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이 물었다
'' '여러 곳에서 함께 모여 누구나 무위를 배우네. 이곳이 곧 선불장이니 마음이 비어 급제해 돌아가네'라고 한
방 거사의 이 말씀 가운데에 사람을 위하는 곳이 있습니까?''
고봉 선사가 대답했다
'' 있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 필경 어느 구절에 있습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처음부터 다시 물어라''.
그 스님이 또 물었다
'' 어떤 것이 여러 곳(十方)에서 함께 모였다는 말입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용과 뱀이 섞이고 범부와 성인이 섞여서 참례한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 어떤 것이 누구나 무위를 배우는 것입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입으로 부처와 조사를 삼키고 눈으로 하늘과 땅을 덮어 버린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 어떤 것이 선불장입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동서가 십만이고 남북이 팔천이다''
그 스님이 질문했다
'' 어떤 것이 마음이 비어 급제해 돌아가는 것입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움직이는 모양이 옛길에 씩씩해서 초연기(적적한 경계)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 스님이 말했다
'' 그렇다면 말마다 진리가 보이고 구절마다 종지가 나타났습니다''
고봉선사가 물었다
'' 그대는 무엇을 보았느냐?''
이에 그 스님이 '할'을 하니
고봉선사가 말했다
'' 몽둥이를 휘둘러 달을 때리는 구나! ''
그 스님이 또 질문했다
'' 이 일은 그만두고 서봉은 오늘 여러 곳에서 모여 선불장이 열렸으니 필경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유정무정이 다 성불했다 ''
그 스님이 또 질문했다
'' 이미 다 성불했다면 무엇 때문에 저는 성불하지 못했습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그대가 만약 성불한다면 어찌 대지가 성불했겠는가?''
스님이 또 물었다
'' 필경 제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상주는 남쪽에 있고 담주는 북쪽에 있다''
그 스님이 또 질문했다
'' 저에게 참회를 허락합니까?''
고봉선사가 대답했다
'' 예배하라.''
그 스님이 절을 하자 고봉선사가 이르기를
'' 사자는 사람을 물고 한나라 개는 흙덩이를 쫓는다''라고 했다
고봉선사께서 불자를 세우고 대중에게 일렀다. '' 이것이 선불장이며 마음이 비어 급제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영리한 사람이 만약 이 속에서 보았다면 곧 방거사의 안심입명처를 볼 것이다. 이미 부처와 조사의 안심입명처를
보았다면 곧 자기의 안심입명처를 볼 것이다. 이미 자기의 안심입명처를 보았다면 여기서 주장을 꺽어버리고 발낭을
높이 걸어 놓고 세 가닥 서까래 아래와 칠 척의 단전에서 쌀없는 밥을 먹고 물 없는 국을 마시며 다리 뻗고 잠을 자서
소요하며 날을 보내는 것이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종과 신랑도 구별하지 못하고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한다면 부득이 구름을 누르고 허공을 향해
화두 하나를 써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모양에 따라 고양이를 그려가게 하겠다
내가 지난해 쌍경사에 있다가 선당에 돌아온 지 한 달이 안되었는데 홀연히 잠자는 중에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화두에 의심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의정이 갑자기 발현되어 잠자는 것과 밥먹는 것도 잊고, 동서의 방향과 밤낮의 시간도 분간하지 못했다
자리에 앉아 바루 펴는 것과 변을 보는 일과 한 번 움직이고 한 번 고요하며, 한 번 말하고 한 번 침묵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만 '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의심 뿐이였다
다시는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었으며 또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일으키려 해도 끝내 이렇게 할 수 없는 것이
마치 못을 박고 아교풀로 붙여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았다
비록 사람들이 빽빽한 넓은 곳에 있더라도 마치 한 사람도 없는 것과 같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맑고 맑으며 우뚝하고 높으며 순수하고 깨끗해서 작은 오염도 끊어져서
한 생각이 만 년을 가듯 지속되었다. 경계가 고요해지고 내가 잊혀져서 어리석은 사람과 같았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육일이 지나 대중을 따라 삼탑사에 갔을 때 독경을 하다가 머리를 들어 오조법연화상의
진영을 보고 문득 그 전에 앙산 노화상이 일러준 '시체를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누구인가?라는 화두가 타파됐다
바로 허공이 부서지고 대지가 무너져서 물아를 모두 잊은 것이 거울이 거울을 비추는 것과 같았다
백장의 들 여우와 개의 불성, 청주의 베적삼과 여자가 定에서 나왔다는 등의 모든 화두를 처음부터 세밀하게
점검해보니 분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지혜의 오묘한 작용이 진실로 속임이 없었다
그전에 '무'자를 의심할 때에는 삼 년 동안 하루 두 번 죽먹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리에 앉지 않고
피곤할 때에도 기대지 않고 밤낮 동쪽 서쪽으로 다니며 움직였다. 그러나 언제나 혼침과 산란이 두 마군과
한 덩어리가 되어 힘을 다해도 물리치지 못했다.
이 무자화두를 공부할 때에는 끝내 밥을 먹는 잠깐 사이에도 힘을 덜고 일념을 이루지 못했다
스스로 해결한 뒤에 그 병의 원인을 찾아보니 다른 이유가 없었고 다만 의정위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화두를 한결같이 다만 들려고 했는데, 들 때에는 곧 있고 들지 않을 때에는 문득 없었다
의심을 일으키려 해도 또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설령 손을 써서 의심을 얻더라도 다만 잠깐이고 또 혼침과 산란의 양극단에 빠짐을 면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공연히 허다한 세월만 허비하고 고생만 했지 조금도 진취가 없었다
일귀하처 화두는 무자 화두와 같지 않았다
의정이 쉽게 일어나 한 번 들면 곧 있어, 반복하여 사유하고 계교하고 생각함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곧 의정이 일어나 점점 한 덩어리가 됐다
곧 인위적으로 하는 마음이 없었으며, 이미 인위적으로 하는 마음이 없어서 생각하는 것도 잊었고
온갖 인연이 쉬고자 아니해도 저절로 쉬어졌다
여섯 창문이 고요하고자 아니해도 저절로 고요해져서 아주 조금도 힘을 쓰지 않아도 바로 무심삼매에 들어갔다
갑자기 죽 먹고 밥먹는 자리를 만나 반드시 발우 가의 수저를 잡아도 옹기 가운데 자라 달아날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이미 경험한 방법이다. 결코 서로 속이지 않는다 (내가)
만약 한마디라도 여러 사람을 속이는 것이 있다면 영원히 혀를 뽑아 밭을 가는 지옥에 떨어지기를 자초할 것이다
지금 반야을 배우는 보살이 이 일대사를 기필코 밝히고자 하여 산이 높고 물이 넓은 것을 꺼리지 않고 일부러
찾아와서 나를 만났다. 하물며 각기 손가락을 태우고 향을 사르며, 계율을 세우고 원을 세우며, 앞니를 갈고
어금니를 갈며 철석같은 의지를 갖추었음에랴?
이미 이러한 지조와 지략이 있고 이와같은 지견이 있다면 간절히 자기의 초심을 저버리지 말며,
부모가 너를 보내서 출가시킨 마음을 저버리지 말며, 새로 절을 지어 준 시주의 신심을 저버리지 말며,
국왕과 대신들이 밖에 보호해 주는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바로 큰 신심을 갖추며, 바로 변하지도 말며, 바로 만 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하며,
바로 표본에 의거하여 고양이를 그려 가는데, 그려 오고 그려 가서 귀를 그리고 무늬를 넣는 것과
마음 길이 끊어진 곳과 인법이 함께 사라지는 곳에 다다르면 붓 끝에서 살아 있는 고양이가 갑자기 뛰어 나올 것이다
'' 와! '' 하는 순간에 원래 모든 대지가 선불장이 되며 모든 대지가 자기가 될 것이다
이 속에 이르러서는 무슨 방거사를 말하겠는가?
다만 삼승 십지의 경지를 얻었더라도 간담이 서늘하고 혼이 놀라며 달마와 부처도 몸을 용납할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가 비록 이와 같으나 인천의 안목을 열어 부처와 조사의 지극한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다시 반드시
자기와 선불장을 녹여서 한 덩어리를 만들어 백 천 만억의 세계 밖에 날려 버리고, 몸을 되돌려 걸음을 옮겨
위음불의 저쪽 편과 다시 저쪽 편을 향하여 한 바퀴를 돌아 와도 도리어 나의 아픈 방망이를 맞을 것이다
대중아,
이미 이와 같이 자기조차도 날렸으니 또 어디에 방망이를 맞겠는가?
갑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와서 선상을 뒤집어엎고 대중을 소리쳐
흩어 버리더라도 이것이 참으로 옳기는 옳으나 그래도 서봉의 사자암은 머리를 끄떡여 긍정하지 않겠다
첫댓글 의정이 발현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참구라는 것이 본문에 잘드러나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자신과 인연있는 화두를 만난다는 것이 바로 '선근'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이생(예컨대, 지금)에 공부하면 이미 늦다는 것이니,
그러니 도리어 이생에 초심을 지켜 마음을 다해야 하나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의정'에 들면 어떻게 생활을 하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럴만한 시절이 되면 다 그에 맞는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그런 걱정을 했거든요.
우물가에 숭늉찾는 것보다 더 우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고봉스님께서도 의심이 여의치 않아 반복하여 사유하고 계교하고 생각하셨다고 하시니,
엄청 기쁩니다
'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제가 잠깐 해보니 '이뭣꼬?'에 촉발제로 좋은 것 같습니다
각 장마다 와닿는 언구들을 이 기회에 꼭꼭 새겨놓아야 겠습니다
저도 문득 의정으로서 발현될지도 모르니까요
합장
상상해봅니다
==
- 오늘 여기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 산하대지 유정, 무정이 모두 성불했다
- 저는 성불못했는데요
- 그대가 성불한다면 산하대지도 다시 성불해야겠구나
- 제 허물을 여쭙니다
- 상주는 남쪽에 있고 담주는 북쪽에 있다
- (신심이 트이지 못해 답답한 내 허물을 여쭈었는데 왜 '상주는 남쪽에 있고 담주는 북쪽에 있다'고 하시지? .. )
고봉스님
[본문 하단에 안목(구경)에 대한 언급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어록(개당보설)을 보고 한번 적어본 것입니다
너무 피상적 접근이랄지라도 현재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합장
본분사를 드러내는 이른바 선언구(화두)를 저는 모릅니다
사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온통 화두일색인 어록을 접할 때는 저같이 득력이 없는 초심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스님 시간나실 때, 아주 짧게라도 법문 간청드립니다
삼보에 귀의합니다
득력없는 초심자가 접근해야 하는방편은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이 행하는 수행 참구방편을 묵묵히 사유하고 의심해 나갈뿐 어록이 화두 일색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안에는 활구와 死구가 있는데 문답에서 조사가 드러낸 반어적인 말을 잘 음미하시고 자신의 허물이 무엇인지 스스로 긍정못하는 화자의 무의미성을 잘 파악해 나가야 합니다.
사실 화자가 말하는 거량의 무의미성이라야 말이 무의미성이지 그뜻에 있어 큰 비중을 주지 않는 것은 어떤 답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럴뿐인것은 사과맛을 모르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사과 나무도 사과 열매의 겉모습도 모르니 얘기 자체조차도 안되는 것이니
화자 입장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스스로 목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른바 참구-경이 돌아와 반조-현전되지 자신이 한심스러운 것입니다.
스스로 초심자라고 생각하는 화자라면 참구의 의심이 왜 끊어지는가, 또는 자신이 든 화두의 무엇이 문제인가를 어렵드라도 스스로 복기하여 찾아낼줄 알아야 득력의 기초가 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같은 시행착오의 긴 역정이 법자량-선근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이번 선요 게시판에 지선행님이 원하는 한걸음을 나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합장
스님 감사합니다
합장배례
일단 명백한 저의 한심함은
말을 하면 말을 따라가 갸우뚱거리느라 정신이 없고.
손짓을 하면 손을 보며 머뭇거립니다
그러니 참구라고 말만 그럴듯하지 항상 , 늘 뒤늦은 죽어있는 생각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은
부족하든 그렇지않든간에,
자꾸 부족하다는 습관적인 변명은 삼가해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합장배례
스스로 목전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이 큰 힌트가 되었습니다
합장배례
어록을 볼 때,
제가 화자의 입장이 되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가가 약간의 가늠이 되는 듯 합니다
합장배례
삭제된 댓글 입니다.
미소님
공부방향성이 저마다 다 다를수 있겠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의리선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화두를 이해하거나, 화두를 풀이하는 것으로 공부삼지 않는다는 참구방향성을 더 잘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시는 말씀으로 보아, 그러한 점을 저보다 훨씬 더 잘아실 것입니다
혹여 제가 걱정이 되시는 것이라면 '다 잘되겠지'하고 마음을 푹 놓아주셨으면 합니다
부디 혜량하여 주십시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