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면, 옛 공구상가 주변이 뜨겁다. 무너져 가던 손바닥만 한 가게를 특이한 분위기의 술집과 밥집으로 고쳐 초저녁부터 줄 서는 맛집으로 만드는 마술이 심심찮게 펼쳐진다.
3년 전 성인 두 명이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지나기 버거운 좁은 골목 안에 '사월그날'이라는 술집을 연 서필교 대표도 어쩌면 이 마술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그가 가게를 열 때 골목 안에 술집이나 밥집은 한 곳도 없었다. '골목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창의적 메뉴로 女心 저격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 카레 국물, 안주로 제격
묽은 카레 국물에 고기와 사리, 튀김 등을 넣어 안주로 응용한 '이거먹고 빨리커리', 크림소스에 닭고기를 넣고 튀김도 찍어 먹는 '치킨크림스튜'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초저녁 20~30대 여성 애주가들을 줄 세우던 서 대표가 지난 4월 골목 밖으로 나와 2호점을 냈다. 좀 더 넓고 탁 트인 느낌이다.
2호점에 가서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과 치킨크림스튜, 냉동과일 특공대를 주문했다. 전골은 '이거먹고 빨리커리'를 응용한 메뉴다. 카레 국물과 고추장 사골 국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데 다른 가게에 없는 카레 국물이 단연 인기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거리로 카레를 찾는 술꾼도 있다. 카레 국물은 쓴 소주 맛을 중화시켜주면서 동시에 속도 편하게 해준다. 실제 소주 한 잔 뒤 전골 국물을 떠먹어 보니 안주로서의 카레를 새로 발견한 듯한 환희가 느껴졌다. 꼬들꼬들한 우삼겹살이 씹히는 맛도 좋다.
치킨크림스튜는 마치 면만 빠진 치킨 고르곤졸라 파스타 같았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다. 파스타를 즐기는 여성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튀김 닭고기와 새우, 우동 사리가 들어가 안주와 밥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메뉴다. 청양고추로 끝 맛을 칼칼하게 낸 것은 안주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됐다.
서 대표는 "술이 약한 여성들이 밥과 간단한 반주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메뉴로 치킨크림스튜가 인기를 모은 것 같다"고 했다.
냉동과일 특공대
과일을 잘 챙겨 먹을 겨를이 없는 젊은이들을 위해 간편한 냉동과일 안주를 만든 데서도 서 대표의 감각이 묻어난다.
대학에서 사진과 실용음악, 디자인 등을 공부한 서 대표가 몸으로 부딪히며 사월그날을 자리잡게 하는 동안 골목은 조금씩 맛집촌으로 바뀌어 갔다. 젊은이들이 창업한 밥집 술집이 잇따라 들어왔고, 지금은 10여 곳에 이른다. 대부분 초저녁부터 대기자가 넘친다.
"적은 자본으로 가게를 차리려는 청년들에게 골목은 매력 있는 공간이죠. 아이디어와 개성이 드러나니 손님들이 골목 안까지 들어오시는 거고요. 이웃 가게 주인들과 우리 골목을 좋은 본보기로 만들어보자고 여러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습니다."
옆집에서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이웃과 함께 서 대표는 김치찌개 가게를 열려고 준비하고 있다. 비어있던 공구상을 리모델링해 오는 11월 문 열 예정이다.
"이웃에 뭔가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하다 힘을 모았죠. 천연 조미료로 돼지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만들어 보려고요." 아직 서른넷인 서 대표가 이끄는 이 골목, 11월에도 가봐야 겠다.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 2만 8000원, 치킨크림스튜 2만 2000원(크로켓 새우튀김 추가 2만 9000원), 냉동과일 특공대 1만 6000원(곱빼기 2만 원). 영업시간 오후 6시~오전 2시(월~목)·3시(금·토)·1시(일).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680번가길 81(부전동) 2층. 051-809-8807.
메뉴
사월 불고기 만두전골 2만 8000원, 치킨크림스튜 2만 2000원(크로켓 새우튀김 추가 2만 9000원), 냉동과일 특공대 1만 6000원(곱빼기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