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 기후변화
아직은 가을인데 고인 물이 꽁꽁 얼어붙도록 한파가 몰아닥친 며칠 전, 깊은 산중인 이곳에 하루 밤사이 기온차가 20도나 되도록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리곤 눈이 내렸다. 가을걷이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적설량 30cm의 대설이 쏟아진 것이다. 첫눈을 즐기고 싶은 마음보다 농작물이 냉해를 입어 수확이 줄어드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 농민들의 애타는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하고, 벌써 추운 겨울을 느끼고 싶지 않기도 하다. ‘지구온난화로 겨울이 점점 짧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주의 운행원리를 나의 짧은 소견으로 어찌 알 수가 있음이리오. 최근 자주 일어나는 기상이변의 가장자리 정도라고나 할까.
11월초에 하얀 눈이 연출해낸 별천지를 응시하며 ‘지주 온난화’라는 말로써는 설명이 불충분한 또 다른 기상이변임을 알겠다. 최근 비를 동반한 돌풍이 빈번해지고, 쓰나미나 토네이도, 기습한파와 태풍으로 인한 홍수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 그로 인한 자연재해는 해마다 위험수위를 더하고 있다. 확실히 지구의 대기 변화는 크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설하신 연기緣起의 작용은 느리기만 한 것 같아 평소엔 전혀 느끼거나 뚜렷하게 인식하기가 어렵다. 봄에 핀 꽃이 열매가 되려면 가을까지 몇 달이 걸려 꽃과 열매의 연기관계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고,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 수십 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니 병들거나 늙음에 이르러 깊은 명상을 체득해보지 않고서는 존재의 연기작용을 한 눈에 인식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에 비례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하여 연기의 작용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한 예로 이제는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 단말기를 보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품종들이 쏟아져 나와 다양하고 빠르게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다투어 광고경쟁, 판매경쟁, 구매경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을 토대로 한 신기술 개발 등 인간의 두뇌로부터 나오는 결과물들은 시간을 다투며 새로운 상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내 바로 눈앞에서 작동되는 연기를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상품들을 생산하고 소비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결국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기후의 급속한 변화를 일으켜 이 지구를 위험에 빠트리는 또 다른 연기를 작동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산화탄소가 증가하고 오존층이 파괴되고, 북극에서는 빙하가 계속 녹아내려 투발루 같은 작은 섬나라는 물에 잠겨 나라가 없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더욱 가슴 아픈 일은 아프리카나 브라질 등에서는 지금도 대규모의 숲을 파괴하여 돈과 바꿔 생존방법의 문명화를 꿈꾸며 소위 ‘삶의 질’을 높이고자 혈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욕망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파괴와 죽음의 연기작용은 정녕 그치게 할 수가 없는 것인가?
오대산 기슭 탑동리에는 10여년 전에 들어와 늙은 아버지와 부부 그리고 아들딸들로 구성된 한 식구가 유기농법으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도회지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 부부는 산중살림을 작심하고 팔소매를 걷어 부쳤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농군이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남편은 콩, 고추, 마늘, 양파 등 각종 작물 등을 유기농법으로 키워내고, 아내는 그것으로 고추장, 된장, 효소, 장아치 등을 담아 지인들에게 팔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였다.
마을 주민들과 공동작목반을 만들어 공동출하를 통하여 수익증대를 꾀해 보기도 하면서 유기농으로 무농약으로 오로지 자연이 주는 혜택만으로 살기를 바랬지만, 아이들 교육비 등등을 생각해볼 때 산중살이가 쉽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이번과 같이 작물 수확전 냉해 피해라면 그들의 마음이 어떨지 산중살림의 반거둘충이인 내가 어떻게 그의 심중을 이해할 수나 있겠는가마는 마음 한켠이 쓰리다. 기후변화로 인한 폐해는 가까이에 있다.
이즈음 그들은 밭 삼천 평에 사과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온난화의 영향으로 이곳 오대산 기슭에도 기온이 높아져 상품성 있는 사과 재배가 가능해졌다. 해발이 높은 이 지역의 사과는 육질이 단단하고 색도 고우며, 상큼하고 당도가 높아 맛이 일품이다. 육질이 단단하니 쉽게 상하지 않는 강점이 있는 반면 다량 수확이 불확실하다. 한 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10여년 동안 손이 많이 가는 밭작물 재배는 그야말로 한 여름 뙤약볕 아래 용맹정진하는 마음으로 풀을 뽑아야 하고 온갖 정성을 쏟아야만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사과재배는 그러한 용맹정진은 줄어들 수 있으려나. 진정으로 땅과 하늘과 어우러져 연기하고자 했던 귀농할 때의 맑은 꿈은 먼 기억속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지구촌은 흐르다가 멈추고 또 움직이다가...... 요동을 치고......
그에 비례하여 인간의 마음도 흐르다가 멈추고 움직이다가 요동을 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한 것,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기후변화로 또 얼마나 요동을 치며 때론 소리도 없이 가뭄, 홍수, 지진, 바람, 눈얼음 폭탄으로 연기하며 우리들을 깨닫게 할 것인가. 옷고름 여미며 알아차림 해야 할 일이다.
2009년 11월 주간불교신문 '산거유감' 칼럼에 실린글 -- - 일부분수정하여 올립니다.
첫댓글 전자공학 출신으로
전자기기의 변화를 지난
30년 동안 체험 했습니다.
대단히 라이프 사이클이 짧습니다.
그래서 3.3.3 작전 구사 합니다.
3개월 개발해서 3개월 생산하고
3개월 판매 하고 종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일생의 이이프
사이클은 너무 깁니다.
ㅎㅎ 너무 길지요.ㅋㅋ
모든 것은 나고 변하고 사라집니다. 오직 연기와 업만 그 사이에서 작동할 뿐.......영겁의 무상과 반복 속에서 오직 차이만이 의미를 갖거늘 헛된 욕망에 소멸을 재촉합니다.
네 공감 ^^ 오직 연기와 업만 그 사이에서 작동할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