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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죽음학회 제15회 월례학술포럼
일시: 2007년 10월 25일(목요일), 저녁 7시 - 9시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국제교육관 1202호
강사: 최철주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실장)
주제: “죽음에 부딪힌 언론”
최준식: 오늘 강사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언론이라는 것이 방송은 죽음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철주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중앙일보에서 죽음문제를 다루셨고, 이것이 언론에서 죽음문제가 다루어진 최초이면서 거의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여파로 중앙일보에서는 지금도 죽음에 대한 기사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간단히 약력을 소개해 드리면 중앙일보에서 36년 근무하셨고, 그 중에 TBC(옛날 동양방송)에서 10년이라는 기간이 보내셨고, 편집국장을 역임하시고, 논설위원실장을 계속하시다가 작년에 은퇴하셨습니다. 최 선생님께서는 내년부터 죽음에 관한 저널리스트이면서 학술적인 면이 들어간 일반인에게 죽음에 대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을 구상하시고 계십니다.
최철주: 최준식 교수님께 부탁을 받고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저는 언론 현장에서 나타났던 죽음에 대한 문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문제, 그것이 안락사이든 존엄사이든 현장에서 나타난 문제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부딪힌 언론이라는 가제를 붙여 보았는데요. 여기서 부딪혔다는 것은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는 예상은 했는데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다는 의미로 죽음이라는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딪힌 언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합니다.
가령 언론에서는 죽음과 관련해서 불의의 사건 혹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대게 그 내용이 너무 피상적이고 결과중심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가 없고, 겉으로 드러난 것만 치중하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이야기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통곡이라는 부분을 한번 본다고 외국과 매우 분명하게 대비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어떤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들은 매우 쿨하게 장례식을 지내거든요. 예를 들어 911테러가 났을 때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다독이면서 장례를 지냅니다. 일본 고베사건 때에도 어떻게 사람들이 감정표현을 그렇게 억제할 수 있을까할 정도로 침잠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것이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되어 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떼굴떼굴 구르고 땅을 치고 원초적인 본능을 유감없이 모두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디서 사고가 났다하면 텔레비전에서는 땅을 치고 통곡을 하는 모습을 반복을 해서 보여주곤 합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전염이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땅을 치고 울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사람은 슬픔이 덜 하구나’하는 면도 있을 것이고 또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그런 식으로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을 많이 갖습니다. 그것은 일제의 핍박도 있었고, 6.25도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보면 전부 다 땅을 치고 통곡하는 장면이 거의 대부분 이예요. 그래서 그런 환경들이 주기적으로 때가 되면 또 터지곤 합니다.
제가 84년에 인도 뉴델리에 갔을 때 인드라 간디여사가 암살되었어요. 그때 암살 되서 장례식에 들어갔어요. 외국의 조문객들이 다 모였는데 쿠다룬 광장에다가 장작개비를 쌓고 그 위에 간디여사의 시신을 태웁니다. 그리고 그것이 다 타서 재가 되면 그 재를 모아가지고 절반은 히말라야 산맥에 뿌리고 절반은 겐지스강에 뿌립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저것을 하나의 아주 엄숙한 의식으로 치루는 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어떤 우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것은 없어요. 그것은 힌두교의 영향이 크겠지만요. 이슬람 국가도 슬픔이 있지만 그렇게 과도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죽음이라는 것은 왜 이렇게 공포감에 싸여있고, 절망적이고 분노는 점점 증폭이 되느냐.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죽음이야기는 정말 꺼내기가 어렵지 않겠느냐. 특히 텔레비전에서 죽음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특집을 한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돌려버리거나 아니면 아니 왜 저따위 보도를 하느냐고 비판하고 아예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 시청률은 떨어지니까 그 누구도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은 일반 국민에게도 영향이 가고 반대로 일반 국민의 그러한 의식은 다시 매스콤에 영향을 주어서 그것이 순차적으로 증폭이 되는 상황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식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저는 나름대로 생각을 해봅니다.
제 생각에 이 문제와 관련해서 지도층으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치계 쪽으로 조병옥 박사 등을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이 나서 떠나고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조항이 없어요. 우리가 존엄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 이야기에 어떤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스토리를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 이승만 대통령은 해외 망명 중에 세상을 떠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암살되었어요. 그 다음에 몇 년 전에는 우리나라 사법계의 최고 수장이었던 유태흥 전 대법원장이 한강에 빠져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경제계를 한번 볼까요? 경제계에는 물론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차단이 되었기 때문에 깊은 내막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상 돈 있는 사람들은 연명 장치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또 반대로 우리가 존엄사에 가까운 경우도 있지만 이야기가 안 나오니까 우리가 알 도리가 없어요. 그리고 사실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산을 둘러싸고 산자와 죽은 자의 다툼 또 남은 자와 남은 자 사이의 처절한 싸움을 겪게 됩니다. 죽은 사람은 어디 가고 없고 남은 재산 문제로 해서 그 가문이 아주 어두운 상태로 몰려가는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도 바로 그런 일이 있었죠? 서울대 병원에서 장례식장에 가보니까 한쪽은 장례식을 더 이상 치르지 못하게 문 앞에서 막고 한쪽은 안쪽에서 어리둥절한 채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화 종교 분야는 그런대로 다른 분야보다는 낫습니다. 죽음에 대한 좋은 추억을 남겨줄 수 있는 가령 이광수 선생이나 종교 쪽에는 성철스님, 기타 신부님 목사님 몇몇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정말 우리가 존경하고 싶은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지요. 그래서 매년 때가 되면 추모식을 하는데 딱 그 몇몇 분에 한정 되서 보면 그 외에는 떠오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배우고 듣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좋은 죽음으로 기억될 만한 것이 뭐가 있느냐? 그러한 것이 없어요. 3년 전에 최형섭 전 과기부 장관이 돌아가셨어요. 최형섭 과기부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7년 넘게 과기부 장관을 하시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기반을 다지신 분입니다. 그분이 수원에 있는 어떤 실버타운에서 노후를 보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가 그분을 인터뷰하려고 그 가족을 몇 번을 접촉을 했는데 그 큰아들이 막아요. 그래서 제 취지를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크게 노력하신 분인데 이분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 모습을 국민에게 알려주면 어떻겠느냐. 그 좋은 모습을 내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쓰고 싶다고 그랬더니 “안 됩니다. 아버지께서 싫어하실 것입니다.”하고 이야기해서 그러지 말고 내가 가서 이야기 할 테니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완전히 막았어요. 그리고 얼마 후(2달)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기회를 그 가족들이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면은 돌아가신 그분한테도 좋은 이야기를 우리 국민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텐데 그 아들 되는 분도 대학 교수인데 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우리들의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의식이 보통사람이건 식자층이건 상관없이 이러한 수준이구나 하는 실망감을 저는 안고 있습니다.
그 외에 또 한사람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죠. 작년에 타계하셨죠. 그분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는 모습은 우리가 추억의 하나로 가질 수는 있겠구나하는 모습으로 떠났습니다. 우선은 치매 부인을 간병하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모습이 알려졌죠. 부인을 간병을 하고 자신도 세상을 떠난 그 모습이 우리에게는 좋은 것이 아니냐.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잘 나오지 않아요. 가끔 이러한 모습은 좀 부각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현장에서 일할 때 이러한 부분이 굉장히 아쉽습니다.
서구의 유명한 인물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이 언론에 크게 부각이 되는데 우리는 왜 그렇게 되지 못하느냐. 가령 레이건 대통령이 오랜 치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사람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마치 존엄사 한 것처럼 추앙합니다. 끊임없는 추모객들이 레이건 묘소에다 꽃을 바칩니다. 포드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 유럽에 가면 문화예술인들의 묘지에는 끊임없는 꽃들이 올려 지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죽음이 좋은 추억이고, 좋은 영향이고, 좋은 자극을 받고, 그것이 삶에서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추모객들이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정치권력이건 문화 권력이건 언론권력이건 그런 권력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 좋은 모습으로 떠난 기억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죽음과 관련한 롤 모델이 우리는 왜 없을까. 그리고 있는데도 왜 감추어 두는 것일까.
제 생각으로는 먼저 언론이 관심이 없죠. 4년 전인가요?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책을 한권 쓴 것이 있었어요. <어린이들에게 주고 싶은 33가지 이야기>.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왔어요. 그 책의 33가지 이야기 중에 20가지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예요. 무슨 내용인가 하면 자기 집에서 키웠던 애완견이 자기를 마중 나오기 위해서 길을 따라가다가 차에 치여서 죽습니다. 이 아이가 애완견의 죽음을 이겨내기가 어려워서 밥을 안 먹고 학교도 안갑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죽음이란 이러이러 한 것이라고 아이에게 설명을 해줍니다. 그 이후부터 다시 밥을 먹게 되고 학교도 나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른이 되어서 회상을 합니다. 아, 사람도 동물도 다 이렇게 죽어가는구나. 이런 이야기입니다. 또 한 이야기는 아이가 학교를 다녀오면 옆집에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할아버지하고 인생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그 어린이는 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추억을 쓰는 거예요. 그 다음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거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러한 슬픔을 내가 어떻게 극복을 했느냐, 내가 어른이 되어서 성장할 때까지 내가 겪었던 죽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느냐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어린이에게 주는 책이거든요. 결국 죽음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미국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다는 것이죠.
4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건강하고 좋은 삶을 위한 텍스트들이 있는데 웰 빙만 있고 사실 웰 다잉은 사실 없죠. 웰 빙, 잘 먹고 잘 살기. 요즘에는 참살기라고 하죠. 그럼 웰 다잉은 뭐라고 하나. 잘 죽기. 할 말이 없어요. 좋게 이야기해서 존엄사라고 하는 방법이 있겠죠. 혹은 품위 있는 죽음.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언론에서 별로 관심이 없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참 조심스럽죠. 암 투병 하는 사람,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대비하는가에 대해서 하나씩 하나씩 부각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생사관, 일본에서는 사생관이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는 사는냐 죽느냐 이렇게 많이 쓰다가 비장한 각오를 할 때에는 죽는냐 사느냐 사생결단을 하겠다고 할 때는 죽음이 앞서갑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통 괜찮을 때는 생사라고 하지 사생이라고는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보통 사생관이예요. 그러니까 일본은 사생으로 쓰는 빈도가 생사라고 쓰는 빈도보다 훨씬 높습니다. 죽음에 대한 대사도 많고 여기에는 물론 사무라이 정신이 깃든 할복자살도 포함되고, 어떤 것이 존엄사인가라는 이야기가 일본에서는 상당히 많이 다루어졌죠.
제가 품위 있는 죽음, 존엄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는 제 딸이 암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떠나기 전에 딸하고 약속을 해서 투병 중에 제가 호스피스 교육을 받았어요. 그리고 제 딸아이를 보니까 한 6개월 남았는데 자신의 통장도 정리하고 옷가지도 정리하더라고요. 그 때 딸아이 보면서 너 그래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물론 마지막까지 생에 대한 애착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떤 때는 여행을 가겠다고도 하고, 실제로 여행도 갔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가 당시 도지사였어요. 그 친구가 정치계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았는데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도중에 어느 날 차를 세워두고 한강에 빠져 죽은 일이 있었어요. 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날이 이렇게 추운데 그 물 속은 얼마나 추웠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죽는 것이 참 비참하다, 우리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존엄사를 사회적으로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대비하고 또 죽음을 깨끗이 정리해서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도 부담이 안 되도록 해야되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존엄사라는 말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고 보통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존엄사는 어렵습니다. 좀 명확하게 수용하기에는 거리가 있고 너무 위에 떠있는 것 같고 그래서 2003년도에 암센터에 있는 윤영호 박사가 글을 썼는데 글을 저에게 가지고 오셨어요. 그래서 그 때 제목을 품위 있는 죽음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좀 이상하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저는 물론 이상하다. 그러나 조금 무리하면서도 과감하게 써보자고 했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도 조금 도덕적이고 너무 철학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써 왔습니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존엄사는 안락사의 다른 이름으로 혼동되기 십상이지마는 그래도 넓게 쓰이기 시작한다는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에 저는 조금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여전히 존엄사를 센세이션하게 보도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면은 특히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안락사를 존엄사로 근사하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 또 포장할 수밖에 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존엄사라는 것은 일본어를 그대로 받아 쓴 것입니다. 따라서 품위 있는 죽음과 같이 우리 식으로 쓰는 것이 현실인데 정면으로 딱 와 닿지는 않지만 그리고 그 단어를 입에 담기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품위 있는 죽음 또는 조금 줄여서 이야기할 때 존엄사라고 당분간은 그렇게 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로 갈 때 안내를 어떻게 잘 해주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 택시 탈 때는 일본식으로 빈차를 공차라고 썼어요.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빈차로 바뀐 것 이예요. 이렇게 바꾸고 보니까 참 좋거든요. 저는 품위 있는 죽음 혹은 존엄사에 대한 다른 용어가 생각이 안 나는데, 이전에 웰 빙을 참살이로 한다는 것이 지금은 조금 이상하죠. 그런데 그것이 이제 우리 귀에 익으면 또 괜찮아 질지 모르겠어요. 마찬가지로 한글학자하고 상의해서 좋은 안을 짜 본 다음에 품위 있는 죽음 또는 존엄사를 능가하는 좋은 한글 표현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한일 월드컵 때 이런 일이 하나 있었어요. 우리나라 의사 협회에서 존엄사 문제를 검토를 한번 해보자했었는데 이것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이제 한국도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하자는 것이구나 하고 크게 보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의사들은 다들 놀래서 두 번 다시 그 이야기를 안 꺼냈습니다. 지금도 그 문제 이야기만 나오면 의사협회는 노코멘트입니다. 언론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언론들은 유럽 일부 국가나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되는 안락사로 오해하거나 또는 그렇게 몰아붙여 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같은 해 일본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생전 유언, 사전지시서, 생전지시서와 같은 여러 가지 것들이 나오는데 그게 생전이라고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태어나기 전이거든요. 사전이라는 것은 죽기 전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두 개 다 사용합니다. 사실 생전이라는 말은 현재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살아있는 동안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전이라는 것은 내가 이제 죽게 되는 보다 더 절박한 상황입니다. 생전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건강할 때 유언을 남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전 지시서는 생전유언으로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2006년 일본에서는 생전유언을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그 때 10만 명의 일본인이 생전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할 때에는 불필요한 치료에 의한 연명을 중지해 달라는 서약을 합니다. 그런데 그 서약을 하는데 반드시 거기에는 인감도장이 들어갑니다. 그것을 존엄사 협회가 최초로 하죠. 그 10만 명 돌파했다는 것을 계기로 일본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합니다. 그리고 방송에서도 특집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일본은 안락사라는 말이 없어졌고, 존엄사를 썼죠. 물론 그 이전에는 70년대, 80년대 초까지는 일본에서도 안락사와 존엄사를 혼동을 했습니다. 그 다음해에 일본에서는 존엄사를 입법을 하자, 존엄사를 인정하자는 입법 청원을 하게 됩니다. 여당 내에도 존엄사와 호스피스를 추진하는 의원 간담회가 조직됩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이 엄청나게 앞서있게 되었죠. 일본의 변화 속도에 비해서 우리가 굉장히 느리기는 하지만은 존엄사 =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향상되고 있는데 이것도 역시 극히 일부 언론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존엄사는 안락사라고 보는 그런 경향도 여전하고 그래서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상황과 방향을 언론이 상정을 하고 있죠. 그러면 언론, 나아가서는 국민의식이 변하는 데에는 어떤 계기를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 계기는 어떤 것이냐.
일본에는 이러한 것이 있었습니다. 일본에 도야마라는 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 현의 한 병원의 내과 부장이 2000년도부터 4년 동안에 7명의 말기 암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내서 사망케 했어요. 이 의사는 더 이상 치료는 필요 없고 환자는 너무 고통스러워 하니까 환자 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인공호흡기를 떼었습니다. 하나의 문제점은 환자 자신의 동의가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 때 일본 언론은 어떻게 했는가하면 의사의 주장대로 존엄사 했다고 기사를 크게 썼어요. 그래서 존엄사를 연구하는 쪽에서는 환자 가족뿐만 아니라 환자의 동의를 생전에 건강하게 사는 동안에 유언을 제출하는 것이 좋다는 캠페인이 벌어졌고, 이 사건이 일어나면서 생전유언을 쓰는 건강한 일본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특히 동경이나 오사카, 나고야, 후가이도 등의 지역주민들이 이러한 운동에 많이 참여한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떨까요. 미국은 더 낫겠죠. 여러 좋은 모델이 많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요. 이 교수가 이제 다 몸이 굳어져서는 누워 있다가 제자들에게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면서 모리교수가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이렇게 살다가 세상을 가는 거란다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를 자기가 솔선수범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가 어떻게 국민과 언론이 죽음을 잘 다룰 수 있을 것인가. 분명히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존엄사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차단시키거나 실제는 존엄사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만 존엄사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으면 그것을 언론이 취재를 해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샘플이 있어야 쉽게 이해되고 더 잘 전파되고 국민의식 변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떤 삶이 좋으며 어떤 죽음이 또 좋은 것인가.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아직은 그런 좋은 모델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어떤 이슈에 접근을 하는데 그 이슈에 접근하는 방법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가령 판사나 검사가 또는 변호사가 법률을 이야기하면은 도대체 해석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는 법률용어라는 것은 전부 일본식입니다. 왜 우리 는 그 사람들이 하는 생활용어를 우리의 용어로 바꾸어 쓸 수 없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용어에 통화유통속도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대한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를 해야만 뭔가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 개념처리상 어렵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어떤 논문 작성이나 그런 것은 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목적에서는 어휘를 바꿔주어야 합니다. 그런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철학이든 경제학이든 법률이든 그런 생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항상 후배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문장이 진부한 것은 경범죄다. 그런데 시각이 진부한 것은 중범죄다.”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 어떤 사람의 삶이나 죽음에 대해서 쓸 때 어떻게 하면 새로운 시각으로 쓰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수적인 사회라고 하더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이전에 계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 계기를 그 시각을 바꾸어서 우리가 존엄사나 또는 죽음에 관한 문제를 국민에게 전달한다거나 또는 미디어에 다가가서 관심이 가도록 유도를 하면 어떻겠느냐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을 때에는 내가 다가가서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면 먹으러 오는 것처럼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하나 영상의 문제입니다. 영상은 지금 모든 분야에 침투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력에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권력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영상으로 처리를 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미국 고어 전 대통령이 환경문제를 다루는데 영상으로 처리를 했어요. 그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한 것인데 오존층이 붕괴가 되어서 우리 생활의 상당부분을 파괴를 시킵니다. 이런 문제를 영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각국에 뿌립니다. 그 힘이 크다 이거죠. 어려운 교토 의정서다 뭐다 보다는 영상으로 처리를 해서 딱 한번 돌리면 저것이 우리생활에 이런 문제를 주는 구나를 직접적으로 쉽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상으로 어떤 문제를 풀어주는 시청 영역의 확대 내지는 그 해석 방법을 배우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틈이 나면 영화를 많이 봅니다. 금년 초에 나왔던 드라마 한편이 있었죠? <하얀 거탑> 그리고 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나온 것이 있죠. 내용은 다 일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얀 거탑>을 보면 이것이 70년대 일본 상황인데 외과 과장이 암에 걸려 죽는데 암 통보를 못 받습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일반 국민들에게는 더 이야기를 안했죠. 그러니까 온갖 출세하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데 결국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직감은 하지만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고 화를 내고, 통증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죠. 그래서 지금 현재에 그런 드라마를 만든다고 한다면 암 통보도 받고, 주변을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 존엄사에 이르는 방법을 개발해야 하겠죠. 사실 죽음학회라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런 것이죠. 영상적인 접근을 해서 학회가 할 수 있는 일을 그런 식으로 개발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까 제가 계기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하는 말씀을 드렸지만 신정아, 변앙균씨 두 사람은 한 달 이상이 넘게 대단했죠. 그런데 이 두 사람일로 우리는 어떤 문제를 해결했느냐면 학력위조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학력위조를 검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두 사람이 공헌을 했습니다. 그 계기를 잡은 것입니다. 만약 두 사람의 사건이 없었다고 한다면 계속 학력 위조는 또 이어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품위 있는 죽음, 존엄사를 일반 국민 또는 언론이 제대로 알고, 또 어려서부터 배우고 듣고 할 수 있는 계기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그 계기가 나타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최준식: 전체 말씀이 어떻게 계기를 만드느냐 그것이 관건이 되겠습니다. 여러 문화계, 제계에서 떠나신 분들 중에서 선경에 최종현 회장 같은 경우는 어떻습니까.
최철주: 장례식에서 우리가 화장하는 방법으로 급물살을 타게 한 것은 최 회장의 역할이었습니다. 바로 그 계기를 잡은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롤 모델이 된 것입니다. 내가 화장을 할 테니 선경그룹 임직원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하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따라왔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게 좋다, 나도 따라 해야겠다, 저 사람이 하는데 내가 왜 못하냐하는 생각이 생긴 것이죠. 계기를 잘 잡은 것입니다.
존엄사의 부분 이것이 사실은 존엄사도 소극적인 안락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존엄사 하면 그거 소극적인 안락사 아니냐, 그 한계가 뭔가에 대해서 묻습니다. 한계가 있죠. 그 한계의 접점 부분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애매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학회에서나 전문가들이 그것에 대한 해석을 적극적으로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언론이 이것은 소극적인 안락사가 아니고 존엄사다, 존엄사로 우리가 타이틀을 고정시켜서 가야한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자신감이 첫 째로 없고, 그리고 밖에서 이견이 들어오면 그것을 처리할 능력이 없으니까 어정쩡한 입장에서 소극적인 안락사로 몰아가 버리거든요. 그 다음에 언론에서 존엄사 문제를 다루면 죽음이라는 말은 없죠. 죽음이라는 말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우아하게 어떤 계기를 잡아서 우리가 사회적 아젠다로 던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을 우리가 논의를 해가면서 적당한 계기를 잡아서 해보는 것이 어떨까를 생각합니다.
최준식: 존엄사와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하고의 차이는 명확한데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 하고의 구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묘한 것 같고, 비슷한 면도 있고요.
최철주: 그러니까 환자가 생전에 적극적으로 자기가 치료가 불가능 할 때 연명치료 중지를 요구를 했고 그 다음에 의사가 최후까지 최대한 치료를 했고 그 다음에 통증 치료, 가장 견디기 어려운 통증치료의 모든 힘을 다 쏟았어요. 이것은 존엄사라고 봅니다. 그럼 통증치료도 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환자가 견뎌가며 죽으라고 하는 것이 자연사인가. 존엄사 = 자연사라고 몰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존엄사 = 자연사, 그전에는 소극적인 안락사하고 사실 애매한 부분의 경계선에서 조금 차이가 생기죠. 그러나 조금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존엄사는 자연사라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생각이듭니다.
가령 임종을 앞둔 아버지를 간호하는 3형제가 있다고 하지요. 큰 형과 둘째 형은 더 이상 아버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호흡기를 떼자고 하면 셋째 아들이 “형님들은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아버지의 호흡기를 떼자고 할 실 수 있습니까.”라고 하면 아무리 나이가 많은 형들이라도 차마 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무슨 소리가 들어올지 모르고 큰 형, 작은 형은 불효자로 몰리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재산을 둘러싸고 어떤 소용돌이에 빠질지 모르거든요. 그래서 아버지야 고통스럽건 말건 나도 모르겠다하고 중환자실에 넣어버립니다. 사실은 이것이 불효자인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내놓고 이야기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가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거든요. 그러면 분명히 집집마다 화제 거리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어느 피디가 그것을 만들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러면은 학회에서 이런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한다고 해봅시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까요?
최준식: 계기 문제에서 사회 저명인사가 죽어서 롤 모델이 되어 나오면 좋겠지만.
최철주: 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분이 내가 얼마 안 남았다고 공표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치료가 필요 없을 때 의료진이 판단해서 더 이상은 치료가 필요 없을 때 나에게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유언을 남기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실질적으로 실정법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통증치료도 다하고, 이제는 마지막이다, 자연사가 되도록 환자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내 딸아이의 경우에도 중환자실에 마지막 한 달 동안 넣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딸도 싫고 나도 싫고, 중환자실은 정말 아비규환이거든요.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는 사람이 가족회의를 해서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론도 그것을 계기로 해서 떳떳하게 쓰고 존엄사라는 것이 뭐냐에 대해서 알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거든요.
전병술: 이러한 것이 일상에서 성찰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성찰이 되어 지면 사회적 권력에 올라가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문제 아닌가요?
최철주: 근데 우리 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어느 방송사가 우리 딸이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촬영을 하겠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우리 딸에게 물어보았더니 완강하게 반대를 해요. 자기 장기는 다 기증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암 환자는 장기기증이 안됩니다. 그런데 각막은 됩니다. 그런데 각막 이식은 집사람이 반대해요. 왜냐하면 통증에 그렇게 시달렸는데 눈까지 가져가는 것은 못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우리 딸 입장이라고 그러면 한참 아름다울 때 세상을 떠난단 말 이예요. 머리 빠지고, 뭐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40대 50대 나이이면 어떨까. 그런데 30대 중 후반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딸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 모습이 찍혀져서 세상에 나간다는 그 모습을 상상하기 싫고 받아들이기 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병술: 안락사도 어떻게 편하고 즐겁게 죽을 수 있느냐하는 것이 문제죠. 그래서 안이사로 바꾸자는 말도 있었습니다. 편하고 쉽게 죽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최철주: 우리가 국어학자들이 만들어 내면 뭐가 있긴 있습니다. 쉬운 우리글이 있잖아요. 왜 우리 대학교 때 클럽이라는 말 대신에 동아리라는 말 쓰잖아요. 우리는 너무 일본에서 만든 어휘를 무비판적으로 써버리는 것 이예요. 존엄사라고 계속 쓰다보니까 너무 익숙해져서 그 말에 사로잡혀 버려가지고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전병술: 존엄은 쓰는 단어니까 존엄한 죽음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최철주: 저는 그런 상상을 했거든요. 북한에 재미있는 표현이 많으니까 북한 사람들에게도 연구를 시키는 것입니다.
참여자: 그런 단어가 학자들이나 전문 기자들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여도 일반 사람들에게는 구분해가면서 듣기보다는 그냥 무의미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최철주: 말을 어떻게 풀어갈 갈피를 못 잡아요. 호스피스 그러면 우리가 60년대부터 써온 말인데 아직도 호스피스를 식자층들도 잘 몰라요. “호스피스? 병원에서 뭐하는 건데?” 하는 식입니다.
어떻게 재미있게 적극적으로 사느냐, 우리가 품위 있게 죽는 것을 배우면 재미있게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완전히 떼어 놓고 보니까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연결시킨다 한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최준식:아주 알차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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