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 머리말
요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성경을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도 ‘고래’ 운운하며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그를 알고 있다. 그 정도로 요나 스토리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요나 스토리에는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 기를 쓰고 신에게서 달아나려고 애쓰지만,
좌충우돌하며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는 요나의 모습은 우스운 익살극의 한 장면 같다.
요나서 1:3에는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요나가 일어나서, 하나님을 피해 다른 방향인 다시스로 달아났다.… 하나님에게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스토리가 시시한 스토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스토리이다. 미소 짓거나, 때로는 웃어 가며 요나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신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세워 놓은 경계들이 풀어지면서
꼼짝없이 신의 뜻과 명령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외 없이 모두가 그렇다.
스토리는 성경이 ‘신의 스토리’안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도록 돕는 대표적 방식이다.
성경 스토리는 우리를 만드시고 구원하시는 신의 스토리이다. 진리에 대한 추상적
진술들과는 달리, 스토리는 독자의 옆구리를 꾹꾹 찔러 그 스토리 속에 뛰어드는
참여자로 만든다. 우리는 어느 순간 무대 위에 올라가 있다. 처음에는 구경꾼이나
비평가로 시작했더라도 탁월한 스토리(성경은 참으로 탁월한 스토리이다!)를 만나면,
어느새 스토리를 듣는 사람에서 스토리 안의 사람으로 바뀐다.
요나 스토리가 믿음의 삶을 격려하는 스토리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것은,
그가 지고하고 위대한 영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나는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다. 요나는 그리 대단한 일을 할 것이 없다. 그는 우리가 우러러
보아야 할 이상적 케릭터가 아니라, 어리석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케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요나는 심지어 바른 일을 할 때도(결국 니느웨에서 말씀을 전하기는
하지만) 잘못을 저지른다(신에게 화를 낸다). 그러나 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요나의 어리석음을 재료 삼아 일하시고, 결국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내신다. 우리
모두에게 성경의 요나같은 친구가 한두 사람쯤은 꼭 있어야 한다.
[출처] 유진 피터슨, 메시지 성경
[입력] 22년 11월 21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