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목화밭 - 촬영 의성금성공주
무명 비단을 짜시든 베틀에 어머니
내고향여러분 안녕하세요?
무명의 제작과정은 재배와 수확, 씨앗기와 솜타기, 고치말기, 실잣기, 무명날기, 베매기, 무명짜기 순으로 이루어 진다. 8월 중순부터 목화를 따기 시작하는데, 처음 딴 목화가 가장 좋다.
볕에 말린 목화를 씨아틀로 씨를 빼내 씨앗기를 하고 솜활이라는 기구를 이용해 솜을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인 솜타기를 거친다.
탄 솜을 말판 위에 펴놓고 말대로 비벼 고치를 만든 후 물레를 이용해 실을 뽑아 가락에 감는 실잣기를 한다.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무명날기를 하고, 베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하여 직물을 짠다. 예전에는 개성의 송도목과 진주의 진주목이 명품으로 날렸으나 오늘날에는 나주의 나주세목 또는 샛골목이 12승 무명으로 유명하다.
요건 목화 다래라고 하며 맛은 달콤하면서 약간 떫은 맛을 낸다.
▲ 목화 다래 달콤한 목화 다래입니다. 파란 겉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납니다.
목화다래를 처음 맛보는 어린이들
무더운 여름 칠월 팔월 목화 꽃이 핀 내고향 안동 목화밭에 목화 다래 따먹던 옛날 생각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목화 순도 치고 풀도 맬 적에 나도 따라갔다가 목화다래를 치마에 한가득 따가지고 와서 동생들과 까먹다가, 혼난 기억이 난다.
목화밭 목화다래를 보니 아버지 동글고 무섭던 검은 점은 왼쪽 눈 밑에 있는 아버지 얼굴을 생각했다.
어머니얼굴은 하얀 목화송이 같은 희고 고운 얼굴 머리에 족을 찌고 하얀 앞치마를 입으셨다. 점심때 오셔서 목화다래는 먹으면 똥구멍 막혀 죽는다고 하셨다.
다시는 목화달래를 못 따먹었다.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베틀작업 영상
가을에 목화밭에는 하얀 목화송이 한가득 피었다. 어머니는 목화를 따서 채반에 한가득 채우면서 활짝 핀 목화송이처럼 해맑은 어머니 얼굴 머리에 비녀 쪽 귀이개를 늘 꽂고 게셨다. 밤마다 즐거워하시더니 씨 애 을 방안에 한쪽에 놓아두고 누구든지 방에 들러오면 돌리면서 하얀 목화를 한줌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돌리면서 하얀 목화를 밀어 넣어 씨 애를 돌리고 씽 애 귀가 톱 이와 같은데 귀가 맞아 돌면서 목화는 뒤로 나오고 씨는 앞으로 나온다.
목화가 맺혔어요,, -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
문익점 선생 유적지가 있는 경북 의성군 금성면 학미리에서
마치 하얀 눈송이 처럼 솟아나는 목화 - 경북 의성 금성 탑리리 - 의성금성공주님 촬영
목화 수확하는 기쁨 - 마음도 솜이불 덮은 것 처럼 포근해진다.
목화 수확하는 아가씨
목화밭에 가면 쉽게 목화솜을 한웅쿰 줍는다.
목화와 목화씨앗
최근의 목화 수확 장면
그런데 누구도 집에 들어오면 씽 애를 돌리고 온통 집에는 목화씨와 목화 가 널렸다. 씨를 다 빼가지고는 하루는 우리 어머니 방을 깨끗이 치우시고 새 자리를 깔고 활을 가져오고 씨 뺀 목화를 같다가 활로 타는데 활을 왼손에 오른손 엄지와 장지로 활 줄 퉁기면서 목화를 많이 타드니 둥근 두레 반 밥상을 놓고는 싸리가지 껍질을 벗긴 대를 속에 끼우고 고추를 말고 고추를 채 바구니에 차곡차곡 싸서 담아 정성껏 높은 선반에 나란히 얹어놓는다.
당시의 명절을 앞두고 동네 아녀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아이들 옷을 만들었다.
또 물레를 놓고 물레에 실을 자아서 다른 광주리에 담아 놓고. 날마다 밤마다 물레 에 실을 뽑는데 물레소리가 돌돌 나서 잠 못 잔다고 칭얼거리면 그냥 자라고 하고 그러면 할아버지한테 가서 자라고 하는데 사랑방에 가면 부싯돌로 불을 붙이라고 하니 가기 싫었다. 실 구 리을 채 바쿠에 차곡차곡 담아서 남작하게 하시더니 미영 좀 날자고 나를 살살 달랜다.
어머니들은 호롱불 아래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런데 어머니가 날라 주면 내가 수수깡으로 같다 걸어야한다. 너무 실고 엄마가 미웠다. 다음날은 마당에다 왕겨를 소복하게 쌓아 놓고 부엌에서 불을 한 삽 떠다 불을 피우고 풀을 쒀 동이에다. 놓고 바가지에다 떠서 베 매는 솔에다 찍어서 왼손바닥과 같이 발라서 매가지고 도투마리에 감을 적에 겨릅 댕 이를 을 도투마리에 대고 한가득 말아서 앞치마에 꼭 싸서 토방에 자리하고 귀중품처럼 올려놓았다.
어머니들은 함께 모여 명절에 입을 아이들 무명옷 만드느라 마이 바쁘다 .
그때가 늦은 봄 인가 반찬거리가 없다고 산에 가서 나물과 도라지도 캐서 반찬거리를 준비하고 어머니는 빨래하고 집안을 다 정리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논일을 하고 점심때 점심식사를 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베틀을 놀 준비를 시작했다. 베틀 제일 뒤에는 도투마리 얹어놓고 잉에 줄을 높이 걸어 도투마리 뒤에 새코 신발을 달라서 앞으로 당기면 새가 버러지고 그 아래 북에다 실꾸리를 넣어 구멍에다 실을 꿰어 북은 왔다갔다. 한다. 바디집에 끼워 오른손으로 내려치면 찰각 북을 오른 쪽에 왼쪽에 가면내려 치면 찰각 무명은 곱게 짜서 한 압이 차면 최 발을 올려 꽂으면서 말대에 미영을 감고 말대가 한가득하면 왕겨 피워 맬 적에 사십 자 한필 개미를 찍어 표시 하고 도투마리에서 개미가 내려오면 한필을 짠걸 알고 잘라서 한필을 말대에서 풀러 말린다.
내고향 안동에서는 갓 시집온 새아씨도 베틀질 잘 하면 동네 소문이 날 정도로 인기였다.
날마다 베틀에 앉아서 앉을깨도 넓적한 송판에 나무판대기에 앉아서 말대와 연결된 집으로 역은 허리띠가 있다. 거기다 힘을 주고 얼마나 고생이 되셨는지 지금 내가 늙으니 지난 세월 어머니 역할은 너무 힘들고 몸이 얼마나 고달픈 지를 짐작해서 알고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못하고 여성 이라는 역할은 죽는 날까지 자식과 남편을 위해 길 삼하고 여름엔 농사짓고 가을겨울엔 미영. 삼배 질 삼해야 식솔들 손수 옷도 지어 입이고 집안에 식구들한테 자기일생은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겨울 찬바람 불고 얼음 꽝꽝 얼 적에 할아버지 아버지 바지와 저고리 하고 목화도 끝으로 딴 건 끝물이라 하고 씨 빼고 타가지고 옷에 놓고 겨울을 나고 남은 무명 검정 물 드려 이불 껍데기 만들고 자주색 드려 깃달이서 하얀 혼 이불 풀을 빳빳하게 먹여서 이불해주시던 어머니 고생에 고생 줄을 날아 역었다. 솜이불 만들고 고생 줄 날아 원단을 역어서 할아버지 아버지 우리들 옷을 만드신 어머니 목화 꽃과 목화는 여인의 제일 미운 정에 고운 꽃이라고 한다.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밤에도 낮에도 바디치는 소리 새벽 닭 울고 서쪽 새 쪽박 바꿔주오 우는 새와 같이 이러나 등잔불 켜 놓고 잠자는 식구들 귀에 쟁쟁 베 짜는 소리 귀에 담아 귀를 간 질어 주었다. 성북구청 현관 앞에 목화나무 너무 감회 깊었다.
예전 안동지역에서는 흰색으로 인해 백의민족으로 일컬어지는 한민족의 옷을 풍요롭게 하며, 한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전통직물로 가치가 높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기능보유자로는 노진남이 인정받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고치마리
그시절의 무명실 자아내기
실서리기
무명
무명짜기
전승자 현황
첫댓글 진달래님 덕분에 구경 잘했니더...................
그러습니껴?
그집 대주님이 안동 아이껴? 한번 보여 드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