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료예약 상담문의 02-900-8276
체질 다이어트 / 디스크, 관절염/ 체질진료/전통 침
스마트 한의원(4호선 쌍문역 3번)
不生不死(나는 것도 아니고 죽음는 것도 아님)
生死苦(나고 죽음이 고통임)의 이해
이세상의 사물을 보면 다 생겨났다 사라진다.이것을 생멸이라고 한다.생긴 것은 다 사라지게 된다.
이때 어떻게 생겼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죠. 그 중 하나가 창조설이다. 하나님이 창조했다.
그러면 멸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중에 하나가 종말론이다. 죄를 지은자는 영원한 지옥의 불구덩이에 선한자는 영원히 천국에 간다.그럼 불교에서는 어떻게 보느냐.불교에서는 눈을 감고 보면 생기고 사라지는게 있는데 눈을 뜨고 보면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눈을 감고 본다 이게 범부중생이다.어리석은 자가 보면 생기고 사라지고 깨닫고 보면 사실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이것이 불생불멸이다.이렇게 말한다.
얼음을 놔뒀는데 녹아서 없어지죠.어린아이는 그것을 보고 엄마 얼음이 사라졌네 그리고 물이 생겼네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어른이 보면 얼음이 없어진것도 아니고 물이 생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한다.다만 얼음이 변해서 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얼음이 그 모양이 변했을 뿐이다.그러니 없어진것도 아니고 생긴것도 아니다. 변화를 알지 못하면 생멸관이 생기고 변화를 알면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닌줄을 알게 된다.
아침에 밖에 나가서 동녘을 보면 해가 뜨고 저녁에 서쪽으로 해가 진다.해가 뜨고 해가 진다고 생각할 때에는 왜 뜰까 왜 질까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신이 아침에 불을 붙이고 저녁에 불을 끈다 이렇게 생각햇다.세월이 한참 흐른 뒤 정말 그럴까.그래서 동산에 올라 봤더니 그밑에 해가 있고 더 올라 가봤더니 그쪽에도 해가 있어 조금 더 올라 가봤더니 거기도 또 해가 있어. 불을 끄는 줄 알았더니 더 올라가 봤더니 그쪽에도 해가 있어. 그래서 아 해는 뜨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구나.해는 지구를 돈다.
그런데 더 연구를 해보니까 해가 지구를 도는게 아니고 지구가 돌고 있다. 해는 가만 있는데 지구가 뺑뺑 돌다 보니 지구에 사는 우리는 해가 지구에 가려 보엿다 안보였다 하니까 해가 뜬다 진다 하는 착각이 생겼고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처럼 착각이 생겼다. 사실은 해는 뜨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 범부 중생은 자기 관점에서 자기 경험을 중심으로 해서 그것을 객관화 시켜서 해가 뜨고 진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고 우리가 지구 밖에 나가서 보면 해가 뜨고 지는게 아니고 해가 지구를 도는 게 아니고 지구가 스스로 돌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생겼다.
그러니 해가 뜨는 것도 아니고 지는 것도 아닌줄을 알게 되면 해가 왜 뜨느냐 왜 지느냐 하는 이런 질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뜨고 지는 것이 객관적인 것 같지만 뜨고 진다는 것은 우리들의 착각에서 생기는 것이다.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사실인 것 같지만 착각에서 깨면 생긴다 없어진다 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념에서 생긴 것이다. 그러니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얘기해도 정신 나갔나 아침에 나가봐라 해가 뜨지 나만 그러나 다른 사람이 봐도 다 그런데 하는데 자기가 돌고 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으로 놓고 볼때는 자기가 돈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어.그래서 지구에서 나와야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우리가 자기로부터 나와서 그것을 아상이라 하는데 아상에서 벗어 나야 아 내 착각이구나 이렇게 알수가 있다.
그러니 창조니 종말이니 하는 것은 굉장히 연구를 잘해서 나름대로 이유를 댔는데 이것은 착각을 기초로 해서 얘기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 착각에서 깨는 것이지 착각을 사실로 하고 원인은 찿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꿈에 도둑놈을 만났다.아무리 도망을 가도 그 강도가 내 뒤를 따라오죠.온갖 노력을 해도 벗어나기가 어려워.그래서 관세음보살님보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관세음보살이 와서 숨겨 줬어. 그럴 때 관세음보살이 너무 고맙죠. 도둑놈은 너무 너무 밉죠.그런데 눈을 딱 뜨니 꿈이야.이렇게 눈을 뜨면 미워할 강도도 없고 고마워할 관세음보살도 없다.
그래서 미혹한 중생에게는 친한이와 미운이가 있고 눈을 뜬 보살에게는 친한이와 원수가 따로 없다.
어떤 사람이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졋어. 그래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야. 이 사람은 굉장히 후회가 되죠.바다에만 안나왔으면 안빠졌을텐데. 이 사람이 이제 두 번째 궁리를 햇는데 다시는 바다에 안나가. 바다에 안나가면 빠질일이 없죠. 이사람이 굉장한거 같지만 자유가 없지. 왜 바다에 못나가잖아. 물에는 안빠질지 몰라도 바다에는 안빠지잖아.
세 번째 사람은 배를 크게 만들었어. 바람이 불려면 불어라 파도야 칠려면 쳐라.그리고 바다에 가서 놀아.굉장한 사람이지.
첫 번째 사람은 살려고 놀려고 바다에 나갓다가 빠져서 살려달라 아우성치고 여러분들이 지금 행복할려고 결혼을 했는데 그 남편 마누라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 치면 이런 사람이야. 자식 낳을때는 좋을려고 낳았는데 애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이것도 범부중생이야.사업을 벌릴때는 돈벌려고 벌렷는데 난리고 본전생각날 때 이것도 범부중생이야. 이런 사람은 다 자기가 노려고 배타고 나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범부중생이야.
두 번째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야.바다에 안나가 버려. 그러니 빠질일이 없어.결혼 안해버려 자식 않낳아버려 사업안해 종업원 채용 안해 안해버려. 어디로 간다. 사람 없는데로 산으로 가버려.머리깍고 혼자 달랑 살아.그러면 바람이 불려면 불어라 파도야 칠려면 쳐라. 상관없잖아. 세상이 엎어지든 자빠지든 아우성치고 이렇게 괴로워하는 거 보면 고소하지. 이렇게 사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야.이게 스님들이라. 여러분들이 스님들 보면 부럽죠. 허우적대다보면 아이고 내 팔자야.내가 어쩌다 이래 됐나 싶은 거야.
그런데 세 번째가 뭐냐 성인이야 보살이야.큰 원력의 배를 타고 세상에 살아.세상과 어울려 살아도 마누라 때문에 괴롭다 안그래. 마누라가 무슨 지랄을 해도 끄덕 없어. 남편이 무슨 술을 먹고 개지랄을 쳐도 상관없어.애가 뭐 어떻든 상관없어.그러니까 세상에 몸을 두고 잇어도 세상에 휩쓸지지 않아. 범부중생은 세상에 때가 뭍는 사람이고 현인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노야 가지마라고 보살은 연꽃처럼 진흙탕에 살아도 때묻지 않듯이 세상에 있어도 때가 않묻어.술꾼하고 같이 잇어도 술 안먹고 게으른 사람하고 같이 있어도 부지런하고 도무지 구애를 않받아.
그런데 이것을 철학적으로 얘기하면 첫 번째 사람은 사법계라 그래. 여러분 인제 고상해 지는거요. 두 번째 세계는 이법계야. 첫 번째가 현상의 세계 두 번째가 본질의 세계.이때는 첫번째는 어리석은세계 두 번째는 현명한 세계 두 개가 별개의 세계야.척번째는 지옥이고 두 번째는 천당이고 그런데 세 번째 세계는 이사무애법계야. 이와 사가 걸림이 없이 둘이 하나인 세계. 바다와 육지가 나눠져 있는데 이것은 바다에서도 좋고 육지에서도 좋고 . 이것을 반야심경 논리로 하면 첫 번째가 색의 세계이고 두 번째 세계는 공의 세계 세 번째 세계는 색즉시공의 세계다.
그런데 네 번째 세계가 또 있다. 네 번째 세계는 때를 묻히는 사람이야.때가 묻는 세계가 아니라 자기가 가서 때를 묻혀.남의 때를 자기가 묻히고 다른사람을 깨끗하게 해버려.
해녀가 조개따러 물에 풍덩 빠졌어. 물에 빠졋어? 그럼 구제하러 가야겠네. 안빠졌어 그럼 육지에 있어. 해녀가 조개 따러 물에 들어갔을때는 현상을 보면 물에 빠졌죠 그런데 내용을 보면 물에 안빠졌지. 자기 볼일 보러 갔잖아.그니까 이게 첫 번째 세계하고 겉으로보면 똑같아.둘다 물에 빠졌어.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은 살려달라 아우성이고 네 번째 사람은 조개를 따.첫번째 사람은 옆사람이 도둑질을 하면 자기도 도둑놈이 돼.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은 같이 도둑질을 해 그런데 이틀있으면 옆사람이 도둑질을 안해버려.
그런데 첫 번째나 두 번째 세 번째가 이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세상에 내려오면 세상에 섞어버리고 아니면 세상과 떨어져 따로 살거나 세상에 있어도 세상속에서 지만 깨끗한거야.
우리가 헛된 도를 구하면 안된다. 헛된 도가 뭐냐 상에 집착하는 거야. 그 머리 모양, 옷모양,그 지식, 그 지위. 그이름 그런데 집착하면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이 네 번째 경지에 오면 첫 번째하고 두 번째는 큰 차이가 있어.하나는 바보같이 바다에 가서 빠져 살려달라 아우성이고 하나는 아예 바다에 안나가니 얼마나 현명해.그러니 바다에 빠진 사람은 육지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죠. 그런데 이 첫 번째 두 번째를 보면 둘다 갇혀있죠.반쪽자리 잖아.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바다에도 육지에도 마음대로 다니잖아. 그런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의 공통점은 물에 안빠져야 되는거야.행복은 물에 안빠지는 거야.
그러니 첫 번재 사람은 물에 안빠져야는데 빠져서 죽을 맛이고 두 번재 사람은 물에 안빠질려고 바다에 안가는 거고 세 번재 사람은 바다에 가도 안빠져.자랑스러워.
그런데 네 번재 사람은 물에 안빠져야 한다는 이것도 놔 버렸어.이 사람은 바다에 가도 좋고 안가도 좋고 바다에 갈 때 작은 배도 좋고 큰배도 좋고 풀랑이 쳐도 좋고 안쳐도 좋고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져도 괜찮아 안빠지면 안빠진대로 좋고 빠지면 빠진김에 조개를 줍는다.어떤일이 일어나도 다 유용해.
그러기 때문에 첫 번째 사람은 재앙이 많아.온갖게 다 재앙이야. 네 번째 사람은 온갖게 다 가피야. 이세상에 일어나는게 부처님 가피가 아닌게 없어.이래도 가피고 저래도 가피고 이것도 좋은 일이고 저것도 좋은 일이야.물에 안빠지면 안빠진대로 잘 놀다오고 빠지면 빠진김에 조개를 줍는다.빠지는것도 가피고 안빠지는 것도 가피야.그러니 늘 부처님 가피속에서 살아.가피 좀 주세요 이렇게 할 필요가 없어.늘 가피의 바다 속에서 살아.
이걸 철학적으로 사사무애법계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데는 똑같이 밥먹고 똑같은 얼굴로 사는데 그 사는 세계가 이렇게 서로 다른 네종류가 있다. 이렇게 분류한 것이 화엄경의 사법계관이다. 가장 핵심인 사상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는 두 번째를 부러워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해.그런데 두 번째 단계에 가보면 역시 한계가 있어.그래서 한단계 더 넘어가면 보살의 단계로 간다.그런데 사실은 그것도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완전한 단계로 갈려면 네 번째 단계로 가야된다.
그런데 네 번재 단계는 이렇게 돌아갈것이 없이 첫 번째 단계에서 바로 갈수도 있다.
물에 빠쟈 살려주세요 하면 첫 번째 단계고 물에 빠진김에 조개줍자 하면 바로 네 번째 단계다.
남편이 술먹어서 못살겠다 하면 첫 번째 단계고 이 남자 내가 치료해야되겠다 하면 바로 네 번째 단계다.애가 장애아를 낳아서 내가 무슨 죄로 이런 애를 낳앗나 하면 첫 번째 단계고 어떤 사람은 남의집 장애아를 모아다가 돌보는 복짓는 사람있지 그런데 내애 돌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 이런 애가 생긴김에 장애자 수용소를 하나 만들자 이렇게 한생각 탁 바꿔버리면 네 번째 단계야.이러면 머리 안깍아도 해탈할 수가 있고 이혼 안하고도 해탈할 수가 있고 술한잔 먹고도 해탈할 수가 있어.
이건 내가 안가르켜 줘야 되는데.ㅎㅎ
이걸 한생각 돌이킨다 그런거야. 한생각 딱 돌이키면 바로 가버려.
이걸 과학적으로 얘기하면 우주공간이 휘어져 있다 그러죠.그래서 빛이 우리가 볼대는 직선으로 오는데 우주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휘어져서 온다.그런데 휘어진 공간의 안쪽으로 통과하면 바로 와버려. 북극성에서 여기까지 빛이 올려면 1100년이 걸리는데 그 이면에 블랙홀을 통해서 오면 즉시 와.
지구가 둥근데 평면인줄 알고 사랑이 둘이 등을 맞대고 있으면 뒤로가고 앞으로 가면 영원히 멀어지죠.그래서 최고로 멀어질 때가 더 이상 뒤로 못나갈때가 둘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을때다.그래서 제일 멀때가 제일 가까울때이다.그런데 뒤로 돌아봐야돼. 앞으로보면 가장 멀고 뒤로 돌아보면 제일 가까워.
그것처럼 한생각을 돌이키면 즉시 이렇게 된다.그래서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가 어리석으면 중생이 된다.부처 중생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돌아보면 부처고 앞을 보면 중생이고 이래.
길가다 돌부터에 걸려 넘어졌다.재수없다 생각하면 중생이고 넘어지면서 야 여기 돌이 잇었구나 오늘 넘어져 무릎이 깨지므로써 이 돌을 발견했지 그래서 돌을 치울수 있지 만일 내가 안넘어졌으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길로 다니면서 넘어졌울거야 그러니 내가 넘어짐으로 해서 이돌을 알게되고 치우게 되니 수많은 사람이 넘어질걸 막았으니 잘넘어 진거다 생각하면 부처다. 넘어지면서 무릎이 깨져 아프면서도 슬픈게 아니라 기쁘다.
그런데 나만 생각하면 재수가 없고 일체 중생을 생각하면 잘된 일이야.그래서 이런 생각으로는 실패가 곧 성공이야.그런데 우리는 실패가 곧 좌절이고 절망이지.
그래서 이 해탈지도를 아는 사람은 특별히 따로 수행할게 없어.그냥 살면 돼. 넘어지면 넘어진 김에 돈줍고 안넘어지면 안넘어진대로 빨리 가고 아무하고도 결혼해도 괜찮아. 나보다 나은 사람이면 잘 만났고 나보다 못한 사람이면 보살행하고 복짓고.아무 문제가 없어. 자기가 하는거에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구애받지 않아.결과는 이리 나와도 저리 나와도 다 유리해.
그렇게 보면 지금 남자 다 잘만났어 못만났어.잘만났어.이래 만나도 저래 만나도 거기에는 다 공부거리가 참 많아.애가 어쨌든 다 잘낳았어.부부간의 갈등이 있으면 이것을 통해서 한생각 돌이키면 공부거리가 돼.애기가 문제가 있으면 공부거리가 돼.내가 낳아 내식대로 키웠는데 내 맘에 안든다.이것 참 모순 아니야.그런데 이게 왜 이런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저게 누구 닮았나.스님 닮았나.나 닮았다 이거야. 나닮았는데 왜 내맘에 안들까.이렇게 연구를 해 들어가면 그 아이를 통해서 자기를 알게 돼.이런 생각으로 세상을 살때는 세상은 한바탕 놀이야.너어지면 일어나면 되고 모르면 물어서 알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되고 잘못했으면 뉘우치면 되고 난 왜이러지 이건 좌절이야 또 지잘났다는 거지.실수 할수 없는 사람인데 실수했어 실수하면 자기가 자기를 용서 못해 그래서 자기를 미워해.그래서 후회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부정된 마음이야.
애한테 자전거를 사주면 두 번세번 넘어진다고 안타나.아니죠 무릎 깨져가면서 계속 타잖아.넘어지는게 곧 타지는 거지. 넘어졌다고 자전거를 발로 차버리든지 안타든지 하면 못다는 거지. 이게 인생의 큰 차이다. 이게 낙관적이냐 비관적이냐 차이다.낙관적이라면 막연히 잘되겠지 하는게 낙관적인게 아니라 다만 할뿐이야.
어떤사람이 질문하길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무지 하기 싫대. 그래서 하지 마라 그랬어. 안하면 지꼬라지대로 사는거지.그런데 자기 삶을 변화시킬려면 해야돼.지 꼬라지대로 살겠다 그럼 그냥 살면돼. 그런데 그대로 살면 괴로움의 과보가 따라와.그런데 안괴롭도록 살겠다 하면 좀 고쳐야 돼.고칠려면 수행을 해야돼. 하기 싫더라도 해야돼.하기 싫은데 어떻게 합니까. 그냥 해야돼. 하고싶은 날도 하고 하기 싫은 날도 하고 하고 싶고 싫고 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해버려야돼.그게 공부야.하고 싶은 날 하는게 공부가 아니야.하고싶은날 하고 하기싫은 날 안하는 거는 업대로 사는 거야.하고싶든 하기 싫든 그냥 해버려야돼 그럼 고쳐지는 거야.
절을 하는데 힘든날도 있고 잘되는 날도 있는데 기도가 잘되고 안되고가 아니고 다만 절이 잘되고 안되고의 차이뿐이고 다 기도가 잘된 것이다.
오르막 오르고 내리막 내려갈 때 오르막은 잘 안올라가지고 내리막은 잘 내려가는 것 같지만 어차피 갈길이면 오르막도 갈길이고 내리막도 갈길이야.그러니까 살면서 이런일이 생기고 저런일이 생겨도 다 내인생이야. 그렇게 딱보고 살면 사는게 괜찮아.
다 내가 원하는대로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원하는 대로 되든지 않되든지 별로 중요한게 아니야.원하는게 될 때도 있고 안될때도 있고 그래.세상은 원래 다되는게 아니야.원하는게 되면 돼서 좋고 안되면 안되는 대로 좋고 그래.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순간 순간은 된게 거의 없어. 안되는게 잘되는거야. 그런 도리만 알면 살기가 좋아.
불생불사란건 그런거야. 생도 없고 사도 없어. 좋은 일도 없고 안좋은 일도 없어.이것도 일이고 저것도 일일 뿐이야.한번만에 올라가면 올라가지는 거고 한번에 못올라가면 한번 더 올라가는 거고 한번만에 올라가나 열 번 시도해서 올라가나 마찬가지야. 양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건 성공이고 저건 실패 같지. 그런 사고로 인생을 사는 것이 불생불사야. 생도 없고 사도 없어.
그러니까 올해만 생각하면 싹이 트는 것은 시작이고 잎이 지는 것은 끝이지만 내년까지 보면 잎이 지는게 시작일수도 있지.
그래서 하루살이는 내일이 있는줄 모르고 일년초는 내년봄이 있는줄을 몰라 그런데 다보는 사람은 내일도 있고 내년도 있고 그런거야. 육신만 보고 육신이 나라고 생각하니 죽는다 그런거지 조금만 넓게보면 나고 죽을일이 없어. 그게 불생불사야.그런데 그것을 난다 죽는다 생긴다 사라진다 좋다 싫다 잘된다 안된다 이렇게 보니 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이것을 생사고 이렇게 말한다.
생사 생멸관에 빠지면 고가 발생하고 불생불멸인줄 알면 고가 사라진다.이런 얘기입니다.
(법륜스님 강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