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 │ 머리말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전체 맥락에 비추어 읽어야 한다. 단역에
불과해 보이는 오바댜에게도 분명한 자기 자리가 있다. 성경 안의 인물이든 성경
밖의 인물이든, 사실 모두가 중요하다. 오바댜가 맡은 임무는 에돔에 대한 신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성경은 첫 무대에서 쌍둥이 형제 야곱과 에서 스토리를 들려준다.(창 25-26장).
그들은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서로 다투었다.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었고,
에서는 에돔 백성의 조상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주로 요단 강과 사해의 서쪽에
자리 잡았고, 에돔은 남동쪽에 자리 잡았다. 이웃하는 그 두 민족은 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오랜 전쟁과 반목의 세월을 보냈다. 이스라엘이 패망하고 ─ 주전 721년
먼저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주전 586년 남유다가 바빌론에게─ 포로로 붙잡혀
가자, 에돔은 피를 나눈 친족이 당하는 참사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며 한껏
고소해했다. 그러나 신은, 기뻐하지 않으셨다.
“사악한 외적들이 예루살렘을 공습하여 약탈하는데도,
그저 수수방관했다.
너도 그들 못지않게 악질이다.
자기 형제가 얻어맞고 있는데 고소해하다니,
그래서는 안되었다.
유다의 아들들이 진창에 처박히는 것을 보고 깔깔 웃다니,
그래서는 안되었다.
고생하고 있는 그들에게 큰소리를 해대다니,
그래서는 안되었다.
삶이 파탄 난 그들을 되레 이용하다니,
그래서는 안되었다.…
모든 사악한 민족들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네가 행한 일이 부메랑이 되어
네 머리를 칠 것이다”
(옵 11-12, 15절)
언뜻 보기에 오바댜의 짧고 굵은 예언은, 에돔이 신의 선민에게 저지른
잔인한 불의에 맹렬한 고발장 같다. 에돔은 악당이고, 신의 백성 백성은
희생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예언자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장은, 수세기에 걸친 증오와
반목과 독설을 박차고 나오는 커다란 進一步다.
수세기에 걸쳐 에돔에게 괴롭힘을 당해 온 이스라엘에게 돌연 계시된
내용은, 장차 그들이 부당한 처지에서 벗어나 오랜 원수인 에돔 사람들을
통치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몫은 받은 대로
갚아 주는 앙갚음이 아니었다. 그들이 할 일은 폭력의 악순환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
받은 통치권으로 신의 정의를 시행하는 거다. 그들은 자신을 새로운 맥락 —
신의 나라—로 바라보고, 새로운 소명—신의 통치를 나타내는 일—을 깨닫는다.
미미하기는 하나(스물한 절 가운데 한절!), 이것은 분명 서광이다(이것이 마지막
문구다!).
시온 산의 구원받은 남은 자들이 에서의 산에 들어가,
정의롭고 공정하게 다스릴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높이는 통치를 펼칠 것이다
(옵 21절)
마지막 심판 날의 핵심은, 보복과 독설이 아니다. 오바댜의 예언 말미에는
정의의 서광이 있을 뿐이지만, 그 서광은 점점 커져 마침내 빛의 나라를
이룰 것이고, 그 나라에서 모든 민족이 영원한 하늘 보좌에서 임하는 정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출처] 유진 피터슨, 메시지 성경
[입력] 22년 11월 21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