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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브 해안. 왼쪽 건물이 피카소 미술관이다.
*니스 해변의 영국인산책길
<한불 음식문화 지형 비교>
1)
불란서는 음식맛과 탐구 및 평가에 있어서 단연 세계 제일이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한국음식은 아직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바야흐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이다. 국내에서도 맛집과 음식 탐구 및 평가에 대한 관심이 역사상 가장 높은 시기여서 국제적 관심에 뒷심을 실어 주고 있다.
불란서는 인구가 2020년 6,500만 정도, 한국의 5,100만보다 조금 많고, 북한의 2,500만을 포함하면 7,600만 한반도 인구가 조금 많은 편이다. 인구가 한국과 비슷한데 자연조건 또한 매우 유사하다.
불란서는 맛있고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다각도로 갖추고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다. 파리 연평균기온은 11도이고, 해양성과 대륙성 혼합기후이다. 남동부는 지중해성 기후로 니스는 1월 평균기온이 8도이고 서리가 2,3일밖에 내리지 않아 따뜻하다. 강우량은 국토 대부분이 760~1,000mm로 채소 생육에 적합하다. 햇빛이 충분하여 질 좋은 포도와 올리브를 생산하고, 비타민이 많고, 섬유질이 많아 탱탱한 채소를 생산한다. 대체로 온대 지역의 음식이 맛있는데 세부적인 기후도 좋은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영토는 643,427㎢로 세계 42위다. 100,364㎢, 109위인 한국보다 6배 정도, 한반도보다는 2.5배가 넓다. 육지는 넓은 평야와 산지로 이루어졌고, 여러 강을 끼고 있다. 해안지역은 넓은 대서양과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데, 대서양 쪽으로는 영국해협과 비스케이만을 면해 있으며, 천일염을 생산할 수 있는 갯벌을 갖고 있다. 영토는 한국과 유사하게 산ㆍ바다ㆍ평야ㆍ강을 끼고 있어서 농산물, 해산물, 임산물, 축산물의 생산이 다 가능하다.
강이 많다는 것도 비슷하다. 세느강, 루아르강, 가론느강, 론느강의 4대강을 가지고 있다. 한국도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의 크고 긴 4대강을 가지고 있다. 섬진강, 영산강, 금강 등이 있는 전라도와 낙동강만 있는 경상도가 그 기질이 각각 프랑스와 독일과 비슷하다는 점은 재미있다. 독일도 경상도처럼 라인강 하나만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경상도는 외곬수의 학문 기질이 비슷하고, 전라도와 불란서는 다양성의 예술 기질이 비슷하다.
거주민 성향이 자연과 서로 관련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맛을 따지지 않는 독일인과 맛을 섬세하게 따지는 불란서인의 서로 다른 기질도 자연의 특성과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강은 대개 식수원이므로 음식과 관련이 당연히 있을 거 같다. 물론 경상도 낙동강은 다양한 지류로 수량의 부족은 겪지 않지만, 전라도와의 음식 차이는 자연환경에서 오는 기질 차이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2)
불란서 영토는 2/3이상이 300미터 이하의 저지대로 광대한 평야 지역을 확보하고 있다. 육지에는 호수와 강, 습지가 적절하게 분포되어 있다. 삼림지역은 영토의 1/4에 이른다. 평야지역에서는 곡식과 과일과 축산물을, 해안지역과 바다에서는 천일염과 다양한 해산물을 얻는다. 맛있는 포도로 고급 와인을 생산하며, 지중해 연안 남불에서는 햇빛을 좋아하는 올리브를 대량 재배해 올리브오일을 생산한다. 둘 다 그 자체로 즐기면서 음식의 맛을 내는 고급 식재료로도 사용 가능하여 음식의 수준을 높인다. 삼림지역에서는 야생버섯과 야생짐승을 얻는다. 야생 버섯은 향과 맛이 깊다. 잘 알려진 송로버섯 트뤼프가 대표적이다.
지형 조건에 따른 다양한 식재료 생산이 가능하여 다양한 음식이 가능하고, 맛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인간 생존 조건인 물과 음식을 구하기 위한 이처럼 좋은 조건을 구비한 나라도 찾기 힘들다. 좋은 식재료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과 적합한 기후를 다 가졌다. 식품을 위한 상업적인 접촉이 사실상 별로 필요없을 정도 자족적인 곳이다. 거기다 발효조건까지 좋아 와인과 치즈를 생산하는데, 지역별로 맛과 향이 다른 품종을 생산하여 식탁을 풍요롭게 하고, 독특한 식탁문화를 형성한다.
인간생활에 있어 최적 조건을 가진 축복받은 땅이다. 이런 입지조건 속에서 라틴문명권의 중심지가 되어 높은 음식문화를 이루어온 것이다. 무역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하면서 불란서는 무역을 통해서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는데, 향신료와 식재료를 싼값에 구입하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다양한 식재료를 직접 생산ㆍ취득할 수 있는 자연조건에다, 무역을 통해서 좋은 식재료를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인위적 조건까지 구비한 것이다.
3)
음식이 맛있다는 나라는 대개 이처럼 식품 생산에 좋은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태리, 스페인 등 유럽에서 불란서 못지않게 음식을 평가받는 나라가 모두 온대 지역에 있으면서 자연조건이 유리하다. 이 세 나라는 불란서와 같이 라틴문명권의 중심부에 속하는 국가다. 문화발달과 음식 발달이 상관관계에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점에서는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온대 지역으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큰 기후 조건을 가져서 맛있는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일본의 기무치가 한국의 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기후에서 오는 단단한 결구배추의 맛과 발효 여건의 차이가 중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란서가 좋은 발효조건을 가져 와인과 치즈를 생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연 조건 덕분에 김치와 된장 등 발효식품을 생산할 수 있다.
서해안과 남해안은 세계 5대 갯벌을 구비하여 질 좋은 천일염을 생산하고, 다양한 어패류를 생산하여 젓갈을 만들 수 있다. 젓갈은 그 자체가 독립된 반찬이면서, 식재료의 기능도 가진다. 육지 생산물인 콩으로 만든 콩간장과 바다 생산물인 어패류로 만든 젓갈간장을 다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소금을 주로 쓰는 서양과 달리 한국은 간장으로 깊고 다양한 맛을 낸다. 두 종류의 간장에다 소금까지 사용하므로 간을 하는 가장 다양한 방법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 맛의 기본인 간의 방법에 있어서 그 다양성과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다. 그점은 불란서보다 나은 조건이다.
서해ㆍ동해ㆍ남해, 삼면의 바다는 해수 온도와 깊이가 다 달라 어종과 해초가 다양한데 여기에 계절의 변수를 더하면 그 다양성은 더 넓어진다. 계절과 지역에 따라 해물의 종류가 달라진다. 내부적으로는 경상도와 전라도 음식 차이가 이러한 자연조건의 차이에도 기인한다. 경상도는 방어와 대게, 돔베기(상어)를, 전라도는 조기와 홍어, 꽃게, 꼬막을 많이 먹는다. 식재료 생산의 차이는 지역별로는 음식문화의 차이로 나타나고, 전국적으로는 다양성으로 수렴되어 풍성한 음식세상을 이루게 된다.
육지도 산림이 2/3, 평야가 1/3정도여서 풍부한 곡물과 경작 채소에, 다양한 임산물까지 얻을 수 있다. 곤드레나물, 어수리나물, 취나물 등등은 불란서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산간 식재료다. 이중 취나물을 들어보면 식용 가능한 종류만 24가지나 있다.
오히려 우리는 불란서보다 더 활용도 높은 갯벌을 끼고 있다. 불란서도 갯벌에서 게랑드소금을 생산하지만, 세계 5대 갯벌인 그 크기나 생활과 밀찰된 용도 면에서 댈 게 아니다. 굴은 양국이 다 양식을 하는데, 우리 갯벌은 조석간만의 차가 커서 불란서보다 1/3 정도의 기간이면 훨씬 영양가 높은 굴을 생산할 수 있다. 당연히 가격도 현저하게 싸다. 온갖 다양하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비할 수 있는 자연조건은 불란서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조건에 대해서는 선조들도 생각이 같았다. <도문대작>에서 허균은 “우리나라는 외진 곳에 있기는 하지만 바다로 둘러싸였고 높은 산이 솟아 물산이 풍부하다. --- 구분한다면, 아마 역시 만(萬)의 수는 될 것이다.”라 하였는데, ‘만(萬)’은 식재료의 수를 말한다.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맛있는 식재료를 생산하는 한국은 불란서에 일단 식재료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4)
불란서 내에서는 남불이 뜨거운 햇빛이 있는 데다 고른 일기 조건이 북쪽보다 나아 식재료의 자연조건이 더 유리하다.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더 맛있는 채소를 싸게 얻을 수 있다. 남불은 따뜻해서 겨울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남불의 햇빛은 북불 사람은 물론, 기후가 나쁜 영국 사람들을 계절 이민의 형식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니스 해변의 ‘영국인 산책길’은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영국인들은 햇빛을 찾아와서 맛있는 음식까지 즐기는 꿩 먹고 알 먹는 이동을 했다. 잦은 비와 안개로 맛있는 채소 생산이 어려운 영국은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곳이다. 영국인들의 남불 이동은 전쟁이나 생계를 위한 이동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이동으로 최초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동물은 생존을 위한 이동만 하지만, 인간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여행도 한다. 물론 이것은 여행수단의 발달로 가능해진 기차 이동과 식민지로 축적된 잉여자본의 배경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불란서 내에서도 음식의 중심지는 파리의 북불이 아닌 남불이다. 남불은 질좋은 야채와 과일을 생산하며 각종 허브와 올리브 공급원이다. 들소고기, 염소고기, 말고기, 와인, 염소치즈, 벌꿀 등이 풍부하다. 좋은 기후와 음식을 가진 남불은 예술인들의 고향이다. 피카소, 세잔느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인들이 남불을 근거지로 예술활동을 하였다.
남불 요리는 색과 맛이 좋고 비타민 등 영양이 풍부하여 풍미가 좋다. 북불은 버터를 많이 쓰는 데 반해 남불은 올리브를 많이 쓴다. 북불은 마늘을 쓰지 않는데 남불은 마늘을 써서 강한 맛을 낸다. 남불은 멸치, 토마토, 허브를 많이 이용해서 이탈리아와 음식과도 비슷하고 한국의 음식과도 가깝다.
남불 중에서도 리옹이 ‘불란서의 음식 수도’로 극찬을 받고 있다. 리옹은 로마 정복기 때 갈리아 수도이자 교통의 요지로서 상업발달로 신흥부자가 많아졌다. 식재료 유통 경로의 중추로서 이국의 향신료 전파까지 이루어져 생산과 공급 다양성에서 다른 어느 도시보다 유리하다. 16세기에는 이탈리아 상인과 은행가들이 많아 이태리 요리비법의 전수도 이루어졌다.
리옹의 부자들은 최고의 재료로 만든 음식을 즐기기 위해 훌륭한 요리사를 고용하며 식도락을 즐겼다. 거기다 1차대전 후 식당을 연 소위 ‘리옹의 어머니들’은 상층 위주의 상업 음식을 하층에 저렴하게 제공하여 수용층 확산의 혁신을 이루었다. 파리와 상층 중심의 음식문화 지형을 바꾸려는 혁신의 도시인 것이다.
이와 같이 불란서는 천혜의 자연 조건 속에서 음식문화의 발달을 이루었다. 우리의 음식 발달도 이런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여건이 더 성숙한 남불과 리옹이, 우리는 전라도와 전주가 음식 발달의 핵심지역이 되었다.
불란서는 이러한 자연조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그 동안 음식문화 강국의 위상을 지켜왔다. 그러나 고급음식 위주의 불란서는 서민음식 개발이 늦어 케밥 등 타국 음식에 밀리며 그 명성이 위협받고 있다. 애초에 서민음식 위주로 식생활을 해왔던 우리는 국제무대에 새로운 얼굴로 나타나 음식강국을 염원하고 있다. 이후 천혜의 자연 조건을 어떻게 음식문화 속에서 활용하며 변곡점에 놓인 음식문화의 위상을 높여나갈지 양국의 공통 과제가 되어 있다.
<참고문헌>
심순철(2006), 불란서 미식기행, 살림
조동일(1999),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 지식산업사
민혜련(2012), 불란서 음식문화, 살림
파트릭 랑부르 저, 김옥진 외 역(2017),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 경북대출판부
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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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근처 페루즈마을의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 내부
*리옹의 한 음식점<파베 드 생장>과 음식.
*마르세이유 항구의 토속음식 브이야베스
첫댓글 '비교음식사'라는 새로운 학문을 예감합니다.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번다한 글 읽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면서 자신이 없어서 많이 더듬거렸는데 덕담, 많이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