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로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송수권, 산문에 기대어---
갑자기 눈썹 썩지 않는 것이라
이렇게 눈썹을 소재로 불멸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이 시는 송수권시인님은
순천대 문창과 교수로 계시면서 얼마 전
정년 퇴임하신 원로 시인이십니다.
별명은 쓰레기통 시인. 시인님이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어려운 가정에서 살아 일을 많이 겪었답니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적도 여러번이라고도 합니다
인천이던가, 어디에 올라와 막 노동판을 전전하며 죽으려고
약까지 싸들고 다녔던 분이시랍니다.
이 양반이 그러던 와중에 몇편의 시를 써서 문예지에 보냅니다.
그런데 그때는 원고지 살 돈도 없어서
그냥 아무 종이에다 써서 보냈는데,
출판사에서는 원고지가 아니라고 쓰레기통으로 직행.
그때 편집자로 있었던 이어령씨가 쓰레기 통에서 이 시들을 발견하고,
이 송수권이라는 시인을 찾아
반년이던가를 헤맵니다.
그 편지 봉투에 있던 주소로 찾아 갔었는데
이미 송수권씨는 어디에 사는지 알수가 없었고요.
수소문 끝에 송수권 씨를 어느 시골에서 찾아내어서 그 문예지에 실리게 된 것이 바로
송시인님의 등단작인 산문에 기대어이고 이런 이류로 별명이 쓰레기통 시인이라는
별명아닌 별명을 얻었답니다.
송수권시인 님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이 남동생이 생활고를 비관해서 자살을 합니다.
그 시체가 발견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송수권씨가 그 시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좀 부패한 이후였습니다
시체가 부패하기 시작하면 머리 카락이나 눈썹이 빠져나간답니다
그때 그 시체 옆에 떨어져있던 것이 눈썹이었지요 그때의
기억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시인님에게는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질곡의 벼랑에서 찾아온 사연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것이 이 시라고 들었습니다 남동생의 모습,
그리고 죽음이 눈썹 두어 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일설에는 죽은 남동생의 눈썹이 짙고 예뻐서
이 눈썹 두어 낱이라는 말이 나왔다고도 하는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 두어 낱이라는 알 수 없는 자세함이 맘에 걸립니다.
인간이 원래 드라마틱한 걸 좋아해서인지
저는 첫번째 설에 더 무게를 주고 싶습니다.
죽음에 대한 많은 시들 중에서 이 시를 인상깊게 기억하는 것은
1연의 저 부분 때문인지모릅니다.
즈믄 밤의 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동생의 죽음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많은 밤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밤의 강이 얼마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강이
하늘로 일어나 반짝거리고,
그 속에 가라앉아있던 수많은 고뇌까지도 물에 젖은 돌처럼 반짝이며
다시 살아나, 그 속에서 살아있는 물고기가 파닥이는 광경.
죽음을 삶으로, 움직임으로,
환하지만은 않은 빛으로 승화..했다는 것에
정말로 감탄합니다.
가슴 속에 가라앉았던 것이 하늘로 훨훨 흩어지는 기분.
이 연 이후로 이 시는 점점 움직임을 가집니다.
움직이지 않는 가을산,
그것도 그림자에 잠겨있던 눈썹 두어 낱-동생의 혼으로 볼 수 있을까요-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갑니다.
강물은 멈춰있지 않고 흐르지요.그 강 가에서 시인은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두는 제례를 치름으로서 동생을 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래도록 멈춰있던 슬픔과 죽음이 이제 움직인다고..
그리고 잎새에 살아 튀는 물방울처럼, 흘러가며 다시 만나게 되는 것.
멋지다는 말이 우스울 지는 모르지만요, 정말로 멋스러운 이별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3연. 가을 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이제는 이 못물에 비추어 온다는 것.
더 이상 동생은 그늘지고 흐르지 않는 물 깊은 곳에 빠져있지 않다는 것.
어딘가 다른 곳으로,
튀는 물방울처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가버려서.
이제 내가 보는 못물에 비춰올 뿐이고
그렇게 내가 동생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동생의 죽음을 기리는 시라고 문제집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제가 보는 이 시는 한 사람을 훨훨 떠나보내는 49제의 마지막 날 같은 느낌이었니다.
단지 제게 그랬다는 겁니다.
이 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시인님 만이 알것이라 생각이 더ㅚ옵니다.
송수권 시인님은 삶의 본질 그 혼 속에서 혼의 삶으로 우리들 속에
다가오신 우리들 시인이십니다.
교원 자격증 딴 이후에도 낙도만을 떠돌았다고 합니다
송수권시인님 아내 분이 참 대단하신 분으로서
송수권님를 시인으로 만든 사람은 거의 이 아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랍니다
수박 장사에, 똥장군 거름까지 지며 농사일을 거들었고,
보험설계사 십 몇 년 하면서 남편이 시만 쓰도록 할 수 있었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송수권시인이 처음으로 교수가 되었을 때
아내는 펑펑 울며
드디어 시를 써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댑니다.
눈물나는 이야기지요. 송수권 시인은 4년제 대 출신도
아니고, 서라벌 예대-전문대학 문창과 졸업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전문대 졸이 교수가 된 건 이 양반이 최초랍니다.
시인이 아내에게 고맙다고 하자
나 말고 시인을 뽑아준 총장님에게 감사하라고 했던 아내.
그래서 살림 좀 펴고 편안하게 사나 싶더니만
이 아내분께서 덜컥, 백혈병에 걸리셨답니다.
아내의 맨발 1 - 蓮葉에게
그녀의 피 순결하던 열 몇 살 때 있었다
한 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때 있었다
蓮 잎새 같은 발바닥에 간지럼 먹이며
철없이 놀던 때 있었다
그녀 발바닥을 핥고 싶어 먼저 간지럼 먹이면
간지럼 타는 나무처럼 깔깔거려
끝내 발바닥은 핥지 못하고 간지럼만 타던
때 있었다.
이제 그 짓도 그만두자하여 그만두고
나이 쉰 셋
정정한 자작나무, 백혈병으로 몸을 부리고
여의도 성모병원 1205호실
1번 침대에 누워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혈소판이 깨지고 면역체계가 무너져 몇 개월째
마스크를 쓴 채, 남의 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느 날 밤
그녀의 발이 침상 밖으로 흘러나온 것을 보았다
그때처럼 놀라 간지럼을 먹였던 것인데
발바닥은 움쩍도 않는다.
발아 발아 까치마늘 같던 발아!
蓮 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
지금은 진흙밭에 삭은 蓮 잎새 다 된 발아
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
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
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
그 蓮 잎새 속에 숨은 민달팽이처럼
너의 피를 먹고 자란 詩人, 더는 늙어서
피 한 방울 줄 수도 없는 빈 껍데기 언어로
부질없는 詩를 쓰는 구나
오, 하느님
이 덧없는 말의 교예
짐승의 피!
거두어 가소서.
- 산문집『아내의 맨발』(아침고요, 2003/11) 15쪽
아내의 맨발 1, 연엽에게
돈 많이 들지요,
백혈병. 그래서 송수권시인님
아내는 돈이 어디있냐며 수술을 거부합니다.
송수권시인님으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지요.
왜 자기가 아니고, 평생 고생만 한 아내인가.
한평생 시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시인한테는 정말 가혹한 일이지요.
저 시는 아내가 병상에 있을 때 송수권씨가 쓴 겁니다.
덧없는 말의 교예와 짐승의 피를 모두 거둬가소서, 라고.
송수권 시인님은 아내가 죽을 경우 손을 잘라버리겠다고까지 말을 하였답니다.
평생 아내한테 빌 붙으며 살아 왔는데, 이 시가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아내를 잡아먹고서도 시를 쓸 수 있겠냐구요.
아내가 죽으면 절필을 선언할 거라고
2002년에 송수권 시인님은 말 했었는데. 그 이후의 소식은 저는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문학이 아픔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고,
시라는 것이 눈물 없이는 쓸 수 없다고
누군가는 말했다지만.
송수권시인님의 얘기를 듣고 나면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대학 때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시인이 아닌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구요.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송수권시인님의
요즘
시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짠합니다.
언제부턴가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며
잠 안 오는 밤에
먹고 살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왠지 송수권 시인님의 시집을 자주 펼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