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교육적 상상력 - ‘에프터스콜레’(efterskole)
_송순재(교사대학 이사장,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_작성: 2017년 10월
에프터스콜레가 어떤 학교인지 알기 위해서 먼저 이 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털어놓은 소감 몇을 들어보기로 하자.
“에프터스콜레에서 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부터 떠나 홀로 있으면서 지금까지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어.” / “넌 정말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될 거야. 아마도 그 선생님들을 흡사 네 부모님처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선생님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 / “내 날개로 날아오르기 전에 내 안에 있었던 갭을 채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에프터스콜레는 참 좋은 학교야. 이 학교는 나를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자주적으로 만들어 주었어.”
주요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본 성격
에프터스콜레(1851년부터 현재까지 160여 년 동안 단절의 역사 없이 발전을 거듭해 온)는 덴마크의 초등교육과정(1-10학년.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학년까지를 포괄하는 과정) 을 마치기 전, 14-18세 청소년들이 1년 동안(혹은 경우에 따라 2-3년까지 가능), 일반교육을 기본 토대로 하되 개성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세계와 자기 인생행로를 탐색하고 심화시키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인생)학교이다.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중점학교’라 할 수 있다.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외국어, 음악, 미술/디자인, 연극, 영화, 스포츠, 항해, 여행, 국제교류, 종교, 프로젝트와 현장연구, 난독증 등 학습장애, 혹은 학생의 특수한 요구를 위한 학교 등 그 유형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기숙학교로 운영되며, 현재 매 학년 25% 가량의 학생들이 상급학년에 올라가기 전 이 학교에 다닌다.
덴마크 정부는 에프터스콜레 재학기간을 공립학교 재학기간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며 그 법적 위치를 보장하고 있다. 이 성격 때문에 세계 대안교육 지형 전체에서 볼 때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의 목적
교육과정과 교수-학습 방식은 학생의 자발성과 협력을 촉진하는 동시에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 단 중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에프터스콜레가 공유하는 세 가지 핵심 가치가 있는데, ‘삶의 계몽’(삶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도록 깨우치기), ‘일반교육’, ‘민주시민’이 바로 그것이다.
연대와 공동체 및 통일성은 에프터스콜레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핵심 개념으로, 이는 ‘학문적 교육’과 ‘일반 생활-학습’(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면을 구비하도록 준비시키는 도구)이 하나로 연계된 구조 속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동시에, 학생들 개개인들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능력을 촉진하려는 의도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점에서 단순히 개인적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 학교와도 다르며, 또 그 교육구조로 볼 때 개성이라는 세계의 단순한 탐색을 넘어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도입한 ‘자유학기제’와도 다르다.
역사
에프터스콜레는 1850년대 초엽에 처음 세워졌다. 그 핵심은 그룬트비(Nikolaj F.S. Grundtvig, 1789-1872, 시인, 교육사상가, 정치가, 덴마크 국교회 목사이자 감독)의 교육과 덴마크 시민대학에 관한 철학, 즉 학교는 형식적인 직업훈련보다는 ‘삶의 계몽’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룬트비는 이 철학을 새로운 덴마크 사회를 위한 비전으로 제시했다. 덴마크 시민대학은 19세기 덴마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또 사회가 이 새로운 정치적 방향에서 재구조화될 수 있도록 주요한 역할을 했다 (정치적, 교육적, 종교적, 법률적 체제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한 상호협력운동). 그룬트비 이념에 기초한 최초의 시민대학은 1844년 설립되었다.
아울러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크리스튼 콜(Kristen Kold, 1819-1870)이다. 콜은 그룬트비의 사상과 비전을 기초로 삼으면서도 자신이 발전시킨 관점을 교육현장에 실제로 구현시켰다. 그룬트비가 시민대학을 청소년을 위한 학교로 생각했다면, 콜은 이 시기를 사춘기로 낮췄다. 콜은 1851년 농촌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는데 이 학교가 바로 최초의 에프터스콜레이다.
연표(개요)
1851 최초의 에프터스콜레가 퓌넨의 뤼스링에에 설립됨.
1895 에프터스콜레의 설치를 포함한 국가재정 지원 예산 편성.
1908 범 국가적 에프터스콜레 협회가 결성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Foreningen af
Ungdoms- og Efterskole로 불림.
1930 에프터스콜레에 관한 교육법이 통과됨. 이후 입법 측면에서 주요한 국면이 여러 시기에
걸쳐 전개됨. 1942, 1954, 1967, 1970, 1992, 1994, 1996년과 2000년도는
그 주요 기점.
1967 에프터스콜레가 공립초중학교 졸업 시험 중 몇 과정을 통과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인가
받음.
1975 에프터스콜레에 상응하는 공립학교인 폴케스콜레(Folkeskole – Municipal
secondary school)에서 학업 종료시에 치루는 종합시험과 동일한 과정을 제공하는
것으로 인가받음.
1975-99 해마다 몇 개의 에프터스콜레가 새로 설립됨. 학생 수도 두 배로 증가.
2000 이 시기에 제정된 에프터스콜레 법에 따르면 모든 에프터스콜레는 추구하고자 하는 자기
나름의 고유한 가치 지향성과 내용을 정의․기술해야 하고, 아울러 매 학년 말 학교는
‘자체’ 평가를 해야 함.
자유
에프터스콜레에서는 공립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이 교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교수방법과 교육적 접근에서도 그렇게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 자유는 에프터스콜레의 정치적, 종교적, 교육학적 지향성에 따라 다양하다. 국가는 이런 특징을 학교와 학생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서 보장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에프터스콜레의 특징 중 하나는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이다. 교사는 수업시간 외에도 교수활동과 감독에 관해 책임을 지는데, 이는 교사와 학생이 하루 종일(동틀 때부터 잠들 때까지) 함께 생활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긴밀하며, 인격적이며 비형식적 관계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종종 작용한다.
교과와 시험
대부분의 에프터스콜레에서 제공하는 교과와 시험체제는 공립학교와 동일하다.
학교와 학생 수
학교 규모는 25명에서 500여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보통은 100명 정도의 규모이다. 덴마크 전역에 걸쳐 250여개의 에프터스콜레가 있으며, 대부분 농촌 지역이나 지방의 타운에 위치해 있다. 재학생 수는 1900년대 초 이래 매년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2010년에서 2013년 사이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