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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고등과정 국제학교를 구상하면서 적은 글인데 간만에 읽으니 신선하여
이곳에도 올려둡니다. 10년 전 글이니 현재의 간디학교의 방향과 다를 수는 있는데
교육의 본질, 교사론에 대한 것이 좋아 옮교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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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2009년 7월 5일
내 인생은 곧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다. 행복한 학교 프로젝트는 고등학교 시절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30년 이상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1.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 스트레스로 인하여 위장병과 폐결핵 등 온갖 병치레를 했다. 고3 말에는 병세가 상당히 악화되었고 이로 인해 졸업 후에도 한동안 활동이 원활하지 못했고 약 3년 이상의 약물치료를 계속해야만 했었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내가 다니는 학교와는 전혀 다른, 아이들이 진정 다니고 싶어 할 그런 행복한 학교를 설립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것은 나 자신과 친구들에게 한 약속이었다. 이로서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배움은 고통이라는 값을 치루는 법이던가. 어린 나이에 병을 얻게 된 나는 자연스레 철학자가 되어갔다. 인생에 관해, 죽음에 관해, 그리고 행복과 불행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나의 불행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 깊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인간의 행복과 불행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학문적 탐구는 학부 시절, 국내 대학원에서의 석사과정, 그리고 미국에서의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지속되었다. 12년 간의 학문적 탐구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은 개인의 불행이 종종 잘못된 사회구조에 연유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정치적 의무와 불복종에 관한 연구‘(An Essay on Political Obligation and Disobedience)라는 제목의 내 박사학위논문은 인간을 구조적으로 비인간화하고 불행하게 하는 사회제도(구조)에 대해 “왜 그리고 어떻게 불복종해야 하는가”에 관한 연구이다. 이 논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간디 선생의 ’비폭력적 불복종‘ 사상은 내 탐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학문적 탐구는 내 삶의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게 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즉 내 인생의 방향과 목표는 ‘나와 내 이웃을 불행하게 하는 원천으로서의 비인간적인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이 되었다.
1990년 대 초 미국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미국 CNN TV 방송에서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성적문제나 학교폭력문제로 인해 한 해 수 백 명 씩 자살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듣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를 곧 시작해야겠다는 결정을 하고 박사학위를 마치자마자 주저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 때가 1994년 여름이었다. 300명 정도의 생명이 사라지는 일은 쿠웨이트 전쟁의 규모와 맞먹는다. 해마다 이런 전쟁이 일어난 것과 같은 죽음을 가져오는 한국의 교육관행은 분명 나에게 비인간적인 사회구조로 여겨졌다.
나에게 있어 사회구조의 변화란 ‘새로운 대안의 창조’를 의미한다. 나와 같은 대안적 운동가들은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비판을 하거나 시위를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데 모든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교육에 있어 무엇이 문제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5%의 아이들을 승자로 만들고 95%의 아이들을 패자로 만드는 입시전쟁을 중단시키는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입시전쟁은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합작품의 힘은 너무나 거대해서 그 누구도 감히 바꿀 수 없게 보인다. 따라서 교육부를 질타하거나 교육정책을 바꾸거나 혹은 학교와 교사를 비판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한국의 교육을 불행한 교육으로 몰고 간 우리 국민의 심리적 동기는 무엇일까? 두 가지 요소인 것 같다. 하나는 아이들의 관심사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내 자식만은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는 비합리적인 이기심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두려움인 것 같다. 아이들의 개성과 관심과 적성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이러한 좋은 대학에의 욕구는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욕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심 뒤에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행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욕심과 두려움을 부채질하는 것은 상업주의의 역할일 게다. 그래서 이러한 입시전쟁은 결국 모두를 패자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열등의식 속에서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 관심사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리는 구체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1994년 가을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터를 구했다. 1995년부터 그 곳을 ‘간디농장’이라 이름 붙이고 학교준비에 들어갔다. 2년 간의 준비를 하고 1997년 봄 27명의 학생들을 받아 간디학교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그 당시의 법으로는 이것은 미인가로 학교를 운영하는 불법행위였다. 나는 그 당시 우리의 학교를 ‘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이들의 섬’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이들을 성적과 상관없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행복한 작은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2.
행복한 학교란 어떤 곳인가?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교육에도 정답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한편 잘못된 인생이 있듯이 분명 잘못된 교육은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순엉터리 불행한 교육은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행복한 학교를 추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첫째, 나쁜 교사 되지 말기, 둘째, 교사들이 아이들의 편에 서기, 셋째, 아이들에게 선택과 책임이라는 자유를 주기 등이다. 누가 교육과 관련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해도, 나는 그것들과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을 바꿀 생각이 없다. 이러한 생각은 지난 13년 간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에서 얻은 교훈들이기 때문이다.
첫째, 행복한 학교의 교사들은 적어도 나쁜 교사는 아니어야 한다. 나쁜 교사란 우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교사’이다. 이런 교사와는 일할 수 없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교사는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고, 배우지 않는 교사는 성장하지 못한다. 특히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아이들을 모르는 교사는 아이들을 교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교사는 자신의 좁은 생각을 주입하고자 할 뿐이다. 다음으로, 나쁜 교사는 한 인간으로서 ‘불행한 교사’이다. 불행한 교사는 아이들을 괴롭힌다. 종종 도덕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교묘하게 괴롭히는 법이다. 이들은 자신의 불행을 치유한 이후에야 아이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두 번 째, 행복한 학교에는 ‘교사들이 아이들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뻔한 소리 같지만 사실 이것은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교사들이 아이들 편에 서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존중받는 아이들은 살아있고 생기가 있으며 자신에 대한 존중감과 삶의 기쁨을 표현한다. 그러나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소극적이고 활기가 없으며 열등의식이나 두려움에 빠져 있게 된다. 교사들이 늘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는 아이들은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과 미움이 없다. 이들은 진정 교사와 학교를 사랑한다. 교사가 자신의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아이들은 두려움과 열등의식을 벗어나 마음을 열고 배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세 번 째, 행복한 학교에는 선택과 책임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선택의 폭을 많이 주려고 노력해왔고 그러한 노력은 늘 보답되었다. 학생들은 자유 속에서 크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간디학교 아이들은 스스로 생활의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을 어길 경우 벌칙도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의 규칙을 존중한다. 이것은 명예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들은 더 나아가 학기마다 무엇을 배울 건인지를 스스로 선택한다. 배움이 자발적일 때 열정과 관심이 일어난다. 선택의 자유를 가진 아이들은 기꺼이 배우고자 하며 배움에 즐거움을 갖는다.
사랑과 자유를 가진 아이들은 배움에 관심과 열정을 갖는다. 행복이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는 정서구조에 달려 있다.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서,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감이 형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행복지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랑과 자유의 양분에 의해 오랜 세월 형성된 고유한 정서세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정서세계는 평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에너지이고 능력이다. 오늘날의 교육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가장 강력한 행복의 원천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참으로 통탄할 만한 일이다.
배움에 관심과 열정을 갖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기발견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과 자유에 이어 자기발견은 행복의 주요한 원천인데, 사랑과 자유의 교육은 자연스럽게 자기발견으로 인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지혜는 적어도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체계적인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지혜(학문적 지혜), 인생의 여러 상황에서 좋은 판단을 하게 하는 실천적 지혜, 생산과 관련된 기술적 지혜, 그리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예술적 지혜 등이다. 현대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인간에게는 적어도 8가지 독립적인 지능이 존재한다는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 theory)을 주창했다. 8가지 지능이란 언어논리지능, 수리과학지능, 시각지능(미술적 지능), 음악지능, 운동감각지능, 타인이해지능, 자기이해지능, 자연친화지능 등이다. 가드너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8가지 지능에 있어 다른 능력을 타고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은 이것을 인식하여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더 살리는 자기발견의 교육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교의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에 따르면 이러한 여러 가지 지능 중 언어논리지능과 수리논리지능만 중요한 것으로 부각하고 있고, 이러한 지능이 뛰어난 아이들만 우수한 아이로 인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인이해능력이 뛰어나남을 잘 배려하는 아이들, 자연친화능력이 뛰어나 동물과 식물을 잘 돌보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런 평가를 받지 못한다. 심지어 음악지능과 체육지능이 뛰어난 아이들도 음악평가와 체육평가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음악시험과 체육시험조차 언어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에서 다수의 아이들은 열등의식에 빠져 점점 무기력해지고 바보가 되어가며 자기발견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그래서 멀쩡하고 똑똑한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 성적이 나빠 죄송합니다’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3.
간디학교는 단순히 학교는 아니다. 간디학교는 학교이자 마을이자 사업체이다. 한마디로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즉 간디학교는 대안학교이자 대안적 마을이며 대안적 기업을 추구하고 있다.
우선 우리는 배움과 돌봄이 있는 정겨운 마을 만들기를 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5개의 간디학교 주변에는 10세대 규모에서 40세대 규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마을이 들어서고 있다.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특히 간디학교 졸업생 학부모들이 중심이 되어 도시를 떠나 학교 주위에 정착하고 새로운 문화가 있는 마을을 창조해가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고향 만들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고향을 잃어버린 세대가 따뜻함과 인간다움과 성장이 있는 고향마을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물리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여 문화를 만드는 것까지 최소한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리는 작업이다.
또한 간디학교는 행복한 기업 만들기를 시작했다. 요즈음 용어로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간디학교 5곳 중 4곳이 미인가학교이다. 미인가 학교는 정부의 지원이 없이 운영하면서도 높은 학비를 받지 않으려면 학비 이외의 다른 수입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대안학교는 사회적 기업과 연계될 필요성이 있다. 즉 사회적 기업은 최대이윤이 아닌 적정이윤을 추구하고 무엇보다도 공익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안학교를 지원하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간디학교에선 올해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고 있다.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는데, 해외문화연수, 계절학교, 학교체험, 다양한 교육캠프(치유), 출판, 영상사업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회사가 잘 정착된 이후, 다른 사회적 기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마을 만들기 노하우를 활용하여 ‘생태마을전문회사’ 설립도 고려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 두 가지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나는 대안적 국제학교이고 다른 하나는 대안대학이다. 먼저 필리핀에 대안적 국제학교를 설립 추진하고 있다. 이미 필리핀 간디학교 캠퍼스는 거의 조성이 끝났고 2011년부터 간디학교 고등학교 과정의 국제캠퍼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시아청소년리더학교(Asia Youth Leaders' College)란 이름의 대안적 국제학교를 설립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종래의 국제학교와는 달리 아시아의 빈민 아이들이 올 수 있는 학교가 될 것이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야말로 인종과 편견을 넘어서게 하는 평화교육의 핵심이 될 것이다.
대안적 사회 창조를 위한 대학이나 대학원 과정의 설립을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 물론 교사대학원을 수 년 째 운영해오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1년 과정의 대학원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Schmacher College나 덴마크의 Kaospilot 같은 학교 를 설립하여 한국 대안교육의 중등교육과 연계와 동시에 대안적 미래를 열 수 있는 창조적 리더를 교육하기 위해서다.
이렇듯 나의 인생은 행복한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고 이것에 대한 열정과 배움, 성취와 실패 속에서 성장해가고 있다. 행복한 아이들이 있는 행복한 학교, 이것은 내 인생의 변함없는 최고의 목표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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