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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윤이와 둘이서 승용차 이용
산행거리 : 약 15 km 산행시간 : 약 10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1139185
· 거리 15.1 km
· 소요 시간 10h 21m 16s
· 이동 시간 7h 31m 24s
· 휴식 시간 2h 49m 52s
· 평균 속도 2.0 km/h
· 최고점 1,168 m
· 총 획득고도 682 m
· 난이도 보통
산행기
또 다시 설악산을 꿈꾸다가 가까운 가평 석룡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지난주에 늦잠 자는 바람에 설악산을 포기하고 화악산으로 갔는데 이번에는 휴가철이라서 길이 막힐 것이 우려되는데다 여름산행에 계곡이 없는 설악산 귀때기청봉 산행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석룡산이다. 2016년 겨울에 다녀온 후 작년에 가려다 미루었던 곳인데 이런 더운 여름날 조무락골로 내려오면서 시원한 물에 빠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영윤은 지난 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새벽 4시쯤 일어났다. 미리는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여 우리둘이서 급히 준비하여 나가기로 했다. 밥을 새로 짓고 과일과 물을 챙겨서 5시 30분쯤 출발할 수 있었다. 일찍 나선 덕택에 길은 막히지 않고 차가 잘 빠진다. 가평으로 가는 길에 동쪽 하늘에 구름사이로 비치는 일출광경이 장엄하다. 이렇게 마른 날에도 구름은 마치 가을하늘처럼 뭉게구름이 멋지게 피어난다. 잠이 부족한 영윤은 옆자리에서 자지도 못하고 구물거린다. 나도 덩달아서 졸음이 가끔씩 눈앞을 훍고 지나간다.
지난번 산행 들/날머리였던 관청리를 지나 조무락골 입구인 삼팔교를 지났다. 길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장을 지나 적목리 용수골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다가 길가에 차를 세웠다. 누군가 우리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있었던 듯 차 한 대가 길가에 주차되어 있다. 차안에 표시된 외부기온은 20도다. 최근 밤이나 낮이나 30도를 웃돌며 낮에는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20도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올때도 차창을 열고 에어컨을 꺼도 더운줄 모르겠고 다만 습기가 묻어 있어 다시 창을 닫고 에어컨을 켰었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였다. 30분쯤 잤는가보다. 7시 45분쯤 일어나 홀가분해진 몸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전날 지도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자루목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용수목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것인데 지도에 표시된 자루목 들머리에는 철망으로 막혀 있고 거기에 철문을 설치했는데 그것도 자물쇠로 잠겨 있다. 야생동물의 출현이 목격되어 생태보호를 위해 탐방로를 폐쇄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결정해야 한다. 이 울타리를 타고 넘느냐 아니면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까지 가서 산으로 올라가느냐 하는 건데 실상 이 울타리는 끝도 없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영윤에게 말했더니 오히려 결정이 빠르다. 배낭을 내려놓더니 옆으로 삐져나온 쇠막대기를 발판삼아 금방 타고 넘어간다. 그리고 우리의 계곡탐방이 시작되었다.
길가에 햇빛을 받은 풀들이 씩씩하게 자라나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이슬맺힌 노랑물봉선
향기가 은은한 사위질빵
광대싸리 열매
구릿대
땅두릅이라고도 부르는 독활, 혼자서도 잘해요 그래서 독활이라 부른다. 뭘 잘하는지..
눈빛승마 - 눈내리듯 화려한 흰빛의 꽃잔치를 벌일 날도 머지 않았다.
배초향 - 잎을 뜯어 비벼서 냄새를 맡으면 박하향이 난다.
입구를 막아놓은 때문인지 산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숲은 울창하고 계곡물은 폭포와 웅덩이를 번갈아가며 나타나는데 그 웅덩이가 제법 크고 물이 맑아서 경치도 아름답고 기분도 맑게 해준다. 완전히 원시림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올라가면서 같은 계곡을 몇 번 건너야 하는데 내가 앞서 걸어 가다가 작은 뱀 한마리를 발견했다. 무슨 뱀인지 구분은 안되지만 물에서 노는 걸 보니 물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참 가다가 이번엔 영윤이가 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꽤 큰 뱀인데 달아날 생각이 없는건지 내 앞에서 얼쩡거린다. 내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자 별 놈 다 본다는 듯이 돌아서서 천천히 가버린다. 저 뱀도 사람을 처음보는 모양이다.
아무도 지나 다니지 않는 원시림의 계곡에서 우리는 원시시대로 돌아갔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태곳적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사과를 따 먹기전에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여 알몸으로 지내도 아무렇지 않았었다고 한다. 원래 산행을 마치고 하산할 때 하는 알탕을 산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해 버렸다. 물위로는 자그마한 폭포가 떨어지고 물은 목까지 찰 만큼 깊지만 위험하지 않다. 오랫동안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물에는 오랜 가뭄탓인지 약간 물이끼가 끼어 있지만 물은 깨끗하다. 낙엽 썩은 부유물이 조금 떠다니지만 이것도 청정 자연물이다. 우리는 오롯이 자연속에 숨어든 인간으로서 잠시동안 자연이 주지도 않는 선물을 빼앗아 즐긴다.
이 숲에는 당단풍 나무가 유난히 많다. 계곡물 위에 늘어진 단풍나무 잎이 붉은색으로 물들었을 10월달의 모습을 그려본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당단풍 나무가 계곡을 따라 이어지고 다른 활엽수들도 숲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른 아침 햇살이 스며들기 전에 계곡물위로 비치는 빨간 단풍의 풍경은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글거린다. 가을이 오면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아 원시림의 모습을 보고 싶다.
계곡길은 여러 번 물을 건너면서 흔적이 점점 희미해지는데 거의 본능에 의지하여 길을 찾았다. 그러다가 계곡이 끝나갈 때쯤 ‘무주공산’이라는 산악회에서 걸어놓은 리본이 눈에 띈다. 이제까지 길을 잘 찾아 왔다는 증거라서 안심이 된다. 스마트폰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 계곡에서는 램블러에 나오는 길을 제대로 찾아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계곡에서 벗어난 산길을 왼쪽을 벋은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가끔 절벽 같은 바위가 나타나면 약간 우회하면서 또 힘들면 쉬어 가면서 한참을 올라갔다. 먼데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석룡산 정상쪽에서 들리더니 한참 후에는 왼쪽 골짜기에서 여러명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하늘이 보이고 능선길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구실바위취
옛날 길없는 산에 헤매고 다닐 때는 입이 열자는 튀어 나오고 눈을 아래로 내려깔고 불만을 토로하던 영윤이가 이제는 도를 닦은 도사가 되었는지 아무말 없이 잘 따라 온다. 내가 꽃사진을 찍으려 한 참 뒤쳐져 있으면 앞서 가다가 앉아서 쉬고 있다. 전에 연인산에 갔다가 아재비고개에서 상판리로 내려갈 때 내가 다래를 딴다고 뒤쳐졌을 때 심하게 열을 받아 앞서서 내려가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자신의 전략을 수정했나 보다. 그만큼 여유도 생긴데다 내가 사진을 안찍고 그냥 가면 따라잡을 수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타협하는 마음가짐이 갖춰진거다. 차를 가지고 왔으니 급할 것도 없고 천천히 여유있게 다니는 것이 완전 신선놀음이다.
멸가치 꽃이다. 이름을 외우는데 2년 걸렸나보다.
산꾼들이 다니는 큰 산길과 만나는 지점이 1,103고지라 이름 붙은 봉우리다. 이곳부터는 급격한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고 바위에 가로막혀 둘러갈 일도 없다. 길가에 연한 자줏빛으로 피어 하늘거리는 둥근이질풀이 군락을 이루고 예쁘게 피어 있다. 동자꽃은 다 져버리고 몇 군데 띄엄 띄엄 주황색으로 피어 게으른 산꾼에게 적선하듯 눈요기를 시켜준다. 지난주에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큰도둑놈의갈고리는 꽃과 열매가 함께 달려 있어 꽃이름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다. 설악산에서 꽃봉오리로는 알 수 없었던 토현삼은 꽃이 다 지고 열매가 아롱아롱 익어가고 있다. 길가에 수북하게 자라고 있는 풀은 이삭이 여물어 간다. 이제까지는 그저 이름 없는 잡초였으나 이제부터는 ‘용수염’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내게 다가온다. 길쭉하게 자라난 잎새가 축축 휘어져 내린 것이 알지도 못하는 용의 수염을 닮았다니, 이는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귀모양을 닮았다는 기린초란 이름을 붙인 것과 그 명명법이 동일하다. 어쨌든 용수염도 알게 되고 더불어 “그령”이라는 풀이름도 알게 된것은 이번 산행의 큰 성과 중 하나다. 세상 만물은 다 이름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그냥 풀이나 나무라고만 부르니 그들도 선뜻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민숭맨숭 살갑지 않게 지내는 것이다.
좀담배풀 - 풀잎이 담배잎을 닮았다고 담배풀이라 한다.
털이슬 - 이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꽃이다. 이슬방울처럼 작은 열매에 잔털이 나 있다. 누군가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봄에 털이 보송보송하던 단풍취가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처럼 생겼다.
마타리와 똑같은데 꽃색깔만 흰색인 뚝갈이다.
화악산과 석룡산에는 흰여로나 푸른여로는 안보이고 이렇게 자주여로만 자란다. 얘네들도 씨족사회를 만들었나보다.
용수염 - 숲속에 흔히 보이는 풀인데 이제까지 관심을 안둬서 몰랐었다.
삽주 - 당해에 자란 햇뿌리를 창출이라 하고 묵은 뿌리를 백출이라고 한다는데 약효가 달라서 구분한다고 한다. 참 복잡하다.
능선길에 둥근이질풀이 아주 아주 많이 피어 있다. 이 꽃은 먼데서 봐도 이쁘고 가까이 보면 더 이쁘다.
산을 오르면서 몇 번인가 앉아서 쉬면서 배낭에 넣어 온 과일이며 감자를 먹었는데 정상에 오르기 전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그냥 간식을 먹고 정상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 때 아까 골짜기에서 시끌벅적 떠들던 등산팀인듯 한 무리의 산객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거의 30 여명은 되어 보임직한 산꾼들이 제법 빠른 걸음으로 지나면서 인사한다. 우리처럼 자루목에서 올라왔을 리는 없고 궁금하여 물어보니 도마치고개에서 10시경에 출발했다고 한다. 도중에 점심도 먹고 오는 길이라고 자랑하듯이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한다. 약 6 km를 점심까지 먹어가며 2시간 30분만에 걸었다면 굉장히 빠른 걸음이다. 우리는 빠른 산행보다는 힐링하듯이 느린 걸음으로 꽃들과 인사하며 천천히 걸었다.
두메고들빼기 - 이제 씀바귀는 지고 고들빼기가 나선다
두메고들빼기 씨앗이 민들래처럼 비상을 꿈꾸며 익어가고 있다.
고추나무 열매도 여름 햇볕을 받아 익어가고 있다. 여름은 바야흐로 결실의 계절이다.
누룩치라고도 부르는 왜우산풀 씨앗이 주렁주렁 달렸다.
모시대꽃 -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들릴 듯 하다.
참나물꽃이 많이 피어 있다.
얘가 그 진범이다. 독초인데 꽃은 이쁘다. 원래 독을 품으면 이쁜건가 ? 아이러니 하다.
큰도둑놈의갈고리 - 이름도 엄청 길다. 국회의원 뱃지를 이런 모양으로 만들면 멋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토현삼 - 꽃이 지고 열매가 다닥다닥 열려 있다.
까실쑥부쟁이 - 슬픈 전설을 간직한 꽃이 아름답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까칠하게 잘 자라나서 예쁜 꽃을 피우렴.
동자꽃 - 왜 우리나라 꽃은 슬픈 전설을 갖고 태어날까 ? 좀 밝고 행복하면 안되나 ? 가령 동자승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훌륭한 스님이 되면 안되었었나 ?
네잎갈퀴나물은 콩과 식물이라서 꽃모양도 콩꽃과 닮았지만 열매도 콩꼬투리 모양이다. 씨는 못속이는 모양이다.
석룡산 (石龍山 1,147)은 산정상의 바위 모양이 용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실제로 정상에는 풍파에 부서진 바위조각이 어지러이 널려 있을 뿐 용을 연상시키는 바위는 없다. 우리나라 산이름이 한자와 한글의 혼용 때문에 그 의미가 원래 이름에서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 석룡산 주위에는 화악산, 명지산, 국망봉, 견치봉 등 높은 산들이 즐비해 있는데 다 나름대로 이름의 유래나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는데 이 석룡산은 어쩐지 인위적으로 붙여진 것 같은 느낌이 풍긴다. 보통 용(용)자는 호수나 강물 등에 많이 붙이는데 산이름에 붙인것도 좀 특이한 것이다.
정상이 가까와지면서 처음으로 조망이 트인다. 석룡산 정상을 넘어 화악산 북봉으로 가는 능선이 보인다.
며느리밥풀꽃은 열심히 꿀을 만들어 벌에게 먹이고 있다.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난 며느리다.
석룡산 정상석을 멋지게 새로 단장했다. 2016년에 왔을 때는 초라한 모습이었다.
산에 올라올 때는 별반 보이지 않던 산객들이 여기 저기 다른 코스로 올라와 정상석 주변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성황을 이룬다. 특히, 도마치령에서 올라온 단체 산악회 사람들이 아직도 머물고 있는 듯 하고 조무락골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꽤 많다. 이들은 대부분 쉬밀고개를 거쳐 조무락골로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변에 편안하게 점심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다가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때아닌 파리떼가 수시로 날아 들어 영장류 중에서도 으뜸인 인간에게 성가시게 한다. 이 곤충과 인간간의 격은 엄연히 다른데 이들은 그런 격을 무너뜨리고 얼굴이며 팔에 붙어다리려 한다. 작년 5월 혁수와 사명산에 갔을 때 파리떼가 기승을 부리던 생각이 난다. 그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처럼 작은 곤충 때문에 영장류인 내가 신경질을 부리려 한다는 사실에 한심함을 느낀다. 그렇게 두리번 거리면서 파리도 날아들지 않고 바람도 솔솔 불고 땅바닥도 평평한 장소를 찾으면서 내려가다가 쉬밀고개 꺽어지는 곳에서 마침내 명당자리를 찾았다. 큰 나무밑에 돌을 날아다 의자로 삼고 나무에 기대고 앉으니 편안하다. 파리들은 습기가 많고 더운곳을 좋아하는데 바람불어 선선하니 파리떼도 가까이 안온다. 집에서 싸온 열무김치와 멸치볶음으로 반찬삼아 각자 한그릇씩 점심밥을 뚝딱 해치우고 나서 커피로 입가심까지 하고 나니 만사가 태평이다.
세잎종덩굴 열매
개시호 - 개자가 들어간 것은 뭔가 인간에게 밉보인거다. 인간은 자기들에게 좋은 것에는 참자를 붙이고 별로다 싶으면 개자를 붙인다. 너무 이기적이다.
쉬밀고개는 달리 방림고개라고도 부른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무가 울창하여 수밀(樹密)고개 였고 수풀의 향기가 가득하여 방림(芳林)고개였다는 해설이 실려 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는 조무락골을 거쳐 삼팔교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화악산 북봉으로 갈 수 있다는데 표지판에는 “등산로 없슴”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언젠가 화악터널에서부터 시작하여 도마치고개까지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쉬밀고개에서부터는 하염없는 내리막길이다. 왼쪽으로는 한 때 산불이 났는지 산사태가 났던건지 기존 나무숲은 사라지고 물푸레나무만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이제 겨우 10 cm 이내의 가느다란 나무들이라 언제 이것이 울창하게 자라나 쉬밀고개라는 이름에 걸맞는 숲이 될 지 자못 기다려진다.
미국쑥부쟁이 - 조무락골로 내려오는 길옆에 작은 무덤이 있는데 온통 잡풀로 덮여 있다. 잎이 작은 미국쑥부쟁이꽃이 한송이 두송이 피어나고 있다. 이제 산과 들길은 온통 쑥부쟁이로 뒤덮이겠다.
쉬밀고개에서 조무락골까지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30분이면 내려온다. 먼데서도 새소리와 매미소리에 섞여 물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등산으로 땀에 젖은 몸을 시원한 물로 적시고 싶은 욕망이 살아나 하산로인 오른쪽으로 가는 대신 사람들이 오지 않을 왼쪽으로 계곡을 조금 거슬러 올랐다. 계곡의 상류다 보니 가뭄에 찌든 계곡물 수량이 많지가 않다. 하지만 깊지 않은 웅덩이에 옷을 입은 채 산행으로 지친 몸을 흠뻑 적시고 한 동안 무아지경에 빠지는데 충분했다. 깊은 숲속 아무도 오지 않는 계곡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는 것은 옛날 신선들이 하던 놀음이라 신선놀음이라 한다. 그러니 영윤이와 나는 오늘 하루 신선이 되어 세파에 찌든 때를 벗고 우화등천하기 일보직전에서야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은 햇볕이 나뭇잎 사이로 따뜻하게 내리쬐는 여름날이었다.
조무락골 - 새들이 즐겁게 춤을 추는 계곡이라고 한다. 이제는 인구가 너무 늘어나서 왠만한 산이나 계곡에는 새대신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이 조무락골에도 이제는 새대신 사람들이 춤을 추는 계곡이 되었다.
조무락골 여기 저기 크고 작은 물웅덩이에는 우리처럼 신선이 되려는 산꾼들이 시원함에 탄성을 지르며 물을 즐긴다. 산길은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는지라 반바지를 입었어도 수풀에 걸리지도 않고 걷기에 편안하다. 몇번 계곡물을 건너면서 물에 손을 담그면 차가운 기운이 온 몸으로 전해진다. 조무락골의 길이가 약 4 km 에 달하는 만큼 길이 좋아도 걷는 건 힘이 든다. 배낭에 마지막까지 가껴두었던 사과를 꺼내 반쪽씩 나눠먹는다. 영윤은 새벽부터 일어나 10 km 가 넘는 산행으로 지친 모습이다. 그러나 지친 내색을 하지 않고 묵묵히 앞서거니 뒷서거니 마지막 구간을 걷는다.
배초향
오리방풀
짚신나물
영아자
여우오줌
물양지꽃 - 양지꽃도 참 종류가 다양하다.
삼팔교는 한국전쟁 전 남북을 갈라놓은 분계선이었다. 이 삼팔선 북쪽은 공산주의 북조선이요 남쪽은 민주주의 남한땅이었다. 그러던 것이 6.25 전쟁이 발발하고 3년간 치열한 전투끝에 남한의 국군은 철원 이북까지 치고 올라간 반면 미군 등 연합군이 맡았던 서부전선은 북한군에 밀려 38도선 이남의 땅을 북한에 내주었다. 만일 6.25 전쟁이 없었고 38선이 남북의 경계선으로 굳어졌다면 화악산이든 석룡산이든 우리의 산행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잠재의식속에 자리잡은 분단의 한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한발자국만 북쪽으로 가면 체제가 다른 세계가 될 뻔한 곳에 서 있는 것이다.
좀깨잎나무 - 여러해살이 풀이라고 봐야 할 듯 한데 어째서 나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나무와 달리 줄기는 가을이 되면 말라서 죽고 이듬해 뿌리에서 새싹이 난다. 잎모양이 들깨잎과 닮아서 깨잎나무라고 한다.
산장뜰에는 풀협죽도꽃이 푸짐하게 자라고 있다. 예전에는 좁쌀풀도 많았는데 이 플룩스와의 싸뭉에서 진모양이다. 지금은 좁쌀풀이 하나도 안보인다.
송장풀 - 예쁜꽃에 이름은 엄청 무섭다.
우리가 삼팔교에서 산행을 마치고 주차해둔 곳으로 가니 차는 하루 종일 뜨거운 여름 햇볕에 달구어져 있다. 아침에 21도였던 기온이 한낮을 지나면서 30도를 웃돈다. 지난주에 비해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인지 오늘은 차가 밀리지 않아 갈때와 마찬가지로 가평을 통해 국도를 달려서 한 시간 반쯤 걸려 집에 도착했다. 긴긴 하루동안 속세를 떠나 지내다 온 기분이다.
에필로그
산행을 가기 전날부터 기침이 나더니 점점 더 심해진다. 산에 다녀와서 탁센을 먹고 좀 나아지고 있다.
산행을 하고
나면 고기가 땡긴다. 집에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돼지 앞다리살을 사서 집에와 삶아 먹었다. 영윤이 산에서 뜯어 온 억센 취나물 잎사귀에
싸서 먹는데 나름 맛이 있다.