건乾 곤坤 이离 감坎 손巽 진震 간艮 태兌가 팔괘이다. 천지간의 만물을 여덟 개의 괘사로 만들어 걸어 두었다. 그 아래 태양을 먹고 사는 꽃과 잎이 그려졌다.
팔괘는 태호 복희씨가 천문 지리를 살펴 만들었다고 했다. 태호 복희씨는 태양신과 동격이다. 그렇다면 팔괘는 햇빛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었다는 비유가 무리가 아니다.
마치 태극으로 상징되는 태양이 팔괘로 상징되는 햇빛을 사방팔방으로 뻗는 것처럼 그린 것이 이 그림이다. 태극은 태양의 운행을 상징한다. 회전하는 태양의 모습을 상형한 것이 태극이다. 그래서 방향이 있다. 시계 방향이 순리이다. 이렇게 그려진 것이 감마디온Gammadion이다. 한자로는 만卍로 읽는다. 원래는 범자였던 것을 서기 700년경 측천무후가 한자에 편이시켰다. 태양의 운행이라는 원래의 뜻이 범자와 한자에서 차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래 만자는 점이었다. 알이기도 하고 태양이기도 했다. 햇빛이 태양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니 그것이 십十자였다. 그 십자에서 태양의 운행 방향을 덧붙인 것이 만卍자이다. 그래서 점과 십자와 만자는 태양숭배사상을 지닌 종족의 표시였다.
태극기의 태극은 이태극이다. 음과 양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동양의 음양 이론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 원형은 삼태극이라 했다. 삼태극은 세 개의 태극이다. 그러고 보면 삼족오, 즉 세발까마귀도 셋이다. 세발 솥도 셋이다. 모두 해를 상징한다.
그러고보면 이 그림은 햇빛 아래 태평성대를 누리는 이 땅의 풍경화가 아닌가.
태극팔괘도
복희씨는 팔괘를 만들었다. 복희씨는 복희족이라고 본다. 복희는 태양신처럼 정좌하고 팔괘는 태양의 빛처럼 팔방으로 뻗어간다.
장한평 고미술상가에서 태극팔괘도를 본다. 왜 눈이 시도록 선할까. 어디선가 많이 본 도상이다. 태극기 이전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태양을 상징하는 세 점의 그림을 봤다. 하나는 일상, 그리고 일상의 머리에 이고 있는 삼족오, 그리고 태극팔괘도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숫자가 3이라는 사실은 강력한 부계 사회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세발을 지닌 제사장은 희생을 솥에 삶는 생사여탈권을 가졌다.
왕의 권위는 하늘에서 혹은 태양에서 왔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태양이 새와 솥으로 비유유되었다. 태양은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닌다. 솥은 불을 때면 검댕이가 묻어 새까매진다. 그래서 까만귀가 까마귀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것이 까만새玄鳥였다. 현조는 은나라 시조탄생과 연관이 있다.
은나라 혹은 상나라는 1만개의 부족이 모여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9천개 부족이 이족, 혹은 동이족이라 했다. 그 상나라의 시조는 설이다. 설의 어머니는 간적인데 현조의 알을 삼킨 후 설을 낳았다. 현조의 알이라니, 태양알이요, 알이었을 것이다.
그 현조를 제비로 해석한 것은 후세의 중국인이었다. 동이족의 태양신화를 자신들의 문화구조 혹은 습속으로 해석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현조가 태양조 혹은 까마귀였다면 왜 오늘날 까마귀가 한국에서 재수없는 새로 여겨질까.
그것은 열 개의 태양이 떠올라 동이 장군 예가 아홉 마리를 쏘았던 시절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력이 태음력으로 바뀌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된 관습이기도 하다.
요임금의 고신족은 일 년이 열 달인 태양력을 사용했다. 그것을 예가 열 두 달의 태음력으로 바꾸었다. 태양의 상징인 까마귀는 새해 첫날 햇대-양조陽鳥로 집 앞에 세워진다. 태음력의 표상은 달이다. 정월 대보름 한 해의 첫 만월에 햇대는 달집의 기둥이 되어 불태워지고 밟혀졌다.
재수 없는 새, 까마귀는 이유도 모르고 그렇게 세월 속에서 짓밟혀왔다. 정월 인월를 상징하는 호랑이 역시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유물로 밀려났다.
그 와중에서 살아남은 것이 작은 까마귀 즉 까치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라는 동요를 들으면서도, 이어지는 노래가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라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아니한다.
까치의 날이 어저께이고 우리의 날이 오늘이다. 그럼 오늘은 까마귀의 날이어야 맞고, 우리=까마귀가 되어야 논리적으로 맞다. 그렇게 그 까마귀는 태양이고, 까마귀의 후손인 한국인은 태양신의 후예가 되는 것이다.
까만 새, 까만 귀, 그리고 삼족오는 삼족정, 즉 세발 솥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는 3이란 숫자는 부계사회에서 신성한 숫자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세 번째 다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홀수는 남자의 숫자이면서 하늘의 숫자이다. 1 3 5 7 9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숫자는? 짐작이 가겠지만 짝수이다. 2 4 6 8 10이다.
삼태극은 태양이다. 배달민족의 넋으로 기리는 곳도 있다. 태양은 삼족오이다. 그럼 한민족은 삼족오의 자손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족보는 남자를 위주로 편찬되고 유전된다.
서주의 청동기는 세 개의 발에 두 개의 솥귀가 달렸다. 내 아들놈 이름을 비칠 도, 솥귀 현이라 도현이라 지였다. 태양이 내려 쬐듯, 솥귀를 쥐듯 천하가 네 것이니라 하는 암시이다.
7.토끼와 두꺼비
태양이 남성이라면 달은 여성이다.
달은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존재이다. 월하노인月下老人 혹은 월하빙인月下氷人은 청춘남녀를 짝지어 준다는 중매쟁이이다. 전혀 의미가 다른 노인과 빙인이 같은 뜻이 될 수 있는 것은 한국어가 한자로 표기될 때 흔히 일어나는 차음상의 현상 중 하나이다.
달은 시나 음악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로 시작되는 시가 그 한 예이다. 계수나무는 신화 속의 신목이다. 좀 더 들어보자.
‘금도끼로 찍어내어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라 했다. 초가삼간이라. 세칸 집이니 자그마한 집이란 뜻이렸다.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라 읊조린다. 장생불사사상이 여기 있다.
달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살고 있다는 옛 이야기도 있다. 옥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노래도 있다. 젖은 모래를 손등에 다독다독 쌓은 후에 손을 빼면 옴폭한 집이 생긴다.
모래집이 무너지지 말라고 노래를 부른다. 여기에도 불사사상이 있다. 달이 기울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보름달이 되는 것이 두꺼비집 짓기로 나타난다.
달 토끼라는 말은 있어도 달 호랑이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호랑이와 연결된 해와 달의 이야기에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피해 도망가던 남매가 하늘에 빌었다. 새끼줄이 내려와서 오빠는 해가 되고 동생은 달이 되었다.
하지만 썩은 줄을 타고 올라가던 호랑이는 수수밭을 피로 물들이며 떨어져 죽었다. 남매 대신 호랑이는 해나 달이 될 수도 있었던 동물이었다. 단군신화에서도 호랑이는 여자가 되려다만 불운의 동물이었다.
이 모든 달과 연관이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암스트롱 이전에 달에 간 한 여인의 행적과 연관이 있다. 두꺼비ㆍ호랑이ㆍ토끼는 이 지구인을 빼면 이야기가 빗나가게 된다.
고구려 벽화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달 속에 함께 그려졌다. 신화에는 가끔 두 개의 상징이 병립하기도 한다. 그게 토끼였던가, 두꺼비였던가...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구수한 옛이야기는 토끼건 두꺼비건 재미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한나라 화상석의 서왕모 용 호 삼족오 구미호 섬서가 등장한다. 모두 동이의 산해경에 등장한다. 그런데 한나라 화상석에 이 그림이 등장하다니... 구미호는 오늘의 한반도인 청구국에서 난다고 산해경은 말한다.
수양매월도首陽梅月圖이다. 강륜문자도綱倫文字圖 중에서 치恥 자 그림을 일컫는다. 수양산의 매화와 달이라는 뜻이다. 강륜문자는 효제충신 예의염치이다.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것이 강륜문자도이다. 부끄러울 치恥 자의 주인공은 수양산의 백이숙제伯夷叔齊이다. 매월이라, 달과 어울린 매화는 맑은 절개를 뜻한다.
백이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이다. 고죽국은 동이가 세운 나라 중의 하나이다. 백은 맏이, 숙은 셋째 형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夷와 제齊가 이름이 된다. 이제는 문왕文王를 섬긴다.
문왕이 죽자 마자 문왕의 아들 무왕이 주나라 마지막 폭군이 주왕紂王를 토벌한다. 이제는 이를 불충이요, 불효라 단정한다. 신하로서 임금을 치니 불충이요, 아비가 죽자마자 군대를 일으켰으니 불효라는 게다. 어떻게 주나라 곡식을 먹으랴 하고 들어간 곳이 수양산이다.
수양산은 머리 수首와 볕양陽로 표기한다. 해가 처음 닿는 산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기산箕山와 같은 뜻이 된다. 기산의 기는 ㅣ를 한자로 옮긴 글자다. ㅣ는 물론 태양이다.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양위하려 하자 더러운 이야기를 들었다며 영수에 귀를 씻고 산으로 들어갔다. 소부는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소를 상류로 끌고 갔다. 그곳이 바로 기산이다.
요임금은 동이족인 순임금에게 두 딸과 나라를 양위한 임금이다. 그러므로 기산 영수의 허유 소부 역시 동이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달 속에 토끼가 있다. 불사약을 찧고 있다. 매화는 절개이다. 눈이 녹기도 전에 핀 꽃의 은은한 향기가 십리를 간다는 꽃이 매화다. 백이숙제의 충절이 맵고 장하다는 뜻으로 그린 애력을 알만하다.
토끼의 불사약은 이제가 비록 주려 죽으나 그 충절과 맑은 이름은 만세에 남으리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불사약에 얽힌 주인공은 항아姮娥이다. 월중항아란 보름달처럼 두둥실 예쁜 여자를 일컫는다. 원래 동이 장군 예羿를 위해 하늘에서 내려 준 여자이다. 예는 활의 명인이다.
동이족이야 원래 활 잘 쏘는 사람들이란 뜻이 아니던가. 그는 백성을 위해 착치鑿齒ㆍ봉시封豕 등의 괴물을 퇴치하였다. 하늘에 제준帝俊, 즉 순임금의 아들인 열 개의 태양이 떠올라 초목이 마르고 사람들이 굶어 죽어갈 때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
예는 서왕모에게서 불사약을 얻는다. 예의 아내 항아가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을 갔다. 그러니까 달토끼가 찧고 있는 불사약은 장물인 셈이다.
수양매월도
동이장군 예가 열 개의 태양 중에서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았다. 금빛 세발까마귀가 우수수 떨어졌다.
광한옥토도廣寒玉兎圖라, 광한전의 달 토끼를 그린 그림이다. 달에 박힌 계수나무 이야기가 그림으로 옮겨졌다. 계수나무는 찍어도 찍어도 찍힌 자국이 금방 아문다는 신목이다. 광한전은 달 속에 있다는 궁전이다. 항궁, 즉 항아가 사는 궁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항아가 누군가.
항아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항아姮娥=상아常娥=상의常儀=여왜女媧까지 연결된다. 나아가 항아는 서왕모로 생각되기도 한다. 항아에서 단군신화의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상고시대 부계사회에 반발하여 튀어나간 영웅적인 여성상을 모두 하나로 묶어 형성된 다중인격체가 항아 등의 이름으로 결집되어 이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왜는 태호 복희씨의 누이동생이자 아내이다. 처음에는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신명이 넘쳤다. 그러나 이내 싫증이 났다. 새끼줄에 흙탕물을 묻혀 뿌리면 인간이 되었다. 그 짓도 지겨워 만든 것이 춘사春社이다.
자유회합이라 젊잖게 부르는 프리섹스의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그렇게 중매장이가 된 것이 월하노인이다.
달 토끼는 불사약을 찧는다. 항아의 남편 예가 서왕모에게서 얻었다. 항아는 남편 몫까지 훔쳐 먹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볼사약과 연관되다보니 서왕모와 혼동되기도 한다.
곤륜산의 서왕모는 3천년마다 열리는 반도를 지킨다. 반도 하나를 먹으면 3천년을 산다. 불사가 따로 없다. 달은 죽었다 살아난다. 역시 불사의 존재이다. 그래서 달과 불사약과 불사약의 서왕모가 일체가 되었다.
서왕모는 다시 호랑이ㆍ토끼와 연결된다. 서왕모는 후세에 예쁜 여인으로 그려지지만 산해경에 의하면 호랑이신이다. 중국에서는 동물신이라 부른다. 옛 사람들이 호랑이가 달을 베어 먹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서왕모=불사=호랑이신이 연상결합된 상태이다.
그런데 왜 호랑이가 토끼가 되었을까. 그것은 고토顧菟의 오해이다. 초나라 굴원屈原가 쓴 초사에 고토가 나온다. 진의 왕일王逸이 호랑이 토를 토끼 토로 잘못 읽었다는 게다. 그럴법하다. 두 글자가 워낙 비슷하게 생겼다. 그럼 다른 문헌에는 어떤가. 상제의 정원을 지키는 우토于菟는 산해경에 호랑이로 나온다.
광한옥토도
동한 화상전에는 서왕모가 용호좌에 앉아 있다. 구미호ㆍ영지를 가진 흰 토끼ㆍ삼족오와 창을 쥔 대행백이 옹위한다. 동한 사천의 화상전에 왜 동이 신화가 그려질까.
천제와 싸우던 공공이 불주산을 받았다. 천지가 기울어 구멍 난 하늘을 여왜가 오색 돌을 녹여 깁는다.
옥토도구도玉兎搗臼圖이다. 달과 계수나무ㆍ절구질하는 토끼 등 달과 연상되는 모든 것을 한 그림에 담았다. 토끼는 명월, 즉 밝은 달의 정精이다. 뒷다리가 튼튼해 도망을 잘 가니 사기邪氣에서 즉 삿된 기운에서 도망가기 쉬울 것이요, 귀가 크니 장수할 것이다.
토끼는 음의 동물이기도 하다. 털이 희니 백옥같은 선녀를 연상케 하고, 윗입술이 째보라 여음女陰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토끼 새끼란 원체 다산의 상징이다.
신화에서는 서왕모나 여왜 등이 결합된다. 후세에 들어 다산이나 장수ㆍ벽사 등의 인간적인 욕망이 덧붙여져 이윽고 달의 신화적 이미지가 사라져버린다. 신화가 신화의 모습으로 살아 있는 곳은 역시 신화에서 가까운 시절일 것이다.
다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월상을 보자. 왼쪽에 토끼가 있고 오른 쪽에는 두꺼비가 그려졌다. 토끼가 등장하는 벽화만 해도 후대의 것이다. 그러므로 토끼와 두꺼비가 나란히 그려진 그림은 해의 상징인 삼족오와 달의 상징인 두꺼비를 양쪽에 그린 그림보다 나중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벽화가 중국의 상고신화를 반영한다고? 그렇다면 문화의 하향성이라, 우수한 문화에서 저급한 문화로 파급되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럼 한국사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던 고구려가 대치중이거나 정복의 대상이었던 나라의 신화를 자기네 조상의 뼈를 묻는 고분에 그려 넣었단 말인가.
왕조가 세 번이나 바뀌고 천년 세월이 지난 후에 그려진 소위 민화라는 그림에 고구려 고분벽화의 달 토끼가 그려진다. 그럼 그것도 중국의 영향이란 말인가.
그런데 왜 달이 두꺼비가 되었을까. 다시 항아의 전설로 돌아가 보자. 항아는 예가 서왕모에게서 받은 두 사람 몫의 불사약을 먹는다. 그러자 몸이 둥둥 떠올랐다. 점쟁이 유황에게 점을 쳤다. 점괘는 ‘길하다. 나중에 창성昌盛하리라’였다.
하늘로 날아가다가 천제의 노여움을 피하려 잠시 달에 들렀다. 도착하자마자 항아는 온 몸이 울룩불룩 ‘창성’해져서 두꺼비가 되었다. 그것이 달 두꺼비의 사연이다. 서왕모ㆍ예ㆍ항아... 모두 동이족이다.
상아분월: 상아가 불사약을 먹고 둥둥 떠서 하늘을 난다. 지상에 유배보낸 천제의 눈치를 보느라 잠시 달에 들렀다가 아예 눌러앉는다.
조선 벽화에도 두꺼비가 그려진다. 맹꽁이처럼 그려지지 않았어? 아니, 두꺼비이다. 신화는 그렇게 일상화한다.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산다.
달에 얽힌 신화를 읽으면 민화에 그려진 토끼 그림의 비밀이 솔솔 풀려나간다. 아울러 우리말, 그러니까 조선말, 나아가 알타이어가 한자로 바뀌면서 야기되었던 오해가 하나하나 풀어진다. 그래서 신화는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우리의 신화이기에 우리가 가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신화적 원형이라는 것이다.
최초에 달은 태양신의 아내인 태음신으로 생각되었다. 태양신은 동쪽에 있고 태음신은 서쪽에 있다. 그래서 서왕모가 태음신이 되었다. 산해경에는 서왕모가 짝이 없다. 나중에 동왕공東王公라는 짝을 만들어 주었다. 태양신을 모델로 했다. 당연히 서왕모는 서쪽에서 달의 신이 되었다.
그믐에 죽었다가 보름에 살아나는 달과 불사약을 관장하는 서왕모가 결합한 것이 달의 신이다. 서왕모가 호랑이니까 달의 신은 호랑이가 된다. 두꺼비가 되는 것은 천제의 노여움 때문이다. 항아의 남편인 예가 쏜 아홉 개의 태양은 천제 제준의 아들들이었다.
약간 빗나간 듯하지만 제준은 순임금이다, 순임금은 백번을 이야기하더라도 동이족이다. 맹자가 이루편에 명시했기 때문이다. 그 아내 희화羲和가 동방 바다 밖 탕곡湯谷에서 아들을 낳아 하늘로 올려 보냈다.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오르자 세상이 가뭄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동이장군 예가 아홉 태양을 쏘았다. 아홉 마리의 황금빛 세발까마귀가 떨어졌다. 제준은 예를 벼른다. 예는 스승의 활 재주를 시기하는 봉몽의 복숭아 몽둥이를 맞고 죽었고, 그의 아내 항아는 두꺼비가 된다.
태양이 삼족오라고 했다. 발이 셋이고 홀수이다. 토끼는 네 발이다. 두 다리 두발이라 해도 짝수이다. 두꺼비 역시 네발 혹은 네 다리이다. 역시 짝수이다. 이렇게 짝수 홀수가 다른 것은 이 신화가 만들어지던 시대의 부계사회와 모계사회의 반목이 배경에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신화는 고구려벽화와 민화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신화 속의 용이나 봉 역시 달토끼나 달 두꺼비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친근하다. 그런가. 그럼 하나 묻자. 용의 발톱은 몇 개인가?
노은님은 푸른 하늘 은하수 토끼 두 마리를 그렸다. 호랑이 대신 토끼 방아라, 달의 상징이 원래 호랑이였다니 호랑이 입장에서는 기구한 팔자인 셈이다.
동왕공은 명간본 월단당선불기종에 실렸다. 산해경의 서왕모에 비하여 성격이 확고하지 않다. 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8. 용의 발톱
용의 발톱이라... 용에게 발톱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용이야 상상의 동물 아니던가. 옛 사람들이 비온 후에 산허리를 감도는 구름을 보고서 상상하여 만든 동물이 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용오름이라는 것도 있다. 깔때기나 기둥처럼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며 공기나 물을 말아 올리는 회오리바람의 일종이다. 장대같은 빗속에 미꾸라지가 마당에 후두두둑 떨어지기도 한다. 신비한 동물이 일으키는 것이라 생각될 만 하다.
산의 구름과 공기기둥에 발톱이 있으랴마는 그래도 용의 발톱은 생사람 잡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발톱을 그리지 않았다고 곤장을 맞은 화원도 생겼던 것이다.
원래 용은 황제가 만들었다 했다. 지덕地德, 즉 땅의 덕을 빌어 황룡黃龍를 만들었는데 마치 지렁이蚯蚓와 같다 했다. 황제의 시대인 기원전 3천년 경 앙소문화에서부터 이 지렁이는 진화한다.
최초에 눈도 코도 없는 길다란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이 생긴다. 사람들 틈에 끼어들면서 차츰 모양새를 갖춘다. 이윽고는 사람들의 제사를 받는 놀랄만한 존재로까지 진화한다.
용의 모습을 보자. 낙타 머리에 사슴 뿔ㆍ소의 귀ㆍ귀신의 눈을 가졌다. 물고기 비늘이 덮인 뱀의 목으 따라 내려가면 배는 이무기와 같다. 호랑이 발바닥과 매의 발톱을 지닌다. 이렇게 괴물스럽게 용의 캐릭터가 확정되기까지 무려 오천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용은 비늘을 가진 모든 것의 우두머리라 했다. 무속에서는 용신으로 모시기도 하고 유교에서는 충성과 같은 개념으로, 또는 과거 급제와 같은 의미로 쓰기도 했다. 중국인에게 용은 천자를 뜻하기도 한다. 용의 발톱은 그렇게 진화하여 만들어진 용에 정치적인 목적이 곁들여 만들어진 것이다.
용오름에서 용을 연상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허리케인의 회오리바람1968년 미국는 살아있는 거대한 괴물처럼 보인다.
한나라 화상전의 무당과 용이다. 산서 지방에 있다. 무당은 하늘에 제사지냈다. 그래서 천군이었다. 하늘의 조짐을 용을 통해 가늠했나 부다.
오조운룡도五爪雲龍圖이다. 먹장구름을 뚫고 용이 나오고 있다. 화염에 휩싸인 채 발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다. 발톱을 세어보니 다섯이다. 오조룡이라 부른다. 다섯 개의 발톱은 황제를 뜻한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중국의 황제를 상징하는 그림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한국에서 그려졌다. 물론 민화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황제가 오조룡, 황후가 사조룡, 태자가 삼조룡으로 그려졌다. 중국에서 볼 때 조선에는 황제가 있을 수 없으니 다섯 개의 발톱이 그려질 수 없는데 그려진 그림이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가. 이유가 있으렷다.
그 첫 번째는 이 그림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가정이다. 조선의 왕공 귀족이 중국으로 보내는 그림이 아니라 중국과는 상관없는 백성들이 보고 즐기는 그림이니 마음대로 발톱 다섯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에 대한 전통적 사대외교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이 그림이 그려졌으리라는 가정이다. 17세기에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한다. 조선으로서는 패망한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셔야 할 명분과 실리가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호란 등의 이유로 청나라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청이 황제를 칭할 때 우린들 황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냐는 심보에서 그려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논의는 중국을 빼고 이야기될 수가 없다. 마치 용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중국인이 키웠으며 중국인에 의해 숭배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한국인이야말로 전통적으로 용을 신성시했던 민족이다. 사대주의야 사대부들의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 땅이 얼마나 큰지, 그 역사가 얼마나 오랜지 알지 못하는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용을 숭배했을까. 오히려 중국의 것이 아니라는 어떤 믿음이 있어 그토록 용을 아끼고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겠는가. 일찍이 그 증좌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생물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이 용이다. 나아가 견훤과 용왕국 이야기, 문무왕과 호국용, 용비어천가의 해동육룡 등의 표현은 수입 중국룡이 아니라 이 나라가 용의 원산지일 수 있는 가능성을 잘 말해주는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조운룡도
중앙일보... 중국인은 분명 현란한 문화를 가꾸어 간다. 때로 외화外華로 느낄 만큼 번잡함에 떨어진다.
운룡도. 궁중에서 용의 발톱을 세어 그리는 것은 상국의 질책을 면하려 함이다. 사대란 큰 것에 빌붙음이 아니라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심뽀 아닌가.
강륜문자도綱倫文字圖 중에서 충忠자 그림이다. 충성 충자를 용과 잉어, 새우와 조개 등으로 획을 맞추어 그렸다. 그 중에서 역시 중심이 되는 것은 용이다. 발톱이 넷이다.
충 자 그림의 용은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하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이다. 물고기 중에서도 잉어가 변해서 용이 된다는 뜻이다. 산해경에 용어가 탈바꿈을 한 것이겠지. 잉어는 용문의 폭포를 거슬러 오른다.
성공한 잉어는 꼬리가 타서 없어지고 용이 된다. 실패하면 떨어져 이무기가 된다. 그것이 약리도躍鯉圖의 의미이다. 뛰는 잉어 그림이라는 뜻이다. 등용문登龍門라 할 때는 용문의 폭포를 오른다 뜻이다. 모두 출세나 등과 급제를 의미하며 그 목표를 문무백관과 함께 조정에서 임금을 모시는 데 둔다. 그래서 급제와 충성은 동일 개념이 된다.
새우蝦와 대합조개蛤는 하합이 되어 화합和合와 발음이 비슷하다. 왕과 신화의 화합을 뜻한다. 충 자의 다른 의미는 용방직절龍逄直截의 고사에서 비롯된다. 용방은 은나라 걸왕桀王의 무도함을 간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용방이 죽자 뜰에서 서책을 진 거북이가 나왔다. 그래서 충성과 용이 다시 한번 같은 뜻으로 새겨지게 된다. 은나라 혹은 상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다.
강륜문자도에서 용의 발톱이 넷인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과거에 급제하여 대궐로 나아가거나 목숨을 걸고 충간을 하느 신하가 결코 황제일 수 없으니 발톱이 다섯인 황제 그림으로 그려질 수가 있겠는가.
강륜문자도의 충 자는 그렇게 볼 때 용방이라는 충신이 주제이면서 용문의 잉어가 부제이다. 등과급제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충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방이라는 이름의 용자에 용과 연상되는 과거나 화합 등이 연상결합하여 충자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자도의 내력은 다분히 용의 발톱과 같다. 자연현상이나 기상현상이 용을 연상케 하는 것이나 용방이라는 이름에서 용을 충성과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접근방식에서 나온 것이 용의 발톱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용이 신앙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용신과 용왕의 이야기는 도상을 넘어 신앙으로 향하는 진화의 한 방향을 보여준다.
강륜문자도
용은 언제나 옆얼굴만 그려졌다. 그런데 이렇게 정면그림도 있다. 가상의 동물이 유전되면서 그리기 쉬운 옆얼굴이 많이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강륜문자도이다. 이 그림을 보면서 용궁을 그린 그림이라고 착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하긴 횟집 수족관을 보고서도 용궁이 따로 없구나 하고 찬탄할 수도 있겠지.
용신승용도龍神乘龍圖라, 용신이 용을 타고 있는 그림이다. 무속에서 주로 사용한다. 용신은 바다에서 살면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할만큼 영향력이 큰 신이다. 타고 있는 용의 발톱을 세어보자. 셋이다. 용신이 타는 용이니까 결코 다섯은 아니될 것이다.
용신은 얌전하게 용 위에 앉아 있다. 얌전하다는 것은 마치 색종이로 오려 붙인 듯 용과 바다와 용신이 그려졌다는 말이다. 무속화의 분위기가 이렇게 맨송맨송한 것은 논리적이거나 사실적인 표현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당들이 사용하는 민화는 도상과 그 상징적인 의미만이 남아 있다. 때로는 방위와 소재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그려진 어떤 그림이건 무당이나 단골은 꺼리지 아니한다. 그림이 있는 곳을 향하여 절을 하고, 그림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그 앞에서 손을 비빈다.
용신이 살고 있는 곳은 용궁이다. 용궁은 연못이나 바다 동굴 속에 있다고 여겨졌다. 신화적인 용은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중의 하나인 용과 결합한다. 그리고 용궁을 만들어내고 사해용왕이라는 신격을 탄생케 했다고 풀이된다.
불교의 용궁사상은 금은보석으로 만든 다섯 개의 기둥 위에 세워져 있고, 궁전의 좌우에는 5천개의 누각이 있다고 했다.
용궁과 용왕은 상고 신화와 불교의 영향 하에 민간 신앙으로 자리한다. 별주부전의 용왕이 신하를 점고한다. 그리곤, ‘내가 용왕인지 어물전 주인인지 알 수가 없구나’ 하고 한탄한다. 용왕이 그러고 보면 물고기 과科의 우두머리로 그려지는 것이다.
용이나 용궁은 인도 혹은 중국의 영향권에서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기층 민중의 마음속에 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중국이나 인도에서 용이 자리 잡기 전에 이미 확실한 형상을 띠고 그려졌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용은 중국과 인도의 용이 아니다. 산해경의 괴물을 닮았다. 마치 산해경의 전통이 고구려 벽화로 옮겨졌다가 민화로 이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우리의 신앙에서 용왕은 어부들만의 외경 대상이 아니었다. 심청전의 용왕은 우리에게 불교의 용왕이라기보다 마음씨 좋고 신통력 있는 할아버지처럼 그려진다. 인간의 마음으로 인간을 다독거릴만큼 친밀한 것이 우리의 용과 용왕이었다.
어찌 그것이 외래 신앙이었겠는가. 우리의 집단무의식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용신승룡도
각설이 타령이 구수한 옆판에 용고가 놓였다. 민중의 생활 속에 숨 쉬는 전통이랄까.
중국 용의 시원은 기원전 3천년 전으로 생각된다. 화하족이 형성되기 전 대륙을 지배했던 문명권의 산물이었다.
용의 문화는 우리 주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깔려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용생구자龍生九子이다. 용이 낳은 아홉 아들이라는 뜻이다.
종의 소리가 크게 나라고 용뉴의 구부린 용의 고리에 거는 포뢰鮑牢, 용고龍鼓라는 큰 북에 그리는 수우囚牛, 먹는 것을 좋아해 식기에 새기는 치문蚩吻, 불을 막으려고 목조 가람이나 전각 지붕에 세우는 조풍嘲風, 살생을 좋아하여 칼자루에 새기는 애자啀呲,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 뚜껑에 올려놓는 산예狻猊,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하여 비석 아래에 새기는 패하佩下가 일곱 아들이 된다.
그러니까 아홉 아들 중에서 두 아들이 빠졌다. 성격이 겹치고 혼동되어 따로 독립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용생구자란 오늘날 중국에서는 한 부모 밑에서 난 자식이라도 성격이 각양각색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원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도상과 속담만 왜곡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이 중국의 용이다. 그럼 진짜 용의 모습은 어떨까.
산해경에서 응룡應龍는 비를 내린다. 황제가 치우蚩尤와의 싸움에 밀리자 응룡의 도움을 얻어 치우를 죽인다. 그 벌로 응룡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하계에 가뭄이 들었다. 그때마다 응룡의 모습을 만들면 비가 왔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운룡雲龍는 응룡의 모습일 것이다.
이 신화에는 약간의 추리가 필요하다. 치우를 죽인 응룡은 원래 하늘에 있었다. 그런데 지상에 내려와 치우를 죽였기 때문에 하늘의 미움을 받았다. 하늘이 치우 편이라는 이야기이다.
치우는 동이족이다. 치우천황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하늘은 동이의 세계요, 하늘의 지배자인 하느님이 동이 편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편짜기로 좋은 치우, 나쁜 황제로 매도하기는 이르다. 왜냐하면 황제의 누를 황黃=빛날 황煌=임금 황皇로 태양신과 같은 위상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고 신화에서 신들의 성격이 분화 결탁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오늘날 한족은 동이가 활동하던 후대에 형성된 종족이다.
용이 화하족, 즉 한족의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직도 솔깃한가? 좀 더 생각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다. 동이족의 신조는 그런 각도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최경식은 ‘일어남과 사라짐’에서 용머리를 매달았다. 위빠사나의 지혜와 애처럽게 울며 도망가는 포뢰를 쫓는 경어鯨魚를 결합시켰다.
인사동에서는 지금도 용 그림을 살 수 있다. 수요가 있다는 이아기이다. 공급이 뒤따르고, 그렇게 전통은 이어져 내려온다.
9. 봉황을 보렸더니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라는 시조가 있다.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오고’ 로 이어져서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렷세라’라고 마무리된다. 벽오동에 봉황이 내린다니, 나무를 심어놓고 기다려볼 일이다.
용이 비늘을 가진 동물의 우두머리라면 봉은 새들의 우두머리라 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용은 남성적인 것, 봉은 여성적인 것이라 한다. 또는 용은 화하족의 도등圖騰즉 토템이며 봉은 동이족의 상징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한국에서 봉은 먼저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수를 놓은 봉대鳳帶, 새긴 봉잠鳳簪, 봉의 꼬리를 흉내 낸 부채인 봉미선鳳尾扇 등이 있다.
그리고 봉은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좋은 벗은 봉려鳳呂, 아름다운 누각을 봉루鳳樓, 피리 등의 묘음은 봉음鳳音이었다.
봉은 신성한 것이었다. 봉황을 장식한 봉궐鳳闕, 봉황으로 수레를 장식한 봉거鳳車, 연못은 봉지鳳池였다. 모두 봉황의 덕을 기린 수식어였다.
마치 봉의 나라라 할 만큼 봉으로 둘러싸인 것이 한국이다. 어찌 옛날 이야기로만 접어 둘 수 있겠는가. 오늘날도 대통령은 봉황을 배경으로 연두교서를 읽고 신혼 부부는 봉황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그런데 봉황이 어떤 새인가? 엄밀히 말해 봉황은 새가 아니다. 신화와 상상 속의 존재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징표를 가지는 것은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봉황은 오색의 깃털을 가진다. 닭의 머리에 제비 턱, 뱀의 목에 거북의 등, 물고기 꼬리를 가졌다고 했다. 다른 징표도 있다. 꿩의 머리에 원앙의 몸, 학의 다리와 앵무의 부리가 그것이다.
어떻게 그려지건 분명한 징표는 닭볏과 길게 찢어진 눈, 오색찬란한 깃털과 현란한 꼬리, 긴 다리 등이다. 이렇게 그려지건 저렇게 그려지건 이러한 징표가 있으면 봉이요, 황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민화의 봉황이 있었다.
김현주는 규방의 여심에서 봉황 떨잠을 그렸다. 어찌 규방만이랴. 한국은 봉의 나라였다.
창경궁에서는 오늘도 봉황이 그 후손들을 맞는다. 아예 잊지 말라고 오르내리는 돌계단에 새겨 놓았다.
혁필봉황도革筆鳳凰圖는 넓은 가죽 붓으로 그린 봉황 그림이다. 어릴 적 장터에 가면 혁필로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들이 있었다. 사람 이름이나 수복강령 등의 글자를 쓰고 그 위에 소나무ㆍ학ㆍ호랑이ㆍ봉황 등을 그렸다. 그것이 민화의 본모습이었다.
백로지라고 오늘날 신문지 같은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넓은 가죽 붓에 여러 색의 물감을 칠하고서는 휘적휘적 저어 그렸다.
사람들이 주욱 둘러앉아 구경을 하면 환쟁이는 신이 났다. 훠이 훠이 소리를 지르며 그린 그림을 둥글게 말아준다. 집으로 가져온 사람은 소중히 벽에 붙인다. 그러나 백로지는 누렇게 바래고 물감은 금새 퇴색한다.
그림을 주문한 사람 역시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선 잊어버린다. 그것이 이 그림의 운명이었다. 그러하기에 이런 그림을 민화라 불러 편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이 편한 그림이 일본인의 눈길을 끈다. 그래서 퇴색과 망각의 수렁에서 그림이 건져진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고단샤講談社에서 출판된 리쵸노 밍가李朝の民畵에는 일본인의 취향이 맞는 한국의 그림이 ‘밍가’라는 이름 아래 수록되어 있다.
밍가는 민화民畵를 일본식으로 읽은 말이다. 일제는 합방과 함께 대한제국은 묵살하고 조선국을 이씨조선, 줄여서 이조라 불렀다. 한나라의 국체를 일개 씨족의 왕조로 만들었다. 우리 한국인조차 의식없이 이조를 들먹이는 사이에 조선은 반쪽짜리 한국, 즉 북한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 버렸다.
민화도 마찬가지이다. 민화라는 개념이 없는 일본에서 일본인이 자기네 싸구려 상화인 오쓰에大津繪에 붙였던 어정쩡한 이름을 조선의 그림에 붙여주었다. 조선왕조를 격하시킨 이조를 앞에 붙여 도록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조의 민화가 되었다.
그 책이 민화의 범본이요, 범주요, 그리고 기득권이 되었다. 곱고 부드러운 일본화풍의 민화가 오늘날 장한평, 인사동에서 최고의 가격을 호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필화는 조선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국 북경에 갔을 때 천단天壇 광장에서 혁필화를 그리는 장면을 유심히 본일도 있었다. 그러나 혁필봉황도는 혁필로 그리는 문자 그림이나 장식 글자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혁필을 이용하되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려는 분명한 의지가 읽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봉황을 그렸을까.
혁필봉황도
죽실봉황도의 봉은 참 못생겼다. 어떻게 이런 새가 서조요 길조일까. 그리고 이런 그림이 우리 그림이라니, 창피하다... 고 생각하는가?
오동봉황도는 일본의 봉황인가부다. 얼마나 우아한가 말이다. 디자인도 참하고, 솜씨도 좋고...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일본사람에 의해 형성된 ‘밍가’의 범주에 미혹당하고 있다.
강륜문자도 중에서 청렴할 염廉자이다. 따로 이름을 붙이자면 죽실봉황도竹實鳳凰圖가 된다. 봉건 유교 사회에서 관료의 청렴함은 바로 국가의 기강이었다. 청렴함의 상징으로 봉황이 그려졌다. 봉황이 먹고 마시는 것이 청렴하기 때문이다.
강륜문자도는 효제충신예의염치의 여덟 덕목을 한자로 쓰고 그림으로 획을 대체한다. 때로 해당 덕목의 시구詩句나 절구絶句를 적는다. 청렴할 염자에 봉황을 그릴 때는 봉비천인鳳飛千仞 기불탁속飢不啄粟라 적는다.
‘봉은 천길을 난다. 배가 고파도 조를 쪼아먹지 않는다’라는 내용이다. 봉이 천길을 나는 것은 공기의 밀도가 날개짓을 받을 수 있을만큼 두꺼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조를 쪼아 먹지 않는 것은 봉황이 오직 죽실을 먹기 때문이다.
봉황 그림에는 대나무ㆍ죽순ㆍ오동나무 등이 함께 그려지기도 한다. 봉황이 대나무 열매인 죽실을 먹고 오동나무에 깃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천의 물만 마신다. 태평성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순임금 때 봉황이 나타났다. 순임금이 동이라 했으니 우리 종족과 연관이 깊다.
그런데 죽실이 뭔가. 대꽃이 피고 난 다음 맺는 열매이다. 대나무 꽃은 일정한 주기를 따라 핀다. 30년ㆍ60년, 혹은 120년 만에 필 때도 있다. 죽실은 구황벽곡에 쓰인다. 흉년에 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이 구황이요, 곡식을 먹지 않는 것이 벽곡이다.
죽실을 먹고 살 수 있을까. 보통 사람이 죽실로 연명하려면 몇 년을 모아야 두어달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상서로운 새인 봉황이 배를 곯는 한이 있더라도 죽실만을 가려 먹는다는 것이 청렴함이라 생각됨직도 하다. 대나무야 원체 절개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죽실일까. 오동나무에 앉으면서 죽실을 먹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더욱이 대꽃이 피면 대나무는 죽실을 맺을망정 대밭 전체가 말라죽는다. 오늘날 과학으로도 왜 대꽃이 피면 대나무가 말라죽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인은 그 이유를 안다. 봉황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 해답은 다음 그림에 있다.
죽실봉황도
상주 시대의 기봉은 많이 진화된 봉황으로 보인다. 순임금 때 나타났다는 봉황은 기봉을 닮았을까. 앙소유적에서 발굴된 새와 닮았을까.
앙소에서 이미 새 문양을 볼 수 있다. 앙소는 중국 문명의 시원이면서 동이문화의 중핵이다. 새 숭배는 동이족의 신앙이었다.
초기 새 무늬이다. 어째 까마귀를 닮은 듯하다. 까마귀는 태양의 상징이었다. 까마귀가 봉황으로 돌연변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양봉황도朝陽鳳凰圖는 아침 해와 봉황 그림이다. 오동나무와 함께 그려지면 오동봉황도梧桐鳳凰圖가 된다. 민화에 그려지는 봉황은 보통 두 마리이다. 그래서 봉황이다. 한자 풀이에 의하면 봉은 암컷 홍은 수컷이다. 그러나 이 구분은 후대에 중국인에 의해 붙여진 인위적인 기준이다. 서왕모가 홀몸이어서 적적하리라 하여 동왕공이라는 신격을 만들어 준 것과 같다.
보통 우리가 볼 수 있는 민화는 호사스런 극채색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조양봉황도는 수묵담채라 할 수 있다. 극채색의 화려한 봉황에 비하여 이 그림은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만약 그렇게 느꼈다면 그것은 민화 자체의 잘못이 아니다. 왜색조 혹은 일본 잔재 때문이다.
우리의 그림을 수집했던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그림들이 오늘날 민화라는 이름으로 아예 범주까지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봉황은 중국인이 만들고 일본인이 완성한 새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우리 나라에 이토록 봉황이 세력을 떨치고 있을까.
그 이유는 봉황이 우리의 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이족이라 불렀던 조상의 후손이라는 말이다. 봉황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 함은 목축과 농경시대에 태양의 순조로운 운행이 바로 태평성대라는 뜻을 담고 있다. 황제 치세와 순임금 치세에 봉황이 나타났다고 했다.
황제씨, 즉 황제의 자손들은 신석기 시대 목축과 농경문화를 일으킨 알타이어족이다. 그 황제는 황제=황제=황제로 태양숭배사상과 일체시 되었다. 그리고 봉황이나 까마귀가 태양숭배의 상징새로 나타났던 것이다.
순임금은 동이족의 수장이었다. 까만 새의 옷을 입고 태양에 제사를 지내는 제관ㆍ천관ㆍ혹은 단군이 바로 족장의 모습이었다. 순임금은 제준이라고도 한다. 제준은 태양신이다. 제준의 아내 희화가 낳은 열 아들이 하늘에 태양으로 떠올랐던 것도 제준이 태양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태양숭배 사상과 조류숭배사상이 결합하여 봉황이라는 새의 대표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조양봉황도
전국시대 와당무늬. 동이의 전통은 하상주 춘추 전국에까지 미친다. 적어도 신화나 원형은 진 한에 이르기까지 영향권이리라는 조짐도 많다. 전국시대의 문양에 까만 봉황과 삼태극의 태양이 나타남이 이상할 것이 없지 않은가.
고구려의 벽화에 봉황이 그려진다. 그야 동이의 후손이니까. 중국 문명이 고구려로 흘러 들어갔을까. 중국문명이라.. 그 전파 루트에 의문이 생긴다.
봉황은 태양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 곤륜산을 넘어 서쪽의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말을 바꾸어보자. 봉황은 동방군자지국에서 태어나 뭇 새를 이끌고 하늘을 난다. 하늘 산을 지나 봉혈鳳穴에서 잔다.
태양이 동쪽에서 뜨면 뭇새들이 이슬을 떨치며 날아오른다. 곤륜은 하늘이요, 곤륜산은 예로부터 태양산이었다. 바람 풍風와 봉새 봉鳳는 같은 말이다. 봉황의 황凰=빛날 황煌=빛 광光이었다. 산해경에 나오는 광조光鳥ㆍ명조明鳥 역시 봉황의 다른 이름이었다.
즉 봉황은 빛나는 빛의 새, 즉 태양새였다. 그러므로 봉황은 태양숭배사상과 조류숭배사상에서 태어난 새이다.
봉황이 태양인 이유가 또 있다. 산해경의 남차산경에 묘사된 봉황은 인仁 의義 예禮 덕德 신信를 갖추었다. 가슴의 무늬는 인을, 날개무늬는 의를, 등의 무늬는 예를, 머리의 무늬는 덕을, 배의 무늬는 신을 나타낸다 했다. 이 새가 먹고 마심에 있어 자연의 절도에 맞으며,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추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평안해진다고도 했다.
희한하구만. 무슨 새가 그런 새가 있담. 그야 태양새니까. 태양이 제대로 운행하는 세상, 추수동장秋收冬藏라 가을에 거두어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겨울을 나는 것, 그것이 태평성대가 아닌가.
봉황은 우리에게 단순한 숭배의 대상만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역사이며 원형이었다. 먼저 봉황은 우리 땅에서 태어났다. 왕충이 쓴 논형에는 봉황이 중국에서 태어난 새가 아니라 했다.
이아익爾雅翼과 설문說文 역시 봉황이 동방군자지국에서 태어났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동방군자지국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 아닌가.
봉황이나 용 등 산해경과 알타이의 영수靈獸, 서조瑞鳥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새끼를 치고 분가를 한다. 그 핵가족 중에 사령이 있고 사신이 있다.
백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용봉향로에는 봉황이 박산 위에 앉았다. 박산이라 밝산이요, 산이니 태양산이다. 박산은 또 다른 동이문화를 담고 있다. 신선사상이다.
백제무령왕릉에는 오늘날의 봉황과 비슷한 목제 봉황이 발견되었다. 백제는 상고시대부터 산동지방 등 황해 쪽 중국대륙에 거점을 두었다는 주장도 있다.
남도 민요의 구성진 농부가에 봉황이 그려졌다. 어울리는가. 그림이 아니라 내면에 흐르는 진한 혈통의 끈을 보아야 할 것이다.
10. 하늘 사신 땅 사령
신화는 생명을 가진다. 생성 소멸한다. 신화는 또 혼돈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혼돈 속에서 신화는 자유롭다. 혼돈의 끝은 신화의 정착이다. 정착은 신화의 죽음이다. 오늘날 우리가 신화의 체계와 신의 족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신화의 죽음에 기인한다.
기린麒麟는 신화의 죽음을 잘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잊혀지고 이름까지 뺏긴 짐승, 그것이 기린이었다. 우리에게 기린은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경사스런 동물이었다. 그러나 생식을 통해 종족을 늘리지 않는다는 동물이기도 했다.
그럼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잊어버리면 멸종될 수도 있는 것이 기린의 운명이었다.
신화의 기린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종이 위에 그림으로 그려보자. 기린은 노루의 몸통을 가진다 했다. 발굽은 말, 꼬리는 소를 닮았다. 그런데 머리 위에 살로 이루어진 뿔이 하나 달렸다. 기묘하게 생긴 기린은 일찌감치 사령四靈, 즉 용봉구린龍鳳龜麟 중에 튼튼히 자리 잡았다. 용과 봉과 거북, 그리고 기린이 사령이다.
용과 봉은 우리의 기층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림으로, 조각으로, 나아가 옷의 관식이나 흉배 등에 용이 장식되었고, 봉은 병풍이나 그림 등 경사스런 일을 돋보이게 하는 장소와 물건마다 치장되었다. 거북은 한국에서 찬란한 독자문화를 형성한다. 거북선이나 십장생의 거북이 그러하다. 거북을 잡았을 때 어부들은 거북에게 술을 먹여 바다로 돌려보낸다. 바로 거북놀이이다. 바다 속에는 용궁이 있다. 그런데 유독 잊혀진 것이 기린이다.
사령은 용봉구린이라 했다. 그럼 사신四神는 뭔가.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이다. 하늘나라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는 신적인 동물들이다.
사령과 사신은 거의 비슷하다. 용=청룡, 봉=주작, 구=현무로 배대될 수 있다. 다만 기린은 멸종하고 백호만 후세에 살아남았다. 신화는 이렇게 적자생존과 자연도태를 겪는다.
낙수의 거북, 하나라 우임금 치수때 낙수에 거북이 나왔다. 마흔 아홉 개의 점이 등에 찍혀 있었다. 주역의 기본이 되었다. 하상주시대는 이족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거북선에서 보듯 우리의 거북은 가이 신앙적이었다. 거북이 그렇게 쓸모가 많았나? 다시 동이의 전통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달밤에 요강 들고 체조한다더니 장생화락도에서 웬 거북들이 설치남. 이상하지 않은가. 왜 거북일까.
모란기린도牡丹麒麟圖가 있다. 주연은 기린이고 모란은 조연이다. 배경에 수석ㆍ댓잎ㆍ불로초를 그리기도 한다. 민화가 그러하듯이 이 그림은 상징적인 풀이가 있다. 댓잎은 군자의 절조를, 모란은 부귀, 수석과 불로초는 장수를 의미한다.
여기에 기린이 그려졌으니 부귀장수와 군자절개를 갖추고 태평성대를 구가하라는 뜻이다. 이토록 기린은 지극히 상찬받는 존재였다.
기린은 기와 린이 합쳐진 이름이다. 기는 수컷, 린은 암컷이다. 시경이나 춘추에 기록될 때만 하더라도 매우 단순해서 린麟만 있었다. 동왕공이나 봉황처럼 후세사람들이 어찌 짝 없는 짐승이 있으리요 하고 기麒를 붙여 기린이 되었다. 그러나 기린은 암수의 교접에 의해 태어나지 않는다. 기린의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기린은 용이나 해태와 구별하기 힘들다. 한국적 변용을 거친 것이다. 기린의 진화이면서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오직 하나의 징표를 가진 짐승이 기린이었다. 머리 위에 살로 이루어진 뿔 , 이 징표만으로는 후세에 살아남기 어렵지 않겠는가.
그 원형에 비교적 가까운 형태가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존되어 있다. 걷기도 하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 새까맣게 그려지기도 하다. 머리 위에 뿔이 있다. 살로 이루어진 뿔, 그것은 사람을 받아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기가 되지 않는다 하여 어질 인仁의 상징이었다.
기린은 털을 가진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이다. 살아 있는 풀이나 벌레를 밟지 않는다. 그래서 어진 짐승이다. 왕자王者, 즉 왕이 될 재목이나 성인이 출현할 때문 사람들이 볼 수 있었다.
오늘날 기린아麒麟兒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이런 성격이 뭉쳐 기린의 신격이 완성된다. 그것이 진화요, 그 결과로서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이 민화 속의 기린이었다.
민화의 기린은 기린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민화 속의 기린은 죽은 기린이다. 진화를 멈추고 그 자리에서 화석으로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끔 민화로 그려지는 경우를 빼면 기린에 대한 숭배나 이상화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기린의 죽음은 그렇게 기정사실이 된다.
모란기린도
삼실총 제2현실의 천장에 기린이 그려졌다. 고구려 벽화는 상고시대의 신화로 진입하는 사차원 통로이다.
용 봉 백호 현무가 그려진다. 삽사리는 해태처럼 그려지고 ... 그렇다면 용봉구린의 기린은 어디갔다. 신화는 그렇게 무정한 법이다.
살아있는 그림을 보자. 이름을 붙이자면 사령신구도四靈神龜圖ㆍ사령봉황도四靈鳳凰圖이다. 사신 그림으로 해석되기도 했던 그림들이다. 그러나 거북은 입에서 서기를 뿜으니 예사 거북은 아니요, 닭 머리ㆍ제비 턱ㆍ사람 눈ㆍ앵무 부리ㆍ두루미 다리ㆍ공작 꼬리를 갖추었으니 영락없는 봉이다.
누가 이 그림들을 사신의 현무ㆍ주작이라고 불렀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첫째, 이 그림이 그려지던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봉과 주작ㆍ현무와 거북의 성격이나 표징이 혼동될 수 있었다. 신화의 성장기였기 때문이다.
둘 째, 주작과 봉황은 친연관계이다. 주작은 봉의 가족이다. 거북은 현무의 한 구성요소이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봉과 주작을 구분하는 것처럼 거북과 현무을 구분할 수 있는 뚜렷한 징표는 없다.
일반적으로 민화에 그려지는 신구ㆍ거북은 때로 용머리처럼 꾸며진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지지고 볶더라도 고칠 수 없는 것이 등껍질이다. 거북의 등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의 화석에서나 오늘날에나 달라진 바가 없다.
그 거북이 연꽃과 함께 그려지는 것은 귀한 아들 연달아 낳으라는 뜻이 된다. 연생귀자連生貴子=蓮生龜子란 말이다. 바다에 떠 있을 때는 용궁과 연관이 되어 장수를 의미한다. 용궁에야 불로장생의 영약이 있을 게 아닌가. 그러나 그것은 민화의 해석이다.
신화에서의 거북은 낙구부도洛龜負圖의 영물이다. 우禹 임금이 낙수에서 치수할 때 나타난 거북의 등에 마흔 아홉 개의 점이 찍혀 있었다고 했다. 거기에서 팔괘가 만들어졌다. 팔괘는 주역의 중심사상이다.
거북은 삼경 중 하나인 역경易經의 대본인 셈이다. 그래서 신구라 했다. 그런데 우 임금 치수 때 나타난 거북이 조선의 민화에 그려져 있다. 웬 일인가.
우 임금은 순 임금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순임금은 동이족이었다. 그 동이의 흐름이 고구려 고분 벽화에 살아남았다. 그리고 세월을 뛰어넘어 조선의 민화에 그 모습을 각인하고 있는 것이다. 원형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에게 거북이 친근한 것일지라도 오늘날 중국인에게 거북을 선물하면 안 된다. 거북은 배신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령신구도ㆍ사령봉황도
도화귀자도이다. 약간의 비약이 필요하다. 귀한 아들이 조정으로 나아간다. 복사꽃은 과거 시험을 치르는 봄을 뜻한다.
연과귀자도. 거북이 기린처럼 그려졌지만 등 껍질은 속이지 못한다. 신령스런 거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신성한 상징물을 차용한 결과이다.
혁필용호도革筆龍虎圖이다. 혁필로 그린 용과 호랑이라는 뜻이다. 혁필은 넓은 가죽 붓이다. 여러 색을 묻혀 종이 위에 휘저어 그린다. 용호도에서는 사신사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흔적이라는 것은 옛날에 그 실체가 있었다는 말이다.
이 그림은 안료가 불안정하여 많이 바랬다. 용은 꼬리만 남고 호랑이는 껍데기만 남았다. 마치 신화의 퇴색과 죽음을 보는 듯하여 흥미롭다.
다시 생각해 보자. 사신이란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이다.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동사남북의 상징적인 동물들이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한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사신도가 완벽하게 전승 보존되었다.
청룡은 무덤이나 관의 동쪽에 그린다. 나무木를 상징한다. 머리에 한 두 개의 뿔이 나 있다. 날개가 달려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할 수는 있을망정 청룡이라 하여 반드시 파랗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청룡이 동쪽의 태양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백호는 서쪽에 그린다. 금金를 상징한다. 주로 흰 호랑이의 형체에서 시작하여 용처럼 신성화하여 그려진다. 호랑이는 한자로 개開 또는 계啓로 표기되었다. 옛 한국어에 태양ㅣㆍㅣ와 같은 뜻이다. 역시 날개가 달려 있다.
호피문을 그릴 때도 있다. 혀를 내민 것은 위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토설吐舌라 하여 오늘날에도 중국이나 일본의 그림 및 조각에 유적이 남아 있다.
주작은 남쪽이고 불火를 뜻한다. 빨간 새라는 뜻이다. 남방 성수의 일곱 별을 상징한다. 수탉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사실 그것이 주작이었다. 주작은 봉황의 가족이었다. 닭이나 주작ㆍ봉황은 모두 조류숭배사상의 산물이다. 나아가 그것은 태양숭배사상과 연결된다. 봉황은 태양이었다.
현무는 북쪽이고 물을 상징한다. 태음신이다. 색이 검다 해서 현, 껍데기가 있어 공격을 막으므로 무라 했다. 거북과 뱀이 얽혀 잇는 그림으로 그려지는 것은 윤회ㆍ재생과 연관이 있다.
뱀 허물은 고대인들에게 새로 태어남을 뜻했다. 또 복희씨ㆍ여왜씨와 연결되기도 한다. 인류를 만들었다는 오누이 신들은 뱀 꼬리를 지녔다. 태호 복희씨는 태양신으로 생각된다.
사신도는 태양의 네 가지 모습이다. 고구려 벽화에서는 무덤을 지켰다. 백제 송산리 고분벽화에서 고려 수락암동의 벽화로 이어지고 조선의 목릉으로 전해졌다가 민화 등으로 파급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날에도 용호는 풍수지리사상에서 좌청룡 우백호라는 굳건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혁필용호도
우현리 중묘 현실 서벽의 백호도이다. 흰 호랑이라 백호인데 어디에 하얀 호랑이가 있남?
강서 중무덤의 주작도이다. 이상한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작은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사신은 하늘의 사령사상이라 했다. 사령은 땅의 사신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늘의 사신이고 땅의 사령이다. 하늘의 동서남북에 자리를 정하여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 사신이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이다. 그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 사령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용봉구린이었다.
사령사신은 원래 오령오신이어야 맞다. 왜냐하면 오행사상 혹은 오방사상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방이란 동서남북과 가운데 중이다. 이것을 금목수화토로 풀이하는 것이 오행이다. 그 오방은 황제와 순임금에서 비롯한다. 황제는 관원을 임지에 보낼 때 청백적흑황의 흙을 급여했다.
순임금은 오악에 제사를 지냈다.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이 그것이다. 우주속의 인간에게는 중요한 방위마다 하늘의 뜻이 담겨 있느니라 하는 것이 사령사신사상이 되는 것이다. 인의계지신은 하늘사상이 인간에 깃들였다는 의미가 된다. 굳이 오신오방을 들먹이지 않는 이유는 사방사신이 에워싼 가운데에 황제와 순임금이 있다는 사상 때문일 것이다.
고대인들이 이렇게 방위와 원소, 인간사와 하늘의 일을 동일하게 생각한 것은 하늘이 인간의 일을 관장하되 인간이 볼 수 있는 조짐으로 나타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탁과는 다른 것이다. 신탁은 신의 의지와 백성들 사이에 영매나 제관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령사신의 신령스런 동물은 영매나 제관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대신할 영웅이나 왕의 재목이 나타날 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신탁보다 민주적이었던 셈이다. 인내천人乃天라 사람이 바로 하늘이라는 사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그 사상에서 볼 때 사령사신은 인간의 탈 것이었다. 물론 그 인간은 신선이나 비천 등의 이름이나 형상을 띄고 나타나기도 했다.
후세로 내려오면서 신선과 비천이 살아 있는 인간과 분리되듯이 사령사신 역시 인간과 분리된다. 인간이야 역시 인간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사령사신은 인간 세상과 분리되어 무덤이나 풍수지리 속에서 신비화의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그것이 신화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기린은 살아남지 못했다. 기린의 신격이 완성되고 안정된 세계를 이루면 사람들은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신화의 고착이요, 죽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형상은 인간과 인간 세상과 분리되더라도 결코 하나의 문화권에서 소멸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집단무의식, 즉 원형이다. 이를테면 벽사는 삿된 귀신을 몰아낸다는 신앙에서 비롯된다. 그 신앙의 기원이 되는 신화는 죽는다. 그러나 민족이 살아있는 한 원형은 죽지 않는다. 그 벽사의 원형을 보자.
청나라의 사령이다.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보존되어있다. 청나라라면 알타어어족에 속한다. 중국의 화하족과는 유전적으로 다른 종족이다.
한나라의 사신문이다. 전국 진한 시기는 동이족이 화하족에 동화되던 시기이다. 청나라 땅의 사신보다 훨씬 현실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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