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산우회 대마도를 가다(1)
오상산우회가 해외산행겸 여행지로 대마도를 택하고 참가회원을 모집했다. 당초 3월26일부터 2박
3일 예정이던 것은 필자의 사정상 일주일 연기하여 4월2일~4일까지로 정하고 본 게시판을 이용하
여 독려에 들어갔다. 조회장을 도와 여행안내와 절차를 공지하고 마감한 결과 여행지 통나무집 숙
소의 정원 32명이 다 차버렸다. 또 한명이 추가되어 결국 33명이 떠나게 되었다.
부부가 아닌 싱글로만 33명이라는 숫자는 정말 대단한 인원이라 생각된다.
알찬 일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벽기차를 타야하고 밤늦게 도착하여 귀가하는 일정이 못내 아쉬
운 점이지만 모두 불평없이 잘 해냈다. 일부는 전날 밤에 부산에 도착하여 부산의 봄밤을 즐긴 회원
도 있었다. 필자도 몇몇 동문과 같이 부산 임봉규회원과 약속이 되어 미리 부산으로 갔다.
부산의 동래온천장의 횟집에서 술에 만취하고 농심호텔에서 하룻밤을 잤지만 채 2시간도 못잔 셈이
다. 새벽에 나가 허심청에서 온천욕을 하고 나니 한결 몸이 가뿐해졌다.
9시까지 항만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조병훈회장으로 부터 18명이 부산을 향해 오고 있다
는 문자 멧시지가 왔다.
더듬거리는 핸드폰 문자 솜씨로 답을 하고 국제여객터미날에 도착하니 장까포(장헌수동문)와 최학
장(최성태동문)이 도착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부산에 미리 왔던 친구들이 속속 모이고 곧이어 서
울서 새벽기차를 탄 일행이 도착하여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가이드 하신영양을 만났다.
너무나 밝고 명랑한 모습에 이번 여행에 큰 기대를 해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부산의 임봉규동문이 우리 일행을 위해 자기 회사의 남방셔츠를 사이즈별로 두종류의 칼러로 단체
복으로 제작하여 배포해 주었다. 가슴에는 오상회라는 이름도 새기고- 모두들 감격해 하면서 고마
워 했다. 친구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와 우정 - 고마운 일이다. 앞으로 산우회의 산행시에는 모두 단
체등산복이 등장할 것 같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대마도행 드림플라워호 선상에서
히다카츠 항에 도착
버스안에 걸린 이번 여행 안내도
부산과 경주의 임봉규,이완영동문 그리고 여학생이었던 강춘구,장윤자동문은 정말 오랫만에 만나
는 친구들이 많아 정담을 오래 나누었다. 기차에서 부산으로 오는 동안 장윤자동문이 고급 샌드위
치를 직접 만들어 아들 차편에 갖고와서 아침식사를 제공했다고 모두들 고마워 했다.
10시30분이 되자 예정대로 대아고속해운의 드림플라워호는 히타카츠항을 향해 출발하였다.
300석이 정원인 이 배에는 150명이 승선했다. 날씨가 좋고 파고가 낮아 아무 흔들림이나 멀미없이
갈 수 있었다. 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들었는데 실제 1시간 20분이 걸렸다. 그러나 입국수속에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지문과 얼굴사진촬영의 절차가 추가되고 간혹 짐조사도 있어서 한시간 가량 수속
시간이 걸린 셈이다. 버스에 탑승하니 먼저 식당으로 인솔되었다. 메뉴는 우동정식셋트로 아사히
맥주를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조병훈회장의 첫 감사인사와 화이팅으로 건배를 하였다.
첫 중식 시간 - 그저 즐겁기만 하다.
대마도(對馬島)
대마도란 이름에 관해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대마도 섬에서 가장 높은 산 백악산(白嶽山)의 정
상에 큰 바위 두개가 마주보고 서 있다. 마치 말머리 모습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모양이라 하
여 대마(對馬)라 일컫고 일본에서는 쓰시마(津島)라 부른다.
한편 나가도메 히사이의 저서『고대 일본과 대마』에서 보듯이 "대마란 마한(馬韓,신라)과 마주
대한다 하여 부른 이름이다"라는 주장이 역사적인 증빙에 의한 설득력을 가진다.
대마도는 동경 129도, 북위 34도에 위치한 큐슈 최북단 국경의 섬이다. 부산에서 49.5KM로 맑은 날에는 부산과 대마도가 서로 보인다니 가히 가까운 위치라 아니할 수 없
다. 일본 본토에서의 거리가 138km라고 하니 대비가 된다. 섬의 전체면적은 709㎢로 제주도 크기
의 40%, 거제도의 2배, 울릉도의 10배 크기란다.
가늘고 긴 고구마 모양의 섬으로 동서 18KM, 남북 82km로 섬의 80~90%가 산이다. 국제항은 첫날
도착한 히타카츠항과 귀국하는 날 떠나는 이즈하라항 2곳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나가사키현에 속해 있으며 크게 상도와 하도로 구분한다, 6개의 쵸(町:정)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중심지는 이즈하라쵸이다. 대마 본섬 외에 109개 부속섬을 갖고 있으며 그 중 사람이 사는 곳은 5곳. 전섬의 88%가 산악이고
원시림에는 일본 본토에서 볼 수 없는 많은 대륙계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산해진미 또한 풍부
해 인심이 좋기로도 소문나 있다.
특히, 옛부터 한반도와의 인적, 물적교류의 창구로 많은 사적과 문화유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
는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인구는 4만5천명이 거주하고 그 중 2만명이 이즈하라시에 살고 있다.
대마도는 우리민족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섬이다. 12회에 걸쳐 일본에 문물을 전한 조선 통신
사 일행이 이 섬을 거쳐 지금의 동경인 에도로 들어갔고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역을 노
략질하던 왜구의 근거지로 수회에 걸쳐 조정에서 정벌에 나섯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마도에는 한국과 관련된 수많은 유적들이 분포돼 있다.
이 섬에는 우리민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어 일본의 섬이지만 일본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
로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마다 있는 신사건물이나 일본식 가옥구조를 빼면 우리 제주도나 울릉도 쯤에 와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대마도 관광의 중요한 의미는 이러한 우리민족혼을 확인하는 것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
는 것이다.
미우다(三宇田)해수욕장
중식을 마치고 한국전망대로 가는 도중 대마도 북쪽에 위치한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1966년에 일본의 아름다운 해변 100선에 선정된 해수욕장으로 대마도에서는 보기 힘든 천연모래
사장으로 얕은 수심의 바다는 남국을 연상시킨다. 에메랄드 그린의 바다와 캠프장 시설이 완비된
곳이다. 왜구 미우다 패거리 두목이 살던 곳이라 한다.
미우다 해수욕장에서 단체사진
한국전망대
대마도의 가장 북쪽 카미쓰시마 쵸(町) 와니우라 해변에 위치한 한국전망대는 한국의 파고다공원
팔각정을 본떠 한국산 자재를 사용하고 전문가의 고증으로 만든 건물이다. 날씨가 좋으면 거제도와
부산의 모습이 육안으로 보이고 밤이면 불야성의 부산 야경이 장관이다. 휴대폰도 로밍을 하지 않고
도 바로 터지는 곳 중의 하나이다. 와니우라항은 악어 이빨모양을 하고 있어 악어항이라고도 한다.
한국전망대 옆에는 조선역관사 순국비가 서 있다. 와니우라 해변은 항상 파고가 높은 대마도의 최
북단 포구이다. 1703년 음력 2월5일 부산을 떠나 대마도로 오던 조선인 역관사 108명이 타고 오던
중 여기서 풍랑을 만나 전원이 침몰 수장되었다. 이를 애도하기 위해 위령비를 1991년 3월20일 건
립했다. 전망대 우측에 위치한 조그만 섬 우니시마에는 일본 항공자위대의 레이더 기지가 있다.
한국전망대
조선역관사 순국비
일본 항공자위대 레이더 기지
에보시다께(烏帽子岳)전망대와 아소만
한국전망대를 출발하여 큰 산 2개를 넘어 토요다마쬬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린다고 한다. 382번
남북을 가로지르는 국도를 달린다. 운전감속표시 팻말이 있었다. 고양이 야마네코 살쾡이 등 보호
동물이 120마리나 있다고 한다. 왼쪽은 산,우측은 바다가 이어진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꾸벅꾸벅 조는 동안 버스는 쉼없이 달린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기사의 실력이
대단하다. 도로가에는 벚꽃이 만발해 있다. 에보시다께 전망대에 도착했다.
110개의 계단을 오르니 사방이 확 터진 전망대가 나왔다. 쓰시마 내에서는 유일하게 360도 동서남
북 사면을 모두 조망 할수있는 전망대로 여기에서 보는 아소만은 몇겹의 산과 바다위에 떠있는 크
고 작은 섬들, 리아스식 해안 등,그 웅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대한해협 너머로 한국의 산들도 볼수 있다.
에보시다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소만
에보시다께 전망대 가는 길
에보시다께(烏帽子岳)는 까마귀가 모자를 쓴 모양이라고 하여 명명된 것인데, 조선통신사를 따라
가던 사무라이가 모자를 달라고 졸라 선비가 모자를 벗을 수는 없고 하여 신고 있던 버선을 벗어
주니 이를 모자로 알고 썼다는데 그 모습이 마치 까마귀에 버선모자를 쓴 모습과 같았다고--
아소만은 육지의 침강으로 생성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다. 육지가 바다로 엉금엉금 기어들어
가는 굴곡미는 대마도의 백미라 하겠다. 많은 섬들이 떠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다도해를 연상시킨
다. 섬 주변에는 양식 진주가 유명한데 일본 본토는 물론 한국에도 수출이 많다고 한다.
하산은 반대편으로 내려갔다.
와다츠미 신사
도요다마쵸(豊玉町)의 상징인 이 신사는 일본 건국 신화의 주역인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와 용왕의 딸 '도요다마히메(豊玉嬉)'를 제사지내는 해궁으로 바다신을 모시는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다. 2700년 전 일본의 1대 천황인 진무텐노(神武天皇)의 조부가 태어난 곳으로 일본 전역에
서도 가장 신성시 여기는 신사 가운데 한 곳이다. 다섯 개의 도리이(鳥井) 가운데 두 개가 수중에
놓여 신비감을 증폭시킨다. 가야의 김수로왕의 자손이 대마도로 건너와 세웠다는 설과 장보고 장군
의 소가(小家)였다는 설 등이 전해져 오고 있다.
본전 정면에 서 있는 '도리이'는 만조시 바다속 2m 정도 가라앉아 파도가 잔잔한 아소만과 어우러
져 신화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신사 입구의 도리이는 바다에 2개 육지에 2개 중간지역에 1개로 5개
가 나란히 서 있다. 도리이는 신과 인간을 새가 연결한다는 것으로 쉬어가는 곳이다.
5개의 도리이는 경주 서라벌을 향해 서 있다.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코마이누 두마리가 양쪽에
서 있는데 절의 사천왕 역할을 한다고 한다.
와다즈미신사(和多都美新社)의 고식대제(古式大祭)를 지내는 건물과 축하로 쓰모장도 준비되어 있
다. 신의 산실이 시선을 끌었고 신사 뒤 후원에는 도요다미히메의 무덤으로 알려진 석관묘가 외롭게
서 있고 주위엔 울창한 숲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또 신전 뜰에는 수백년 된 묵은 해송이 두
그루 심어져 있다.
도리이
와다츠미신사
코마이누
와다츠미신사에서
[일본의 건국 신화와 '와타츠미 신사']
일본 황실의 족보를 보면, 고사기(古事記)의 신화에서 보았듯이 많은 신들을 조상신으로 해서 황실의 계보가
이어져 내려왔는데, 이것이 소위 건국신화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결국엔 신화적 영역에서 현세적 영역으로 변신하면서 맥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까미무스비(高皇産靈)’의 외증손으로 지상에 강림한 ‘니니기 (彌微藝)’의 아들 ‘히고호호데미(彦火火出見)’가 잃어버린 형의 낚시 바늘을 찾아 헤매다가 용궁까지 가게 되
었다. 그는 그 곳에서 용왕의 딸 ‘도요다마히메(豊玉姬)’와 결혼하여 3년을 보낸 후 낚시 바늘을 찾아가지고
나왔는데, 그 때는 아내가 아기를 배어 만삭이 되었으므로 같이 뭍으로 나오지를 못하였다. 며칠 뒤 풍랑이
심한 어느 날 풍랑을 타고 여동생 ‘다마요리히메(玉依姬)’를 데리고 남편을 찾아 뭍으로 나왔다.
해변에 손수 산옥을 짓고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남편에게 당부를 하였으나 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
에, 결국 큰 뱀이 괴로워 나뒹구는 꼴을 엿보임 당했다고 화가 난 ‘도요다마히메’는 낳은 아이를 해변에 그대로
버려 둔 채 ‘우나사까(海坂, 용궁으로 드나드는 문으로 이곳을 헤집으면 나타나고, 이곳을 메우면 사라진다는
곳)를 다시 메워서 용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고사기에 써 있다. 이 때 낳아서 버린 아이가 별명을 ’이소라
(磯良)‘라고 하는 ‘우가야후기아에즈(鵜茅葺不合)’신이고, 그 신이 다시 용궁의 차녀, 즉 이모인 ‘다마요리히
메’ 신과 결혼하여 처음으로 인격화 된 천황 ‘진무덴노(神武天皇)’을 낳으니, 이 사람이 바로 사람으로서의 초
대 천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지금의 황실계보는 천신의 부계와 해신의 모계로 된 혈통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해양국가 일본
의 국가상이다. 이 국가상의 발원지가 본토가 아닌 대마도 ‘니이’지역의 해변 ‘와다즈미(和宮)’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니이’지역이야말로 세형동검, 말방울, 팔찌 등의 청동기와
철기 그리고 경질토기까지 다른 곳에서는 그 예가 없을 만큼 많은 우리 조상들의 유물들이 출토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관교(만제키바시)
와다츠미신사를 구경하고 숙소쪽으로 오는 도중에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붉은 색의 다리를 만난
다. 이 다리가 유명한 만관교이다.
만제끼운하 위에 걸쳐진 이 다리는 1904년 완공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총 3회에 걸쳐 보수공사를
하였다. 지금의 다리(1975년 개통)는 처음보다 약 10M 정도 이동된 자리이며 주민들이 배를 운항
할 때 섬을 한 바퀴 돌아가는 불편을 없애고 군함의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든 다리이다.
이 지역의 수심은 4.5~5.1m이고 폭 40~65m, 길이 210m이다.
요시나가 롯지와 해산물 바베큐 회식
숙소인 요시나가 롯지에 도착하여 체크인부터 하고 온천욕을 하러 갔다. 유타리온천의 신식건물이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손님은 우리일행 밖에 없었다. 강춘구동문은 여탕에서 혼자 독탕을 즐겼다고
한다. 여행후의 온천은 여독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저녁식사는 해산물 바베큐였다.
주류와 비주류로 자연히 나누어 지는듯 했으나 화로를 중심으로 7~8명씩 무리를 지어 술과 해산물
을 즐기며 낙조의 풍광과 함께 추억의 만찬장이 되었다. 여러종류의 조개류와 생선 등 해산물을 석
쇄불에 구워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아예 장갑을 끼고 주방장으로 나서는 한승희,김성호 동문의 모습
은 보기가 좋았다.
요시나가롯지 숙소
온천 목욕탕
낙조 석양을 바라보며 해산물 바베큐를 즐기다.
건배
수퍼마켓에서
C동에 모여라 !
오상회 단체등산복을 제공한 임봉규회원의 건배
이완영동문도 한마디
정종순 카수에 열광
미산 신남휴동문도 인삿말
관해 조중헌 오상회회장의 말씀
회식이 끝나고 숙소로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각 동별로 마실 술과 안주를 준비하는 동안 쇼핑겸
수퍼마켓 구경을 하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모두 C동으로 모이라는 전갈이 왔다.
다 모인 자리에서 회식이 시작되었다. 술자리는 언제나 시끌버끌하다. 김수필 동문이 사회를 하면서
오랫만에 보는 동문부터 인사말 또는 노래를 시켰다. 술이 들어가니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소란스럽
다. 만일 콘도나 호텔이라면 도저히 이런 모임이 있을 수 없지만 다행히 단독으로 우리만 4동을 모두
차지하여 아무리 시끄러워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시가 넘고 있었다. 각자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 아침에 산보를 하자는 약속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마도 여행 참가회원>
A동 : 고덕영(동장),김광,강춘구,장윤자,김길중,김남중,김동엽,김병수,
B동 : 김성호(동장),김수철,김수필,김천기,박호전,신남휴,서영교,성낙원,위봉택,
C동 : 이성주(동장),이완영,이윤우,이인희,이종완,이충우,임봉규,장헌수
D동 : 정종순(동장),조병훈(단장),조상희,조중헌,최성태,한승희,홍순호,황정길
가이드 : 하신연
사진을 CD로 구워 배포할 예정이며 필요한 사진 특히 낚시팀 사진이 필요하니
용량이 크면 대용량보내기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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